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고창신(法古創新)정신으로 ‘금융빅뱅’ 자통법 대비"

김중웅 현대증권 회장

대증권의 전 임직원들은 매주 최고경영자(CEO)가 보내준 ‘세심록(洗心錄)’을 받아본다. 마음을 정화해 주는 시나 글귀에서부터 신경영 트렌드까지 주제는 매주 바뀐다. 지난해 9월 세계적인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타계했을 때에는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 음악 파일이 함께 전해졌다. 세심록은 지난해부터 현대증권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중웅 회장이 ‘직원과의 소통’을 위해 고안해낸 감성경영의 한 방편이다. 김 회장은 직접 직원들에게 보낼 좋은 글귀와 배경음악을 고르고 이에 대한 반응도 빠뜨리지 않고 챙긴다. 처음엔 ‘얼마나 가나 보자’는 식으로 대했던 직원들의 반응도 크게 바뀌었다. “바다를 달리는 배는 속도를 내야 큰 파도가 일고, 바람개비도 달려야 힘차게 돌아갑니다. 회사가 가야 할 큰 방향을 정해 주시면 우리는 힘껏 달리겠습니다.” 세심록을 받아본 한 직원이 사내 인트라넷을 올린 답글이다.김중웅 회장은 감성경영을 앞세워 현대증권의 소리 없는 변혁을 이끌고 있다. 직원들과의 소통을 통해 임직원의 마음을 한곳으로 모으는 한편 오랜 숙원인 자기자본 확충에서도 가시적 성과를 보이며 옛 영광 회복에 나서고 있다. 현대증권은 지난해 현대그룹이 참여하는 5300억 원의 증자를 통해 자기자본 규모를 2조2000억 원으로 늘렸다. 2009년 2월부터 시행 예정인 자본시장통합법에 따른 무한 경쟁에 대비하는 차원이다. 자기자본 규모가 국내 증권사 가운데 1위권으로 부상하면서 직원들의 자신감이 높아진 것은 부수 효과다. 지분 구조에도 변화가 있었다. 최대주주인 현대상선의 보유 지분이 13.11%에 그쳐 현대증권은 증권가에 인수·합병(M&A)설이 나돌 때마다 피인수 업체로 거론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지난해 주식시장에서 현대상선이 1300억 원어치를 사들여 지분율을 20.2%까지 끌어올림으로써 지배 구조를 안정화했다. 김 회장은 “현대증권을 미래 성장 동력의 한 축으로 삼겠다는 게 그룹의 전략”이라며 “증권업계의 판도를 뒤흔들 자통법에 대비하기 위해 2010년까지 자기자본 규모를 5조 원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경제 전망은 일기예보와 비슷해서 쉽지 않습니다. 신규 투자가 지난해보다 확대될 것임을 고려할 때 5%대의 성장률은 낙관합니다. 증권시장도 조정은 보이겠지만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에 힘입어 2010년까지는 지속적 성장세를 보일 것입니다. 국내의 경우 다소 불안한 점은 가계 부채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 담보대출입니다. 금리가 인하 추세이기는 하나 과거보다 높아진 금리 탓에 소비가 여전히 살아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이죠.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를 보면서 가계 부채 부실에 따른 한국형 서브프라임 부실화 가능성과 대책도 항상 염두에 둘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금융을 반도체 조선 등 기존 성장 산업의뒤를 이를 제2의 성장 원천으로 키워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구경제가 씨앗을 뿌려 놓은 과실을 따먹고 있는 산업 구조입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면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샌드위치가 될 처지입니다. 최근의 경제는 기존 3대 생산요소에 시간이라는 신개념이 가미된 4차원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4차원 경제의 핵심은 바로 금융입니다. 준비하기에 따라 금융은 우리가 일본 중국보다 충분히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분야죠. 중국은 여전히 통제 국가이고 일본은 외환위기와 같은 외부 자극을 받지 않아 금융이 제조업 수준에 훨씬 못 미칩니다. 규제를 과감히 풀어 서울을 동북아의 금융 허브로 만드는 방안을 신정부가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한마디로 금융시장 빅뱅의 시작입니다. 은행업계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질적 변화의 기회를 가졌으나 증권은 그동안 본질적으로 변화의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대부분의 증권사가 위탁 매매에 안주한 것도 이 때문이죠. 하지만 은행 보험 외 사실상 모든 금융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허용한 자통법은 증권업계에 일대 변혁을 가져올 것입니다. 자통법은 과거 실물경제의 그림자(종속산업)였던 금융이 실물경제를 리딩하는 역할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지난해 우리 국민이 해외 펀드 투자로 번 수익(19조 원)이 물건을 팔아 벌어들인 무역수지 흑자 추정액 150억 달러(약 14조 원)를 뛰어넘은 것은 금융 산업의 부가가치를 설명해 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취임 후 가장 먼저 마련한 게 현대증권의 비전입니다. 직접 작성한 100페이지짜리 ‘현대증권 발전전략’을 토대로 임원들과 함께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하나하나씩 만들어갔습니다. 자기자본 확대는 물론 신용 등급도 한 단계 올려놓았습니다. 앞으로 먹고 살 자산관리 영업의 토대도 마련했고요. 다만 IB(투자은행) 부문에서의 가시적 성과가 아직 부족하고 여전히 수익원의 절대 부분을 위탁 매매에 의존하고 있는 수익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있어 아쉽습니다.”“지난해 실적에는 못 미칠 가능성이 있지만 차이는 크지 않을 것입니다. 신정부의 친기업 성향과 연초 하락세가 과매도 국면이라는 점에서 투자자들이 현명한 판단을 할 것으로 봅니다. 외부적으로도 미국이 금리 인하에 속도를 내고 있고 금융권의 서브프라임 손실도 지난해 4분기가 정점으로 보이는 만큼 1분기를 지나면 증시가 안정화될 것입니다.”“현대증권은 증권사 가운데 최대 규모인 136개의 국내 영업망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중국에 가장 먼저 진출한 것을 비롯, 3월에는 카자흐스탄 사무소도 오픈합니다. 이 밖에 도쿄 사무소 등 가장 다양한 국내외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홍콩법인을 현지 자산운용사를 보유한 지주사로 전환하는 등 현지 거점화 전략으로 차별화할 계획입니다.”“자산운용본부를 설치하고 자산운용사 인수와 신규 설립을 동시에 추진 중입니다. 단기적으로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기존 운용사 인수가 바람직한데 가격이 지나치게 비싼 게 문제입니다. 인수가 여의치 않을 경우 올 하반기께 자체적으로 설립하는 방안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과거 자산운용사를 보유한 경험이 있고 운용업 관련 인력도 확보하고 있어 일단 결정이 나면 이른 기간 내에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모든 기존 사업계획을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관점에서 재검토하고 대형 투자은행의 기업 체질을 구축하도록 했습니다. 과거에서 배워 새로운 것을 창조하자는 정신으로 현대증권의 대형화 기틀을 갖추자는 취지입니다. 구체적 경영 전략은 국내는 물론 세계를 무대로 투자은행 사업을 추진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과 시장별로 경쟁자와 협력해 시장파이를 키우는 코피티션(Coopetition)을 추구하고 있습니다.”김중웅현대증권 회장서울대 법대미 클라크대 경제학 박사재무부 금융정책과장한국신용정보 대표현대경제연구원 원장대담=임혁 편집장 정리 김형호·사진 이승재 기자 chs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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