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부자들의 엘도라도

포트폴리오 52%배분…금융상품 27%·주식 14%순

국의 부자들은 평균 자산 20억~50억원의 재력가다. 물론 추정치다. ‘내 돈 얼마요’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부자는 없어서다. 단 고객 성향 파악이 절체절명의 과제인 PB들의 전언이라 그나마 신뢰성이 높다. 최근 몇 년 간 자산 평가절하는 대세였다. 옛날 같았으면 20억원대 부자는 명동 사채시장 기준으로 ‘중치’는 됐다. 그랬던 것이 요즘은 ‘잔치’에도 못 미친다. 어지간한 강남 아파트 한 채 값만 해도 10억원대를 훌쩍 넘는 시대다. 물론 서류상으로는 10억원대도 부자 범주에 들어간다. PB들에 따르면 총자산 10억원은 여전히 유효한 고객 가이드 라인이다. 금융기관 PB센터에 적을 둔 부자들은 ‘부동산 귀재들’이다. 100명 중 79명이 주된 재테크 수단으로 부동산을 꼽았다. 다른 항목인 주식(10명) 예금(6명) 등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결국 부자 10명 중 8명이 부동산테크로 부(富)를 쌓은 셈. 실제로 PB센터 상담내용 중 절대 다수가 부동산 증여·상속문제임을 감안하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응답자의 상당수가 ‘5060’세대인 까닭에 부동산을 통한 ‘부의 대물림’에 관심이 높은 것은 당연한 결과다. “전문가 뺨치는 부동산 지식·경험을 갖고 있어 상담 때 되레 배우기도 한다”는 몇몇 PB들의 말도 너스레는 아니다. 부동산 편식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투자 중인 자산 포트폴리오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재테크 상품 1순위에도 역시 부동산이 꼽혔다. 응답자의 79명이 부동산에 적잖은 돈을 넣었다고 답했다. 증시가 1000 고지를 바라보고 있지만 주식(10명)은 여전히 관심권 밖이다. 의외로 은행 예금(6명)도 일부 거론했다. 이는 부자들이 어느 자산시장도 확신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적립식 펀드 열기가 제 아무리 뜨거워도 부자들에겐 남의 얘기였다. 이원기 KB자산운용 사장은 “월급쟁이 투자자들만 펀드에 관심을 가질 뿐 부자들은 관심도 없고 투자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총 자산을 100으로 봤을 때 한국 부자들의 평균적인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될까. 흔히 일컫는 자산 3분법에 따라 금융(은행)상품 부동산 주식 기타(채권 혹은 기타 실물자산 등)의 보기를 줬다. 결과는 각각 27·52·14·7로 집계됐다. 수익성이 검증된 부동산에 절반 이상 넣은 후 안정적인 은행 상품으로 뒤를 받치는 배치가 부자들이 애용하는 대체적인 전술이다. 최전방 공격수 격인 주식도 일정 부분을 차지해 전체적으로 균형을 맞추는 추세였다. 부유층은 대출에 인색한 편이다. 52명이 대출을 꺼린다고 전했다. 이들에게 ‘부채=자산’은 통하지 않는다. 부자들은 재테크를 할 때 안정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28명이 재테크 때 원금 보전을 가장 신경쓴다고 답했다. “더 벌기보다는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일각의 분석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선호하는 투자 자산도 방어적인 상품 일색이다. 은행 상품은 확정금리형이 많고, 펀드는 ‘저위험·저수익’의 채권형이 대부분이다. 또 재력가들은 정부 정책(63명)을 가장 중요한 투자변수로 여긴다. 십중팔구는 정책 불확실성을 성토한다. 이는 참여정부 들어 더 심해졌다는 진단이다. D투자자문 K사장은 “반시장적인 정부 정책 탓에 이민을 가겠다며 넋두리하는 부자 고객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향후 기대 수익률이 가장 높은 것은 85명의 지지를 얻은 ‘부동산’으로 드러났다. 제 아무리 투기 억제책이 강도 높다지만, 정책의 지속성에 의문을 가진 고객들이 많다는 후문이다. 정권이 바뀌면 또 뒤바뀔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다. 때문에 부동산 투자는 ‘시간싸움’이라는 말까지 들린다. 전문가들조차 공급 확대가 아닌 수요 억제책에 회의적이다. 정부(정책)가 싫어 이민 가겠다는 부유층이 많지만 정작 해외 자산에 대한 투자 의향은 별로다. 38명이 해외 자산의 투자 메리트를 ‘그저 그렇다’고 말했다. ‘없다’는 사람도 21명에 달했다.요즘 PB센터는 최고급으로 단장 중이다. 고객 수준에 눈높이를 맞추자면 당연한 추세다. 대부분은 웬만한 호텔 뺨칠 만큼 호화롭다. 서비스도 각양각색이다. 저마다 특화 서비스를 내세워 ‘고객 모으기’에 사활을 건다. PB 고객들은 열에 여섯이 ‘세무’ 서비스에 관심이 많다(응답자 60명). 재산이 많은 탓에 절세 전략을 문의하는 고객이 대부분이다. 신상품(19명)과 법률(10명)이 그 뒤를 따랐다. 특이한 상품에 돈을 묻어둔 부유층도 적잖다. 미술·골동품 등 동산 재테크가 대표적이다. 명작 그림부터 도자기·서화 골동품 거래가 최근 부쩍 잦아졌다. 해외 부동산이나 금 투자도 느는 추세다.한국 부자들은 부동산 ‘불패신화’에 강한 신념을 보였다. 설문에 응답한 PB 중 81명이 “평균적인 부자 고객들은 부동산 불패신화를 믿는다”고 밝혔다. 개중 29명은 ‘아주 강한 믿음’에 동그라미를 쳤다. 이재국 서일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최소한 하방 경직성(덜 떨어지는 성질)이 높은 데다 과거와 현재 경험이 이들의 불패신화를 뒷받침한다”고 분석한다. 때문에 총 자산의 50~70%를 부동산에 투자했다고 답한 응답자가 절반(60명)을 넘었다. 재산의 상당액이 부동산이라는 얘기다. 부유층 선호 ‘No.1’ 부동산은 토지(29명)다. 최근 2~3년간 불같이 일어난 토지 열기가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김광석 유니에셋 팀장은 “토지는 장기 상품으로 목돈 여유가 있는 부자들과 궁합이 잘 맞는다”고 밝혔다. 필지가 큰 토지 경매 물건의 경쟁률이 높은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대중적인 투자대상인 아파트(19명)는 2순위에 꼽혔다. 역시 아파트야말로 필수 포트폴리오였다. 주상복합(17명)에 대한 관심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몇몇 인기 입지가 프리미엄만 수억원대에 달한 게 상징적인 결과다. 부동산 값을 결정짓는 변수는 숱하게 많다. 교육 교통부터 환경 입지에 이르기까지 수백개 변수가 상호 화학작용을 해 산출된다. 그렇다면 한국 부자들은 어떤 투자변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까. 총체적인 개념인 입지 변수가 몰표(63명)를 받았다. ‘최적 입지가 아니면 투자하지 않는다’는 부유층 투자심리가 여실히 반영됐다. 가격 변수(12명)를 높이 사는 사람도 많다. 곽창석 부동산퍼스트 이사는 “내재가치란 어차피 가격에 반영되게 마련”이라며 “비싸다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보는 큰손 투자자들이 적잖다”고 전했다. 그 다음은 교육(11명) 교통(7명) 환경(4명)이었다. 거의 부동산 현장 전문가로 봐도 손색이 없다. 이들은 투자 때 입지(42명) 수익률(25명) 가격(19명) 등의 순서로 꼼꼼히 챙긴다고 답했다.관심지역은 역시 ‘강남’이다. PB들에 따르면 불패 진원지답게 강남권 부동산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운 부유층 고객이 많다는 게 한 목소리다. 강남 선호는 거주 지역과 투자 성향과도 무관하다. 또 거주보다는 투자목적이 대부분이다. PB센터 부동산 전문가는 주말이 더 바쁘다. 고객과 함께 현지 물건 답사투어를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해서다. 부자 고객들은 요즘 충청권(26명)과 서울 이남 수도권(25명)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행정수도 아이템과 수도권 개발(확장) 호재 때문이다. 단기 악재가 돌출하더라도 길게 봤을 때 이 지역만큼 투자 메리트가 충분한 곳도 없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 추세다. 반면 강북(0명)이나 서울 이북 수도권(5명)은 완전히 소외받는 분위기다. 올해야말로 자산시장 투자심리가 ‘부동산→주식’으로 전환하는 첫해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여러 모로 봤을 때 무게 중심이 주식으로 쏠린다는 정황 증거가 많아서다. 적립식 펀드 붐이 단적인 예다. 반면 시간이 갈수록 약해지는 ‘전강후약(前强後弱)’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신중론도 없지는 않다. 부유층의 생각이 딱 그렇다. 주식으로 돈 벌 수 있는 확률을 물었더니 응답자 중 39명이 20~40%라고 봤다. 20% 이하의 승률을 언급한 이도 32명에 달했다. 평균은 33%로 계산됐다. 결국 상당수 부유층은 주식투자 성공 확률이 절반에 못 미친다는 데 동의했다. 부유층이 선호하는 주식 종목은 유가증권시장(거래소)에 몰렸다. 100명 중 65명이 유가증권시장 종목에 투자했거나 투자할 것이라고 답했다. 안정적인 데다 수익성까지 입증된 ‘1부리그’ 선수가 부자들 입맛에 꼭 들어맞아서다. 코스닥은 장외시장보다 더 못한 대접이다. 각각 7명씩이 대답했지만 코스닥은 정규시장인 반면 장외시장이 제도권 밖임을 감안하면 이 두 시장에 대한 호불호가 비교적 명확했다. 장외시장 중개 사이트를 운영 중인 김창욱 피스톡 사장은 “코스닥 등록 전 예비 황제주를 고르려는 거액 투자자의 손길이 꾸준하다”고 밝혔다. 부자들은 저가주(6명)보다는 고가주(33명)를 좋아했다. 안정성 때문이다.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등이 선호 종목 상위에 올랐다.부자들은 리스크가 불가피한 주식투자 때조차 안정성을 최우선 고려 대상으로 삼는다. PB들에게 고객의 주식투자 스타일을 물었더니 안정(54명)을 제일 많이 꼽았다. 홍성국 대우증권 투자분석부장은 “큰손일수록 원금 손실에 극히 예민하다”며 “많이 벌면 좋겠지만 적게 잃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떠안는다는 공격형 고객은 17명에 머물렀다. 그래서일까. 펀드로 대변되는 간접상품은 이들의 포트폴리오에 ‘약방의 감초’ 격이다. 주식 관련 비중을 100으로 봤을 때 간접상품에 20~40%를 투자한다는 부유층이 응답자의 절반(50명)에 달했다. 40~60%를 간접상품에 배정한다는 사람도 26명에 달했다. 결국 직접투자와 별개로 간접상품도 반드시 편입한다는 뜻이다. 주식매매 방법론을 물었다. 매수 후 매도에 걸리는 평균 기간은 6개월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49명이 6개월은 들고 간다고 답했다. 1년을 꼽은 사람도 27명이다. 이쯤 되면 중·장기 투자자로 봐도 무관한 결과다. 최소한 ‘단타족(族)’은 거의 없는 셈. 한때 유행한 ‘데이 트레이더’도 남의 나라 얘기다. 부유층이 보유 중인 종목은 평균 4.4종목이다. 82명이 5종목 이하에 체크했다. 이필호 신흥증권 리서치센터장은 “4~5종목 정도면 아마추어 투자자가 통제할 수 있는 최대 숫자”라며 “사실 그 이상이면 충분한 분석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채권투자에 대해선 다소 의외의 결론이 나왔다. 흔히 보수적인 부유층에 채권투자는 안성맞춤으로 권유된다. 수익률이 높지는 않지만 원금 보전에 잘 하면 시세차익까지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채권투자라는 게 기본적으로 적잖은 종자돈이 필요해 중산층 이하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한때 증여·상속용으로 품절 상태까지 치달았던 ‘무기명 채권(묻지마 채권)’이 강남 부자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끈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설문조사 결과 채권에 직접 투자 중인 부자는 33명에 그쳤다. 67명은 채권에 거리감을 나타냈다.지금부터는 예금과 보험에 관한 투자 스타일 질문이다. PB센터 VIP 고객들은 평균 7.5개의 예금통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0개 이상 갖고 있다는 사람도 33명에 달했다. PB들에 따르면 예금통장은 용도별로 별도 관리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가령 생활비통장, 급여통장, 비상통장, 과외수입통장 등으로 수입·지출 특성에 따라 분리해 관리한다. 오정선 외환은행 평창동지점 PB팀장은 “통장 수보다는 실속이 중요하다”며 “부자들의 통장 관리에는 특별한 노하우가 곳곳에 배어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부자들의 통장에는 평균 얼마나 들어 있을까. 일단 기본이 ‘억’ 단위다. 이제부터는 자릿수가 중요해진다. 2억원대 이상이 36%로 최다 답변을 얻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PB는 “얼마 전 들은 얘기인데 통장 하나에 80억원까지 예치해둔 사람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부유층 사이에서는 ‘장롱 속 억대통장’조차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이번 조사도 마찬가지 결과를 도출했다. 2명을 제외한 98명이 평균 잔액으로 최소 1억원을 들었다. 부자들은 금융회사를 고르는 기준으로 신뢰성을 첫 머리에 꼽는다. 절반을 웃도는 52명이 거래 금융회사 선정 조건으로 신뢰를 들었다. 이는 안전 성향·원금 보장이라는 개념과 정확히 일치하는 결과다. 반면 돈을 불려주는 수익성(16명)은 그다지 중대한 고려사항이 아니다. 시중금리 마이너스 시대에 은행의 존재 이유라는 게 수익보다는 안정인 까닭에서다. 부자들은 누구보다 이 점을 정확히 인지했다. 중소업체 사장인 P모씨는 “은행 이자가 붙어봐야 얼마나 붙겠냐”며 “그냥 집에 두기 불안하니 맡겨두는 것이고, 어차피 용도가 생기면 쓸 대기자금 성격”이라고 밝혔다.때문에 부자들은 이자 몇 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1%의 이자를 더 준다면 금융회사를 바꿀 수 있느냐는 물음에 ‘즉시 바꾼다(12명)’보다 ‘안 바꾼다(20명)’는 응답자가 더 많았다. 67명은 ‘고민해본다’고 응답했다. 일반인들이 1%의 이자에도 적잖이 민감해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부자들의 행태는 정반대다. 물론 거액 예금일 경우 우대(전결)금리가 저절로 붙기 때문에 굳이 예금 둥지를 옮길 필요가 없다는 분석도 일 리 있다. ‘예금·대출 갈아타기’는 부자들의 관심 밖에 있는 셈이다.보험은 흔히 보장성과 저축성으로 나뉜다. 지금은 ‘저축성 → 보장성’으로 바뀌는 추세다. 보험으로 돈 벌기보다 보장금액만큼만 내고 위험에 대비하겠다는 식이다. 그런데 부자들은 다르다. 보장 개념보다는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분위기가 태반이다. 증여·상속 수단을 위해서다. PB센터에 출입하는 부유층에 가입 중인 보험 개수를 물었더니 평균 3.3개로 답했다. 2~3개(55명)와 4~5개(28명) 순서로 나타났다. 본인 자녀를 위한 연금보험과 변액보험이 인기다. 질병 사고대비를 위해서는 골프와 암, 여행보험이 상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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