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100대 와인’ 번역한 최재호 숭실대 교수
인이라고 하면 흔히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다. 종류만 해도 수만 가지인데다 생산 국가, 수확 연도, 품종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와인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마니아들이 와인을 ‘절대로 정복할 수 없는 산’에 비유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와인과 가장 친숙해지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와인은 백문이 불여일음(不如一飮)이 정답이다.강남의 모 레스토랑에서 만난 최재호 숭실대 불문과 교수야말로 이 진리를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와인 애호가다. 그가 지금까지 맛본 와인은 대략 5000가지라고 한다. 욕조 몇 개를 채울 만한 양의 포도주를 목으로 넘겼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은 초보자(?)라고 너스레를 떤다. 이 정도의 대가라면 필시 와인과의 만남도 운명적일 터.“가난한 유학생이 무슨 돈이 있다고 멋을 부리며 와인을 마십니까. 꿈도 못 꾸는 일이죠. 하지만 만남 자체는 참 재미있었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기 직전 환송회에서 과음을 했는데, 그때 위를 버려 유학 초창기 엄청 고생했습니다. 너무 힘들어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치료제로 와인을 조금씩 마셔보라고 권하더군요. 그래서 와인을 매일 반 병씩 마셨는데 정말 씻은 듯이 위장병이 치료됐습니다. 주로 우리 돈 1000~2000 원 짜리 와인을 마셨는데 그때부터 마신 와인을 계산하면 대략 5000병 정도 나오죠.”최근 최 교수는 ‘전설의 100대 와인’을 번역 출간했다. 프랑스의 유명 레스토랑인 타이방의 대표 소믈리에 4명과 오너인 브리나 씨가 3000여 종 30만 병의 와인 가운데 고르고 골라 선별했고 프랑스 유명 미식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실비 지라르 라고르스가 썼다. 프랑스 사람이 쓴 와인 도서를 국내 번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 책은 보르도 명품 와인 페트뤼스에는 왜 샤토라는 단어가 빠졌는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생산된 카포 디 스타토가 어떤 사연으로 ‘국가원수’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프랑스 대통령 드골과 어떤 일화가 있는지 등을 소개하고 있다. 또 루이뷔통 등 여러 명품 브랜드를 생산하고 있는 LVMH와 프랑스 보험회사 악사(AXA)가 어떤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는지 등 풍부한 이야깃거리 등이 담겨 있다.이 책의 저자는 세계 100대 와인의 첫 번째 기준을 ‘기복이 없는 품질’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기후에 따라 작황이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일 수 있겠지만 이를 최소화해 일정한 맛을 유지해 내는 것이 명품 와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강조한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와인을 마실 때 너무 선입견이 강합니다. 가령 무조건 레드와인은 고기 요리, 화이트와인은 생선 요리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이탈리아 레드와인인 아마로네 디 발폴리첼라에는 훈제 연어가 잘 맞습니다. 또 비싼 와인은 디캔팅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레바논 와인 샤토 무사르는 뒤쪽 라벨에 반드시 디캔팅해서 마시라고 명시돼 있습니다.”이 밖에도 최 교수는 이 책 말미에 올바른 와인 용어 표기법을 설명하는 팁도 제공한다. 가령 일반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테루와(Terroir)나 피노누아(Pinot Noir)는 테르와르, 피노느와르라고 써야 한다.“별것 아니겠지만 일본식 표기를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또 100대 와인이라고 하면 비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에는 우리나라에서 5만 원대에 팔리는 와인도 있습니다. 와인은 가격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중요합니다.”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