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 미덕이 아니다?

산 축적 과정에서 절약과 저축의 기여는 거의 절대적이다. 절약과 저축 없이 자산을 축적하는 일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지난(至難)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축은 이제 ‘절대적인 미덕’은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험난한 파고를 거치는 과정에서는 소비가 미덕이던 시절도 있었으며 저축을 밀어내고 투자가 그 빈자리의 일정 부분을 차지한 것도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그래서일까. 지난 9월 발표된 ‘2008년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현재 2000만 원인 세금우대저축의 가입 한도는 내년부터 1000만 원으로 줄어들고 노인이나 장애인이 들 수 있는 비과세 생계형 저축 가입 한도도 6000만 원에서 3000만 원으로 축소된다. 원래 4000만 원이었던 세금우대저축 가입 한도의 경우 지난해 2000만 원으로 준 데 이어 다시 그 절반으로 축소됐으니 이제 형체만 남은 꼴이다. 당초 이를 완전 폐지하기로 했던 것과 비교하면 정부로서도 얼마간 양보한 셈이지만 세금우대저축의 폐지는 실시 시기만 문제일 뿐이다.기획재정부의 한 관리가 밝힌 것처럼 이제는 더 이상 저축을 장려할 때가 아닌 것일까. 그러나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세금우대저축의 가입 한도를 이처럼 단계적으로 줄인 최근 2~3년 동안 장기주택마련저축의 일몰 시한은 2009년으로 늦춰졌으며 개인연금의 비과세 한도는 당초의 24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오히려 늘어났다. 퇴직연금의 도입과 함께 근로자가 부담하는 퇴직연금 불입액이 300만 원 범위 내에서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그리 오랜 일은 아니다.다소 엇박자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러한 정책 선회의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발전과 인구구조의 변화가 있다. 저축의 국가적 목적이 ‘산업자금의 조달’에서 ‘노후생활의 안정과 이에 바탕을 둔 복지사회의 구현’으로 이동한 것이다. 국민연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노인복지 재원을 기업연금과 개인연금(이 셋을 합쳐 3층보장제도로 일컫는다)으로 보완함으로써 저출산·초고령 사회에 대비해 나가자는 의미다. 기업연금이나 개인연금의 가입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적 유인책이 앞으로도 계속 확충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장기주택마련저축이나 연금펀드가 이 시대의 가장 유력한 투자 수단의 하나인 것도 이 때문이다.그러나 1~3년짜리 세금우대 적금이나 정기예금을 통해 돈을 모아가는 재미를 맛보던 기존의 금융 정서에 비춰 보면 짧아도 7년, 길면 평생을 투자해야 하는 이들 상품이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종류의 것은 결코 아니다.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단기적인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목돈은 오랜 시간과 지속적인 인내를 필요로 하는 ‘노후 대비’와는 다소 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기껏해야 처음의 목적, 예를 들자면 해외여행이나 자녀의 등록금으로 들어가기 일쑤다. 해외여행이나 자녀 등록금이 어떻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노후를 대비하기 위한 별도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정책에 순응하라’는 투자 격언이 있다. 특히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는 정책과 제도를 적극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알뜰살뜰 모아서는 한입에 톡 털어 없애버리곤 하던, 혜택이라곤 쥐꼬리만큼밖에 남아 있지 않은 한두 해짜리 세금우대적금 대신 이제는 느긋하게 부자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장기주택마련저축(혹은 펀드)이나 개인연금을 선택해 보자. 기간이 너무 길다고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하나은행 목동역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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