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은 치욕스러운 을사조약을 맺은 지 100년째가 되는 해다. 지난해인 2004년. 가깝고도 먼 일본 열도를 강타했던 배용준의 ‘욘사마’ 열풍은 한·일 두 나라 간의 미묘한 여러 가지를 한국 사람으로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주고 있다.(일본인들은 국민적 정서상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래서 두 나라는 가깝고도 먼 것이 아닐까?) 한류라고 생각하기에는 좀 과한 그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는 이 ‘욘사마’ 신드롬. 한국의 톱스타, 배용준에게 빠져든 일본 중년 여성들은 침묵, 희생이라는 오래된 ‘미덕’을 떨쳐버린 채 감춰진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얼마전 용평에 갔다가 일본 아줌마 몇몇이 배용준이 앉아 있던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고 생각에 잠겨 흐느끼며 서로 격려해 주는 모습을 보고 적잖은 충격에 빠졌었다. 그리곤 이 ‘욘사마’ 신드롬이 단순한 언론의 과장 보도가 아님을 실감했다. 일본 내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비꼬는 투로 이들을 ‘오바리언’이라고 부른다. ‘오바리언’은 아줌마(오바상)와 외계인(에일리언)을 합성한 표현이다. 지극히 평범하던 이 일본의 가정주부들이 집단적으로 현실에서 일탈해 정신적 탈출을 선언하고 한국으로 도망쳐 오는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우연히 유럽에도 아주 오래지 않은 옛날 자신의 영욕으로 인해 권세와 지위를 모두 버리고 도망간 여인의 이야기가 있다. 이탈리아 남쪽 끝 지중해의 한 가운데에 있는 아름다운 섬, 시칠리아. 그 섬에는 ‘돈나 푸가타’라는 와이너리(양조장)가 있는데 이탈리아어로 ‘Donna’는 ‘여성’이며 ‘Fugata’는 ‘도망친’ 혹은 ‘바람난’이란 뜻이다. 말 그대로 ‘도망간 여인’이란 이 지역의 유래는 영화와도 같은 드라마틱한 유럽의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르봉 왕국의 페르디난도(Ferdinando) 4세의 아내인 ‘마리아 카롤리나(Maria Carolina)’라는 여인으로 인해 생겨난 지명 ‘돈나 푸가타’. 이 지역에는 정치적 도피를 위해 씁쓸한 안식처를 찾았던 슬프고도 처절한 여왕의 스토리가 전해 온다. 카롤리나는 오스트리아 공주로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란츠 1세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사이의 16남매 중 13번째로 태어났다. 그녀는 경솔하고 놀기 좋아했지만 한편으론 강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형제 중에서 나중에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가 된 ‘마리 앙투아네트’의 가장 절친한 혈육이기도 했다. 정치에는 무관심한 왕을 제치고 1792년부터 나폴리 왕국의 실권을 완전히 장악해 나폴리 왕국을 오스트리아의 영향권 아래에 두기도 했다. 1793년 동생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에는 프랑스를 증오해 ‘장 자크 루소’의 영향을 받아 자유와 계몽주의를 부르짖던 국내 친프랑스 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오스트리아, 영국, 러시아 등 유럽의 강력한 왕국들과 동맹을 맺어 대혁명 후 집권한 나폴레옹 세력을 견제하지만 대세가 기울자 자국 내 혁명을 피해 은신할 곳을 찾아다니는 삶을 피할 수 없었다. 그 후 1798년 나폴리와 동맹군이 점령하고 있던 로마가 프랑스군에 함락되자 왕비와 왕은 시칠리아로 도망갔다. 나폴리와 로마에는 공화정이 선포됨과 동시에 1000년 이상 막강한 힘을 휘둘러 온 교황권은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그러나 얼마 후 프랑스군이 동맹군에 패하는 바람에 나폴리 공화국과 로마 공화국은 1년도 넘기지 못하고 무너지고 왕비 마리아 카롤리나가 다시 실권을 잡았다. 왕비는 공화정의 잔당들을 가혹하게 탄압하지만, 대세는 또다시 바뀐다. 그녀는 결국 지금의 ‘돈나푸가타’ 와이너리가 소유한 포도밭 중 한 곳인 ‘콘테사 안텔리나(Contessa Entellina)’로 몸을 피한 후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오페라 ‘토스카’의 원작 ‘라 토스카’에서도 등장하는 실존 인물 ‘마리아 카롤리나’! 이 쓸쓸하게 몰락한 여왕의 스토리와 함께 그녀의 화려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닮은 와인이 이탈리아의 대표적 와인 산지인 시칠리아의 바로 이 지역 이름을 따 존재한다. 물론 ‘마리아 카롤리나’의 영혼이 깃들어 있음은 당연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돈나푸가타’ (와인 이름은 ‘돈나’ 와 ‘푸가타’를 붙여서 한 단어처럼 쓴다) 와인은 모두 그림같이 그 맛과 향이 매우 아름답다. 뿐만 아니라 ‘돈나푸가타’가 생산하는 12종류의 와인 이름과 라벨 디자인 또한 모두 비운의 여인 ‘마리아 카롤리나’의 모습과 이름, 그녀가 살던 궁전, 역사적인 곳의 이름, 그리고 사랑 등 낭만이 깃든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이런 아름다운 라벨 디자인을 비롯해 와이너리 건물의 인테리어 등 디자인과 관계된 모든 일에는 현재 경영자인 안토니오 랄로의 어머니 가브리엘라 랄로 부인이 직접 리더가 된다고 한다. 이 와인들의 아름다운 라벨은 물론 모두 랄로 부인의 작품이다. ‘돈나푸가타’의 12종류 와인 중 내가 마음을 빼앗긴 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금발의 귀부인을 태운 멋진 말, 태양과 달, 선인장 등이 등장하는 ‘앙겔리(Angheli)’ 와인이다. 이탈리아 남부의 전통 품종인 네로 다볼라와 국제적 품종인 메를로를 블렌딩해서 생산한다. 루비 색상과 밝은 보라색을 띠고 있는 앙겔리는 로즈베리와 발레리 같은 잘 익은 붉은 과일에서 나는 풍부한 아로마와 감초 같은 향을 낸다. 시칠리아 햇빛을 받아 자란 포도의 정열적인 향이 특히 인상적이다. 두 번째 나의 혀를 기쁘게 했던 와인은 바로 눈물을 흘리며 휘날리는 머릿결을 가진 여인의 얼굴을 라벨로 하고 있는 ‘안실리아(Anthilia)’다. 슬픔과 고뇌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이 가련한 표정의 여인은 바로 ‘마리아 카롤리나’ 왕비이며, ‘안실리아’는 왕비가 생을 마감한 역사 속의 와이너리인 콘테사 안텔리나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시칠리아의 전통적 포도 품종인 안소니카(Ansonica)와 카타라토(Catarratto)의 블렌딩으로 양조된 안실리아는 훌륭한 아로마와 함께 조금은 드라이하며 신선한 느낌이 꽉 차 입안을 가득 메우는 힘이 있는 와인이다. 특히 풍부한 과일 향이 인상적인 안실리아는 시칠리아의 매력 그 자체다. ‘마리아 카롤리나’는 도망친 후 와인을 남겼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자신 있게 살았음을 느꼈으며 왕족으로서 변혁의 시대를 맞아 그 시대적 의미에 맞서 아프게 살다 갔을 것이고 그녀의 삶의 한 귀퉁이를 그녀의 별명을 딴 와인 이름 ‘돈나푸가타’를 통해 동양의 한 사람인 내게 보냈다. 동시에 난 또 생각했다. 일본의 ‘오바리언’들은 자신들의 숨 막히는 현실을 박차고 한국으로 잠시 일탈해 와 ‘배용준’ 이라는 메시지를 한국인들에게 다시 남기고 간지도 모르겠다고.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잊고 있던 그의 드라마 속 캐릭터 이미지를 통해 나는 우리가 우리의 것을 너무나도 쉽게 버리고 있다고 반성했다. 우리에겐 불과 20~30년 전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의 원곡 데모 테이프 소스도 온 데 간 데 없으며 김청기 감독의 불후의 명작 ‘로보트 태권 브이’의 필름도 사라져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도 점차 그런 대중문화의 기반이 생겨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도 뭔가 많이 아쉽다. 얼마 전 패티김 선생의 콘서트는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반갑고, 돌아온 심수봉의 10번째 앨범은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되며, 죽었지만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유재하는 그래서 언제나 해마다 새롭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제 2005년, 우리는 한국의 도망간 여자들이 과연 무엇을 남기고 어디로들 갈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