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는 뭐래도 컴포지션, 건물에 오감을 그려넣죠”

건물만 그리는 화가 김수영

겸재 정선, 장승업, 몬드리안…. 화가 김수영에게 영향을 준 예술계의 거장들이다. 독일에서 회화를 공부했던 그녀는 프랑스의 거장 르 코르뷔제의 영향을 받아 그의 건물만 그리는 회화 작가가 돼 우리 곁에 돌아왔다. 그녀가 반복한 한마디가 아직도 귓가를 울린다. “회화는 컴포지션이다.”처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녀는 “아직 풀어 놓을 얘기가 많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기자에겐 궁금한 게 많았다. 특히 건축물만 그리는 화가라는 점이 유달리 호기심을 자극했다. 웬만한 남자보다 더 짧게 자른 머리 스타일과 아담한 체구, 미소년 같은 옷차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수줍은 웃음 사이로 작가적 자신감이 은근히 풍겨 왔다. 근대 건축물의 실용적 구조를 빈틈없이 그려내는 작가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인터뷰 초입에 그녀가 꺼낸 첫마디는 ‘르 코르뷔제’였다. 르 코르뷔제와의 예술적 조우근대 건축의 거장으로 꼽히는 르 코르뷔제는 현란한 색채 사용과 실용적인 공간 분할로 건축에 공간미학의 개념을 도입한 건축가로 유명하다. 화가 김수영의 작품 대상은 모두 르 코르뷔제의 건축물이다. 김수영은 “르 코르뷔제는 건축미의 기본기라고 할 수 있는 균형미와 원근법, 선 작업 등에 탁월하다”며 “숨막힐 것 같은 그의 완벽한 건축물을 캔버스에 재현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르 코르뷔제의 건축물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참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모두 똑같은 비율을 갖고 선에 의해서 분할된 공간을 보여줍니다. 그런 가운데 누군가 아무렇게나 그렸을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참 신기하지요. 그래서 르 코르뷔제의 건축물을 평면에 옮겨보기로 했지요.” 김수영의 건축물 그림에는 따스함이 배어 있다. 실제 건물의 재질 차이에서 생겨나는 미세한 색의 변화를 고스란히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유리창문이 연출하는 ‘빛의 향연’을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있는 것. 어찌보면 르 코르뷔제가 추구했던 공간 개념을 더 잘 실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이 선사한 두 가지 깨달음이토록 프랑스 건축가인 르 코르뷔제를 좋아하는 그녀가 독일에서 공부한 이유가 궁금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어요. 유학을 결심했을 당시 독일 회화가 강세였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선택했죠. 그런데 돌아보니 독일로 유학을 갔던 게 참 잘한 일이지 싶어요. 독일 예술은 감각이 사고할 수 있는 여지를 안겨주더군요. 그것이 아직도 제 작품 활동에 큰 영향을 주고 있고요.”독일이 그녀에게 남긴 두 번째 메시지는 무엇일까. 바로 ‘우리 유럽인’이라는 말이다. 유럽인들의 공동체 의식이 유독 강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그 사회에 완전히 흡수되지 못함을 늘 고민했었단다. 홈그라운드인 한국에서 예술활동을 하리라 결심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이 두 가지 깨달음을 안고 그녀는 2년 전 귀국했다. 진정한 크로스 오버는 지금부터지금까지의 작품과 현재 진행 중인 작품까지 모두 르 코르뷔제의 건물을 소재로 삼았던 그녀에게 국내 건물은 관심이 없느냐고 물어봤다. “한국 공공건물의 구조는 모두 좋은 비율을 갖고 있어서 꼭 한 번 그려보고 싶어요. 종로구 사간동의 덕성여고와 충무로에 있는 신영상가가 균형미와 원근이 좋은 빌딩에 속합니다.” 그녀는 지금 전시회를 앞두고 있다. 11월에 세오 갤러리에서 열리는 그룹전을 준비 중이다. ‘크로스 오버’라는 주제로 여는 이번 전시회는 작가 다섯 명이 건축적 메시지가 담긴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녀는 “앞으로 ‘건축 회화’가 지속적으로 이슈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소박한 희망 사항을 말했다. 미술과 건축의 교차점에서 작품을 빚고 있는 김수영 화가가 이번 전시회에는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 벌써부터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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