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선택 기준, 투자 성향이 전부 아니다

자통법 이후 올바른 투자 전략

난 2월부터 시행된 자본시장통합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은 향후 금융시장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투자자 보호를 대폭 강화하면서 도입된 ‘적합성 원칙’은 펀드 판매 시장을 크게 바꿔 놓았다. 적합성 원칙이란 투자자에게 투자를 권유하기 전에 면담이나 질문 등을 통해 투자 목적, 재산 상황, 투자 경험의 정보를 파악하고 이를 서명이나 기명날인 등으로 확인 받아 유지 관리하도록 하는 판매 원칙이다. 이미 해외 선진국에서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는 제도로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투자자의 특성조차 모르고 단순하게 펀드를 판매해 왔던 과거 관행을 감안하면 상당한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지나치게 세부적인 과정까지 규정함으로써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없지 않다. 특히 투자자의 성향에 따라 판매할 수 있는 펀드를 지나치게 제한한 것은 투자자의 포트폴리오를 획일적으로 만들 수 있다. 자칫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울 수도 있는 격이다. 펀드를 선택할 때 투자 성향은 여러 고려 요인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자통법의 중요 근간인 투자자 보호를 위해 표준투자권유준칙을 마련하고 이를 판매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투자자의 위험 선호도 평가 결과에 따라 ▷안정형 ▷안정 추구형 ▷위험 중립형 ▷적극 투자형 ▷공격 투자형 등으로 구분했다. 또 펀드 상품 역시 투자 위험도에 따라 ▷초저위험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 ▷초고위험 등으로 나눴다. 준칙은 투자자의 투자 성향에 매칭되는 펀드 상품만 추천할 수 있도록 했다. 만일 투자자가 위험도가 높은 상품을 원할 경우 별도 확인서에 서명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설문 조사 결과 안정형으로 나온 투자자에게는 주식 펀드를 추천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투자자가 주식 펀드를 원하면 별도 확인서에 서명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실제로 투자 지식이 높은 투자자가 아니라면 먼저 나서서 주식 펀드에 투자하려고 할 것인가 하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투자자의 주식 펀드 투자 여부는 투자 성향보다 재무 목표나 기대 수익률 등을 더 우선해야 한다. 투자자의 인생을 함께하는 자산관리 전문가라면 투자자가 주식 펀드 투자를 선호하지 않더라도 자녀 교육비나 노후 준비와 같은 재무 목표 달성을 위해 투자자를 설득시키기도 해야 한다. 자산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자가 자신의 인생에 걸친 재무 목표를 무난하게 달성하는 것이다. 물론 자산관리 전문가는 이에 앞서 자신의 이익보다 투자자의 이익을 우선하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이 투자자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해 문제가 되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법으로 모든 전문가의 선관주의의무(善管注意義務)를 보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지나치게 세부적인 규정을 정하기보다 시장에서 선관주의의무가 지켜지고 차별화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일반적으로 ‘주식 펀드에 투자할 것인가?’ ‘한다면 얼마나 투자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가 있다. 첫째, 자통법에서 시행하고 있는 위험 성향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간단한 설문지나 질문 등으로 위험 성향을 측정하고 위험 성향별로 정해져 있는 비중만큼 주식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마치 옛날 다방에서 동전을 넣으면 그날의 운세가 나오는 기계처럼 간단하게 투자 비중을 결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 실제 위험 성향을 정확하게 측정했다고 보기 어렵다. 투자자의 심리나 최근 상황에 따라 그 결과가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위험 성향별로 추천되고 있는 주식 투자 비중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다. 둘째, 미래의 주가를 예측해 결정하는 방법인데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즉, 주가가 오를 것 같으면 주식 투자 비중을 잔뜩 늘리고 주가가 떨어질 것 같으면 주식 비중을 최대한 줄이는 방식이다. 예상이 맞았을 때는 높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그 반대일 경우에는 가장 위험한 방법이다. 제아무리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주가의 움직임을 항상 맞히기란 불가능하다. 몇 번 예측이 맞아 높은 수익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한 번 빗나가게 되면 모든 자산을 잃게 되는 것이 투자의 세계인만큼 결코 피해야 할 방식이다.셋째, 재무 목표를 기준으로 결정하는 방법이다. 설사 주가가 폭락하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투자자가 정한 재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주식 투자 비중을 엄밀하게 계산해 결정한다. 이는 선진국형 자산관리 기법인 재무 설계에서 많이 활용되는 방법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면 1억 원으로 주식 펀드에 투자하기를 원하는데 반드시 1년 후 원금을 써야 하는 경우를 보자(이같이 투자 기간이 단기일 때는 주식 펀드 투자가 바람직하지 않다). 이때 주식 펀드 투자 비중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할까. 먼저 주식시장의 연간 최대 하락 폭을 30% 정도로 가정하고 채권 펀드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이 4%라고 예상했다. 전체 자산 중 9000만 원을 채권 펀드에 투자하면 1년 후 얻을 수 있는 평가액은 9360만 원이다. 그리고 나머지 1000만 원을 주식에 투자하게 되는데 주가가 1년 후 최대 예상 하락 폭인 30%까지 떨어졌다면 평가액은 700만 원이 된다. 채권 펀드 평가액 9360만 원과 합쳐 전체 1억60만 원이 되므로 원금을 잃지 않는다. 이와 같은 원리로 투자 비중을 결정하면 비교적 합리적인 방안을 찾을 수 있다.실제 노후 자금 마련과 같이 10년 이상 장기간 투자해야 하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에서 대형 우량주를 가지고 산출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지난 30년간 연평균 12% 정도의 수익률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주식 역시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위험 프리미엄을 모두 고려할 때 연평균 10% 정도의 수익률을 기대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반면 채권의 경우에는 적립식으로 투자하면 상당히 낮은 성과에 그치게 된다. 국내 채권 펀드는 매우 우량한 신용 등급을 가진 국공채를 중심으로 단기적으로 투자하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채권 펀드 수익률이 매우 안정적이며 주식 펀드처럼 수익률이 마이너스(-)가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채권 펀드가 연간 5%의 수익률이 났다고 하지만 적립식으로 투자한 투자자는 2.5% 전후의 수익률을 얻게 된다. 따라서 연금 투자 시 채권 펀드에 대한 기대 수익률은 일반적인 채권 펀드의 수익률보다 낮게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론적으로 주식 펀드에서 연간 10%, 채권 펀드에서 연간 3%를 기대한다고 할 때 매년 8%의 기대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주식 펀드에 약 70%, 채권 펀드에 나머지 30%를 투자하면 된다.이같이 여러 수치를 활용해 나온 결과 값과 비로소 각자의 투자 성향을 결합해 일정 부분 조정하는 방식으로 해야 투자자 자신에게 딱 맞는 자산 배분 비중을 결정할 수 있다. 단순히 투자 성향만을 감안하거나 혹은 반대로 투자 성향을 무시하고 계산 값만 가지고 결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때문에 전체 자산 중 얼마나 주식 펀드 등에 투자할 것인가 결정하는 자산 배분은 ‘과학과 예술의 만남’이라고까지 말한다. 지나치게 ‘과학(계산)’만 강조해도 문제지만 반대로 ‘예술(투자 성향)’만 강조하는 것도 자칫 절름발이 투자가 될 수 있다.민주영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수석연구원 watch@miraeass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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