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Art의 절정 스테인드글라스

스러운 12월. 스테인드글라스가 빛나는 중세풍의 성당에서 황홀한 축제가 시작된다. 4주간의 대림절(待臨節)을 통과하면서 고해성사로 죄를 씻고 오실 메시아를 맞이하는 것이다. 드레스덴 성모교회에서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1723년 로마 가톨릭 전례에 따른 크리스마스 만과(晩課: 저녁 기도)를 위한 마니피캇을 작곡한다. 12단락으로 나뉘어 소프라노와 합창이 함께 크리스마스이브에 연주되는 밝고 즐거운 곡이다. 이탈리아 양식으로 라틴어 원문과 함께 일부를 감상해 보자.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Magnificat anima mea Dominum)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Et exultavit spiritus meus in Deo salutari meo)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Quia respexit humiltatem ancillae suae)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ecce enim ex hoc beatam me dicent omnes generationes)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quia fecit mihi magna qui potens est) -중략-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Sicut erat in pricipio et nunc et semper et in saecula saeculorum Amen)마리아가 사촌인 요한의 어머니 엘리자베스를 찾아가 부른 송가(頌歌)다. 마니피캇은 첫줄의 단어에서 따온 것으로, 바흐 외에 헨델과 모차르트 같은 이들에 의해서도 작곡됐다. 예약의 성취를 보여주는 이 찬미는 구약성서의 이사야서 7장14절(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 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을 모티브로 한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리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장면을 수태고지(受胎告知: Annunciation)라고 부른다. 이 수태고지에서 ‘동정녀 수태설’이 나온 것이며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이 역사적 소재를 화폭에 담은 수많은 그림들이 탄생한다. 그 가운데서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엘 그레코, 보티첼리, 안젤리코 등의 그림이 유명하다. 중세로부터 마리아는 색상이나 꽃으로 상징되곤 하는데 백합꽃은 하얗고 암수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마리아의 처녀성의 상징이 된다. 프랑스의 문장이 백합이 된 것도 마리아가 봉헌된 나라라는 뜻으로 중세 이전에는 영국이나 다른 유럽에서도 백합을 사용했다.프랑스 전체에 산재한 성당은 노트르담(성모님에게라는 뜻)이다. 북방 르네상스 화가들은 흔히 백합을 천사의 손이 아닌 꽃병에 그리고 있으며 붉은 장미(자애의 상징)를 많이 사용한다. 로사리오의 기도(묵주 기도)와 고딕 건물에 장식된 장미창 모두가 장미라는 꽃을 주제로 성모마리아를 상징하는 것이다.샤르트르는 높은 건물과 첨탑, 첨두아치로 수직적 상승감을 나타내는 건물 양식으로 좁고 긴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특징으로 하는 가장 전형적인 고딕 성당이다. 성당 건물의 전장(全長)은 약 130m, 신랑부(身廊部)의 너비는 16.4m로 프랑스 제일의 규모이며, 천장 높이는 36.55m, 성당 앞쪽에서 뒤쪽까지의 길이는 73.47m다. 각각 다른 시대에 건축된 두 개의 첨탑은 이질적인 성격의 비대칭적인 역동성을 보여준다. 성당을 유명하게 하는 것은 아케이드를 비롯해 높은 창에 짜 넣은 176개의 스테인드글라스와 거대한 장미창이다. 장미창은 일부 12세기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13세기의 것으로, 서쪽 정면의 장미창은 최후의 심판을, 남쪽 장미창은 영광의 그리스도를, 북쪽의 장미창은 성모를 주제로 했으며 프랑스의 장미창을 대표한다.샤르트르의 노트르담 성당에 도착해 돌 조각으로 이뤄진 고딕 아치문을 밀고 경내로 들어서자, 마침 쏟아져 들어오는 강렬한 빛으로 화려한 색깔의 향연은 마치 천상의 환영(幻影)처럼 성당 전체를 화폭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찬란한 연출을 볼 수 있다니, 구름 한 점 없이 빛나는 태양의 날에 샤르트르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세에 제작된 스테인드글라스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이 기쁨에 흠뻑 빠지니, 그레고리안 찬트가 고딕의 높은 천장을 울리면서 청아하게 들려오는 듯하다.파리의 시테 섬에는 노트르담 뒤쪽에 작지만 아름다운 생트 샤펠(La Sainte Chapelle)이 있다. 최고 재판소의 안뜰에 있는 이 성당은 고딕 양식의 또 하나의 걸작품으로 13세기 루이왕의 개인 채플로 지어졌는데 33개월 만에 완성했다. 건물 전체가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돼 있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고딕 시대에는 수도사들이 무지한 평신도들을 위해 성서와 고전을 엮은 삽화, 즉 일러스트레이션을 들고 수도원 밖으로 나온다. 프랑스의 가장 훌륭한 카테드랄(Cathedral: 대성당), 샤르트르 성당에서 분명하게 확인해 볼 수 있거니와 건물은 책이요, 채색 스테인드글라스는 곧 삽화였다. 건물은 하느님을 지향하여 높이 솟아오르고 상징으로 이루어진 성당 건물은 채색 스테인드글라스의 찬란한 빛의 향연으로 감동을 자아낸다. 글을 읽을 수 없는 이들까지도 다채색 빛으로 빚어내는 삽화를 통해 성서의 메시지를 해득(解得)하면서 기쁨을 얻는다. 한 권의 성서를 얻고자 300여 마리의 양가죽이 필요하듯 수 만장의 색유리 조각이 2000㎡에 이르는 창을 펼치는데 소요됐다. 빛을 물들일 줄 알았던 당시의 유리 세공인들은 오로지 성서를 그려내는 일에 정진한 진정한 삽화가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성당을 찾는 이들은 성모 마리아의 자애로움에 감동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위대함의 조화를 고딕 건축의 미학적 관점이라고 한다면, 이 시대를 상징하는 성당 건축은 바로 그 분의 속성을 지상에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시각 체험을 구성하는 3가지 조형 요소를 빛, 색채, 형태라고 할 때 특히 회화에서의 빛은 색채와 결합해 형태의 변화와 깊이를 좌우한다.그러나 다른 장르와 달리 스테인드글라스는 자연 채광의 변화무쌍한 변화가 투명한 색유리를 통해 연출되는 것으로, 빛이 색채 속에 구현돼 불가사의한 변화와 신비를 창조해 낸다. 이보다 더 위대한 회화의 세계가 인류 역사상 또 있었을까. 유러피언들이 고딕 사조의 예술 전체를 일컬어 거룩한 예술, 즉 홀리 아트(Holy Art)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다.1. 프랑스 부르주(Bourges). 생테티엥 주교좌성당은 12세기에 지어졌다. 특히 납이 아닌 티타늄으로 접합하는 기법을 사용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정교하고 아름다워 유명하다.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됐으며 현대 예술가들에게도 영감을 주는 아름다운 성지다. 이 그림은 마리아가 메시아를 잉태하리라는 천사의 음성을 듣는 수태고지를 그렸다.2. 프랑스 디종에 있는 생베니뉴 대성당.부르고뉴 고딕 양식의 전형으로, 14세기 초 로마네스크 양식의 바실리카를 헐고 지었다. 창문에는 성서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렸으며 장미창이 화려하게 빛난다.3. 캔터베리 주교좌성당에 설치된 창문.바이블 스토리 가운데 가난한 이를 위로한 예수를 주제로 그렸다. 중세 성서가 없던 시대에 대부분 문맹자였던 평신도들을 위해 빛과 색유리를 비주얼화해 성서를 이해시키고자 한 것이다.4. 리옹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천사가 성모마리아에게 메시아의 잉태를 알리는 장면을 그렸다.5. 샹트 샤펠의 경내 장식. 스테인드글라스와 함께 별들을 그린 천체를 푸른 색채와 화려한 장식으로 유명하다.6. 아트 앤드 크래프트 사조의 중심에 있었던 예술가 에드워드 번존스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작품으로서 버밍햄 교회 제단을 비추는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하다. 19세기풍의 화풍으로 정교하게 십자가에 예수 그리스도를 그렸다.7. 프랑스 부르주(Bourges). 생테티엥 주교좌성당이 떠오르는 태양빛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하며 아름답게 비추고 있다. 성당 건물 전체가 빛으로 연출하는 입체화로 시현된다.8. 프랑스 노트르담 에브레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건물의 회색빛과 어우러져 세련된 중세인들의 감식안을 보여준다. 아침, 혹은 저녁 기도를 위해 찾아오는 이들에게 시간대별로 아름다운 빛의 향연은 고단했던 삶을 살았던 중세인들에게 위로가 됐을 것이다.9. 상트샤펠 장미창(rose window). 예수의 세례를 주제를 색유리와 납 튜브로 연결한 기법으로 푸른색을 바탕에 그리고 있다. 납 연결 부위 선이 거칠지만 추상적인 느낌은 오히려 더 인상적이다.김재규헤리티지 소사이어티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 아카데미 대표. 앤티크 문화예술기행, 유럽도자기 저자.영국 엡버시 스쿨, 옥스퍼드 튜토리얼 서비스 칼리지 오브 런던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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