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에서 새벽에 출발한 비행기는 어느덧 날이 밝아 푸른 인도양의 망망대해를 날고 있다. 바다에 구멍이 난 것일까. 코발트블루의 인도양에 에메랄드 빛 원형으로 물들여져 있는 구멍들이 바다 여기저기에 뿌려져 있는 듯하다. 흡사 바다의 아름다운 블랙홀 혹은 꽃잎과도 같다. “그렇구나…. 이것이 몰디브구나.”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수많은 에메랄드 구멍들이, 바다에 뿌려져 있는 보석 같은 섬들이 몰디브인 것이다. 아름답다, 경이롭다, 또는 이보다 더 황홀할 수 없다 등의 미사여구들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것일 게다.원색의 강렬한 색채와 해맑은 웃음은 자연이 준 것일까. 몰디브를 만나는 첫 여정의 관문은 몰디브의 수도 말레(Male). 세계에서 가장 작은 수도, 수면 위에 살짝 얹혀 있는 도시, 아직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순박하다 못해 천진난만한 몰디브 사람들. 수도섬 말레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수사가 아닐까 싶다.바다와의 경계선이 없어 금방이라도 물이 차오를 것 같은 말레의 면적은 겨우 동서 약 2.5km, 남북 1.5km로 섬 일주에 걸리는 시간이 도보로 채 1간이 넘지 않는다. 수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어쩌면 안쓰럽다는 느낌이 들 만큼의 작은 외딴섬이다. 하지만 1190여 개의 크고 작은 섬이 흩어 져있는 몰디브 섬 중 전체 인구의 3분의 1인 9만여 명이 말레에 살고 있어 전 세계 도시 중에서 가장 높은 인구밀도를 보이고 있기도 하니 참으로 아이로니컬하지 않을 수 없다.몰디브를 다녀온 수많은 이들은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말레 시티를 관광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만 여행의 무지 혹은 여행의 진정성이 결여된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덧없는 이야기인 것이 자명하다. 사실 1190여 개의 보석과 같은 섬 들 중 한 섬의 한 리조트만 다녀와도 몰디브에 다녀왔다고 할 수 있지만 말레 시티를 꼭 가봐야 하는 이유는 때 묻지 않은 강력한 색채를 발산하는 몰디브만의 고유한 색채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원색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이곳은 열대국의 강한 원색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열대국으로서의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형형색색의 어선, 문명 이전의 삶이 숨 쉬는 수산시장, 파란 하늘과 태양을 배경으로 새하얗게 빛나는 모스크 사원과 그 위에서 펄럭이는 새빨간 몰디브 국기. 골목골목 몰디브 사람들의 삶이 여과되지 않은 채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아기자기한 집들과 상점들. 언제나 웃음으로 먼저 다가오는 몰디브 사람들의 순수하고 얼굴 가득 선한 표정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원시에 가까운 색감에 가깝다.몰디브는 독특한 자연과 구조를 지니고 있다. 총 1190여 개의 아기자기한 섬들이 각각 아톨(Atoll)이라 불리는 거대한 자연적 환초 안에 들어가 있고 각각의 섬은 또다시 하우스리프(House Reef)가 떠받들고 있으며, 그 섬은 에메랄드 빛 산호초 군락(Lagoon)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빛을 발산하고 있다. 더욱 독특한 것은 한 개의 섬에 오직 하나의 리조트만이 존재한다는 사실. 몰디브 전체의 섬 중 관광객이 갈 수 있는 리조트가 들어선 섬은 100여 개에 불과하다고 하니 나머지 섬들은 아직까지도 인간의 손길이 한 번도 닿지 않은 천혜의 자연 그대로인 것이다. 그 섬들 중 내가 찾은 곳은 말레 시티에서 스피드보트로 20여 분 떨어져 있는 곳으로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독특한 콘셉트로 주목받고 있는 ‘소네바 길리 리조트’. 말레 시티의 원색적 휴머니티를 거쳐 지친 이들의 자연적 안식처가 될 수 있는 진정한 몰디브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봤다.소네바 길리의 선착장에 도착하면 말쑥하게 생긴 스태프가 가장 먼저 선사하는 것은 천연 나무 종이로 만든 환영 메시지(Welcome Message). “우리 리조트에서는 신발이 필요 없는, 자연 본모습의 모습을 사랑합니다. 잠시나마 세상을 잊고 짧은 여정을 자연과 함께 즐기다 떠나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맨발로 다닐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 전 세계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독특하고 감동적인 자연의 서비스를 다른 어디에서 맛 볼 수 있단 말인가.소네바 길리 리조트는 이탈리아의 ‘소누(Sonu)’라는 부호가 2005년 말께 오픈한 곳이다. 세계적인 리조트의 면모를 몰디브 태초의 자연에 접목해 화려하다기보다는 소수의 고객만이 진정한 휴식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곳으로 만들어 천혜의 자연과 인간과의 공존이 얼마나 멋지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너무나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섬 전체를 휘감고 있어 흡사 무인도에 버려진 것 같은 신비스럽고 오묘한 느낌을 안겨다 준 소네바 길리.해가 뜨고 석양이 내려앉으면 어두운 밤이 찾아오고, 그 긴긴 밤이 지나면 어김없이 여명이 밝아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아침 햇살이 나를 반긴다. 자연이 내게 들려주는 건 오전의 향긋한 바람 소리와 오후에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질 것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사로운 소식일 뿐, 그 어떤 것도 스스로 떠나온 내 안의 자유를 방해하는 요소를 찾아볼 수 없다. 바로 이것이 몰디브에서의 휴식이다. 세상과의 소통이 완벽히 차단돼 있는 ‘나’ 혹은 ‘우리’들은 외딴섬에 방랑하는 한 쌍의 아름다운 아담과 이브. 자연과 동화된 채 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몸놀림까지 익숙해진다.작고 가느다란 타원형 형태의 섬 소네바 길리에는 에메랄드 빛 라군에 방사형의 제티(수상 가옥으로 이어지는 교각)가 연결돼 앞부분에는 워터바, 뒷부분에는 워터 스파가 물에 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특이한 것은 오직 도니(몰디브의 전통배)로밖에 갈 수 없는 수상 방갈로 7동이 에메랄드 빛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다는 사실이다. 메인 섬하고도 동떨어져 있어 마치 바다 한 가운데에서 솟아나온 듯한 모습이 로빈슨 크루소를 연상시키며 신비하리만큼 가슴에 다가온다. 또한 모든 것이 전부 목조 건물로 되어 있어 어느 것이 자연이고 어느 것이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인지조차 모호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인공(人工)으로 자연을 살려 자연과의 어우러짐을 중시하되, 인공적인 것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는 정책의 일환으로 나무를 매개로 따스함의 소재감을 살린 전형적인 목조 건축 방법이 이 소네바 길리 리조트의 건축물에 반영된 듯하다.‘NO SHOES, NO NEWS’로 시작되는 맨발의 휴양이 몰디브의 첫 시작을 알리듯 소네바 길리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는 몰디브가 일깨워 준 자연과 동화된 삶이 어떤 것인지 확연히 깨달았다.세상에 아름다운 섬은 무수히 존재한다. 남태평양의 뉴칼레도니아, 타히티, 인도양의 모리셔스와 쉐이쉘 등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럽을 비롯한 남미와 북미에서는 오래전부터 세계적 휴양지로 각광받아 온 섬들이다. 이 중 타히티 섬은 남태평양에 있는 섬으로 ‘신들의 정원’이라고 불릴 만큼 빼어난 자연 환경으로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부호들의 휴양지로서 사랑받아 왔다. 폴 고갱 역시 숨이 멎을 듯한 대자연의 감동을 선사해 준 타히티 섬에 매료돼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가 타히티로 간 시대적 배경이나 말 못할 개인적 사정이야 어찌되었건 만약 고갱이 푸른 인도양의 바다에 뿌려져 있어 숨은 보석이라 일컫는 몰디브를 먼저 알았더라면 그의 대표작 ‘타히티의 여인들’이 과연 존재했겠나 하는 의문이 든다. 아마도 ‘타히티의 여인들’이 아닌 ‘몰디브의 아낙네들’로 재탄생 되지 않았을까.1주일 동안 몰디브의 자연에 갇혀 세상의 소식을 잊은 채, 자연이 들려 준 소식들을 벗 삼아 지낸 일상은 이처럼 생각의 변화까지도 느끼게 할 만큼 내안의 자유를 일깨워 줬다. 물론 언제 그랬느냐는 듯 나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 세상이 들려주는 삶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폴 고갱이 다시 타히티 섬으로 귀환한 것처럼 나 역시 몰디브에서의 1주일을 그리워할 것이 분명하고 일탈의 충동을 느낄 때 다시 또 찾을 것이다. 벌써 내 마음은 여행의 경계선에 서 있고 원시 그대로의 삶을 동경했던 고갱의 마음처럼 이미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자유는 맛 본 사람만이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듯이 몰디브에서 향유했던 자유는 어느새 내일의 타히티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듯하다. 자유를 갈망하는 채비만을 생각하며.글·사진 전광용 여행 전문 칼럼니스트·이오스여행사(www.ios.co.kr)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