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펀드부실 사태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는 ‘라임’, 그리고 ‘옵티머스’ 사태. 국내 금융시장에서 내로라하는 대형 시중은행 및 증권사들이 줄줄이 개인투자자들의 원성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유독 조용한(?) 곳이 있다. 바로 SC제일은행이다.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
사실 그동안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계 은행의 존재감은 크지 않은 편이었다. 거미줄처럼 펼쳐진 전국 영업망과 대규모의 인적 자원을 갖춘 대형 시중은행과 동등한 환경에서 경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최대 네트워크를 갖춘 KB국민은행의 경우 전국 영업점이 1000여 개에 육박하지만 SC제일은행은 200여 개 수준에 그친다. 또 다른 외국계 은행인 한국씨티은행은 40여 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은행의 대표 상품인 예·적금과 대출 등 여수신 경쟁에서 대형 시중은행들이 압도적 우위를 나타낼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의 은행권 대출 시장(총여신) 점유율은 각각 3.8%, 2.0% 수준이다. 반면 같은 기간 총자산 1, 2위인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26%, 23%로 둘을 합치면 전체 점유율의 절반을 차지한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의 이자수익이 23조3000억 원에 육박하며, 오히려 증가세를 나타낸 것도 때아닌 부동산 시장의 과열 탓이었다. 하지만 국내 은행들의 이자수익 증가는 ‘땅 짚고 헤엄치기’식 외형 확대라는 부정적 여론에 부딪쳤다.
외국계 은행, 신규 고객·수수료 수익 상승세 ‘눈길’
이 같은 이자수익 증가세와 달리 펀드, 신탁, 방카슈랑스 등으로 이뤄진 수수료 수익, 즉 비이자 부문에서는 금융사별로 표정이 엇갈렸다. 국내 4대 은행의 지난해 수수료 수익은 3조6000억 원으로 직전년에 비해 12% 넘게 쪼그라든 것. 이는 지난 2019년 불거진 파생결합증권(DLS), 파생결합상품(DLF) 손실 사태 이후 라임, 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잇따라 불거진 영향이다.
특히 은행별 펀드 수수료의 경우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의 수수료 수익이 각각 19%, 26% 감소했는데, 펀드 손실 규모가 컸던 우리은행은 전년보다 40%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투자 상품 판매에서 애를 먹은 셈이다.
같은 기간 소비자 민원도 급증세를 보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은행에 접수된 민원 건수는 12만237건으로 전년 대비 20.6% 늘었다. 특히 대형 금융사고의 진원지로 꼽힌 금융투자사에 대한 민원이 7690건으로 1년 만에 74.5% 폭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피해 규모만 무려 2조 원대, 수천 명의 피해자를 양산한 라임·옵티머스 사태는 금융감독 당국의 잇단 규제와 구제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파장이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반면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에서 자유로운 외국계 은행의 경우 신규 고객이 꾸준히 증가하며 상반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SC제일은행의 경우 지난해 수수료 수익이 10% 이상 증가하며 3년 연속 꾸준한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한국씨티은행도 10%대 증가세를 나타냈다. 국내 은행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추락하면서 외국계 은행들이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SC제일은행 관계자는 2020년 실적 발표 자료에서 “비이자 수익의 경우 자산관리(WM) 부문과 외환 트레이딩 부문의 실적 호조로 전년보다 7.5%가량 증가했다”며 “비용의 경우 통상적인 인건비 상승에도 불구하고 특별퇴직비용 감소 및 점포 최적화 노력 등으로 전년보다 5.5%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철저한 리스크 관리로 부실 사태 피해
외국계 은행들이 대규모 부실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배경으로는 글로벌 그룹사 차원의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꼽힌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거졌던 크고 작은 펀드손실 사태에서도 비켜갈 수 있었던 배경이다. SC제일은행 역시 스탠다드차타드(SC) 그룹 차원의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 SC제일은행은 사모펀드가 날개 돋친 듯 팔렸던 2019년까지 안전성을 검증받은 공모펀드 위주의 판매정책을 철저히 지켜왔다. 당시는 정부의 사모펀드 규제 완화로 인해 중소형 운용사가 우후죽순 난립한 시기이기도 하다.
반대로 국내 은행들은 ‘비이자 수익 확대’라는 명분을 내세워 고위험 사모펀드를 경쟁적으로 판매했다.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국내 5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이 판매한 사모펀드 잔액만 70조7000억 원가량으로, 이를 통해 창출된 수수료 수익만 33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와 관련, 김재은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팀 이사는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본점 차원의 원칙을 고수하는 보수적인 펀드 운용 정책을 반영한 까다로운 가입 절차 때문에 타행에 비해 영업 현장에서 고객 응대에 애로가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사모펀드 사태 이후 오히려 시장과 고객으로부터 SC제일은행에 대한 신뢰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현재 SC제일은행은 개별 영업점에 배치된 자산관리 전담 직원(PB RM)과 함께, 본점 차원의 분야별 전문가(WA)가 동시 협업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듀얼 케어(Dual Care) 형태의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펀드, 보험(방카슈랑스), 외환 등의 경우 개별 영업점 프라이빗뱅커(PB)의 개인 역량에만 의존하지 않고, 본점 차원에서 전문 자산관리 서비스를 지원하는 구조다.
특히 WA(Wealth Advisor)는 투자 전략은 물론 거시경제, 시장 정보, 금융상품 등에 대한 높은 전문성을 가진 투자자문 조직으로, 모기업인 SC그룹 차원의 글로벌 시장 전망과 차별화된 글로벌 투자 전략을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실 걸러내는 ‘3P 프로세스’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함께 SC제일은행의 자산관리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모기업인 SC그룹 차원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꼽힌다. 이는 ‘신뢰받는 글로벌 자산관리 조언가’라는 SC제일은행의 지향점과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
현재 SC그룹은 자산관리(WM) 비즈니스를 미래의 핵심 영업 기반으로 삼고 주요국 그룹사와의 다양한 연계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우선 SC그룹 투자 전문 인력들은 매년 글로벌 시장을 아우르는 투자 테마를 선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차별화된 시각의 투 자 전략과 시장 전망을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특히 SC그룹의 시장 전망 능력은 블룸버그가 ‘글로벌 1위’로 선정할 정도로 높은 전문성을 자랑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국내 SC제일은행은 일찍부터 글로벌 시장에서의 투자 다변화, 즉 포트폴리오 투자에 공을 들여왔다. 과거 40% 수준에 그쳤던 해외 펀드 비중도 2020년 말에는 75%로 크게 증가했는데, 특히 지난해에는 펀드부실 사태로 인한 ‘펀드 갈아타기’로 인해 SC제일은행의 펀드 판매 규모가 2배 가까이 급성장했다.
SC제일은행 관계자는 “당행이 펀드부실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비결은 체계적이고 객관성 높은 투자 상품 선정 과정에 있다”며 “이는 여타 경쟁사들과 달리 별도의 계열 투자운용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실제 싱가포르에 위치한 SC그룹 내 ‘글로벌투자위원회’는 전 세계 32개국에 진출해 글로벌 시장 전망 능력을 검증받은 이코노미스트들로 구성돼 있는데, 위원회는 이들로부터 보고받은 각국의 경제 및 시장 상황을 종합해 투자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1만여 개가 넘는 상품이 투자 검토의 대상이 되는데, 이 가운데 3P(People, Process, Performance) 프로세스를 통과한 극소수만이 고객 추천 상품군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3P는 SC그룹만의 차별화된 상품 선정 프로세스로, ‘피플(People)’은 해당 펀드의 포트폴리오 변화에 실제로 참여하는 사람들, 즉 펀드매니저와 애널리스트 등에 대한 전문성과 함께 정성평가를 포함하는 절차다.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프로세스(Process)’는 투자자들의 위험 성향이 반영된 모델 포트폴리오 구성과 실제 포트폴리오와 모델 포트폴리오 간 복제율 분석, 그리고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비중 변경 시 활용되는 정량적·정성적 지표를 확인하는 절차다.
마지막 ‘퍼포먼스(Performance)’는 해당 펀드의 중장기 성과와 함께 시장 국면별 어떤 환경에서 좋은 성과를 냈는지를 분석하는 과정으로, 연도별 성과뿐 아니라 특수한 환경에서의 성과 평가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무엇보다 3P 프로세스의 백미는 까다로운 운용사 선정 절차다. 이는 SC제일은행이 대규모 펀드부실 사태에서 비켜설 수 있었던 핵심 동인이기도 하다. 현재 이 은행은 자산운용사의 경영진, 조직에 대한 과실 여부는 물론 재무 현황, 운용 인력, 투자 프로세스, 리스크 관리, 금융사고 전력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 과정을 거치고 있다.
또 이처럼 까다로운 절차를 통해 나온 결과물은 은행 내 ‘집합투자상품카운슬’에서의 최종 승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집합투자상품카운슬은 투자자문부, WM 업무관리부, 준법감시부, 금융소비자보호부 등 상품 또는 리스크 관련 부서의 헤드(총괄)로 구성된 조직이다. 국내 금융사들의 경우 DLF 사태 이후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 방침에 따라 준법 감시 및 소비자 보호 강화와 관련된 시스템 및 조직 정비에 나서고 있는 것과 달리 SC제일은행은 상품 프로세스 전반에 리스크 관리 기능을 내재하고 있었던 셈이다.
SC제일은행 관계자는 “3P 프로세스의 가장 큰 차별점은 노르콤(Norcom) 스크리닝을 통한 운용사의 평판 리스크 검토”라며 “이후 2년 주기로 거래 운용사에 대한 정기적 검토를 실시하는 한편, 기준에 미달하는 운용사는 내부 심의를 거쳐 거래 운용사 등록을 해지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공인호 기자 ball@hankyung.com |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