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에 약한 여인들

도록 사랑해 결혼했지만 결혼은 사랑의 기쁨을 짧게, 현실의 고단함을 더 길게 느끼게 만든다.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 결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고단한 결혼 생활을 지속하면 할수록 사랑에 더 목마르다. 사랑처럼 삶의 기쁨과 환희, 그리고 열정을 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현실에 눌려 저만치 달아나버린 사랑을 잡으려고 하는 여인들은 항상 유혹에 약하다. 유혹하는 남자는 허허로운 여자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요아킴 보이클래어(1533~74)의 ‘시장풍경’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마음을 몰래 주고받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이 작품에 등장하는 시장 풍경은 16세기 네덜란드에서 인기 많은 소재였다. 수많은 과일과 채소는 자연의 풍요로움과 은밀한 생활을 암시하는 좋은 소재여서 화가들이 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한 경고로 사용하기도 했다.화면 중앙의 젊은 여인은 과일을 팔고 있고 젊은 남자는 과일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젊은 여인 뒤로 노파가 물렛가락(물레로 실을 자아낼 때 실이 감기는 쇠꼬챙이)을 들고 앉아 있다. 이 작품에서 노파의 물렛가락은 뚜쟁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젊은 남녀가 서로 시선을 피하고 있지만 이미 눈이 맞았음을 나타낸다.화면 왼쪽 젊은 남자의 복장은 그가 새 사냥꾼임을 말해 준다. 새 사냥꾼은 네덜란드어로 바람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젊은 남자는 두 개의 화살이 교차하는 장식의 모자를 쓰고 있는데 화살은 에로스를 상징한다.이 작품에 등장하는 과일과 채소는 그 당시 한 계절에 모두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양배추는 겨울에, 포도는 9월에나 수확하는 과일이다. 또한 이 작품 속의 과일은 당시 최음제로 알려져 있거나 성적 표현으로 쓰이는 과일들로서 달콤한 사랑을 의미한다.사랑에 빠진 여인들은 대담해진다. 사랑 앞에서 부끄러움의 옷을 벗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금지된 사랑일수록 생각보다는 행동으로 빠르게 옮긴다. 주어진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얀 베르메르(1632~75)의 ‘포도주 잔을 든 여인’은 여자가 자신의 집 안에서 유혹에 빠지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네 개의 꽃잎으로 장식된 창문 앞에 세 사람이 있다.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포도주 잔을 들고 있고 남자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술을 권하고 있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시선을 피해 웃고 있다. 손으로 얼굴을 받친 남자가 앉아 있는 탁자 위에는 흰 도자기 병과 레몬이 놓인 쟁반이 있다. 그 뒤로 남자의 초상화가 보인다.이 작품에서 도자기 병에 담긴 것은 포도주다. 포도주는 그 당시 여성을 유혹하기 위한 사랑의 묘약으로 사용됐다. 쟁반에 담겨 있는 껍질 벗긴 레몬은 사랑의 묘약의 효과를 감소시키기 위해 사용됐다.화면 중앙에 있는 남자는 부풀어 오른 새틴 옷을 입고 우아하게 포도주 잔을 든 여인에게 몸을 굽혀 술을 권하고 있다. 정숙하게 보이지만 남자가 권하는 술잔을 받고 있는 여인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듯 포도주 잔을 입에 대고 있지는 않다. 그녀는 관람객에게 자신의 행동을 묻고 있는 표정이다.탁자에 앉아 손으로 얼굴을 괴고 있는 남자는 이미 포도주를 마신 상태다. 그 남자는 포도주를 마셔 무기력한 상태다. 화면 중앙 남자가 탁자에 앉아 있는 남자를 대신해 여자에게 포도주를 권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여자에게 술을 권하는 남자가 뚜쟁이 역할을 하고 있다.뒤에 걸린 초상화 속의 남자는 여인의 남편이다. 그는 그림 속 장소에는 없지만 여인을 바라보면서 경계를 하고 있다.이 작품에서 가장 큰 특징은 세 사람 앞에 있는 반쯤 열린 창문이다. 창문에는 절제를 상징하는 인물이 새겨져 있으며 여인에게 향하는 경고의 메시지다.들키지 않게 사랑을 취하면 좋겠지만 사랑처럼 속이지 못하는 것도 없다. 남들이 다 눈치 채고 있는 사랑이지만 자신만큼은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 사랑에 빠져 있을 때에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자기 암시를 하기 때문에 조심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하지만 도덕의 경계를 넘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졌을 때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르는 법이다. 좋든 싫든 그 결과를 자신만이 책임질 수 있다. 어거스티스 리오폴드 에그(1816~63)의 ‘과거와 현재’는 불륜에 빠진 여자가 남편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그가 그린 불륜의 결말을 경고하는 세 편의 연작 중 하나다.의자에 앉아 있는 남편의 손에 편지가 있다. 그 편지는 아내에게 배달된 연서인데 남편이 그것을 가로챈 것이다. 아내는 남편의 발밑에 쓰러져 용서를 구하고 있고 남편은 아내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다.아이들은 어머니를 바라보며 의자 위에 카드로 집을 짓고 있다. 카드로 만든 집은 이 가정이 깨질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남자 뒤에 열려 있는 문이 보이는 거울은 여인이 가정에서 쫓겨날 운명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왼쪽 벽에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가 그려져 있는 그림이 걸려 있는데 이 역시 가정이라는 낙원의 파국을 의미한다.박희숙화가. 동덕여대 졸업. 성신여대 조형산업대학원 미술 석사.저서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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