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공신력 회복, 시장 안정이 급선무

년 말부터다. 너도나도 휩쓸렸던 미술 시장의 열풍은 잠시 가라앉고 뭉칫돈의 행렬은 잠시 주춤한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아트 재테크에 대한 기대치는 여전하다.투자에 어느 정도 마음이 가 있는 사람이라면 참으로 망설임과 불안감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비록 시장에서 제대로 된 주목을 받진 못했어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데이터는 없을까. 특히 아트 재테크의 매력을 이제 막 맛보기 시작한 애호가들은 답답할 노릇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상상을 펼쳐 봤다. 우리 미술 시장도 이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다. 이 상상은 누군가 초보 컬렉터들도 알아볼 수 있는 시장의 ‘유통 가격지수’를 만들게 됐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분당에 사는 주부 A 씨. 그녀는 요즘 새로운 바람이 들었다. 동료 B 씨의 권유로 미술품 수집에 맛을 들였다. 평소 자주 들르기만 했던 ‘명품화랑’에서 작품을 사기 전에 ‘카미프라이스’ 지수를 확인하는 습관도 생겼다.요즘 한창 뜨고 있는 카미프라이스 지수. 공개된 주식시장과 같다. 가입 대상은 작가, 화랑, 매니저 등 전방위적으로 다양하다. 일단 가입된 회원 자격의 작가나 작품에 대한 정보는 철저하게 운영위원회의 관리 감독을 받는다. 위원회는 모든 거래 가격의 투명성 유지, 작가별 활동에 대한 정확한 고지 의무를 갖는다. 이들 정보는 언제든지 카미프라이스 지수를 이용하는 고객이 열람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구입이나 투자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이 작품들은 금융 시스템과도 연계돼 환금성이 보장되며 등급별로 구분돼 관리된다. 한 작가의 것이라도 똑같은 가격에 판매되는 것이 아니다. 운영위원회와 공급자가 서로 논의해 최고의 컨디션과 퀄리티를 검증받은 작품에 한해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이 작품들에는 최소 80~100%의 환금성을 보장하며 담보대출도 가능하다. 누구나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별해 공시한다. 간혹 비정기적인 경매도 이뤄진다. 물론 엄선된 선정 절차를 거치고 추정가격 또한 카미프라이스 지수로 환산해 안정성을 보장 받는다.카미프라이스는 작가별 작품 가격의 상향 조정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상승 억제에도 참여한다. 즉, 시장에서의 냉정한 기준으로 볼 때 프로로서의 자격에 준하는 노력이나 활동을 게을리 하는 작가라면 시간이 흘렀다 해도 가격이 오를 수 없다.조금만 더 살펴보자. 엊저녁에 카미프라이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최근 인기 작가 리스트가 새롭게 등재돼 있었다. 이번엔 친절하게도 작가의 활동 지역이 작품 가격 변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분석돼 있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주로 중동 지역과 아랍권 문화에서 활동하는 신진 작가들이 새롭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도 최근 큰 화제를 몰고 온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의 공격적인 문화 마케팅의 영향도 한몫하는가 보다.알려진 대로 아부다비는 두바이에 비해 부자다. 석유 매장량도 고작 40억 배럴인 두바이에 비해 무려 20배가 넘는 900억 배럴이다. 같은 나라라고는 하지만 실제 통치자도 다를 정도로 주요 정책의 기조 역시 달랐다. 마치 사막의 부평초처럼 한 사회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문화의 역할이나 힘을 간과했다. 그래서일까. 두바이는 갤러리스트보다 아트 딜러가 더 어울리는 도시라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는 모양이다. 일상의 향유 문화로서 지속적인 관심과 발전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을 단지 인테리어 소품이나 경제적 부가 가치의 수단으로만 여긴 결과인지도 모른다.하지만 아부다비의 발전적이고 성숙한 시도는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 많은 도시에서 미술 문화의 부흥을 꿈꾸고 있다. 미국이 뉴욕의 팝아트로 짧은 시간에 국제 미술 시장의 중심으로 등극했듯 중동권 역시 장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문화의 새로운 중심지로 발돋움하고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기류는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이 때문에 중동권에서 주목받는 작가나 작품 역시 점차 그 진가를 인정받아 상한가 행진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그도 그럴 것이 중동의 아트페어들은 다른 경우와 달라 연합체를 구성하고 있다. 공동 전략을 세우고 공동 마케팅으로 최상의 성과를 얻고자 한다. 일반 대중적인 애호가를 대상으로 삼지 않고 신흥 부자들이나 기존의 자산가들의 기호까지 감안한 ‘맞춤형 아트페어’를 지향한다. 시작부터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결산을 가늠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두바이엔 성업하는 상주 화랑은 극히 드물다. 평균 연 1~2회 열리는 맞춤형 아트페어만큼은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급 호텔이나 컨벤션 센터에서 교대로 열린다. 운영 주체는 물론 뜻이 맞는 몇몇 국가의 운영진이 합류해 맡고 있다. 국내의 일부 신진 작가들은 작년에 이 아트페어에 출품해 대박을 터뜨렸다.출품 자격은 소속 화랑뿐만 아니라 이 아트페어의 한국지부와도 서로 논의를 거쳐야만 최종 참가 명단에 올릴 수 있다. 아예 ‘될 상품’을 만들어 고객을 맞이하니 성공할 수밖에….이와 같이 섹션별로 정리된 카미프라이스의 시장 분석과 전망이나 해설은 아주 많은 미술 애호가들에게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격일 것이다. 또한 전문가 코너에 들어가면 작가별 수익률 사례나 주요 소장처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어 더욱 안정성이 보장된다. 더욱이 스페셜 멤버에겐 간혹 작가와의 미팅도 주선해 최근 동향이나 작품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듣도록 기회가 제공된다.이상은 상상 속의 얘기다. 하지만 머지않은 시간에 누군가는 꼭 실현해야 할 우리의 숙원 과제다. 객관성과 공신력을 가진 ‘친절한 안내’가 반드시 필요하다. 미술품이 이젠 투자 대상이라는 말은 너무나 특별하지 않은 일상어가 됐다. 지금은 미술품이 왜 투자 대상이 되고 있으며 투자 대상으로서 미술품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지 하는 점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필요한 시기다.한편 지금 대개의 국내 수요자(애호가)들은 조급증에 걸려 있다. 들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간혹 빨리빨리, 단기간에, 황급히 서두르는 이들을 목격하게 되면 ‘미술판 떴다방’이 연상될 정도다. 미술이 혹은 미술품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문화이기 때문이다. 집을 사고팔고, 자동차를 바꾸고 하는 것과 그림이 유통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 것이다.미술품 유통의 진정한 묘미는 생활에서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경제적 부가가치가 따라오는 것은 아닐까. 그런 바람을 실현해줄 수 있는 ‘카미프라이스’가 이른 시일 내에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김윤섭 미술평론가 /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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