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의자
일꾼의 물건③의자세계적인 작가들은 늘 ‘엉덩이’로 글을 쓴다고 말한다. 그만큼 현대사회 일꾼들의 노동은 상당수 의자 위에서 이뤄진다. 이 긴 여정을 편하게 인도할 그것, 의자가 일꾼의 물건에서 빠질 수 없는 이유다.
편집자 주 : 일이 우리를 지배하던 신입 시절을 벗어나 ‘일하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여유가 생길 즈음에야 ‘일템’의 존재를 느끼기 시작한다. 저서 <일꾼의 말>의 두 작가 일꾼A(필명)와 일꾼B(필명)가 일꾼 생활을 더 영리하고 슬기롭게 만들어 주는 물건을 소개한다.
[한스 베그너 라운드 체어.]
“인간은 미래의 위기를 미리 계획하고 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면한 위기에 대응하도록 진화해 왔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짐 데이토(Jim Dator, 87) 미국 하와이대 명예교수가 한 말이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대비 없이 맞이한 일꾼들이 딱 그랬다. 글로벌 업무가 불투명해지고, 일상과도 같았던 대면 미팅과 회의는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갑작스럽게 재택근무로 전환되거나 출근을 하더라도 하루 종일 KF94 마스크를 쓰고 이산화탄소를 들숨날숨으로 마셔가며 업무 시간을 채워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회사도 온전히 일을 멈추지 않았고, 일꾼들은 자기 몫의 일을 했다. 그 과정에서 회사도 일꾼도 진화했다.
회사가 아닌 어느 곳에서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기 시작했고, 재택근무 환경에서도 일과 생활을 분리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아갔다. 진화의 현장은 마치 영화의 전투 신(scene)처럼 비장하게 느껴질 정도였는데 가장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두 가지 있다.
재택근무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 한 스타트업의 사내 게시판에 고급 사무용 의자 공동구매(공구)가 올라왔다. 1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사무용 의자를 거의 반값에 살 수 있었는데 당시 공구에 참여한 인원수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당시 공구에 참여하지 않은 일꾼 중 한 명이었던 A는 “재택근무를 평생 할 것도 아닌데 집에서 쓸 의자를 굳이 그 가격을 주고 살 이유가 있나 싶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재택근무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사내 게시판에는 이런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혹시 그 의자 다시 한 번 공구해주면 안 되나요’, ‘공구 때 구매하셨던 분들 중 저에게 파실 분?’, ‘허리가 너무 아파서 재택근무가 힘든데, 그 의자 정상가에라도 사야 하나요’ 등. 결국 일꾼들의 간절한 소망은 두 번째 공구로 이어지며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핀율 45 체어]
두 번째 에피소드는 대기업에 다니는 일꾼B의 사례다. 집에 마땅히 일할 공간이 없던 B는 주로 좌식 탁자 위에 노트북을 올리고 방석 위에 앉아 업무를 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이대로 계속 일하다가는 척추부터 꼬리뼈까지 이어지는 몸의 일부가 녹아 없어질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급기야는 밤에 몰래 용달차량을 불러 회사에서 책상과 의자를 싣고 올까를 고민한 적도 있었다. 인사팀에 장문의 이메일을 썼다. ‘재택근무 지원비를 만들어달라’는 내용이었다. 일꾼B의 간절함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회사는 재택근무 지원비라는 항목을 만들어줬고, B는 아주 좋은 의자 하나를 구입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두 에피소드를 들으며 깊은 깨달음을 얻은 필자의 ‘의자 탐구생활’이다. 코로나19 시대 이전에는 몰랐던 회사의 사무용 의자의 위대함을 몸소 느끼는 시점이기도 했다.
집에는 절대 허리를 곧게 펼 수 없는 푹신한 소파와 엉덩이의 노화만을 불러오는 딱딱한 식탁용 의자가 전부였다. 언제 정상적인 출근이 가능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척추와 허리, 엉덩이의 침몰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좋은 의자에 앉아 일할 권리가 있다
의자의 세상은 넓고 무궁무진했다. 사무용 의자를 찾아보는 것으로 시작해 1940년대 덴마크 빈티지 의자까지 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을 때는 새벽 3시였다. 물건 하나에 꽂히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도 수많은 고질병 중 하나였다.
사실 처음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사무용 의자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집은 사무용 의자와 어울리는 공간이 아니었다. 특히 사무용 의자의 전형적이고 정직한 디자인이 그랬다. 고급 사무용 의자로 유명한 브랜드 허먼 밀러부터 국내 전통의 브랜드인 시디즈까지 비슷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색은 일단 검정이고 엉덩이와 척추 라인을 따라 흐르는 의자의 외형은 누가 봐도 기능성을 최우선으로 강조해 만들어진 제품이었다. 사무용 책상을 구비하고 있는 집이라면 모르겠지만 8인용 탁자를 식탁 겸 책상으로 쓰고 있는 환경에서 ‘기능성 의자’는 딱히 갈 곳이 없어 보였다(원목 테이블로 꾸며진 카페에 사무용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참에 요즘 유행하는 미드 센추리풍의 의자를 들여놓을까도 생각했다. 한스 베그너, 핀율, 조지 나카시마 등 1940~1960년대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내놓은 의자들이라면 기능적으로 편하고, 디자인적으로 만족스럽지 않을까.
그 시대의 디자인들은 실용적이고도 자연스럽고 간결하게 만들어진 게 특징인데, 2021년 현대인의 마음까지 사로잡다니 우리가 클래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디자이너들이 미래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50년도 더 전에 만들어진 ‘의자의 고전’에 등을 기대고 일하면 평소의 우악스러움은 버리고 우아하게 일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 ‘내 엉덩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새벽까지 이 고민을 하고 있나’라는 현타(‘현실 자각 타임’의 줄임말)가 찾아와 잠이 들기를 반복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꾼의 의자를 찾는 여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결론에는 도달했다. 이 시대 일꾼은 좋은 의자에 앉아 일할 권리가 있다는 것. 본래 의자는 왕의 물건이었다. 역사 드라마에서 왕이 높고 큰 의자에 앉아 있고 신하들은 서 있는 상태로 보고하는 게 익숙한 장면이듯 의자는 권력을 상징했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대량 생산화가 시작되면서 철재, 금속 등 저비용으로 의자가 만들어지면서 더 많은 시민들이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좌식생활 중심이었던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말에 서구 문화가 들어오면서 의자가 익숙해졌다.
1000원 단위부터 수백만 원 프리미엄 제품까지 의자의 스펙트럼이 무제한인 것만 같은 2021년 현재, 의자는 어떤 존재로 기록돼야 할까. 만약 어떤 회사로 이직하게 된다면 연봉 다음으로 묻고 싶은 것이 ‘어떤 의자를 제공하는가’다. 이 회사가 일꾼을 어떤 존재로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질문일 테니 말이다. <호문쿨루스(Homunculus)>라는 그림이 있다. 손이 사람의 얼굴보다 훨씬 더 크고, 입은 얼굴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크게 묘사된 사람 모형이다. 캐나다의 한 신경외과 의사가 만들었는데 대뇌피질에서 담당하는 비율에 따라 신체 기관을 그려 넣었다. 다시 말해, 뇌의 영역을 많이 차지하는 부위가 손과 입이라는 것. 인간의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게 손과 입인 셈이다.
아마 이 시대 사무직 일꾼들을 반영해 <호문쿨루스>를 다시 만들어낸다면 ‘척추와 엉덩이’가 도드라지게 커져야 하지 않을까. 하루 8시간 이상을 버텨내야 하는 힘은 입과 손에도 있지만 척추와 엉덩이의 역할도 한 몫 하니 말이다.
유통기한은 영어로 ‘shelf life’다. 직역하면 (한 물건이) 선반 위에서 생존할 수 있는 삶. 이 공식에 따라 일꾼의 삶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아마 ‘chair life’가 되지 않을까. 의자 위에서의 삶. 허리와 엉덩이의 물리적 힘으로 생존하는 일꾼들의 유통기한이 조금이라도 더 길고, 윤택하기 위해선 좋은 의자가 필수다.
글 일꾼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