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첫 내한공연
10월 헝가리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첫 내한 공연을 펼친다. 흔히 BFO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헝가리 사운드’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다. 창단 역사는 비교적 짧은 편이다. 1983년 세상에 나왔으니 올해로 23년이 됐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청년기를 보내는 셈인데, 나이답게 열정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화음을 자랑하는 노련미를 겸비했다. 한국의 클래식 애호가들은 이 단체의 연주 실황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음반을 통해 그 진가를 진작 확인한 터여서 전혀 생소한 이름은 아니다.잘 알려졌다시피 헝가리는 리스트와 바르토크를 배출한 서양음악의 중요한 젓줄이다. BFO는 그런 전통 속에서 부다페스트를 대표하는 단체로 성장해 세계적인 페스티벌이나 뉴욕, 베를린, 런던, 빈 등의 유명 공연장에서 각광받았다. 이 신화적인 성장을 이끌며 BFO의 오늘을 있게 한 인물이 지휘자 이반 피셔다. 이반 피셔와 BFO는 공동운명체요, 일란성 쌍생아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이반 피셔를 아는 것은 곧 BFO를 아는 것과 진배없다. BFO의 운명이 그로부터 비롯됐기 때문이다. 1951년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피셔는 1970년대 오스트리아 빈에서 지휘계의 대부 한스 스바로프스키를 사사한 뒤 76년 런던 루퍼트재단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지휘계의 샛별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콩쿠르 우승 이후 세계 여러 나라 저명한 오케스트라의 객원지휘자 겸 음악감독을 맡으며 승승장구할 즈음 고국 무대로 돌아와 BFO를 창단했다. 전도양양한 그에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피셔는 피아니스트 졸탄 코치슈와 함께 헝가리의 젊은 연주자 중 정예부대만을 모아 이 단체를 꾸몄다.당시 그의 목표는 ‘새로운 스타일의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피셔는 “새로움이란 새로운 ‘사운드’가 아니라 단원 하나하나가 강렬한 감정을 연주에 표현하는 새로운 ‘태도’를 뜻한다”고 음악잡지 그라모폰 한국판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어떤 한 가지의 두드러진 사운드를 가진 오케스트라보다는 단원 개개인이 혼연일체가 돼 빚어내는 감정의 폭과 깊이가 배어 나오는 오케스트라를 원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BFO는 이번 피셔의 철학이 응집된 헝가리 사운드의 전형으로 손색이 없다. 2001년 영국 런던 연주회 당시 일간지 가디언은 “초월적인 에너지로 승화한 이반 피셔의 연주는 비평을 넘어선다. 피셔가 창설한 BFO는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오케스트라에 속한다”고 극찬했다.피셔, 아니 BFO가 세계적인 지휘자(혹은 오케스트라)로 부각된 것은 풍성한 디스코그래피를 통해서다. 특히 피셔와 BFO는 1996년 훙가로톤 레이블에서 필립스로 자리를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대중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드보르자크와 코다이, 리스트와 모차르트 등 다양한 작곡가들의 음악을 녹음했다. 그 풍부한 디스코그래피 가운데서도 단연 으뜸은 모국인 헝가리 작곡가 바르토크다. 그라모폰상을 차지한 ‘이상한 중국관리’를 비롯한 관현악곡이 이들의 진가를 발휘한 앨범으로 꼽힌다. 그 해 바르토크와 리스트 음반은 프랑스 디아파종사가 주관하는 황금디아파종상도 거머쥐었다.피셔가 왜 바르토크에 집중했는 지는 같은 헝가리 출신 작곡가인 코다이와의 비교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바르토크의 음악이 내포한 국제성에 주목했다. “코다이는 헝가리 음악가들에게 거의 신적인 존재다. 아이들을 위해 뛰어난 음악 교육 체계를 만들었다. 코다이는 모국의 색채가 강했던 반면 바르토크는 국제적인 성향의 작곡가였다. 그의 음악은 근대적이고 세계적이었다.”2003년 메이저인 필립스에서 작지만 개성 있는 채널 클래식스로 배를 바꿔 탄 피셔는 이 레이블로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을 선보여 평단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최근엔 20세기 현대음악의 최고봉으로, 마니아적 관심의 대상인 말러 교향곡 레코딩에 도전했다. 그는 헝가리 말러 소사이어티 창립자다. 고전주의음악에서 현대음악까지 두루 정통한 피셔와 BFO의 이번 내한 공연은 브람스와 베토벤 곡을 중심으로 꾸며진다. 10월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 레퍼토리는 브람스 ‘헝가리 무곡 14번’ ‘피아노 협주곡 1번’, 그리고 베토벤 ‘교향곡 7번’이다. 하루 앞선 성남아트센터 공연에서는 베토벤 대신 브람스 ‘교향곡 2번’이 연주된다.내한 레퍼토리의 근간을 이루는 브람스에 대한 피셔의 애정은 무엇일까. 그는 “수많은 연주를 통해 좀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작곡가다. 그의 음악 속에는 지혜가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브람스의 음악에서 기다림의 미학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가 한눈팔지 않고 고국 무대에서 BFO와 함께 23년을 한결같이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찾아 나선 것처럼 말이다.이번 피셔와 BFO의 첫 내한 공연과 함께 꼭 거론해야 할 인물이 피아니스트 백건우다. 백씨는 프랑스에서 거주하며 유럽과 동남아시아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거장이다. 고국 무대는 심심치 않게 서는 편으로 두터운 팬을 확보하고 있는 연주자 가운데 하나다. 어느 특정 작곡가로 타깃이 정해지면 묵묵히 전곡을 완주해 내는 뚝심의 행보를 두고 사람들은 ‘건반의 구도자’라는 닉네임을 붙여 주었다. 그가 피셔와 BFO의 협연자로 나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두 사람은 이번에 처음 만난다. 백씨는 “처음 오케스트라 측에서 바르토크의 협주곡을 제안했는데, 결국 브람스로 결정하게 됐다. 브람스도 헝가리와 굉장히 인연이 많은 작곡가”라며 “피셔와 BFO는 직접 작업해 본 적은 없지만 연주력은 익히 알고 있다”며 신뢰를 보였다. 특히 필립스 시절 피셔와 BFO의 음반을 인상적으로 거론했다.말이 나온 김에 클래식 애호가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백씨의 근황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하기로 한다. 올해 그에게는 빅뉴스가 있었다. 클래식계의 토픽감이 될 만한 경사였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 소식이다. 32개의 베토벤 소나타는 ‘피아노의 신약성서’로 불리는 고산준령이다. 웬만한 내공으로는 넘기 힘들다는 경외로움의 표현이다. 그 태산도 하늘 아래 뫼(산)일 따름이라며 백씨가 도전장을 냈다. 예의 구도자의 행보를 영국 메이저 음반사인 데카가 주목한 것이다. 동양인 피아니스트가 메이저 음반사에서 전곡을 녹음한 예는 없었다. 백건우의 위상을 확인시켜 주는 쾌거다.2007년까지 나올 이 음반의 1차 분이 8월 말 출시됐다. 16~26번까지 11개 중기 소나타를 석장의 CD에 담은 앨범이다. 17번 ‘템페스트’, 21번 ‘발트슈타인’, 23번 ‘열정’, 26번 ‘고별’ 등이 들어 있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 가운데서 클래식 입문자들에게 비교적 부담이 덜한 곡들이어서 첫 앨범에 담겼다. 백건우는 피아노 입문 2년 뒤인 10세 때 첫 독주회를 열고, 15세 되던 해인 1961년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아드음대에서 명교수 로지나 레빈을 사사했다. 링컨센터와 카네기홀에서 독주와 협연을 거친 그는 67년 나움베르크 콩쿠르 1위, 69년 부조니 콩쿠르 우승을 차지하며 주목받았다. 30년을 넘게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드나르의 에메랄드 코스트 뮤직 페스티벌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2년 황금디아파종상을 수상하는 등 음악 인생의 최고 절정을 달리고 있다. 피셔와 BFO와의 협연을 비롯해 두 달에 걸친 국내 순회 연주회 일정 동안 원주와 양산, 순천, 당진 등에서 지방 관객과의 만남이 계획돼 있다. 초인적인 일정이지만 클래식 불모지를 깨우는 그의 타건의 힘찬 맥박이 벌써 들려오는 듯하다. 문의 (02) 751-96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