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빌딩을 캔버스 삼아 초대형 작품 제작 중

멀티플레이어 아티스트 양만기

울역 맞은편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대우빌딩. 시골에서 갓 상경한 사람들에게는 “서울이 이런 곳이구나”하고 실감케 했던 대상이자, 먼 길을 떠났다 돌아온 서울 사람들에게는 “이제 집에 왔구나”하는 안도감을 주는 대상이었던, 서울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물론 이제 대우빌딩이라는 명칭은 맞지 않다. 현재의 소유주는 금호그룹이고, 리모델링 중인 빌딩의 새로운 명칭은 서울스퀘어로 바뀌었다.이 추억의 건물은 오는 10월 그랜드 오픈을 앞두고 색색의 컬러로 프린트 된 가림막으로 외관을 가린 채 새 단장 중이다. 가림막을 내리면 어떤 모습이 나타날까? 질문의 답을 쥐고 있는 사람은 바로 작가 양만기. 그의 귀띔에 의하면 건물의 정면은 LED(발광다이오드) 모니터 수백 개를 조합해 만든 100*90m 크기의 거대 화면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한다. 그 안에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과 미술사의 역사적 인물이 합성된 영상이 펼쳐질 예정이라고. 건설업의 자긍심이었던 빌딩이 문화적 자부심으로 거듭나는 것이다.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갤러리에 작품을 전시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자신의 생각을 담아낼 수 없는 ‘통 큰 작가’이고, 회화·사진·조각·설치·미디어를 넘나들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작업하는 ‘멀티플레이어 아티스트’인 양만기는 ‘21세기적인 미술가’라 할 수 있다. 사실 화가, 조각가, 사진가라는 구분은 구태의연한 방식일지 모른다. 작가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이야기하는지가 중요하지 이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방법에 제한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양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예술성을 담보로 해서 예술이 갖고 있는 기능적인 요소를 너무 한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디자인과 순수 미술을 갈라놓듯 미술과 실용, 작품과 상품으로 나눠 우열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죠. 예술의 사회, 문화적 역할이란 요즘의 사회를 이해하고 작품에 담아내서 사람들에게 정서적 환기를 시키는 것입니다. 인간과 디지털의 관계를 형상화한 인터랙티브 설치 작업은 관람객과 소통 가능한 최적의 방법이죠. 장소 또한 특정 미술관이 아니라 옥외로 나가면서 대중들과 더 적극적으로 교감할 수 있습니다.”그가 추구하는 예술 방식의 대표적인 예로 브뤼셀의 덱시아타워를 꼽을 수 있다. 이는 창문에 최첨단 LED 조명을 내장해서 사람들이 컨트롤 버튼을 누르면 건물의 색깔과 디자인이 바뀌는 건축물. 이른바 시민들이 빌딩의 표피를 자유자재로 만듦으로써 무생물인 건물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변화무쌍한 변화가 가능하다.양 작가의 작업은 우리나라에서는 대우빌딩에 처음 선보이지만 해외에는 이미 여럿 있다. 대표적인 것은 도쿄 오다이바의 일본과학미래관에 설치된 지구본. LED 100만 개를 부착해 천정에 매달아 놓은 ‘우주에서 바라본 오늘의 지구’라는 이 작품은 과학관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또한 올 가을부터는 두바이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공모에 응모해 수주한 이번 프로젝트는 네덜란드 건축가와 합작해 만들기 때문에 하드웨어(건물)와 콘텐츠웨어(미디어 스킨)를 조화시켜 기존의 건축물에 설치하는 것보다 완성도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남들보다 앞서 시작하는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회화를 전공하고 여러 작업을 하면서 미디어 스킨을 하기까지, 그리고 작품을 선보인 이후에도 사람들의 반응은 제로에 가까웠다. 미디어 아트를 개인이 구입하는 경우가 좀처럼 없기 때문에 개인전을 해도 작품이 팔리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제작과 판매가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 자연스럽게 작업 활동이 이어질 수 있는데, 작품 제작비로 쓸 종잣돈조차 말라버릴 정도였다.“소통이 안 되는구나, 나랑 안 맞는 걸까”라는 자조 섞인 물음을 던지며 지속한 지 어언 8년째. 양 작가는 요즘 들어 작업에 관심을 갖고 사회에 적용시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가는 듯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전통적 개념의 미술 작업과는 다른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아직 미술계에서는 그의 작품을 선뜻 예술의 범주에 넣기를 망설이는 경우도 있다. 예술가라 함은 ‘자신만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고 고뇌하며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법인체를 갖고 팀을 이뤄 작업을 하는 그는 그 테두리를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저는 예술적인 생산자나 문화를 형성하는 집단들이 좀 더 다양하게 주변 것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직무유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외부에서 주문을 받다 보니 제약이 따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때로는 작가의 메시지가 담긴 순수 창작물로 완성 못하고 의뢰한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 홍보의 기능을 담아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자기 빌딩에 자기 돈을 들여서 한다 해도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면 좋을 텐데 이를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죠.”회화를 전공해서 그런지 페인팅 작업이 편하다는 양 작가는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그림을 그린다. 도시나 건축물과 달리 캔버스는 캔버스대로 재미난 사적인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에 담는 내용은 다르지 않다. 근본적으로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데이터, 수치화된 것들이며 진짜와 가짜가 혼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시뮬라크르(simulacre, 실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인공물이나 이미지를 창조하여 가상의 세계를 현실 세계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사회 문화적 현상)된 세상을 마치 실재하는 양 표현한다.테이블을 그린 그의 작품을 보면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한 모습이다. 사실은 피카소의 그림 속 화병, 마티스의 탁자보 등 우리가 자주 봐왔던 것 중에서 이것저것을 조합해서 그렸음에도 보는 사람들은 실재 테이블을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다른 작품 속에 나오는 나무, 테이블 모두 가공된 가짜 이미지이지만 작가는 짜깁기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요즘의 세상은 거짓인지 참인지 모르는 아우라가 우리를 감싸고 있는 형국인데(작가는 이를 가리켜 스킨(skin, 표피)이라 한다), ‘이게 뭘까’ 하는 물음을 통해 진정한 우리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지난 4월, 양 작가는 색다른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자신의 작품을 구입한 이들의 초상화를 제작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느낌을 제가 임의로 캐치해서 그렸는데, 공교롭게도 각자의 개성과 잘 맞아떨어져 저도 무척 놀랐습니다. 무엇보다 어떤 전시장에서도 갤러리를 찾은 분들이 작품을 보면서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답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 여러 차례 전시하면서 그렇게 행복했던 적은 없었어요.”이후 그림들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을까. 초상의 주인공들에게 판매를 했다면 마케팅 능력이 뛰어난 작가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양 작가는 ‘통 큰 화가’이고 대중과의 소통을 추구하는 작가 아니던가. 각각의 작품은 그림 속 임자들에게 무상으로 선물했다고 한다.글 정지현 미술전문 칼럼니스트·사진 이승재 기자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갤러리에 작품을 전시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자신의 생각을 담아낼 수 없는 ‘통 큰 작가’이고, 회화·사진·조각·설치·미디어를 넘나들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작업하는 ‘멀티플레이어 아티스트’인 양만기는 ‘21세기적인 미술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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