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 뭐 별건가…

감각에 잘 버무린 정보로 발품 팔고 인맥 갖추면 대박은 절로 터진다

수성가한 부자에겐 어떤 특별한 점이 있을까. 순수하게 재테크만으로 50억원 가까운 큰 돈을 번 서한수씨(42·가명). 그는 주식과 부동산이라는 어찌 보면 상반된 재테크 분야에서 손대는 족족 대박을 터뜨린 주인공이다. 주변에선 그를 ‘미다스의 손’이라고 부른다.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거부의 반열에 오른 서씨. 그를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 커피숍에서 만났다. 서씨는 머리를 뒤로 잘 빗어 넘긴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서씨는 인사를 나눈 후 녹차 라떼 두 잔을 손수 들고 왔다. 재테크 세미나에 자주 참석하고 돈 벌었다는 사람들 얘기도 많이 듣고 다니지만, 본인이 얘기하는 것은 지극히 싫어한다고 말했다. 말이 많으면 돈이 샌다고도 했다. 하지만 한 번 말문이 트이니,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주식과 부동산을 넘나드는 재야의 고수답게 재테크 무용담이 무척 화려했다. 그동안 불가피한 탈법 편법은 있었을지 몰라도 불법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강조하는 대목이 인상 깊었다. ‘무대 위의 규칙은 승자를 위한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성공한 사람이란 법을 잘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했다.서씨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중견 제조업체에서 사회 첫 출발을 시작했다. 입사 전 포장마차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갖고 주식에 손을 댔으나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첫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신입사원의 바쁜 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오후 2시50분께 평소 눈여겨 보던 회사가 법정관리에서 벗어날 것이란 사실을 ‘우연히’ 들었다. 서씨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즉시 전화통을 붙잡았다. 거래 증권사에 전화를 걸어 모든 계좌 잔고를 털어 그 회사 주식을 매입토록 했다. 이 종목은 다음 날 개장 직후 곧바로 상한가를 기록한 뒤 일주일 이상 상한가 퍼레이드를 펼쳤다. 소위 ‘대박’이 터진 것. 정보가 재테크의 ‘생명’이란 점을, 또 이 같은 생명을 사람이 다룬다는 사실을 서씨는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다.서씨는 이후 중요한 사람들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특히 몇몇 회사의 재무담당자 등 주요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과 두터운 친분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명절이나 기념일 때마다 이들에게 꼬박꼬박 선물을 챙겨 보내는 건 기본. 월급쟁이가 이런 걸 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을 터다. 이런 버릇은 2000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이어졌다. 이를 통해 일부 회사의 ‘자사주 소각’과 같은 대형 호재를 누구보다 빨리 알아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투자 회사의 동향을 훤히 꿰뚫게 돼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미리 막을 수 있었다고 서씨는 말했다. 서씨의 사전엔 주식투자의 기본 중의 하나인 손절매가 따로 없다.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손절매한 적이 없다고 술회한다. 바꿔 말하면 주식투자로 손해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핵심정보 습득과 정보 분석 능력이 탁월했던 때문으로 보인다. 서씨는 평소 주식투자를 하면서 한 가지 확신을 갖게 됐다. 증권사 직원들이 추천하는 종목엔 절대로 손을 대지 않는다는 것. 경험상 증권사 추천 종목의 뒤끝이 좋지 않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이론도 믿지 않는다. 양봉이니 골든 크로스니 하는 각종 이론이나 차트는 참고자료일 뿐이란 것. 차트를 맹신하는 사람치고 10% 이상 이익을 내는 걸 못 봤다는 게 서씨의 설명이다. 향후 주가를 섣불리 예측해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증권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항상 두 가지를 모범답안으로 갖고 다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주식을 사라. 은행 이자보다 낫다”는 답을 내놓거나 “지금은 주식 살 때가 아니다”라는 딱 두 가지 레퍼토리를 레코드 틀어놓는 것처럼 내놓는다는 것. 이렇게 옹색한 답변이 더 어디 있느냐고 서씨는 되묻는다. 그는 주가는 하느님밖에 알 수 없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서씨는 소위 ‘전문가’의 말이라면 곧이듣지 않지만, 신뢰할 만한 주변 사람 말이라면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수년 전 일이다. 서울 명동에서 길을 가던 중 우연히 회사 동료와 마주쳤다. 평소 과묵한 친구였는데, 이날은 만나자마자 인사말도 없이 “무조건 돈 좀 빌려 달라”고 애원하는 게 아닌가. 주식을 좀 사야겠다는 것이었다. 뭔가 ‘감’이 왔다. 이 친구의 평소 성격을 잘 알던 서씨는 돈을 빌려주면서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심정으로 자신도 투자했다. 그것도 여윳돈을 모두 쏟아부은 ‘몰빵’식이었다. 당시엔 큰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해당 종목은 이날 5%가량 하락했다. 하지만 기다렸다.다음 날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무서운 기세로 상승 반전했다. 특별히 재료는 없었다. 다만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상한가였다. 이 종목은 이후 46일 동안이나 상한가 행진을 계속했다. 중간에 하한가를 두 번 맞았지만 팔지 않았다. 뒤늦게 알고 보니 작전세력이 개입해서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것이었다. 친구는 이 정보를 미리 알고 선(先)투자에 나섰던 것.이후 서씨는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친구 세 명과 ‘몰빵 클럽’을 결성했다. ‘될 만한’ 주식에 단타를 쳤다. 당시 서씨가 ‘재테크의 귀재’란 소문이 퍼져 있었기 때문에 주변 친구나 직장 동료들이 5000만~1억원씩 돈을 맡겼다. 모인 돈은 자그마치 70여억원에 달했다. 당시엔 공모주 투자가 매력적이었다. 기술력 있는 회사들이 기업공개(IPO)를 많이 하던 때였다. 서씨는 공모주 투자를 하기 전 해당 회사의 기술연구소를 반드시 방문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연구소가 향후 회사 흥망을 가름한다는 믿음에서다. 모기업의 기술연구소를 가보니, 철조망 안쪽으로 개가 뛰어다니기도 했다. ‘무늬만 연구소’를 내세운 기업들이 투자자들을 속이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서씨의 주식투자 실적은 화려했다. D포털 사이트 주식을 공모가(1만원)에 사서 43만5000원에 팔았고, J미디어 주식을 3000원에 매입한 뒤 13만4000원에 매도했다. H소프트의 경우 4만원에 대량 매입해 104만원에 팔기도 했다. 모두 대박이었다. 서씨는 우리나라에선 눈에 뻔히 보이는 투자 기회가 도처에 널려 있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조류독감 파동이 발생했다고 하자. 그러면 당장 닭 관련 산업 주가가 곤두박질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평생 닭을 먹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주가는 곧 회복하게 마련이다. 저평가돼 있을 때를 노려 닭 관련 종목에 투자하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역발상 투자다. 조류독감이 발생하자마자 수산주에 투자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닭 대체상품(생선)이 잘 팔리면 관련 종목은 수혜를 보게 마련이다. 서씨는 “조류독감 때문에 수산주가 오르는 희한한 나라이지만, 말이 안돼도 돈만 되면 좋은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치고 빠지기’식 투자로 그야말로 짭짤한 재미를 보던 중 지난 2001년 9월 초 기분이 왠지 찜찜했다. 순전히 ‘감’만으로 주식에 투자했던 모든 돈을 현금화했다. 신기하게도 며칠 후 뉴욕에서 전 세계 주식 투자자들을 경악케 할 만한 사건이 터졌다. ‘9·11테러’였다. 주식 시세판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시장은 한동안 다시 일어설 힘을 잃었다. 그는 용케도 수렁에 들어가기 직전에 다른 길로 방향을 튼 것이다.한동안 주식에 손을 댈 수 없었다. 주변에서 많은 투자자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고 ‘주식은 리스크가 크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자연스럽게 부동산으로 눈을 돌렸다.어느 날 저녁 선배를 따라 강북의 재개발 지역 주택단지를 찾았다. 선배는 수천만원의 현금뭉치를 들고서 하룻밤 사이 여러 채의 주택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것이었다. 서씨에겐 희한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의문은 며칠 뒤 풀렸다. 이 지역은 구청 인허가를 받아 숙원이던 재개발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게 됐다. 허름한 주택 가격이 금세 두세 배로 급등한 것은 물론이다. 정보를 미리 알고 있던 선배가 선제공격을 감행했던 것이다. 역시 정보였다. 부동산 투자가 어떤 것이란 감이 잡혔다.또 다른 선배는 서울 상계동과 중계동의 분양현장을 찾아 계약금만 주고 아파트 수채를 한꺼번에 계약했다. 미분양이 쌓여 있던 때였다. 수개월이 지나자 부동산시장의 흐름이 상승세로 돌아섰고, 미분양 아파트 한 채당 1000만~2000만원씩 프리미엄이 붙었다. 이 선배는 시장이 살아날 것임을 미리 예견했던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선 남보다 한 발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배웠다.한 번은 건설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경기도 광주로 시장조사를 나간다기에 동행했다. 시행사가 아파트를 짓자고 의뢰한 토지의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는 조사였다. 큰 도로를 접하고 있지 않았지만 건설사에서 도로만 낸다면 땅값이 상승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서씨는 곧바로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아 계약금 1000만원을 걸고 주변 땅을 매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땅이 아파트 부지로 확정되고 나니 땅값이 순식간에 두 배 이상 뛰었다.서씨는 이후 부동산 현장을 누비기 시작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돈을 벌기 위해선 ‘부자들이 무엇을 가장 원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돈이 부자들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에 투자할 때 ‘좋은 물건’에만 손을 대는 버릇도 그래서 생겼다.그가 지금까지 거래한 아파트는 이촌동 LG한강자이, 여의도 대우트럼프월드와 금호리첸시아, 한강로 벽산메가트리움, 대치동 타워팰리스 등 그야말로 특급 주거단지들이다. 또 50평 이상 대형 평형에만 손을 댔다. ‘부자들이 원하는 상품’은 언제나 큰 투자수익을 안겨준다는 경험칙을 신봉하기 때문이다. 서씨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모델하우스나 고급주택을 찾아 나섰다. 굳이 사지 않더라도 ‘보는 눈’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중개인에게 가격을 물어볼 때도 절대로 건성으로 하는 않는다. 당장 계약할 것처럼 얘기해야 ‘실제 가격’이 나올 수 있다. 모델하우스를 둘러볼 땐 반드시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주택의 특징과 사진을 자료로 만들어 노트북에 모두 저장했다. 서씨는 중개업자들을 상당히 신뢰하는 편이다. 일단 ‘이론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개업자 가운데는 실전 고수도 꽤 많다.부동산 투자를 할 땐 ‘실거주 목적’과 ‘투자 목적’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게 서씨의 설명이다. 투자 목적이라면 ‘부자들이 원하는 상품’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실패하지 않는다. 그는 부동산을 ‘종합예술’로 이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상가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선 젊은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식이다.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을 모르고 선뜻 매물을 사두는 것은 섶을 지고 불속으로 들어가는 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 초기 100만달러를 버는 게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일단 이 돈을 벌고 나니, 돈이 눈덩이처럼 불더라.” 그리스의 대부호이자 선박왕인 아리스토틀 오나시스가 했다는 말이다. 서씨는 종자돈의 중요성을 오나시스를 원용해 설명했다. 종자돈을 모을 때까지 ‘검소함’과 ‘정신력’이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서씨는 해외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1년에 해외여행을 10여 차례 다녀온다. 하지만 여행이라기보다 ‘탐방’이란 표현이 더 맞다. 여행지의 주택시장을 헤집고 다니니까 말이다. 이때 반드시 챙기는 장비는 디지털카메라. 독특한 주택을 발견하면 무조건 카메라로 찍고 메모한 다음 노트북에 저장한다. 이 자료들은 모두 재테크 지침서다. 이런 메모는 당연히 큰 도움을 준다. 서씨는 수년 전 홍콩에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산비탈에 위치한 주상복합 최상층 가격이 가장 비쌌기 때문이다. 원인은 바로 조망권에 있었다. 서씨는 당시 메모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에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때마다 최상층이나 펜트하우스를 고집했고 다른 상품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서씨는 또 ‘투자일지’를 빼놓지 않는다. 커다란 달력 위에 메모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경제신문을 항상 정독한다. 이 대목에서 서씨는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생전에 “경제지를 6개월간 보니까 대학교수와 얘기해도 꿀리지 않더라”라고 했던 것을 상기시켰다.서씨는 성남 서울공항 이전 문제가 불거질 때, “아파트 분양하면 사야지” 하고 기다리는 사람을 ‘최악의 투자자’라고 평가했다. 이전 문제가 일단 거론됐다면 현지 길목에 선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판교 청약을 기다리는 사람은 순진하다고 했다. 판교 분양이 관심사라면, “주변 분당아파트를 살까?” 하고 고민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였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될 수도 있는 게 재테크 세계의 생존 방정식이라며, 쇼크가 될 정도로 가격이 떨어진 물건에 항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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