사진작가 김수강의 가벼운 존재의 미학
하철 환풍기 위에서 휙 날아올라간 원피스 자락을 손으로 주저앉히는 마릴린 먼로의 모습. 영화 ‘7년 만의 외출’ 촬영 중 연출된 이 장면은 검열에 통과하지 못해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만 보고 사라질 수 있었던 이 장면이 어떻게 배우 마릴린 먼로를 대표하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각인될 수 있었을까.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사진은 영화 촬영장에 있던 파파라치가 찍은 것이라고 한다. 사진의 매력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모두가 육안으로 보고 있고, 볼 수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하지만 카메라 앵글로 포착해내는 순간 그 대상은 새롭게 태어난다. ‘찰칵’하는 황홀한 순간에 사각 앵글 안에 담겨진 모습은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순간의 모습을 영원히 지속시켜 주기도 하고, 미처 보지 못하고 스쳐지나갔던 것을 새롭게 보여주기도 한다. 사진작가 김수강의 작품은 후자에 속한다. 그녀는 단추, 클립 동전 구슬 귤껍질 병뚜껑 등 말하자면 아주 사소한 것들을 대상으로 촬영한다. 일상생활에서 늘 보기 때문에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들이지만 그녀의 눈과 손을 통해 만들어진 사진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실제와 사뭇 다르다. ‘되도록이면 자질구레하고 예쁘지 않은 것을 선택한다’는 그녀의 말처럼 사진 속 대상은 하찮은 사물이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미감은 상당해 한 번 보고 시선을 거두었다가 다시 한번 바라보게 하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진이라고 단언하기에는 망설여지는 회화 같은 질감은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이는 검 바이크로메이트(Gum Bichromate)라는 19세기 프린트 기법. 아라비아 고무와 중크롬산을 이용해 감광유재(減光乳材)를 직접 만들고 그 유재를 종이에 바른 후 자외선에 감광시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1 대 1 밀착 인화 방식이다. 색판화 찍듯 여러 차례 반복해서 모양과 색을 만들어가는 것이라지만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얼핏 들어선 제작 과정이 이해되지 않는다. 쉽게 말하자면 요즘에는 사용하지 않아서 사진 재료상이 아닌 화학 재료상에 가서 구입해야 하고, 일반적인 사진이 1시간 걸린다면 검 프린트는 3일 정도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물리적인 과정이 많고 귀찮은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식기 세척기와 설거지의 차이점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면 돼요. 시간과 노동을 덜 들여 그릇을 닦는 것이 목적이라면 세척기를 써야겠지만, 저는 그릇을 닦는 과정에서 손에 닿는 물의 감촉, 수세미질을 하고 헹구는 반복적인 작업에서 색다른 가치와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설거지 하는 것을 좋아해요. 사진 작업도 마찬가지랍니다. 디지털 작업은 찍어서 바로 프린트로 인화할 수 있어 간편하기는 하지만 그런 것을 통해서는 아무런 재미를 느낄 수 없어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지만 검 프린트 작업을 통해 내가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감정을 사진 속에 스며들게 할 수 있거든요. 이렇게 해야 정말 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마치 스푸마토 기법(‘연기‘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로 형태가 엷은 안개에 싸인 것처럼 경계선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그리는 회화 기법)으로 그린 듯한 김수강의 사진은 오랜 시간 물속에 손을 담근 채 염료로 거듭해서 색을 만들고 손끝으로 인화지 위의 이미지를 매만져서 완성된 것이다. 서울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녀는 새로운 것을 배워보고 싶은 생각에 뉴욕 유학 중 사진으로 전공을 바꿨다. 회화와 사진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전자는 빈 캔버스에 여러 가지 요소와 형태와 색을 더해가는 것이지만 후자는 기존에 있는 것에서 일부만 선택해서 취한다는 점이다. 사진은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상이 있다는 것. 다시 말해 현실과 작가의 합작품이라는 점이 그녀가 느끼는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이다. 다섯 살 때부터 그림을 시작한 그녀에게 회화 수업은 자신의 작업을 계속하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지루했다. 그래서 유학 중 교양과목 수업을 즐겨 들었고 그곳에서 만난 필립 퍼키스는 잊지 못할 스승이다. “모든 사물에는 궁합이 있듯 필립 퍼키스 교수와 저는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냥 놔두는 것이 퍼키스 교수의 스타일이에요. 방치가 아니라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것을 지켜봐주는 것이죠. 미술 작업이라는 것이 때로는 내가 하면서도 뭘 하는지 헷갈릴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내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해주셨죠.”소설가의 글 속에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듯, 미술작가는 작품 속에 작가의 성향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김수강의 작품에도 고요하고, 사색적인 작가적 성향이 투영돼 있다. 화면에 덩그러니 사물이 있는 그녀의 작품은 정적이고 관조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풍긴다. 그녀가 여러 가지 사물 가운데 객관화하는 사물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마치 군중 속에 사랑하는 연인이 서 있으면 주변 사람은 안 보이고 그 사람만 눈에 들어오듯 김수강이 사물을 카메라에 담을 때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다. 최근에 선보인 보자기 작품은 어느 전시회 오프닝에서 음식을 싼 보자기를 보고 영감을 얻어 촬영한 것이다. “보자기 작품을 보고 한국적인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냐고 묻지만 그보다는 그 당시 제게 느낌이 왔기 때문에 촬영한 것이에요. 오랫동안 내 옆에 있어도 느낌이 없다가 어느 순간 내 눈에 들어올 때가 있어요. 일상의 것 중에서 탁 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죠. 그 느낌이 작품으로 완성될 때까지 연결될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는데 보자기는 작품으로 연결된 것일 뿐입니다.”작품의 소재만큼이나 욕심 없이 작업하는 김수강. 그녀가 마음을 비우면 비울수록 그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이 서서히 늘어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