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if in Art] 사과나무(apple tree): 유토피아의 옅은 향기
입력 2021-04-05 14:00:53
수정 2021-04-05 14:00:54
사과꽃이 피는 계절, 봄이다. 제철이면 다시 피는 봄꽃은 언제나 새 희망을 예고한다. 꽃 피는 사과나무를 보며 잃어버린 유토피아의 꿈을 떠올린다.
표현에서 분석으로
추상회화의 선구자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년)만큼 사과나무를 집요하게 그린 화가가 또 있을까. 그는 몇 년 동안 사과나무 한 그루를 이리저리 관찰하고 분석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반복해서 그렸다. 오랜 노력 끝에 마침내 독보적인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탄생시키게 된다.
시작은 19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몬드리안은 젤란트(Zeeland) 해변의 마을 돔뷔르흐를 방문했다. 이곳은 여름에 화가들이 자주 찾는 휴양지였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몬드리안은 친분이 있는 컬렉터와 화가가 사는 별장을 방문했다. 그 집 정원에는 커다란 사과나무가 있었다. 몬드리안은 그 나무를 여러 번 스케치하고, 좀 더 큰 캔버스에 유화로도 그렸다. 그러나 바로 완성하지 못하고 나중에 다시 방문해서 덧그린 다음 완성할 수 있었다. 그 작품이 <저녁: 붉은 나무>라는 개성 넘치는 그림이다.
<붉은 나무>는 온통 파란색 배경에 붉은색을 띤 커다란 나무 한 그루만을 보여준다. 나무의 굵고 뒤틀린 몸체에서 가지들이 무성하게 뻗어 나와 뒤엉켜 있다. 실제 나무를 보고 그렸지만,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 화가의 주관대로 변형시켰다. 나무에 어두운 색과 붉은색을 첨가해 줄기를 더 힘차게 강조했다. 배경도 하늘의 색이 땅에도 내려올 만큼 파랑으로 전면을 거의 덮었다. 땅에는 붓자국을 같은 방향으로 되풀이해 가며 나무의 역동적 힘이 아래로 연결되도록 했다. 나무줄기 끝에는 마른 잎인지 울긋불긋한 작은 점들이 겨우 보인다. 시간이 정지한 듯, 나무 밑에 그림자조차 사라졌다.
몬드리안은 눈에 보이는 자연 현상을 벗어나 자기 내면의 격정을 사과나무 한 그루에 풀어놓았다. 20세기 초 유럽의 전위적 화가들은 강렬한 원색과 거친 붓질로 본능과 감정의 해방을 추구하곤 했다. 프랑스 야수파나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이 행한 방식인데, <붉은 나무>에 그 영향이 반영돼 있다.
3년 후, 몬드리안의 그림은 큰 전환을 맞이한다.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현대미술 전시회에서 입체파 작품을 보고 깊이 공감한 그는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입체주의를 더욱 가까이 접하게 된다. <회색 나무>는 1911년과 1912년 사이 겨울에 파리에서 그린 것으로 여겨지는데, 입체주의의 영향이 여실히 드러난다. 원색이 사라지고 화면 전체가 흑백색을 띠며, 나무의 사실적 형태가 매우 단순해졌다. 회화적 붓질은 살아 있지만, 배경 위에 나무를 묘사하는 게 아니라 배경의 밝은 터치가 이미 그려놓은 검은 나무줄기를 파고든다. 그래서 줄기의 형태는 얇고 날카로운 곡선으로 감소하고, 3차원 공간은 깊이감이 없어져 2차원으로 압축된다.
몬드리안은 분석적 입체주의의 구성원리에 따라 자연을 분석해 나타내고자 했다. 입체파 화가들은 고정된 단일 시점을 거부하고, 수없이 많은 시점에서 바라본 사물의 단편들을 화폭에 재구성했다. 그러면 대상이 작게 조각나고, 형상과 배경이 뒤섞이며, 원근이나 명암도 불확실해진다. <회색 나무>에서 몬드리안은 입체파처럼 색채에는 관심이 없고 사물의 구조 분석에 몰두하고 있다. 나무의 몸체를 보면 <붉은 나무>에 그렸던 사과나무를 그대로 소재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사생이 아니라 자신의 이전 그림이 회화 실험의 기초가 됐다.
자연에서 추상으로
1912년 봄, 몬드리안은 또다시 사과나무를 그린다. <꽃 피는 사과나무>인데, 입체주의의 영향이 더욱 강해져 화면이 잘게 분할되고 추상적으로 변화했다. 이제 나뭇가지들은 조각난 원호나 포물선의 일부처럼 굵기가 거의 같은 검은 선들로 리드미컬하게 변화했다. 중심으로 모여든 선들과 황토색이 원래의 나무 형태를 암시할 뿐, 제목이 아니라면 사과나무를 연상하기 어렵다. 색채는 연한 청색과 분홍색, 황토색, 회색 등 몇 가지 색조로 제한됐다. 이 색들은 모두 꽃이 만개한 사과나무에서 나올 수 있는 색이다. 배경에만 얇고 흐릿하게 채색이 돼 부드럽고 섬세한 봄날의 서정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런데 잘 보면 검은 선으로 구획된 부분을 따라 색이 조금씩 다르게 적용돼 있다. 배경과 형상을 함께 다루며 색과 형태를 구조적으로 결합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듬해에는 화면 속 곡선들이 거의 다 수직, 수평의 직선으로 변형된다. <구성 II>와 같이 이제 나무를 연상시키는 형태는 찾기 어렵다. 다만 봄날의 과수원을 연상시키는 파랑, 황토색, 회색, 분홍의 색채가 아직 남아 있어 사과나무로부터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몬드리안은 자연 형태를 축소해 나가 이윽고 추상이라는 순수 조형에 도달했다.
이후에도 몬드리안은 선과 색을 더욱 단순화하며 추상회화를 전개한다. 모든 선은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정리되고 모든 색은 삼원색과 흑백으로 수렴된다. 선과 면의 개수도 점점 줄어들어 나중에는 몇 개의 선과 면으로 작품이 구성된다. 화면에서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없어지고 모든 조형요소들이 서로 긴장과 균형을 주고받으며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몬드리안이 추구한 것은 물질세계 저변에 있는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였다. 불필요한 것과 지엽적인 것들을 제거하면 순수하게 본질적인 것만 남는다. 기하학적 추상은 몬드리안이 각고의 노력 끝에 도달한 필연적 결과였다. 자연에서 출발해 조형언어를 엄격하게 추출하고 다듬어 간 과정은 그의 집요한 열정을 보여준다. 그 집념은 끊임없이 본질을 추구해 나가면 언젠가 영적인 상태에 접근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온 것이다. 다시 말해 잃어버린 유토피아를 되찾고 싶은 열렬한 꿈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몬드리안 추상의 출발점이 사과나무였다는 사실이 과연 우연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부터 유럽 문화에서 사과나무는 실낙원을 야기한 선악과 나무와 동일시됐으니 말이다. 사과나무는 자연 자체로서 봄의 희망 속에 유토피아의 옅은 향기를 머금고 있다. 그야말로 몬드리안과 가장 잘 어울리는 절묘한 만남이 아닌가.
글 박은영 서울하우스 편집장·미술사가
표현에서 분석으로
추상회화의 선구자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년)만큼 사과나무를 집요하게 그린 화가가 또 있을까. 그는 몇 년 동안 사과나무 한 그루를 이리저리 관찰하고 분석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반복해서 그렸다. 오랜 노력 끝에 마침내 독보적인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탄생시키게 된다.
시작은 19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몬드리안은 젤란트(Zeeland) 해변의 마을 돔뷔르흐를 방문했다. 이곳은 여름에 화가들이 자주 찾는 휴양지였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몬드리안은 친분이 있는 컬렉터와 화가가 사는 별장을 방문했다. 그 집 정원에는 커다란 사과나무가 있었다. 몬드리안은 그 나무를 여러 번 스케치하고, 좀 더 큰 캔버스에 유화로도 그렸다. 그러나 바로 완성하지 못하고 나중에 다시 방문해서 덧그린 다음 완성할 수 있었다. 그 작품이 <저녁: 붉은 나무>라는 개성 넘치는 그림이다.
<붉은 나무>는 온통 파란색 배경에 붉은색을 띤 커다란 나무 한 그루만을 보여준다. 나무의 굵고 뒤틀린 몸체에서 가지들이 무성하게 뻗어 나와 뒤엉켜 있다. 실제 나무를 보고 그렸지만,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 화가의 주관대로 변형시켰다. 나무에 어두운 색과 붉은색을 첨가해 줄기를 더 힘차게 강조했다. 배경도 하늘의 색이 땅에도 내려올 만큼 파랑으로 전면을 거의 덮었다. 땅에는 붓자국을 같은 방향으로 되풀이해 가며 나무의 역동적 힘이 아래로 연결되도록 했다. 나무줄기 끝에는 마른 잎인지 울긋불긋한 작은 점들이 겨우 보인다. 시간이 정지한 듯, 나무 밑에 그림자조차 사라졌다.
몬드리안은 눈에 보이는 자연 현상을 벗어나 자기 내면의 격정을 사과나무 한 그루에 풀어놓았다. 20세기 초 유럽의 전위적 화가들은 강렬한 원색과 거친 붓질로 본능과 감정의 해방을 추구하곤 했다. 프랑스 야수파나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이 행한 방식인데, <붉은 나무>에 그 영향이 반영돼 있다.
3년 후, 몬드리안의 그림은 큰 전환을 맞이한다.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현대미술 전시회에서 입체파 작품을 보고 깊이 공감한 그는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입체주의를 더욱 가까이 접하게 된다. <회색 나무>는 1911년과 1912년 사이 겨울에 파리에서 그린 것으로 여겨지는데, 입체주의의 영향이 여실히 드러난다. 원색이 사라지고 화면 전체가 흑백색을 띠며, 나무의 사실적 형태가 매우 단순해졌다. 회화적 붓질은 살아 있지만, 배경 위에 나무를 묘사하는 게 아니라 배경의 밝은 터치가 이미 그려놓은 검은 나무줄기를 파고든다. 그래서 줄기의 형태는 얇고 날카로운 곡선으로 감소하고, 3차원 공간은 깊이감이 없어져 2차원으로 압축된다.
몬드리안은 분석적 입체주의의 구성원리에 따라 자연을 분석해 나타내고자 했다. 입체파 화가들은 고정된 단일 시점을 거부하고, 수없이 많은 시점에서 바라본 사물의 단편들을 화폭에 재구성했다. 그러면 대상이 작게 조각나고, 형상과 배경이 뒤섞이며, 원근이나 명암도 불확실해진다. <회색 나무>에서 몬드리안은 입체파처럼 색채에는 관심이 없고 사물의 구조 분석에 몰두하고 있다. 나무의 몸체를 보면 <붉은 나무>에 그렸던 사과나무를 그대로 소재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사생이 아니라 자신의 이전 그림이 회화 실험의 기초가 됐다.
자연에서 추상으로
1912년 봄, 몬드리안은 또다시 사과나무를 그린다. <꽃 피는 사과나무>인데, 입체주의의 영향이 더욱 강해져 화면이 잘게 분할되고 추상적으로 변화했다. 이제 나뭇가지들은 조각난 원호나 포물선의 일부처럼 굵기가 거의 같은 검은 선들로 리드미컬하게 변화했다. 중심으로 모여든 선들과 황토색이 원래의 나무 형태를 암시할 뿐, 제목이 아니라면 사과나무를 연상하기 어렵다. 색채는 연한 청색과 분홍색, 황토색, 회색 등 몇 가지 색조로 제한됐다. 이 색들은 모두 꽃이 만개한 사과나무에서 나올 수 있는 색이다. 배경에만 얇고 흐릿하게 채색이 돼 부드럽고 섬세한 봄날의 서정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런데 잘 보면 검은 선으로 구획된 부분을 따라 색이 조금씩 다르게 적용돼 있다. 배경과 형상을 함께 다루며 색과 형태를 구조적으로 결합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듬해에는 화면 속 곡선들이 거의 다 수직, 수평의 직선으로 변형된다. <구성 II>와 같이 이제 나무를 연상시키는 형태는 찾기 어렵다. 다만 봄날의 과수원을 연상시키는 파랑, 황토색, 회색, 분홍의 색채가 아직 남아 있어 사과나무로부터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몬드리안은 자연 형태를 축소해 나가 이윽고 추상이라는 순수 조형에 도달했다.
이후에도 몬드리안은 선과 색을 더욱 단순화하며 추상회화를 전개한다. 모든 선은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정리되고 모든 색은 삼원색과 흑백으로 수렴된다. 선과 면의 개수도 점점 줄어들어 나중에는 몇 개의 선과 면으로 작품이 구성된다. 화면에서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없어지고 모든 조형요소들이 서로 긴장과 균형을 주고받으며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몬드리안이 추구한 것은 물질세계 저변에 있는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였다. 불필요한 것과 지엽적인 것들을 제거하면 순수하게 본질적인 것만 남는다. 기하학적 추상은 몬드리안이 각고의 노력 끝에 도달한 필연적 결과였다. 자연에서 출발해 조형언어를 엄격하게 추출하고 다듬어 간 과정은 그의 집요한 열정을 보여준다. 그 집념은 끊임없이 본질을 추구해 나가면 언젠가 영적인 상태에 접근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온 것이다. 다시 말해 잃어버린 유토피아를 되찾고 싶은 열렬한 꿈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몬드리안 추상의 출발점이 사과나무였다는 사실이 과연 우연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부터 유럽 문화에서 사과나무는 실낙원을 야기한 선악과 나무와 동일시됐으니 말이다. 사과나무는 자연 자체로서 봄의 희망 속에 유토피아의 옅은 향기를 머금고 있다. 그야말로 몬드리안과 가장 잘 어울리는 절묘한 만남이 아닌가.
글 박은영 서울하우스 편집장·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