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경제 및 산업 분야의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7대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 AI 분야를 올리고 모든 역량을 집중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어 과연 미국을 넘어서 AI 최강국의 지위에 올라설지 주목되고 있다.
BlueDot
#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국제사회에 가장 먼저 알린 건 전염병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캐나다의 스타트업 블루닷(BlueDot)이다. 블루닷은 언론 보도나 동식물 질병 네트워크 등에서 나온 데이터를 모아서 AI로 분석하고 고객들에게 집단감염이 발생할 위험 지역을 피하라고 사전에 알려주는 플랫폼이다. 블루닷은 2019년 12월 31일 “중국 우한 지역에서 발생한 전염병이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정보를 고객들에게 발송했다. 반면 세계 최고 전염병 전문기관인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보다 일주일 늦은 2020년 1월 6일에야 공식 경고했고, 세계보건기구(WHO)는 열흘 뒤인 1월 9일 코로나19 확산을 전 세계에 알렸다.
블루닷은 2013년 설립된 캐나다의 대표적인 AI 기반 헬스케어 스타트업이다. 의료 전문 지식 및 고급 데이터 분석 기술과 AI 기술을 결합해 전염병을 추적하고 예측하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블루닷의 창업자는 의사인 캄란 칸 박사다. 칸 박사는 2003년 토론토 최대 병원인 세인트마이클병원에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SARS)에 감염된 환자들을 치료한 적이 있다. 당시 캐나다에선 사스 때문에 44명이 사망했다. 칸 박사는 이를 계기로 전염병의 확산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AI를 기반으로 하는 블루닷을 창업했다.
2014년 에볼라가 발생했을 때도 블루닷은 감염자에 대한 의료 데이터와 수십억 건의 항공 여정을 분석해 에볼라가 최초 발생지였던 서아프리카 밖으로 확산할 것을 사전에 경고하기도 했다. 블루닷은 전 세계 65개국 병원 시설 현황과 가축·동물 데이터, 국제 항공 데이터, 실시간 기후변화 데이터 등을 분석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정확하게 내다봤다.
FALCO
#2. 미국의 자그마한 정보기술(IT) 업체인 헤론 시스템사의 AI 조종사 팰코(Falco)가 지난해 8월 20일 F-16 전투기 조종사와 벌인 가상 공중전에서 5전 전승을 기록해 미국 국방부는 물론 각국 군사 전문가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당시 대결은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관한 것이었다.
헤론 시스템사는 직원이 50명도 안 되는 작은 AI 벤처기업이다. 이 회사는 팰코가 1년간 40억 번의 모의 공중전을 치르는 등 사람으로 치면 12년에 해당하는 전투 경험을 쌓았다고 밝혔다. 팰코의 상대인 코드명 ‘뱅거’는 현역 비행교관으로 공중전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해 온 F-16의 최고 톱건(top gun)이었다. 미 해군과 공군은 매년 사격대회를 개최해 최고 성적을 낸 조종사에게 톱건이라는 칭호를 주고 있다.
팰코는 뛰어난 조준 능력을 보이면서 인간 조종사에게 단 한 차례의 유효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DARPA에서 AI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댄 제버섹 대령은 “처음에는 AI가 조종사 역할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면서 “하지만 헤론 시스템의 AI 조종사는 인간을 상대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고 밝혔다. AI와 인간 조종사 간의 가상 공중전 이후 불과 4개월 만에 지난해 12월 17일 미 공군은 사상 최초로 AI가 부조종사를 맡은 U-2 정찰기를 시험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훈련 비행에서 AI 부조종사 알투뮤(ARTUµ)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교육에서 반복 학습한 50만 개 이상의 데이터를 통해 U-2 정찰기를 조종했다. 윌 로퍼 미 공군 차관보는 “AI는 조종사의 비행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 받았다”며 “알투뮤의 주요 임무는 적군의 미사일 발사체를 찾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AI가 이처럼 각종 경제와 산업 분야는 물론 의학과 군사 분야 등에서 차세대 핵심 기술로 부상하면서 각국이 치열하게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중국이 AI 분야에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이 되기 위해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3월 5일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 14차 5개년 경제계획(14·5계획, 2021∼2025년) 및 2035년까지의 장기경제계획보고서를 제출했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적용될 14·5계획의 일환으로 제조업 핵심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8대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8대 산업은 △희토류 포함 신소재 △고속철, 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중대 기술 장비 △스마트 제조 및 로봇 기술 △항공 엔진 △베이더우(北斗)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응용 △신에너지 차량 및 스마트카 △첨단 의료장비 및 신약 △농업 기계 등이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2035년까지의 장기 경제 계획 차원에서 7대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 국가의 모든 역량을 투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7대 첨단 과학기술 분야는 △AI △양자통신 △집적회로(반도체) △뇌과학 △유전자 및 바이오 기술 △임상의학 및 헬스케어 △우주·심해·극지 탐사 등이다.
중국, AI 인재 양성에 적극 나서
중국 정부는 이미 2017년 AI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채택하고 AI 발전 3단계 목표를 추진해 왔다. 그 내용을 보면 1단계로 2020년까지 AI 기술응용 선진국(연관 산업 매출액 1500억 위안), 2단계로 2025년까지 AI 기초이론 및 기술 선도국가(연관 산업 매출액 4000억 위안), 3단계로 2030년까지 글로벌 AI 혁신 강국(연관 산업 매출액 1조 위안, 생산유발효과 10조 위안)을 각각 만들겠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를 위해 무엇보다 AI 인재 양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은 2018년부터 AI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학습용 AI 교과서들을 편찬하고, 전국 초중고 학교를 대상으로 AI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2020년 기준 230여 개 대학에 400여 개의 AI 및 빅데이터 관련 학과와 전공이 개설돼 있다. 중국 정부의 이런 전략적인 방침에 따라 민간 기업들도 적극 호응하고 있다. 중국 최대 IT 기업인 바이두는 3년간 AI 인재 10만 명을 길러내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은 이런 AI 인재 육성 계획 덕분인지는 몰라도 지난해 AI 분야 논문 인용 건수 면에서 미국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스탠퍼드대가 발간한 ‘2021 AI 인덱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AI 학술지 논문 점유율 18%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미국이 12.3%로 그 뒤를 이었으며, 유럽연합(EU)은 8.6%에 불과했다. 특히 중국은 AI 저널의 논문 인용 비율에서 20.7%를 기록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미국(19.8%)을 넘어섰다. EU의 논문 인용 비율은 11%였다. 중국은 2017년 이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AI 관련 특허를 출원했으며 AI 기술별 특허에서도 주요 6대 기술 분야 중 머신러닝과 기초 알고리즘과 관련해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또 막대한 자금을 AI 등 미래 기술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20년 미래 기술 연구·개발비는 2조4400억 위안(3780억 달러, 423조 원)으로 전년보다 10.3% 늘어났다. 이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2.4%를 차지하는 것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특히 중국의 지난해 기초연구비 지출은 2015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 1500억 위안에 달했다. 세계지적재산기구가 발표한 ‘글로벌 혁신지수’에서 중국은 2015년 29위였으나 지난해 14위로 올라섰다.
중국 정부는 또 AI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면 중국 정부는 해외 인재의 스타트업 설립 시 프로젝트에 최고 900만 위안(15억 원)을 지원하고 창업자 본인에게도 최고 750만 위안(13억 원)을 지원한다. 선발 기준은 해외 석사학위 취득 후 해외 창업 혹은 스타트업 3년 근무, 박사학위 취득 후 해외 창업 혹은 스타트업 근무 2년이었다.
시장조사 기관인 CB인사이츠가 발표한 ‘2020년 글로벌 100대 AI 스타트업’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65개로 가장 많고 중국은 6개다.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중 유니콘으로 평가받은 기업은 총 11개다. 이 중에서 중국과 미국은 5개씩을, 영국은 1개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유니콘이란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받는 비상장 스타트업을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중국은 AI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과학기술 분야의 세계적 민간 싱크탱크인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이 지난 2월 미국과 중국 및 EU의 AI 역량을 비교한 결과, 도입과 데이터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과 EU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발전기반 △인재 △연구 △하드웨어 △도입 및 채택 △데이터 등 6개 분야(30여 항목)의 AI 비교평가 중 도입과 데이터 분야에서 미국과 EU를 앞섰다. 특히 도입은 점수가 7.7로 미국(1.0)보다 7배 이상, EU(1.3)보다 6배 이상 높았다. 데이터도 11.6점으로 미국(8.0)과 EU(5.3)를 따돌렸다. 미국은 발전 기반, 인재, 연구, 하드웨어 4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고, 총점도 100점 만점에 44.6점으로 선두에 올랐다. 중국(32점)과 EU(23.3점)가 뒤를 이었다.
미국에선 중국이 이처럼 AI 분야에서 맹추격을 해오자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AI에 관한 국가 안보위원회(National Security Commission on Artificial Intelligence, NSCAI)는 3월 1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미국이 AI 핵심 기술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을 경우 중국에 추월당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NSCAI는 에릭 슈미트 구글 전 회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위원으로는 사프라 캣츠 오라클 최고경영자(CEO)와 에릭 호로비츠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과학책임자(CSO), 앤디 재시 아마존웹서비스(AWS) CEO 겸 아마존 차기 CEO 등 15명이 참여하고 있다.
보고서는 “현재 추세가 변하지 않을 경우 중국은 향후 10년 내에 미국을 추월할 힘과 능력, 그리고 야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NSCAI는 2026년 320억 달러에 이를 때까지 연간 AI 연구 투자액을 2배씩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매킨지는 “AI가 앞으로 세계 경제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며 오는 2025년 글로벌 AI 경제 규모가 13조 달러에서 오는 2030년 15조 달러로 확대되고 중국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국가가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아무튼 21세기를 중국이 지배할 것인지, 미국이 지배할 것인지는 AI 기술을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글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