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최첨단에 희소성 더해져 인기

이은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아파트 투자에 대한 열기가 식는 가운데 반대로 친환경을 앞세운 저밀도형 고급 빌라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투자 지도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대치동, 도곡동으로 대표되는 초고층 주상복합이 화려함과 편리성은 갖췄지만 친환경성은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고급 빌라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얘기다.서울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정모 씨는 지난달 2년간 정들었던 대치동 모 주상복합 생활을 정리하고 방배동으로 이사했다. 정 씨가 부의 상징이었던 주상복합을 박차고 나온 이유는 “초고층 주상복합 생활이 너무 답답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고층에다 최첨단 인텔리전트 시스템으로 지어졌다곤 하지만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데다 고층에서 생활하는 것이 생각처럼 좋지만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당초 타운하우스로 이사할 생각도 해봤지만 서울과 너무 떨어져 있고 주변에 생활 편익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아 결국 방배동 빌라로 이사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정 씨와 같은 사례는 드물다. 투자 수익만 놓고 보면 초고층 주상복합이 훨씬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주택 업계에 불고 있는 에코(ECO) 열풍은 그냥 잠시 흘러가는 트렌드로만 볼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오히려 최근 건립되고 있는 고급 빌라는 친환경과 최첨단 기술이 결합되면서 소비자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는 모습이다.서울 방배동은 요즘 건축 경기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지난해 공사를 중단했던 몇몇 고급 빌라들이 부동산 경기가 차츰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공사를 재개한 것. 미분양 물량도 조금씩 해소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청담, 한남, 평창동 등 서울 다른 지역의 고급 빌라 촌에도 나타나는 공통된 모습이다.“이명박 정부가 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건설 경기가 좀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부동산 경기가 풀리기를 기대하며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고 있어 올해 장사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청담동 녹산부동산 관계자)이 관계자의 얘기처럼 이명박호(號)의 출범은 고급 빌라 시장에선 확실한 호재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이들 주택은 애초부터 고급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종합부동산세, 다주택 중과세 문제와는 큰 관련이 없다. 다만 건설 경기 부양으로 주택 공급이 늘어나다 보면 쾌적한 환경에 차별화된 평면을 무기로 한 고급 주택의 매력이 한층 더 커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방배동의 한 건축주가 얼마 전 공사 재개를 좀 늦추자고 하더라고요. 이유를 묻자 ‘새 정부가 기반시설부담금제를 폐지한다고 약속했는데, 그렇게 되면 약 7000만 원의 공사 금액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더군요. 건설과 관련된 각종 규제가 폐지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는 걸 보면 ‘시장 분위기가 참 많이 바뀌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고급 주택 리모델링 전문 업체 레노베르 김호영 이사)이에 따라 고급 빌라 시장의 트렌드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우선 최고급 자재로 내·외부를 치장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한남동에서 공인중개사로 활동 중인 이인걸 사장은 고객과 함께 신축 중인 고급 빌라에 갔다가 크게 놀란 일이 있다.“집을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안목이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습니다. 가전제품은 어떤 게 들어오며 마감재는 뭘 쓰는지 꼬치꼬치 물어보더니만 거실 문의 손잡이를 보고 ‘이건 작년에 유행했던 모델’이라며 발길을 돌리더군요”그러다 보니 요즘 지어지는 고급 빌라들은 대부분이 환경 호르몬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친환경 페인트로 벽을 칠하고 바닥도 MDF(중밀도섬유판) 소재가 아닌 황토 대리석이나 오동나무 원목을 사용한다. 고급 주상복합에서나 사용되는 공기 정화 시스템, 정수 시스템도 마련해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건축 자재도 최고급 일색으로 거의 모든 제품이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수입 제품으로 채워지고 있다. 밀레 가스 쿡 톱, 서브제로·바이킹 냉장고, 월풀 욕조는 기본 아이템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일부 주택은 미국 백악관이나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사용된 미국 마빈사가 제조한 창호를 쓰는데 이 창호는 유리 사이에 아르곤 가스를 충전한 뒤 로이 방식으로 코팅 처리해 단열과 방음 효과가 탁월하기로 유명하다.변형된 고급 빌라인 타운하우스가 대거 들어서고 있는 것도 달라진 현상이다. 용인 동백지구 내 짓고 있는 타운하우스 동연재는 조선 중기 성리학자 이언적의 고택(향단·보물 제412호)에서 설계 모티브를 얻어 집 한가운데 하늘이 보이는 중정(中庭)을 뒀고 내부에 2개의 차실(茶室)을 둬 실용도를 높였다. 3층 입주민에게는 248㎡ 규모의 전용 옥상 정원을 제공한다. 같은 동백지구 내 들어서는 금호 어울림은 1층에 별도의 테라스 공간이 조성되며 SK아펠바움은 안채와 사랑채로 대표되는 우리 전통 가옥 구조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살리도록 내부를 설계했다.골조 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된 뒤 일부 가구를 실제 집처럼 꾸미는 샘플하우스 분양 방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 평형도 커지고 있어 최근 분양되는 고급 빌라는 기본이 330㎡(100평) 이상이며 496㎡(150평) 이상인 집들도 상당수다. 그렇다고 해서 내부 평형이 무작정 커진다는 것은 아니다. 현행 과세 기준에 따르면 전용면적이 245㎡(74평) 이상인 주택은 고급 주택으로 분류, 중과세로 부과되기 때문에 내부 면적은 그다지 크지 않다. 이 때문에 내부 면적은 245㎡ 이하로 하고 대신 건물 지하에 대규모 창고를 마련하거나, 가구당 주차 면적을 4~5대씩 제공하는 것이 달라진 모습이다. 청담동에 위치한 고급 주택 카일룸은 건물 내 피트니스 센터, 골프 연습장, 와인바, 영화관 등을 마련했고 1층을 호텔 라운지처럼 꾸며 입주민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시설은 모두 각 가구별 분양면적에 포함돼 있다. 성북동 고급 빌라 어승재도 분양면적은 569㎡(172평)이지만 전용은 240㎡대다. 이 집은 가구당 주차 면적이 8대나 된다. 가구별로 제공되는 창고는 오디오 룸이나 작업실 등 주로 개인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청담동, 이태원동 등 일부 지역에서는 동호인 방식으로 가구주를 구성해 설계부터 시공까지 입주민의 의견이 100% 반영된 주문형 주택까지 등장했다.내부 인테리어는 동양적인 색채가 많이 가미되고 있으며 거실 규모는 작아지고 대신 방을 여러 개 만들어 가족 내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살려주고 있다. 고급 빌라 분양 전문 업체 럭셔리홈갤러리 성기영 대표는 “다주택 보유로 세금 부담이 가중되면서 여러 가구가 한 집으로 모이는 가구통합형 주택이 대세를 이루고 있으며 패밀리 룸이라는 공간이 거실보다 커지는 것도 최근 지어지는 고급 빌라의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같은 맥락에서 복층형 주택이 각광을 받고 있어 방배동 롯데빌라는 전 가구가 복층으로 구성돼 있다.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돼 온 투자 가치도 크게 나아지는 분위기다. 30억~40억 원에 분양됐던 청담동 카일룸 2차는 현재 매매값이 45억~60억 원까지 치솟았다. 관련 업계에서는 330㎡ 이상 고급 빌라 대부분이 2~3년 전과 비교해 평균 10억 원씩 값이 뛰었다고 말한다. 성 대표는 “서울 시내에는 더 이상 고급 빌라를 지을 만한 땅이 없어 희소성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Box in Box아파트와 달리 빌라는 같은 평형, 같은 층에서도 구조가 제각각이다. 또 입지와 향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실제 330㎡형(옛 100평형) 아파트를 12억 원에 분양받았던 A 씨는 완공 후 주차장 앞 이면도로 폭이 겨우 4m에 불과한 것을 뒤늦게 알고 건설사에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면도로가 좁은 고급 빌라는 내부 인테리어가 아무리 좋아도 제값을 받기 어렵다는 게 일선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따라서 전문가들은 빌라를 선택할 때는 △위치 △건설사 브랜드 △가구 수 △자재 구조 등 주요 기준을 철저히 따져볼 것을 권하고 있다. 위치를 선정할 때는 선호 주거지역을 택해야 한다. ‘빌라는 사는 순간부터 돈이 안 된다’는 속설은 싼 맛에 인기 없는 지역의 빌라를 구입한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얘기다. 분양 시에는 같은 층이라도 정면에 막힌 건물이 없어 탁 트인 조망이 가능한지도 확인해야 한다. 워낙 고가의 건물인 만큼 조망에 따른 가격차가 만만치 않다.빌라 시장에서는 아파트와 달리 대형사보다 중견 건설 업체 브랜드가 훨씬 인기를 끌고 있다. 중견 전문 업체들이 오랫동안 빌라를 지어 온 노하우와 관리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빌라 시장에서 업력이 오래된 대표 시공사로는 신구건설, 명지건설 등이 꼽힌다.시행과 시공을 함께 하는 건설사의 경우 분양가가 저렴하다는 이점이 있는 만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실제 방배동 일대 빌라 건축 시장에서 신흥 강자로 급부상한 예광건설은 ‘베로니스’ 2, 3, 5, 6, 9차의 시행과 시공을 함께 맡은 덕분에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손쉽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가구 수 규모도 중요한 선택 기준이다. 같은 6층짜리라고 하더라도 18가구와 6가구인 경우 가구 수가 많은 쪽이 공동 관리비나 보안 등에서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마감재와 내부 구조도 비교해 봐야 한다. 빌라는 각 가구별 구조의 개별성이 강해 직접 평면을 확인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또 1층 단독 정원 등 빌라의 특징이 살아있는 단지를 고르는 것도 중요한 기준이다.송창섭 기자 realsong@moneyro.com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