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미 작가
소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의 주인공인 노경주는 이 시대의 전형적인 엄마이자, ‘경력단절녀’다. 엄마가 됨으로써 수많은 것을 포기했고 가끔 과거의 자신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서유미 작가는 살아가는 것은 무언가를 천천히 잃어가는 일이지만, 그걸 알아가는 게 슬픈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조금 있다 연락할게.”
“아직 시터님이 안 왔어.”
결혼 직후 출산으로 이어진 친구의 일과 중 ‘베이비시터’ 방문 시간은 매우 소중하다. 하루 중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친구는 학교 졸업을 위해 논문을 섰다. 이 시간이 없었다면, 대학원 졸업은 꿈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엔 이 친구와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 코로나19 이후로는 매일 전쟁이라며 연락하는 것 자체에 미안함을 느꼈다. 다시 연락을 해볼까 했지만, 그만두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강화되면서 커피숍 방문조차 안 될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친구의 마음은 어땠을까.
다른 친구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유아원을 알아봤다. 베이비시터 고용보다 일찍 유아원에 보내 자신의 시간을 확보하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하지만 유아원 진입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생각보다 오랜 기간 아이와 24시간 붙어 지내야 했다.
두 친구는 나와 독서지도사 공부를 할 때 만났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하며 서로의 세계관을 공유했다. 매일 글을 쓰면서 하루라도 빨리 등단하기를 서로 응원했다. 현재 두 친구는 등단의 꿈은 먼 미래로 접어둔 상태이며, 하루 중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애쓴다. 지금 당장의 생활이 힘들어 글을 쓸 수 있는 여유조차 없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경단녀’의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게 된 셈이다. 이들에게 이전에 하던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도 폭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사회는 인구 감소로 인해 출산을 장려하지만 사회 시스템 자체가 반대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공공장소에서 활동량이 많은 아이를 보면 부모가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며 질책의 시선을 보낸다. 회사 면접은 어떨까. 콜센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공통적으로 여성들이 받는 질문은 “결혼 후에도 직장을 다닐 생각이 있느냐”, “아이는 어떻게 하고 다니는 것이냐”는 것이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로 이어지는 가족 내 행사가 기다리고 있다. 가족의 문제는 다양하다. 하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슈퍼우먼을 해결하지 않으면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제대로 직시할 수 있는 소설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다.
‘현대문학 핀(PIN) 시리즈’ 중 하나로 2020년 12월에 소개한 <당신과 다른 나>와 비슷하지만 다른 시리즈다. 매월 25일 소설집과 시집을 번갈아 발행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 부문은 001부터 032까지 기획됐으며, 세대별로 6권씩 묶여 발간됐다가 025~030에서는 장르물로, 031~036은 여성작가들이 소설로 묶였다. 032에 해당하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주인공 노경주가 겪는 결혼, 출산, 육아 과정 속 고립과 고독을 이야기한다.
복직을 할 수 있었음에도 육아를 선택한 경주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가자 노트북을 들고 카페 제이니에서 구직활동을 한다. 잦은 야근을 요구하거나 입사 직전 회사의 이전 등 다양한 문제로 취직을 하지 못하는, 소위 ‘경단녀’가 돼버린다. 이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들과 관계를 끊어내며,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다. 출산 이전의 생활을 그리워하면서 바뀐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경주의 삶에서 주변 기혼인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경주가 이따금 돌아보는 건 타인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이었다. 과거의 자신이 당연하게 여기던 것과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했다. 현재의 삶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과거의 어떤 부분만 돌이키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 이중적인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친구들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도 이해시킬 방법도 없었다. 이해라니,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82~83쪽)
경주는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했다. 우스갯소리로라도 “머리가 굳었네”라는 말을 하지 않길 바랐고, 그 바람이 복직보다 퇴직을 선택하게 했다. 남에게 피해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만들어 놓은 결과가 아닐까. 아이가 어느 정도 크자 선택되기만을 기다리는 경주의 모습에서 복직보다 퇴사를 선택한 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카페 제이니로 11시 30분 출근을 지키려는 경주는 한국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여성이다. 엄마가 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려본 적은 없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임에는 분명하다. 매일 아침 아이와 다투면서도 하원을 할 즈음 ‘화내지 말아야지’ 결심을 반복한다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묻는다.
2007년 <판타스틱 개미지옥>이 당선되며 등단한 서유미 작가는 현실을 직시하는 작가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 만났던 수많은 경주의 이미지를 담았다고 한다. 서 작가는 “삶이 지속된다는 것은 무언가를 천천히 잃어가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 그걸 알아가는 게 슬프기만 한 건 아니라는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밝힌다. 경주를 통해 ‘나’가 아닌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응시할 수 있는 5월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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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서윤 독서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