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을 대표하는 정보기술(IT) 스타 이금룡 회장(57)이 돌아왔다. 옥션 넷피아 이니시스 등을 국내 최고의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시킨 이 회장의 이번 컴백 무대는 ‘미술’이다. 옥션으로 온라인 경매시장을 개척한 그가 오픈옥션의 초대 회장에 취임하면서 ‘미술품’ 경매시장에 도전한 것이다.사실 이 회장은 미술에 대해선 문외한에 가깝다. 지인의 부탁으로 미술품 몇 점을 구입한 것 외에는 미술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다. 그런 그가 왜 오픈옥션 회장 자리를 수락한 것일까. 업계의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사실 오픈옥션 회장으로 와달라는 제의를 받고 전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국민소득이 올라가면 미술 시장의 규모는 지금부터 훨씬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지난해 그가 만난 ‘제3의 물결’ 저자 앨빈 토플러의 조언도 오픈옥션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유 중 하나다.“토플러를 만나 앞으로의 산업 구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가 ‘앞으로의 세상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창조산업’이 휩쓸 것’이라고 하더군요.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물산에 입사했던 1977년이 토플러가 말한 제2의 물결, 즉 공업화의 시기였고 옥션을 설립했던 1998년이 지식정보화의 시대인 제3의 물결의 전성기였다면 앞으로는 제4의 물결의 시대라는 얘기였습니다. 제2, 제3의 물결을 멋지게 즐겼던 저로선 제4의 물결이 어떤 것일까 무척 궁금했습니다. 창조, 상상, 문화가 화두라는 제4의 물결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화 산업이기에 오픈옥션 합류를 흔쾌히 결정했습니다.”유통 전문가답게 그는 미술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색다르다. 미술품 경매가 ‘아름다움을 파는 것’이라면 ‘아름다움’보다는 ‘파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미술품을 좀 더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유통 구조부터 대대적으로 개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픈옥션이 이 회장 영입에 공을 들인 이유도 경매라는 유통 구조를 좀 더 다양하게 만들고 싶어서다. 그러기 위해선 미술 전문가보다는 유통 전문가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유통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미술품 구매 시장은 너무 폐쇄적입니다. 그림을 사고 싶어도 접근이 어렵다는 얘기죠. 일반 소매시장에서도 얼리어답터(초기 구매·분석가)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들 제품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일수록 구매자들이 늘게 마련입니다. 제가 옥션을 설립해 성공한 것도 같은 이치였죠.”그는 미술품 경매의 키포인트 역시 컬렉터 수를 얼마나 늘리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초창기 옥션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중고품 경매로 시작했는데 고객과의 협상력을 어떻게 키우느냐가 관건이었죠. 따지고 보면 미술품 거래도 중고품 거래와 같은 성격이 있지 않습니까. 판매 방식만 다각화한다면 분명 승산이 있습니다.”유통 전문가답게 그가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단행한 것은 판매 방식의 획기적인 전환이다. 옥션과 넷피아 등을 거치면서 그가 체득한 것은 ‘후발 주자는 철저하게 차별화를 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접근 자체부터 달리해야 후발 주자의 한계를 딛고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경매회사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내건 ‘골든 아이(Golden eyes) 미술품 경매’도 이런 생각에서 비롯됐다. 작가 지명도나 작품성 등이 덜 알려진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취급하는 골든 아이 미술품 경매는 낙찰자가 1년 내에 환매를 요구할 경우 낙찰가의 80%를 되돌려준다. 모든 경매 작품에 한국미술품감정원(원장 이구열)의 감정서가 발급되고 추후 위작 시비가 불거지면 전액 환불 조치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가격 거품을 빼기 위해 작품마다 일일이 최고가를 지정했으며 대신 경매 입찰가는 최고가의 70~80%선에서 시작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수의계약도 가능하다. 작품을 원활하게 공급받기 위해 전속 갤러리 수도 40~50개로 늘렸다. 그는 “골든 아이 경매는 1차시장인 갤러리와 2차시장인 경매회사가 ‘윈-윈’할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이라고 말한다.“갤러리 입장에서 볼 때 가능성 있는 신진 작가야말로 ‘미래의 보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아니겠습니까. 이럴 때 경매회사가 나서 거래해 주면 갤러리 입장에서는 유망한 신인 작가 작품을 팔게 되고 해당 작가의 작품 시장가가 처음 형성되며, 컬렉터 입장에서는 투자 가치가 높은 신인 작가 작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됩니다. 환매도 경매회사가 책임지고 보장해 주니 투자 리스크도 거의 없습니다. ‘좋은 작품을 제대로 보고 구매하라’는 뜻의 골든 아이라는 이름도 제가 직접 만들었습니다.”‘빅 마우스’라는 별명답게 이 회장은 오픈옥션의 사업 계획을 거침없이 풀어나갔다. 실제로 근·현대 작가와 골든 아이 경매가 함께 열린 지난 1월 21일 제1회 경매 결과 낙찰된 69점 중 44점이 골든 아이 경매 방식으로 거래됐다. 당초 기대보다 부족했지만 불황인 요즘 미술 시장에서 볼 때 ‘절반의 성공’은 거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오히려 “경매 이후 배운 것이 많다”고 말한다.“경매 사업이 성공하려면 역시 좋은 작품이 많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앞으로는 출품 작품을 60~80점으로 제한해 질을 높일 계획입니다. 골든 아이 방식이 워낙 생소해 그렇지 시장에 제대로 알려지고 나면 엄청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골든 아이 방식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요즘 이 회장은 유망한 신인 작가들을 소개하고 싶다는 일선 갤러리들의 전화로 정신이 없다.물론 골든 아이 미술품 경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우선 감정가에 대한 신뢰 확보가 급선무다. 신진 작가의 작품을 취급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거래되는 값이 일정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 갤러리에서 거래되는 값을 기준으로 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격 논란을 불식하기 위해 작가와 작품 가격 결정은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작품선정위원회에 맡겼다. 이번 1회 경매에서는 서성록 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안동대 교수), 윤진섭 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호남대 교수), 미술평론가 신항섭 씨가 창작성, 시대정신 등을 기준으로 35명의 신진 작가를 엄선했다. 물론 백남준 이대원 김종학 정상화 이강소 등의 국내 유명 작가와 마르크 샤갈, 피카소, 빅토리아 바라렐리, 데미안 허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이미 국내 컬렉터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근현대 미술품 경매도 함께 열었다.“앞으로 결혼 예물로 그림이 오고가는 풍토가 조성됐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미술품 시장을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시장으로 키우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1996년 삼성물산 부장으로 있을 때 미국 신시내티의 P&G 본사를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한 층 전체가 미술품으로 꽉 차 있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당시 P&G 베커 회장에게 “무슨 그림이 이렇게 많으냐”고 물었더니 회사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회사 자산을 배분하는 측면에서 구입했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기회가 되면 미술품 구입을 더 늘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중화가 앞으로의 키포인트입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미술 시장으로 모으기 위해 아파트 분양 옵션에 미술품을 내거는 것은 물론 온라인을 통한 판매 방식 다각화에도 신경을 쓸 생각입니다. 인터넷TV(IP TV)를 통한 판매 시스템도 도입할 계획입니다.”그는 이 밖에도 일반인들의 접근이 쉽도록 개인전, 그룹전 등의 전시회도 대폭 늘리고 미국 뉴저지 주 리츠필드시에 들어서는 블루오션 프로젝트(호텔, 쇼핑센터 건립)에 4950여㎡(1500평) 규모로 갤러리와 미술 경매장을 세워 국내 신진 작가들의 해외 진출 창구로 활용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이금룡오픈옥션 회장성균관대 법학과동국대 경영대학원 졸업옥션, 이니시스 대표이사 사장넷피아닷컴 국내부문총괄 대표이사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 역임 중기협 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