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호그룹 김태옥 회장
호그룹 김태옥(63) 회장은 특이한 이력으로 관심을 끈다. 그는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 해병대 훈련소 태권도 교관을 지냈고, 태권도 국제 심판 및 국제 사범 자격증을 획득했다. 2005년에는 ‘신의 경지’라고 불리는 태권도 9단을 국기원으로부터 받았다. 지금도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2시간씩 운동하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20대 때의 체중인 71.5kg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33년 경력의 골프도 여전히 ‘싱글’을 유지하고 있고, 7년 전부터 아내와 함께 배우기 시작한 스포츠댄스 실력도 수준급이다. 나이에 걸맞을 법한 중후한 ‘가르마 머리’가 아닌 ‘뻗친 머리’의 헤어스타일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청바지를 즐겨 입을 정도로 남다른 패션 감각을 지니고 있다. 김 회장의 면면을 보고 있자면 인생을 젊고 적극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지금까지 사업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 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그는 끊임없이 공부하는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하다. 안경 업계에서는 유일한 박사학위 소지자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김 회장이 수료한 최고경영자과정만도 14개나 된다. 분야별로 따져도 경영학뿐만 아니라 언론홍보, 정보통신, 사회체육, 엔터테인먼트, 환경경영, 건강과학 등 다양한 과정을 들으며 견문과 인맥을 넓혀 왔다.이처럼 스스로에 대한 도전과 승부를 거듭하며 지금의 자리에 오른 김 회장은 지난 8월 8일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었다. 자신이 경영하는 국내 최대의 안경 제조·유통 업체인 ‘한국옵티그마’의 사명을 ‘시호비전(Seeho Vision)’으로 바꾸고 나머지 계열사의 상호도 모두 ‘시호’로 통일하면서 시호그룹의 탄생을 알린 것이다.김 회장은 ‘시호’라는 사명에 강한 애착을 나타냈다. 한자로 볼 시(視), 좋을 호(好). 좋은 것을 많이 본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본다는 뜻의 ‘시(see)’, 웃음소리 ‘호(ho)’의 합성어다. 이는 한국과 가까운 시장인 중국과 일본, 그리고 영어가 통하는 해외의 모든 국가를 동시에 공략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현재 국내 두 개의 공장과 일본 홍콩 중국의 공장에서 시호비전의 안경이 생산되고 있다.CI 선포식을 8월 8일로 정한 것은 김 회장의 아이디어였다. ‘8’이 안경의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8이 겹친 이 날짜를 택한 것이다. 8을 이용한 기념 이벤트도 독특했다. 고객을 추첨해 64년(8×8=64) 또는 16년(8+8=16) 동안 무료로 안경을 제공하기로 했다. 최근엔 52호 판매점 개점을 기념해 선글라스 52% 할인 이벤트도 실시했다.김 회장은 젊은 감각과 유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늘 “안경은 패션이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안경은 사람의 얼굴과 함께 가장 많은 시간 시선을 잡아끄는 곳이기 때문에 중요한 패션 아이템이 된 지 오래다. 첨단 유행에 대한 안목이 없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 패션 업계다. 안경도 단순한 기능적인 가치로는 세계 시장을 돌파할 수 없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디자인과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 필수다. 다른 제조업 분야와 마찬가지로 안경도 유럽의 명품과 중국의 저가 제품에 밀리는 샌드위치 신세다.“국내 시장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브랜드를 키워야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을 겁니다. 안경 산업은 이탈리아의 경우 국가가 나서서 안경 업체를 육성하고 있을 정도로 부가가치가 큰 산업입니다.” 김 회장은 앞으로 디자인 부분에 역점을 두고 고부가가치의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이미 ‘미니마(Minima)’와 ‘모도(Modo)’의 국내 독점 라이선스를 도입한 데 이어 선글라스의 자사 브랜드인 ‘아르마티스(Armatis)’를 지난해 출시했다. 지난 ‘2007 FW 서울컬렉션’에서는 디자이너 박윤수의 작품 발표 때 아르마티스를 함께 선보이기도 했다.시호비전은 현재 국내 최대의 안경 제조·유통 업체로 성장했지만, 그 시작은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시호비전의 모태는 1983년 올림피아 안경원이다. 작은 가게였지만 김 회장의 이후 인생을 결정짓게 됐다. 1989년에는 주위의 추천으로 대한안경사협회장을 맡으면서 안경사 제도를 정착시킨 주역이 되기도 했다. 당시 안경사들의 요구로 안경사법이 제정되는 과정에 있었지만, 법안은 여전히 의사들의 반대로 안경사들에게 검사 권한을 주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력 측정과 검사는 의사의 영역이었고, 안경사는 제조만 맡았다. 의사가 처방을 내리면 약사가 약을 조제하는 것과 같은 시스템이었다.법안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안경사협회 내부에서는 신임 회장이 사퇴하고 안경사들이 자격증을 반납하며 들고일어나는 등의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결국 새롭게 김 회장이 선임되고 안경사들이 하나로 뭉쳐 법률 수정안이 도출될 수 있었다. 대학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안경사들이 나오고 안경사들이 전문성을 인정받는 지금의 안경사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김 회장은 이때를 가장 보람 있었던 시기로 꼽는다.김 회장의 사업도 1990년대 들어 확장을 시작했다. 1994년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매장을 내면서 (주)제일광학을 설립한 뒤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고, 1999년에는 사명을 (주)한국옵티그마로 바꾸고 제조업에까지 진출했다. 주변에서는 안경 사업이 사양 산업이라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김 회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다. 2003년에는 안경 업계 최초로 POS 시스템(Point of Sales: 바코드를 이용한 실시간 매상 관리 시스템)과 ERP 시스템(Enterprise Resource Planning: 기업의 인적, 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통합 정보 시스템)을 도입했다.보통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은 세금 문제로 매장의 매출과 이익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꺼리게 마련이다. 이에 대한 김 회장의 입장은 단호했다. “‘장사’가 아니라 ‘기업’을 하려면 투명 경영은 필수다.” 구멍가게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국내 어떤 프랜차이즈 업계를 돌아봐도 이 시스템을 구축한 곳은 시호비전이 유일합니다.” 처음에는 대리점주의 불만도 있었지만 “앞으로는 모든 세금 문제가 투명해지지 않고서는 소매업의 희망이 없다”는 김 회장의 지론에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지금 시호비전의 전국 52개 어느 매장을 가더라도 모든 제품의 가격은 동일하다. 정찰제가 정착되면서 판매점이 가격 ‘장난’을 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져 소비자들의 신뢰도가 높아졌다. 실시간으로 전국 매장의 제품 수량과 위치를 확인할 수 있어 관리 비용이 줄어들고 자동 발주 시스템을 통해 매장의 제품 수량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됐다.시호비전은 국내 최대 규모의 안경 제조·유통 업체로 성장했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업군을 거느린 그룹으로 성장하고 있다. 2002년 1호점을 낸 헤어 숍 시호비엔이(Seeho Bienni)는 현재 두 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다.프랜차이즈라고 하기에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시호비전이 처음 작은 안경원으로 시작한 것처럼 앞으로 본격적인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비엔이라는 사명은 ‘뷰티 앤드 엔터테인먼트(Beauty And Entertainment)’의 첫 글자를 딴 ‘B&E’에서 나온 것이다. 이름처럼 단순히 헤어를 다듬는 장소가 아니라 즐거움을 주는 장소를 표방하고 있다.8월에 설립한 시호 엔터테인먼트는 김 회장이 가장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우선은 연예기획보다는 문화 사업을 먼저 시작할 예정으로 경기오페라단(가칭)을 창단하고 서울음악예술전문대학(가칭)을 설립할 계획이다. 경기오페라단은 임창열 전 경기도지사를 후원회장으로 내정해 창단을 준비 중이고, 서울음악예술전문대학은 김영식 전 교육부차관을 준비위원으로 하여 2009년 분당에서 개교할 예정이다. 김 회장이 그동안 널리 닦아 놓은 인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사업이다. 대학에 학생들이 입학하면 연예기획사 업무도 시작할 예정이다.헤어숍이나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안경과 무관해 보이지만 김 회장은 뗄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고 얘기한다. “한국의 제조업 기술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렇지만 남들이 금방 따라올 수 없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그것을 채우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육성해야 합니다.” 안경을 쓰더라도 시력 교정 이상의 즐거움과 자부심을 즐길 수 있는 브랜드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그 외에도 2002년 ‘미디어옵티(현 시호미디어)’를 설립해 안경원·안경사를 대상으로 한 전문지 ‘옵티뉴스’를 제작하고 있다. 또 제천공용화물터미널도 인수해 물류 사업의 기반을 닦고 있다.한자리에 앉아서 서류만 쳐다보는 CEO가 아니라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하는 김 회장에게는 사회 봉사 활동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자신이 만든 안경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그가 사업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 중의 하나다. “협회장 때 봉사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안경을 받은 사람들이 너무 기뻐하는 모습을 본 뒤부터는 봉사 활동이 주는 보람과 매력에 빠졌습니다.”노인들은 여윳돈이 생겨도 눈에 맞지 않는 안경을 바꾸기보다는 손자들에게 용돈으로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도 정확하게 시력을 교정해 주는 안경에 소홀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김 회장은 매년 안경을 기증하고 있다. 매년 5월 가정의 달에는 국내 모든 매장이 상권 내의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들에게, 6월 보훈의 달에는 국가보훈 대상자들에게 안경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작년에는 대한노인회에 5년간 5000개의 안경을 기부하는 약정을 맺기도 했다. 국제라이온스 클럽 서울지부를 통해서도 연 1500~ 2500개의 안경을 불우이웃들에게 제공하고 있다.지금 김 회장과 시호그룹은 기로에 서 있다. 여태껏 안정적인 사업을 일궈왔지만 이대로 안주할 것이냐, 더 큰 기업으로 키울 것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달리기 시작한 자전거가 멈추면 쓰러지듯이 김 회장은 새로운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 첫걸음으로 시호비전은 내후년 코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그간 ERP 시스템 구축과 투명 경영 정착에 매진한 것도 상장을 위한 준비였다. “브랜드 파워를 더 키워 이탈리아의 안경 명품과 경쟁하는 것이 다음 목표입니다.” 김 회장의 생각은 이미 세계 시장을 향하고 있다.“국내 시장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브랜드를 키워야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을 겁니다. 안경 산업은 이탈리아의 경우 국가가 나서서 안경 업체를 육성하고 있을 정도로 부가가치가 큰 산업입니다.”김태옥1944년생.고려대 경영대학원 졸업.경원대 행정대학원 졸업(박사).83년 올림피아 안경원 개설.99년 한국옵티그마 대표.07년 시호그룹 회장(현).글 우종국·사진 김기남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