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가치와 나의 로고스

비의 시대란 물건을 사용한다는 뜻이 아니다. 소비되는 물건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능력과 인격을 나타내는 시대라는 뜻이다. 따라서 명품은 소비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부와 인격의 상징이다. 부자는 사고 싶은 물건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그 물건이 쉽게 일반인이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그의 인격과 능력은 더욱 부각될 것이다. 이것이 명품의 심리다. 이것을 단순히 과소비에 물든 철없는 아이들의 경박한 행동이라고 믿는다면, 당신은 현대 소비사회에 인격과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을 부정하는 사람이 된다. 현대인에게 명품은 종교적 아이콘(상징물)이다. 십자가나 불상을 통해 천당과 극락을 연상하듯, 사람들은 명품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의 꿈을 꾼다. 명품열풍은 한국과 일본에서 특수한, 아니 일부의 무절제한 소비 행동이 아니다. 미국이나 서구 여러 나라에서도 소위 명품이라는 고급품의 소비는 전체 소비 규모에 비해 4배나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일수록 명품 소비에 더욱 열성적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기 브랜드를 만드는 현실적 대안이기 때문이다. 귀족도, 절대 특권층도 없는 민주사회에서 무엇으로 사람들은 스스로를 나타내고 또 서로를 구분할 것인가. 사람들은 이제 종교, 정치적 견해, 가치관 등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사용하는 제품의 브랜드로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 ‘짝퉁’이라도 좋다. 그것이 나를 나타낼 수 있는 브랜드라면. 중국에서는 샤넬 립스틱 팔레트가 젊은 여성에게 가장 인기 있는 소지품이라고 한다. 물론 립스틱은 타 브랜드일지라도 샤넬이라는 브랜드와 이미지를 통해 나를 표현하고 싶은 심리를 반영한 것이다. 명품의 심리는 물리적 특성이 아닌 브랜드의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욕망의 충족이다. 물리적인 쾌감이 아닌 이미지를 통한 심리적 만족, 이것이 바로 명품의 속성이다. ‘격조 높은 라이프 스타일’ ‘행복한 삶을 위해 갖추어야 할 최상의 것’ ‘문화와 역사가 숨어있는’ 등의 수식어는 바로 명품의 정체성으로 연결된다. 명품 소비와 유사한 행동은 이미 중세유럽에서 성행했다.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에게 죄를 용서받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교회에 바치거나 남을 위해 봉사하도록 강요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돈을 내는 것으로 죄에 대한 면죄부를 받았다. 이처럼 돈으로 죄를 씻어내듯이, 현대사회에서는 명품 구매로 심리적 안정과 자기 위안을 사는 것이다. 참살이(웰빙)를 추구하는 현대 대중의 삶에서 요가와 명상은 정신적 욕구를 채우는 수련이다. 하지만 대중은 이런 수련 방식보다는 구체적인 증거물, 즉 명품을 통해 자신을 수련하고 있다. 자아와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명품 구매란 심리적 안정의 자기정체성를 사들이는 행위다. 공허한 마음이 명품을 통해 채워지고, 브랜드가 진짜 자기 자신이 된다. 수치스러운 과소비가 아닌 자기 정체성의 확인이다. 자신에게 맞는 명품 물건 하나라도 없으면 그것이 바로 정신적 공황이다. 현대의 명품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당신을 위해 돈을 아끼지 마세요. 당신은 그렇게 할 자격이 있습니다. 당신은 그만큼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을 빛나게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 드리지요.” 명품을 통해 자기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현대인의 소비를 통한 심리발달법이다.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명품 소비는 또 다른 공동체를 경험하는 방편이 된다. 남들과 잘 어울리고 다른 사람의 호감과 찬사를 얻는 능력은 제대로 된 브랜드를 사용하는 능력으로, 그리고 우리가 같은 공동체에 속한다는 표식은 바로 브랜드가 알려준다. 브랜드 사회에서 브랜드 인간이고 브랜드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다른 사람들과 잘 융합하는 멋진 라이프 스타일이란, 공통의 브랜드를 가꾸어가는 것을 말한다. 진품이든 짝퉁이든 가릴 필요가 없다. 누구나 명품과 브랜드로 자신을 꾸민다면, 명품이 더 이상 한 사람의 특별함이 될 수 없지 않을까. 이것은 대중 명품시대에 자기표현과 정체성 찾기라는 새로운 구도(求道)의 과제다. 하지만 인간이 스스로를 찾는 과정보다 명품은 더 빨리 더 다양하게 진화하기에 브랜드와 명품을 통한 현대인의 ‘자기 찾기’ 노력은 끝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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