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섭 박사의 바로 이 작가 - 임동식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그냥 좋다. 살아 있는 것이 실감난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곳에 꽃이 피었다. 바라보는 이의 눈에도 마음에도 온통 꽃이다. 대지도 봄비에 씻겨 더없이 생기가 돋는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게 된다. 맑고 청아한 공기가 온몸의 혈맥을 타고 휘돌 듯, 힘찬 생명의 기운이 충만하다. 들숨날숨 숨결에서도 꽃내음이 난다. 자연예술가 임동식 작가의 작품 <원골에 심은 꽃을 그리다-3>(2019~2020년)의 첫인상이다.화면을 가득 채운 꽃은 수선화다. 신비, 자존심, 고결, 조건 없는 사랑이란 꽃말처럼 수줍은 듯 꼿꼿한 자태는 신묘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실제로 수선화의 유래도 그렇다. 그리스신화에서 ‘미소년 나르시스(나르키소스)가 제 모습에 반해 죽어서 꽃이 됐다’고 전한다. 그만큼 ‘변함없는 순수함을 지녔다’는 뜻이겠다. 이런 수선화가 활짝 피고 져야 비로소 온 세상이 봄기운의 온기로 가득해진다.
저 멀리 소박한 집 한 채가 앉아 있다. 임동식 작가의 작업실이다. 친구가 마련해준 낡은 집을 수년간 손수 고치고 주변엔 꽃을 심었다. 건물의 안과 밖을 황토로 마감해 자연을 입혔다. 흥미로운 것은 기와지붕에 구멍을 뚫어서 자연광이 내부로 비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자연의 햇빛으로 물감 본연의 색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밤에는 그곳으로 별빛까지 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작품 <원골에 별이 빛나는 밤>(2016년)처럼 화폭 전체를 가득 채운 수선화들은 밤에 내려앉은 별빛이 잠든 것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자연은 임동식 작품을 지탱하는 중요한 모티브다. 그래서 그는 ‘자연미술가’로 통한다. 1970년대 시작해 2000년대를 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가 풀어낸 예술적 기록들은 자연, 삶, 예술이 통합된 ‘자연주의 융합형 아카이브’다. 특히 과거에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아내지 못했던 ‘자연에서의 다양한 퍼포먼스’를 회화 형식으로 재해석한 작품까지 선보인다. 감성적 경험과 기억들을 자신만의 화법으로 시(詩)를 쓰듯 옮긴 그의 작품만큼 ‘자연다운 자연의 기록’도 드물다.
임 작가의 그림에서 특유의 질감은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적당히 까끌까끌한 촉감이 일품이다. 작품 <마른 넝쿨을 거두어내는 아이들>(2013년)만 봐도 ‘카스텔라’처럼 입자가 성근 회화기법은 화면 전체에 숨구멍을 내듯 감미로운 공간감을 연출한다. 그는 기름을 섞지 않는 유화물감을 사용한다. 촘촘한 돌기를 그리듯 세필을 사용한 필법으로 가볍고 맑은 투명한 느낌의 자연을 완성한다. 치밀하게 올려진 물감의 입자들 덕분에 자연의 순수성은 더욱 극대화되고 깊은 여운이 감돌게 된다. 잠시 바쁜 일상의 피곤함을 잊게 하는 휴식 같은 위로의 그림이다. 그래서 ‘박수근미술상’을 수상했다는 점이 더욱 와 닿는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친구가 권유한 풍경-되돌아온 나루>(2000~2003년)처럼 작품 제목에 ‘친구가 권유한~’이란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오랜 세월 동안 ‘자연적 삶을 살았던 친구’가 권해주는 풍경을 작품에 담고 있다. 친구의 이름은 ‘우평남’이다. 수십 년 동안 친구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본 아름다운 장소’를 임 작가에게 소개했고, 그 풍경들은 화폭의 주인공이 됐다. 임 작가는 친구 우평남을 ‘진정한 자연예술가’라고 부른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미적 의식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친구의 모습에서 ‘절대적 순수미감’을 발견했을 것이다. 아주 특별한 우정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임 작가의 그림은 가공되지 않은 ‘풍경 자체’를 숙고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누구나 한번쯤은 본 듯한 친숙하고 고요한 자연풍광이다. 하지만 제 각각의 사물에 깃든 고유의 파동까지 되짚어 새로운 생명력의 혼기를 불어넣는다. 오랜 시간 자연과 교감을 가졌던 그만의 독창적인 화법 덕분이다. 농부가 자연에 순응하며 농사를 짓는 것처럼, 임동식도 자연이 지닌 한없는 경이로움을 인위적인 통제 없이 날것 그대로 옮겼다. 직접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택한 수십 년의 진정성이 발현된 결과다.
임 작가는 미술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행보를 이어왔다. 우리나라의 ‘실천적 자연미술운동’을 이끌어온 선구자다. 1970년대 후반 서울에서 공주로 돌아간 후 한국미술청년작가전(1975년), 금강현대미술제(1980년), 야투(野投) 창립(1981년), 야투사계절연구회(1981~1998년), 예술과 마을(1993~2003년) 등 그의 행보는 실내 중심의 미술행위를 야외로 전환시킨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특히 충남 공주 신풍 원골마을에 삶의 터를 잡은 이후 보여준 ‘농즉예(農卽藝), 예즉농(藝卽農)’ 실천 의지는 매우 인상적이다. ‘자연-생명-예술’을 일직선에 둔 그의 화두를 ‘예술적 사유와 실천의 합일’로 보여준 사례다.
삶과 예술을 잇는 무위자연의 실천예술
특히 1993년 겨울에 시작했던 ‘예술과 마을’ 프로젝트는 2000년대 이후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현장 중심의 공공미술’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 롤 모델이라 할 수 있겠다. 농사에 필요한 일상의 행위와 도구들마저 예술적 영역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예술 중심의 자연과 일상의 순환관계를 풀어낸 실험이었기 때문이다. ‘임동식과 만나면 농부들도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고 했을 정도다.
한편으로 2007년부터 작업한 ‘비단장사 왕서방’ 시리즈는 좀 색다른 주제였다. 그가 유년기를 보냈던 공주의 유구라는 지역에 대한 감성적 회고를 담은 연작이었다. 유독 비단 생산지로 이름난 곳이어서 집집마다 직조기를 들여놓고 명주와 비단을 생산했을 정도로 성업했었다. 하지만 화려한 색채의 비단 문화에서 어둡고 탁한 서구 양복 문화로 변화하듯, 아름답던 전통문화도 어느새 사라져버린 현실이 됐다.
작품 <비단박람회>(2011~2015년)를 보면 그의 마음이 읽힌다. 화려한 색채와 매끄러운 감촉, 온갖 꽃과 문양이 새겨진 비단들이 빼곡한 거대한 홀에 점원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비단이 풍기는 생동감과 달리 양장을 입은 점원과 벌거벗은 손님들은 왠지 우울하고 암울한 느낌이다. 알게 모르게 쓸쓸함마저 묻어난다. 부지불식간에 사라져가는 것들의 소중함이 엿보인다. 자연의 색이나 전통을 잃어버린 오늘날의 모습이 전하는 슬픔을 ‘비단장사’ 시리즈로 전하고 있다. 이 역시 자연의 순수미를 실천적 미학으로 보여줬던 연장선이나 다름없다. 임동식 작품의 전시 기준 가격은 20호(72.7×60.6cm) 1700만 원, 60호(130×97cm) 3400만 원, 100호(130.3×162.2cm) 4600만 원 정도로 형성돼 있다.
임동식 작가는…
1945년생. 1974년 홍익대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1988년 독일 국립 함부르크 미술대학 자유미술학과를 졸업했다. 그동안 공주 아트센터고마, 서울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아르코미술관, 이화익갤러리 등에서 17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또한 박수근미술상(2020년), 독일 알토나미술상(1985년) 등을 수상했다. 1960~1970년대부터 한국의 자생적 미술운동을 펼쳤으며, 1974년 1월에 발족한 ‘한국미술청년작가회’의 창립 멤버, 1975년 안면도 꽂지 해변에서 캠핑을 통해 자연 그 자체와 교감하는 행위·설치예술의 야외 작품을 발표하는 등 줄곧 자연미술에 대한 생생하고 열정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이 소장된 대표적인 곳은 경남도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대구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스페이스몸미술관, 아르코미술관, 아산사회복지재단,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하나은행, dtc아트센터, 아트선재센터(SAMUSO) 등이 있다.
글 김윤섭 아이프 아트매니지먼트 대표·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