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에게 효(孝)를 말하지 마라

균 수명이 늘다 보니 노인 문제가 심각하다. 모두 부모 모시기를 힘들어하고 자식은 같은데 어찌 장남만 부모를 책임져야 하느냐며 불평하는가 하면, 작은아들은 나름대로 자기 몫이 아니라는 태도다. 그래서 아들 둘 가진 부모는 오갈 데 없다는 웃지 못할 푸념도 들린다. 대체로 부모의 고충을 모르며 보호받고 자란 아이보다 부모의 어려움을 목격하며 미안한 마음으로 자란 아이가 부모에게 더 헌신적이고 공경을 한다. 어느 가난한 산골 소년이 있었다. 머리도 성적도 모자랐으며 가정 형편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소년을 서울로 유학을 보냈다. 하지만 공부가 싫어서인지 첫 1학년 성적표는 꼴찌였다. 차마 그는 성적표를 고향의 부모에게 내밀 자신이 없었다.부모가 배우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가 어려운 처지에도 불구하고 중학교에 보낸 아버지가 떠올라 그냥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잉크로 성적표를 70명 중 1등인 ‘1/70’로 고쳐서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으셨으므로 고친 성적표를 당연히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서울로 유학한 아들이 집에 왔다니 어른들이 몰려와 “공부는 잘 했느냐”며 법석이다. 아버지는 “이번에는 1등을 했나봐, 앞으로 더 봐야제”라고 말씀하셨다. 어른들은 “자네, 자식 하나는 잘 두었어, 1등이면 한턱내라”며 성화시다. 소년의 집은 마을에서 가장 가난했다. ‘마실’을 다녀와 보니 집에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잔치를 하고 있었다.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부지’라고 불렀지만 더 말이 나오지 않았다.그는 정신없이 달려 나갔다.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냥 마구 뛰었다. 겁이 난 소년은 강으로 가 죽어버릴 마음으로 물속에서 숨을 쉬지 않고 있기도 하고, 주먹으로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소년은 달라졌다. 고학을 하며 부모를 돕고 정신도 차렸다. 20년 후 소년은 장성해 마침내 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30여 년 전의 일이 떠올라 사과하려는 마음으로 “아부지,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한 거요~”라며 막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니 무슨 말인지 조용히 듣고 계시던 아버지가 “알고 있었다. 그만두어라. 철수(손자)가 듣는다”고 말씀하셨다. 위조한 성적을 알면서도 돼지를 잡으신 부모님의 마음을 대학 총장이 된 지금도 그는 감히 물을 수가 없다. 효성으로 보은할 뿐이다.한편 그의 친구는 사정이 달랐다. 다소 풍족한 편이었고 친구의 부모는 지금 폐인이다. 그 친구는 공부도 잘하는 우등생이었고 집안 살림 형편도 산골이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가문의 희망이고 기둥이라며 힘닿는 데까지 무리해서라도 자식을 뒷바라지했다. 아들의 무리한 요구도 가문의 성취를 위해 다 들어주다 보니 어느새 좋던 가산을 모두 탕진했으나 아들은 의대 합격이라는 목표를 이뤄 마을의 칭송이 자자했다. 살림이 거덜 난 부모는 성공한 자식과 당연히 같이 살 것이라고 여겼으나 며느리가 반대했고 믿었던 기둥도 배신했다. 며느리는 노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시부모가 무능하다며 자식의 학비를 댄 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따지자 노인은 주눅이 들었다.부모들은 자식에게 모든 것을 바치지만 대접만 받고 자란 아이가 부모를 모르쇠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영악한 자식들에게 깨우친 노인들이 요즘 하는 이야기가 있다. “가르치지 못한 자식이 더 효자다.” 못 배운 자식이 오순도순 효도하는 경우를 본다. 차라리 못 가르친 아들놈 윽박지르며 함께 사는 편이 인간스럽다는 주장이다. 물론 사회 여건이 달라 힘든 일이나 자식의 정신 건강까지 매몰된 상태라면 상당 부분 부모의 책임이다. 효자도 불효자도 다 부모가 만든다.칼럼니스트한국투자자문 대표 역임성균관 유도회 중앙위원(현)www.cyworld.com/ke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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