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방미가 들려주는 부동산 투자 비법
년 이맘때면 가슴 한쪽을 쓸어내리는 노래 하나가 생각난다. 가수 이용이 부른 불후의 명곡 ‘잊혀진 계절’이 10월의 노래라면 방미의 ‘올 가을엔 사랑할거야’는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11월의 노래라고 할 만큼 애절하기 그지없다.‘묻지 말아요/ 내 나이는 묻지 말아요/ 올 가을엔 사랑할거야/ 나 홀로 가는 길은 너무 쓸쓸해 너무 쓸쓸해/ 창밖에 눈물 짖는 나를 닮은 단풍잎 하나/ 가을은 소리 없이 본체만체 흘러만 가는데/ (중략)/ 애타게 떠오르는 떠나간 그리운 사람/ 그래도 다시 언젠가는 사랑을 할거야/ 사랑할거야’ 올드미스들에게 ‘올 가을엔 시집갈거야’로 개사돼 불리던 이 노래가 그리울 때는 코끝이 싸늘해지는 딱 이맘때다.방미가 가수생활을 시작한 지 올해로 29년째다. 내년이면 만 30년을 채우는 그녀는 요즘 가끔 지나온 시간을 반추해 본다. 그녀 스스로도 “정말 허겁지겁 바쁘게 살아왔다”고 말할 정도로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사실 그녀는 가수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1978년 MBC 코미디언 공채 2기로 출발한 이력 때문일까.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요즘 학력 위조 파문 때문에 사회가 시끌시끌한데, 사실 저도 비슷한 케이스예요.(웃음) 전 학력이 아닌 나이를 속여 MBC 공채에 지원했죠. 지금이야 불가능하겠지만 당시로선 끼와 재능만 있다면 설령 불합격 조건이라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나이 제한에 걸린다는 것을 알고 당시 여고생이었던 그녀는 나이를 속여 지원서를 냈다. 그러나 애초부터 코미디언을 꿈꾼 것은 아니다. 그는 “당시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는 코미디언이 최상의 선택이었다”고 지원 동기를 설명했다. 신인 코미디언으로 조금씩 브라운관에 얼굴을 알렸지만 숨겨진 끼를 발산하기에는 코미디라는 영역이 너무 좁았다. 그래서 1980년부터 가수로의 전업을 시도한다. 닐 세데카의 팝송 ‘원 웨이 티켓’을 우리말로 번안한 ‘날 보러 와요’로 그녀는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이 노래는 보니엠, 이럽션 등 수많은 팝 그룹들이 리메이크해 불렀던 흥행 보증수표. ‘날 보러 와요’ 이후 그녀에게서 코미디언의 이미지는 자취를 감췄다. 대신 가수 방미로서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여가수로 꼽힐 만큼 당시 그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주저하지 말아요’, ‘계절이 두 번 바뀌면’, ‘올가을엔 사랑할거야’는 1980년대를 주름잡던 그녀의 대표곡들이다.지금이야 보편화됐지만 당시 코미디언에서 가수로 전업을 시도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대한민국 만능 엔터테이너 1호’라고 할만하다. 1985년 일본에서 열린 제14회 도쿄국제가요제에서는 ‘욕심 많은 여자’로 한국 가수로는 최초로 은상인 차밍 레이디상을 수상했다. 1993년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노래까지 그녀는 음반을 내놓기가 무섭게 상한가를 경신했다.지금도 그렇지만 그녀는 늘 새로운 일을 찾아 바쁘게 살아간다. 한참 스타 가수로 종횡무진 누비던 1987년 탑 프로덕션이라는 매니지먼트사를 설립해 신인 가수 발굴에 나섰다. ‘떠나지마’를 부른 전원석, ‘슬퍼지는 내 모습’의 양홍섭, ‘울고 싶어라’의 사랑과 평화, ‘벌써 이 밤이 다 지나고’의 안혜지 등이 그가 발굴해낸 가수들이다.그런 그녀가 최근 모 여성지와의 인터뷰 이후 또 다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재테크로 200억 대 재산가가 됐다는 성공담은 일반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녀는 TV, 잡지 등을 오가며 일약 ‘재테크 강사’로 변신했다.MONEY가 그녀와 인터뷰를 시도한 것도 재테크의 비결을 듣기 위해서였다. 200억 원이라는 돈은 평범하게 돈을 굴려서는 절대로 만질 수 없는 금액이기에 그녀의 입에서 나올 비결이 무척 궁금했다.“저도 정확하게 제 재산이 얼마인지 몰라요. 그날도 기자가 현재 가지고 있는 자산이 얼마냐고 물어 말해줬더니 자기가 나름대로 추산해 200억 원이라고 쓴 거예요. 은행 대출금을 감안하면 실제 순자산은 그보다 적을 거예요.”200억 원 재산의 내용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솔직히 대답한다. 그녀의 재산은 대부분 부동산이다. 담보 가치가 높은 실물 자산에 대한 믿음이 크기에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려왔다고 말한다.그녀는 천성이 부지런하며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넉넉하지 못했던 유년 생활 탓이다.“어렸을 때 생활고로 상당히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죠. 집안일을 등한시하던 아버지 때문에 저와 어머니가 집안 생활을 책임져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현실에 대한 눈을 비교적 일찍 뜨게 됐죠. 예전에는 이러한 것들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요즘은 아버지의 그러한 행동이 저의 ‘의지를 키운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연예 활동을 할 때도 의상비조차 아까워 동대문에서 옷을 사 수선해 입었고 저녁에는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금도 그녀는 자신의 노래를 듣고 싶다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한걸음에 달려간다.세계적인 재무 컨설턴트 로버트 기요사키에게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가 있다면 그에겐 ‘부자 외할머니와 가난한 부모’가 재테크의 눈을 뜨게 만들었다. 일찌감치 임대업에 눈을 떠 돌아가실 때까지 넉넉하게 사셨던 외활머니와 평생 생활고에 허덕이던 부모는 늘 뚜렷이 대비되는 모습이었다.그녀는 매일 어김없이 아침 5시 30분에 하루 일과를 시작하며 평균 4~5시간씩 걷는다.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 다닌다. 인터뷰가 있던 날도 자택(유엔빌리지)에서 이태원동 해밀턴 호텔까지 걸어왔다.“남들은 제가 운이 좋아 재산을 불렸다고 생각하겠지만 저의 재테크의 기본은 근검절약이에요. 지금도 저는 커피 전문점에 쌓여 있는 냅킨을 모아 화장지로 사용하고 음식점에서 먹고 남은 음식은 죄다 가지고 와요. 옷은 세일 매장에서 구입한 것만 입고요.”‘뚜벅이’ 정신은 그녀의 가장 큰 재산이다. 그녀가 부동산에 눈을 뜨게 된 것도 평소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성격에서 비롯됐다. 그녀는 지금도 시간만 나면 부동산을 찾아 나선다. 땅을 돌아보고 부동산 중개업자를 만나 값을 흥정하는 것에서 재미를 느낀다. 인터뷰가 있기 전날도 그녀는 동대문과 혜화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매물을 살폈다고 했다. 그 전날은 강원도 평창을 둘러봤다고 하니 그 부지런함이 감탄스럽기만 하다.그녀가 처음부터 부동산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코미디언으로 뽑혀 받은 첫 월급은 9만 원. 이 중 교통비 1만 원을 뺀 8만 원으로 저축부터 시작했다. 어느덧 그의 자산은 비과세 정기적금 4개와 예금통장 1개로 불어났다. 그러던 중 1980년 영화 ‘날 보러와요’에 출연하게 되면서 받은 700만 원으로 대전 유성온천 근처에 땅 6610㎡(옛 2000평)를 매입했다.“12년 동안 보유하고 있었는데 큰 이익은 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역시 땅은 주인을 알아보나 봐요. 그렇게 오래 갖고 있다가 한 지인에게 1억5000만 원에 팔았는데 이후 3년이 채 못돼 그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땅값이 엄청나게 치솟았어요. 제게 헐값에 산 그분은 하루아침에 수십억 원을 벌었죠.”이 일을 겪으면서 그는 장기간 자금이 묶임에 따라 발생하는 기회비용과 토지 투자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토로한다.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부동산 투자는 주택을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 실수요와 투자를 한꺼번에 도모하기에 주택만한 상품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녀는 1981년 옴니버스 앨범 ‘원 나이트 투 데이스(One night two days)’가 히트를 치면서 생긴 1200만 원에 적금 4개를 더해 신반포아파트 112㎡형(옛 34평형)을 매입했다. 아파트 구입에 전 재산을 털어놓아서였을까. 당시 그녀에겐 현금이 거의 없었다.“한번은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도대체 여기저기를 뒤져봐도 현금이 보이지 않아 허탕치고 그냥 나간 모양이에요. ‘제발 현금 좀 쓰고 살아라’라는 메모를 남겨 놓았더라고요.” (웃음)당시 그녀의 부동산 투자 제1원칙은 ‘발 빠르게 대응하라’는 것이었다. 20년 동안 그녀는 30번가량 이사를 다녔다. 1년에 2~3번씩 이사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1982년 방배동 궁전아파트 106㎡형(옛 32평형)을 1억8000만 원에 샀고 그해 여의도 은하아파트로 이사했다. 이후로도 투자를 위한 그녀의 이사는 계속됐다. 이듬해 동부이촌동 신동아아파트를 1억2000만 원에 매입한 그녀는 6000만 원에 은행 대출을 끼고 방배동 신삼호아파트 182㎡형(옛 55평형)을 1억5000만 원에 추가 매입했다. 1988년 집값이 폭등세를 기록하면서 그녀가 갖고 있던 아파트는 황금 알로 변신했다. 동부이촌동 신동아아파트가 5억5000만 원까지 치솟았고 방배동 신삼호아파트는 6억 원짜리 금싸라기 아파트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해 그녀는 아파트 두 채를 모두 팔고 강남으로 진출했다. 당시 그녀가 주목한 곳은 청담동. 그 지역의 모 아파트 182㎡형을 매입했고 1989년엔 압구정동 주택을 2억 원에 샀다. 이후 그녀는 압구정동 주택을 15억 원에 팔았고 이 돈으로 바로 옆 미성아파트와 효성빌라 등을 추가로 매입한다. 1993년 효성빌라를 제외한 모든 부동산을 매각한 그녀는 돌연 미국행을 선택한다. 현재 동양파라곤이 들어서 있는 효성빌라는 당시 강남 최고의 주택 중 한 곳이었다. 그때 받은 월세 250만 원은 바로 옆 건영아파트 112㎡형에 살던 어머니 생활비로 드리고 그녀는 자신의 전 재산을 제2금융권에 넣었다. 그리고는 무작정 미국 뉴욕으로 향했다.그녀의 비상한 부동산 투자는 미국에서도 계속됐다. 이모부 사업에 5만 달러를 투자하고 받은 주급 400달러로 생활하던 그녀는 맨해튼 부동산 시장을 유심히 살폈다. 1년에 걸친 현장 조사 이후 ‘뉴욕과 같은 대도시는 상업용 시설에 대한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른 그녀는 2000년 37만 달러를 투자해 허드슨 강이 내려다보이는 맨해튼 서쪽에 트럼프 플레이스 한 채를 분양받았다. 이와 함께 그녀는 2001년 말 청담동의 상지빌라를 3억 원에 분양받았는데 나중에 이 집은 34억 원짜리 집으로 둔갑하게 됐다. 2003년에는 37만 달러에 산 트럼프 플레이스를 85만 달러에 팔았다.돌이켜보면 그녀는 1980년 이후 두 번의 폭등기(1985~90년, 2000년~03년)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자산을 불렸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인한 폭락기(1998~99년)는 운 좋게 피해나갔다. 부동산이 폭락하기 전에 이미 부동산을 현금화한 뒤 미국으로 갔기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기막히게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미국에서 지낼 동안 그녀는 환차익을 활용한 투자로도 재미를 봤다. 1993년 미국으로 갈 때 가지고 간 달러를 2000년 그대로 갖고 나오면서 그녀는 1억2000만 원의 환차익을 거뒀다. 이 때문에 환율은 부동산 다음으로 그녀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분야다. 인터뷰 중간에도 그녀는 휴대전화를 통해 오늘의 환율을 꼼꼼히 체크했다.모 여성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의 재테크 비결로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설명했다. 은행 대출로 투자 규모를 키워 시세 차익을 높이는 것으로 재테크 서적이라면 항상 실리는 내용이다. 인터뷰 이후 인터넷마다 ‘전형적인 투기꾼들의 수법이다’,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한 투자 방법’이라며 찬반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과연 건전한 투자와 불건전한 투기를 명확히 구분할 수가 있을까요. 전 현실 속에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았을 뿐 단 한 번도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한 적이 없어요. 가령 청담동 주택으로 시세 차익을 남겼을 때도 정부가 정한 한시적인 비과세 기간을 적절히 사용했을 뿐이에요.”그녀가 레버리지 효과를 이용해 부동산 투자에 본격 나선 것은 2001년부터다. 2004년엔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 327㎡(옛 99평) 주택을 구입하는데 필요한 15억 원 중 14억 원을 은행 대출로 해결했다. 현재 그녀의 유엔빌리지 집은 50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자기 자금 1억 원을 들여 35억 원이 넘는 차익을 올린 셈이다. 대출이자를 감안하더라도 막대한 수익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현재 이 집을 외국인에게 세를 내줄 계획이다. 이 밖에도 그녀는 현재 유엔빌리지 내 116㎡(옛 35평)짜리 주택을 또 하나 보유하고 있으며 이 집은 주한미군이 세를 살고 있다.또 그녀는 그동안 벌어들인 돈을 모두 털어 논현동에 연립 6채를 통째로 매입했으며 이곳은 현재 지하 2층, 지상 4층짜리 건물로 재건축됐다.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는 대지 면적이 661㎡(옛 200평)인 이 건물의 현 시세를 80억~100억 원으로 추산한다.그렇다고 해서 그녀에게 늘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지내던 1990년대 중반 그녀는 국내 한 뮤지컬 사업에 투자해 7억 원가량을 손해 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1980년 중반 당시 국내 사금융 시장을 쥐락펴락하던 장영자 씨의 사채에 투자해 5억 원을 날린 경험도 갖고 있다. 두 경우 모두 그녀가 처음 손댄 사업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재테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으로 “적성에 맞는 투자 종목을 선택하라”고 강조한다. 물론 그녀는 미국 체류 기간 동안 스타벅스와 맥도날드 주식을 매입해 상당한 투자 이익을 실현한 적도 있다. 그러나 주식 투자는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저축은 확실히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투자 방법이에요. 그러나 금리가 싼 지금은 별로 추천할 만한 상품은 아니지요. 주식, 펀드 등의 유가증권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항상 리스크를 안고 있어야 하고요. 특히 펀드는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장기, 분산 투자를 해야 하는데 제 적성과는 맞지 않아요. 그러나 부동산은 유형자산인 데다 임대업 등 활용 가치가 무궁무진하지요.”막 재테크를 시작한 사람들에게 당부할 말을 묻자 그녀는 거침없이 말을 이어나갔다.“우선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야 해요. 잔돈부터 한 푼 두 푼 아껴야 한다는 얘기죠. 또 1년 동안의 지출 계획을 미리 세워두고 투 잡을 하든, 절약을 하든 종자돈부터 마련하는 것이 좋아요. 그리고 특히 경제신문을 꾸준히 읽어 트렌드를 익혀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요.”이와 함께 그녀는 자신만의 멘토를 정해 투자 패턴을 따라해 보라고 조언한다. 그녀의 멘토는 미국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다.그녀는 앞으로 강남 투자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이미 값이 오를 대로 오른 상태여서 더 이상 큰 이익을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신 그녀는 강북, 그중에서도 용산 지역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강남과 마주보고 있는 용산은 앞으로 서울의 핵심 주거지로 발돋움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 그녀의 분석이다.요즘 그녀는 연예계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부동산 컨설팅 제의를 많이 받는다. 그때마다 한결같이 그녀가 추천하는 곳은 용산이다. 실제로 그녀는 연예기획사 대표 S 씨와 중견가수 R 씨, S 씨, 또 다른 S 씨 등 부동산에 일가견이 있는 상당수 연예인들이 투자 목적을 위해 용산에 부동산을 매입해 둔 상태라고 귀띔해 줬다. 투자 패턴도 가격 상승만 겨냥하기보다는 고정적인 임대 수입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압구정동 아파트 값이 현재 10여억 원을 호가하는데 전세 값은 3억 원에 불과해요. 이러니 집값에 거품이 끼었다고 할 수밖에 없지요. 지금의 집값은 재건축 이후의 시세인데 아직 확실하게 된다는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강남 재건축 아파트에 투자하는 것은 무리지요. 투자 금액의 일정 부분을 임대료로 환수하며 매수 타이밍을 조절할 수 있는 상품이 좋아요.”부동산 투자 고수의 초절정 기술은 매수가 아닌 매도 포인트다. 그녀만의 매도 포인트가 궁금했다.“자신이 오를 것이라고 예측한 집값의 50%에 이르면 매도를 서서히 준비해야 해요. 이때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평형의 희소성이 얼마나 되는지도 따져봐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개발 호재에 너무 휘둘릴 필요가 없어요. 물론 대단지를 고수할 필요도 없고요. 만약 자신의 집이 랜드마크 건물 주변에 있다면 단지 크기가 작더라도 값은 올라가게 돼 있어요.”최근 그녀는 캐나다 토론토를 다녀왔다. 해외 부동산 투자에 나서기 위해서다. 현지를 둘러보고 온 그녀는 “예전 뉴욕에 있을 때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아시아권에서 이미 많은 투자가 이뤄져 투자 열기가 한껏 고조된 상태”라고 현지 사정을 전했다.현재 인터넷 명품 드레스 대여몰(www. bang-ash.com)을 운영 중인 그녀는 조만간 자신의 부동산 경험담을 모은 책을 출간할 계획이다. 또한 기회가 되면 인천 영종도에 자신의 이름으로 명품 빌라를 분양할 꿈도 갖고 있다. 자신이 평생 모은 자산은 추후 장학재단을 설립해 고학생들의 뒷바라지에 쓰였으면 한다는 소망도 털어놓았다.그녀는 뉴욕 생활 중 겪었던 일들을 모아놓은 자신의 블로그(제목: 방송 후 내가 할 일)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놓았다.“대중들이 주목하는 부동산으로 만들어진 200억. 내 참! 평생을 부자라고 떠들어 본 적도 티를 낸 적도 없이 근검절약하며 살아온 내 인생이 그딴 숫자 하나로 재벌로 바뀐 지금이 너무 힘들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중략)… 내 나름대로의 계획이지만 부자 만들기 소장으로서 힘 닿는 데까지 일반인들을 위한 부자 교육을 하고 싶을 뿐이다.”‘뚜벅이’ 정신은 그녀의 가장 큰 재산이다. 그녀가 부동산에 눈을 뜨게 된 것도 평소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성격에서 비롯됐다. 그녀는 지금도 시간만 나면 부동산을 찾아 나선다. 땅을 돌아보고 부동산 중개업자를 만나 값을 흥정하는 것에서 재미를 느낀다.부동산고수 방미의 재테크 10계명1 돈 덜 쓰기(절약은 재테크의 기본)2 세금 줄이기(세금에 대해서 잘만 알아도 새는 돈을 줄일 수 있다)3 똑똑하게 투자하기(내게 맞는 재테크 방법은 따로 있다)4 지출계획서 쓰기(1년 기준 목돈 나가는 달은 미리 체크해 두자)5 대출 잘 이용하기(빚도 좋은 빚이 있고 나쁜 빚이 있다)6 장기 계획서 쓰기(재테크의 목표는 구체적일수록 좋다)7 하루에 30분 씩 경제 뉴스 읽기(돈 모으는 법은 경제신문에 다 있다)8 발품 팔기(미리 준비된 자 만이 대박을 칠 수 있다)9 인맥 관리하기(돈을 벌게 해 주는 것도 사람이고, 돈을 잃게 하는 것도 사람이다)10 건강 관리하기(돈은 행복의 조건이지만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