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 한때 인기를 끌다 잊힌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5년 만에 새 단장을 하고 돌아왔다. 가입 대상과 추가납입 기회는 확대한 반면 의무납입 기간은 단축했다. 자유롭게 만기를 연장할 수 있게 하면서, 만기자금을 연금계좌로 이체하면 추가로 세액공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무엇보다 국내 상장주식을 투자할 수 있게 된 점이 눈에 띈다. 이 같은 변화가 장롱 속에 잠자던 ISA를 깨울 수 있을까.
ISA가 처음 국내에 도입된 것은 2016년 3월이다. 당시 통장 하나에 예금과 적금,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주가연계증권(ELS) 같은 다양한 금융 상품을 담을 수 있는 데다, 계좌에서 발생한 수익에 비과세와 분리과세 혜택까지 주면서 만능통장으로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도입하고 한 달도 되지 않아 가입자가 100만 명을 돌파하더니, 그 해 연말에는 누적 가입자 수가 240만 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새로이 가입하는 사람은 뜸해지고, 중도해지와 만기도래로 인출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지난해 연말에는 194만 명까지 감소했다. 이는 4년 전과 비교해 가입자가 46만 명이나 줄어들었다. 이렇게 ISA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진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저금리와 예·적금 중심의 자산 운용 행태가 미친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ISA가 내세운 가장 큰 장점은 절세 혜택이다. 계좌에서 발생한 이자와 배당소득에 대해 200만 원(서민형 400만 원)까지는 과세하지 않고, 이를 초과한 금액은 분리과세(세율 9.9%)를 해준다. 이 같은 장점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과세대상이 되는 이자와 배당소득이 많아야 한다. 하지만 초저금리 상황에서 ISA 적립금은 대부분 예·적금으로 맡겨져 운용되고 있었다.
가입자가 투자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신탁형 ISA를 예로 들어보자. 2016년 한 해 동안 신탁형 ISA에 적립금이 2조8874억 원이었는데, 이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1조8526억 원(64.2%)이 예·적금에 맡겨졌다. 당시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1.6%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축 한도를 꽉꽉 채워서 예적금에 저축해봐야 이자로 받을 수 있는 돈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자소득이 적으면 비과세와 분리과세로 얻을 수 있는 혜택도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가입자들이 이를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다. ISA를 이용해 국내 주식형 펀드에 투자할 유인도 크지 않다. 왜냐하면 현행 ‘소득세법’에서는 국내 주식 매매차익을 과세하지 않고 있다. 굳이 ISA에 가입하지 않아도 비과세 혜택을 볼 수 있는데, 애써 ISA를 이용해 투자하려고 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저축에서 투자로 자금이 움직인다그렇다면 올해 새 단장을 하고 등장한 ISA는 투자자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현재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1%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금리만 놓고 보면 ISA를 처음 도입했던 2016년보다 상황이 안 좋아진 셈이다. 당연히 예·적금 중심으로 계좌를 운용하려 한다면 ISA의 매력은 과거보다도 더 형편없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투자자들의 행태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이후 주식과 ETF 투자에 관심을 갖는 개인이 크게 늘어나면서 ‘저축에서 투자로’ 머니무브가 일어나고 있다. 아직 미미하지만 변화의 조짐은 ISA 가입자의 자산 운용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이는 2016년과 2020년 연말 기준으로 신탁형 ISA 투자자금 운용 현황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먼저 해외 주식형 펀드의 투자 비중 증가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2016년만 해도 해외 주식형 펀드에 투자된 자금은 120억 원으로, 신탁형 ISA 투자자금(2조8874억 원)의 0.4%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에는 투자자금은 1135억 원으로 9.45배, 비중은 1.9%로 4.75배 늘어났다.
자금 규모와 비중, 성장률 모든 측면에서 해외 주식형 펀드가 국내 주식형 펀드를 앞질렀다. 이는 ISA가 가진 절세 혜택을 제대로 이용하는 투자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하다. 우리나라는 펀드에서 발생한 국내 주식 매매차익은 과세하지 않지만, 해외 주식 매매차익은 배당소득으로 보고 과세(15.4%)하고 있다. 하지만 ISA를 이용하면 해외 주식 매매차익에 대해 일부는 비과세, 나머지는 분리과세(9.9%)를 받을 수 있다.
ETF와 같은 상장펀드 투자자금이 늘어난 것도 눈에 띈다. ISA 투자자금에서 ETF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0.9%(257억 원)에서 2020년 20.0%(1169억 원)으로 2배 넘게 늘었다. 최근 해외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ETF가 국내 증시에 속속 상장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배당소득세 부담을 덜기 위해 ISA를 이용하려는 수요는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만기와 투자금액을 자유롭게 조정한다예금이나 적금에서 해외 펀드나 ETF로 자금 이동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걸 침소봉대 할 생각은 없다. 해외 주식형 펀드와 ETF 비중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예·적금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렇다고 기존 ISA 가입자가 예·적금에 있던 자금을 대규모로 옮길 것 같지도 않다. 2016년부터 2020년 사이 신탁형 ISA에서 예금과 적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64.2%에서 82.9%로 도리어 늘어났다. ELS와 MMF 등에 투자했던 자금이 예적금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 ISA 가입자 대부분이 올해 만기를 맞이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에 ISA에 맡겨둔 자금을 애써 펀드와 ETF 등으로 옮기지는 않겠지만, 만기가 도래해 새로이 ISA에 가입해야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관성의 법칙이 작용해서 기존의 것을 바꾸기는 힘들어도, 어차피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면 굳이 예·적금을 고수하려고는 않을 것이다.
투자자의 요구를 반영해 ISA 제도를 여기저기 손질한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우선 국내 상장주식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상황에 맞게 만기를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종전에는 가입자의 상황을 고려치 않고, 일반형은 5년(서민형 3년)을 유지해야 비과세와 분리과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올해부터는 의무 납입 기간을 3년으로 축소해 부담을 줄이는 대신 만기가 도래한 다음 가입자가 원하면 계약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아직 만기가 도래하지 않았더라도 가입 이후 3년이 지난 다음에 해지하면 세제 혜택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계약 기간이 만료되거나 중도해지를 하고 바로 다시 가입할 수 있어 지속적으로 절세 혜택을 볼 수 있게 됐다.
납입 한도도 이월할 수 있게 됐다. ISA 가입자는 연간 2000만 원씩 5년간 최대 1억 원을 납입할 수 있다. 종전에는 그해 2000만 원을 채워서 저축하지 못하고 남은 한도를 이듬해로 이월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이월할 수 있다. 1년 차에 첫해 1000만 원을 저축했으면, 2년 차에는 3000만 원을 저축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해마다 자금 사정과 시장 상황에 맞춰 저축금액을 조정할 수 있다
향후 있을 금융 투자 관련 제도와 세제 변화도 주목해야 한다. 2023년에 금융투자소득세가 신설되면 국내 상장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가 본격화된다. 당장은 기본공제금액이 5000만 원이나 돼 과세대상자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식, 펀드(ETF), 리츠 등에 목돈을 투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ISA와 같은 절세 계좌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만기자금을 연금계좌로 이체하면 세액공제 받는다 2020년 12월 말 기준으로 ISA 가입자는 194만 명이고 투자자금은 6조4000억 원이다. 예전 ISA는 만기가 5년이고, 가입자들 대다수가 2016년이므로, 올해 194만 명이 크든 작든 만기자금을 수령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만기자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고민할 것이다.
용도를 미리 정해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을 텐데, 이를 그냥 두면 어디다 썼는지도 모르고 흐지부지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정부는 ISA 만기자금을 연금계좌(연금저축, IRP)로 이체하면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ISA 가입자(194만 명) 중 67.2%(130만 명)가 40세 이상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조치는 적절해 보인다. 정년이 얼마 남지 이들 입장에서는 노후자금을 한 푼이라도 더 모아야 할 텐데, 세제 혜택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다.
세제 혜택을 얼마나 될까. 한 해 연금계좌에 저축할 수 있는 금액은 1800만 원인데, ISA 만기자금은 이와 별도로 연금계좌에 이체할 수 있도록 했다. 세액공제 한도도 늘렸다. 본래 연금계좌에 저축한 금액 중 최대 700만 원(50세 이상 900만 원)이 세액공제 대상이지만, 이와 별도로 ISA 만기자금을 연금계좌로 이체하면 이체금액의 10%(300만 원 한도)를 추가로 세액공제 받을 수 있다.
세액공제율은 소득 크기에 따라 다르다. 종합소득이 연간 4000만 원(근로소득만 있는 경우 총급여가 5500만 원) 이하인 저소득자는 세액공제 대상 금액의 16.5%, 이보다 소득이 많은 고소득자는 대상 금액의 13.2%를 환급받을 수 있다. ISA 만기자금 중 3000만 원을 연금계좌에 이체하는 경우, 저소득자는 49만5000원, 고소득자는 39만6000원을 연말정산 때 환급받을 수 있다.
그러면 만기자금을 연금계좌로 이체할 때 점검 사항을 살펴보자. 먼저 ISA 가입 이후 3년이 지났는지 살펴야 한다. 만기가 도래하지 않았더라도, 이때부터는 계좌 잔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연금계좌로 이체하면 계약 기간이 만료된 것으로 본다.
다음 순서는 ISA 잔고와 추가납입 여력을 살필 차례다. 연금계좌 이체에 따른 세액공제 효과를 최대화하려면, 만기 자금이 세금을 제하고 3000만 원이 넘어야 한다. 그래야 300만 원을 공제받을 수 있다. 만약 3000만 원이 안 되면 만기까지 남은 기간 동안 추가로 저축할 여력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세액공제 혜택을 받으려면 만기자금을 수령한 다음 6개월 이내에 연금계좌에 이체해야 한다.
이번에는 연금저축과 IRP 중 어디로 이체할지 정해야 할 차례다. 이 둘은 비슷한 듯 보여도 투자 가능한 상품과 수수료에서 차이가 난다. 둘 다 펀드와 ETF는 연금저축에서도 투자할 수 있지만, 실적배당 보험, 상장지수채권(ETN), 상장리츠와 인프라 펀드, 랩어카운트는 IRP에서만 투자할 수 있다. 수수료도 살펴봐야 한다. 연금저축은 계좌 관리 수수료가 없다. 하지만 IRP는 수수료를 부과하는데, 금융 회사마다 차이가 난다.
목돈이 묶이는 게 싫다면 IRP보다는 연금저축을 선택하는 게 나아 보인다. 연금저축으로 이체한 자금 중에서 세액공제를 받지 않은 금액은 이듬해부터 별다른 세금 없이 인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ISA 만기자금 중에서 3000만 원을 연금저축으로 이체하면, 이체금액의 10%인 300만 원만 세액공제를 받는다. 이때 세액공제를 받지 않은 2700만 원은 이듬해에 인출하더라도 과세하지 않다.
IRP도 마찬가지로 세액공제 받지 않은 금액을 인출할 때는 과세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도인출을 하려면 무주택자가 주택을 구입하거나 임차보증금 마련과 같은 법에서 정한 사유를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만기자금 이체가 끝났으면 이번에는 새로이 ISA 가입할 지 결정해야 한다. 세제 혜택을 극대화하면서 노후자금을 마련할 요량이라면 ISA를 새로이 가입하는 게 좋다. 이때 만기는 3년으로 정하면, 3년 단위로 만기자금을 연금계좌로 이체하면서 세액공제 혜택을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