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if in Art] 엉겅퀴(thistle): 결혼의 운명과 노동의 미덕
입력 2021-05-31 11:43:35
수정 2021-05-31 11:43:35
엉겅퀴는 가시를 가진 국화과 식물로 여러 품종이 있다. 연보랏빛 아담한 꽃과 달리 억센 잎과 날카로운 가시가 반전의 매력이다.
나라를 구한 행운의 꽃
엉겅퀴는 스코틀랜드의 국화다. 수백 년 전 전쟁 때 엉겅퀴가 나라를 구해줬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적군 병사들이 들판에 잠복해 맨발로 조용히 쳐들어오고 있었는데, 긴장된 순간 갑자기 한 병사가 비명을 질렀다. 모르고 엉겅퀴 가시를 밟은 것이다. 그 바람에 매복이 들통나 스코틀랜드는 위기를 모면하고 승리하게 된다.
나라를 구한 엉겅퀴는 스코틀랜드의 중요한 상징 이미지로 발전한다. 왕실의 문장이나 동전 등 국가의 주요 디자인에 엉겅퀴가 반드시 들어간다. 엉겅퀴꽃은 품위 있는 둥근 왕관 모양이고, 가시 달린 잎은 뾰족뾰족 굴곡지며 거침없이 자라난다. 가을에 잎이 죽어도 뿌리는 땅속 깊이 살아남아 다시 싹을 틔운다.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반전의 형태로 디자인의 변형이 무궁무진하다. 국가의 이미지뿐 아니라 벽지, 타일, 가구, 삽화, 장신구 등 일상생활에도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엉겅퀴가 행운과 고귀함을 뜻한다. 그런데 엉겅퀴가 가진 상반된 속성은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케 한다. 미술 작품에 나오는 엉겅퀴를 살펴보며 작품 해석에 미치는 상징의 다양성을 알아본다.
결혼과 운명의 상징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년)는 인생의 주요 시기에 의미심장한 자화상들을 그렸다. 그중 22세 때 그린 <엉겅퀴를 든 자화상>이 있다. 뒤러가 도제 수업을 마치고 독일 서부와 스위스 지역을 여행할 때 제작했다. 그림 속에서 뒤러는 4분의 3 측면 자세로 관람자를 바라본다. 이탈리아식 독특한 복장에는 화가로서 국제적 성공을 꿈꾸는 야심이 엿보인다. 눈빛에도 결기가 단단히 서려 있다. 손에는 꽃송이가 맺힌 엉겅퀴 가지를 들고 있다. 무슨 의미일까.
이 자화상은 뒤러가 결혼을 앞두고 신부 측에 보내기 위해 그린 것이다.
그림의 위쪽에 적힌 날짜 옆에 “내 일은 위에서 정한 대로 따른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결혼이 운명적으로 결정됐고, 신의 손에 미래의 삶을 맡긴다는 뜻이다. 엉겅퀴 역시 결혼과 관련된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엉겅퀴는 독일어로 ‘만스트로이(mannstreu)’라고 하는데 그 뜻은 ‘남성의 충성심’이다. 결혼에 있어서는 부부간의 충실함을 가리킨다. 한편 엉겅퀴는 약용으로 쓰이고 최음제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결혼과 함께 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흔히 해석한다.
그런데 다른 견해도 있다. 이런 엉겅퀴는 헝가리에서 주로 서식하는데, 식물을 잘 아는 뒤러가 부모님의 고향인 헝가리를 생각해 그려 넣었다는 해석이다. 집안에서 결정한 혼사를 맞아 가문의 고귀함을 반영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고귀함에는 종교적 의미도 있는데,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엉겅퀴에 빗대 예수의 고귀한 희생을 가리키기도 한다.
뒤러는 <작은 운명>이라는 동판화에도 같은 종류의 엉겅퀴를 그렸다. 운명을 의인화한 인물이 지팡이 위에 엉겅퀴 가지를 올려놓고 있다. 엉겅퀴와 지팡이는 운명과 대체 무슨 관계일까. 엉겅퀴는 뿌리가 잘 뽑히지 않지만, 꽃가지는 쉽게 꺾여 바람에 날리며 떠돈다. 지팡이는 정처 없이 길을 떠나는 나그네의 필수품이다. 불확실하고 종잡을 수 없이 어디론가 흘러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점이 바로 운명의 특징이다. 뒤러의 자화상과 연결하면, 결혼과 사랑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결혼한 남성의 의무
17세기 네덜란드의 초상화가 프란스 할스(Frans Hals, 1582년경~1666년)는 부부 초상화에 엉겅퀴를 큼지막하게 그려 넣었다. <이삭 마사와 베아트릭스 판 데르 란의 결혼 초상화>에는 신혼으로 보이는 남녀가 다정하게 나무에 기대앉아 있다. 둘 다 표정이 밝고 나무줄기와 발치에 사랑의 상징인 아이비 덩굴이 늘어져 있다. 배경에는 대형 조각상과 분수와 웅장한 저택이 보인다. 마당에 공작새 한 쌍이 있으니 결혼의 여신 헤라(주노)의 신전이다.
엉겅퀴는 화면 왼쪽의 남자 옆 맨땅에서 자라고 있다. 꽃송이들이 아주 작은 데 비해 가지와 잎은 지나칠 만큼 무성하다. 가시 돋친 잎사귀가 남자를 향해 뻗어가고 있다. 그 의미는 결혼생활에서 남편의 역할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남성의 강한 힘과 성적 능력, 결혼에 대한 충실함의 의무를 상기시킨다.
그런데 이 시기 네덜란드 초상화와 정물화에 나오는 일상의 사물들은 흔히 종교적 교훈을 담고 있다. 성경에서 엉겅퀴는 부정적 의미로 종종 언급된다. 에덴의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에게 하느님은 이렇게 꾸짖으며 벌을 내린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따라서 엉겅퀴는 타락의 결과로 인간이 감당해야 할 고통과 노동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피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면 성실히 수행하는 것만이 구원의 길이다.
할스의 그림에서 엉겅퀴는 노동을 미덕으로 여기는 17세기 네덜란드 중산층의 가치관을 보여준다. 남자는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여자는 오른손을 남편의 어깨에 대고 있어 이들의 결혼이 사랑과 우애를 바탕으로 이뤄졌음을 나타낸다.
결혼하는 남성과 연결된 엉겅퀴는 이렇듯 다양한 의미를 전달한다. 결혼은 사랑을 기반으로 하지만 당사자의 뜻과 상관없이 가문에서 결정하는 거사이기도 하다. 운명처럼 정해져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고통도 있고 노동의 의무가 따르지만, 감내하고 노력해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글 박은영 서울하우스 편집장·미술사가
나라를 구한 행운의 꽃
엉겅퀴는 스코틀랜드의 국화다. 수백 년 전 전쟁 때 엉겅퀴가 나라를 구해줬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적군 병사들이 들판에 잠복해 맨발로 조용히 쳐들어오고 있었는데, 긴장된 순간 갑자기 한 병사가 비명을 질렀다. 모르고 엉겅퀴 가시를 밟은 것이다. 그 바람에 매복이 들통나 스코틀랜드는 위기를 모면하고 승리하게 된다.
나라를 구한 엉겅퀴는 스코틀랜드의 중요한 상징 이미지로 발전한다. 왕실의 문장이나 동전 등 국가의 주요 디자인에 엉겅퀴가 반드시 들어간다. 엉겅퀴꽃은 품위 있는 둥근 왕관 모양이고, 가시 달린 잎은 뾰족뾰족 굴곡지며 거침없이 자라난다. 가을에 잎이 죽어도 뿌리는 땅속 깊이 살아남아 다시 싹을 틔운다.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반전의 형태로 디자인의 변형이 무궁무진하다. 국가의 이미지뿐 아니라 벽지, 타일, 가구, 삽화, 장신구 등 일상생활에도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엉겅퀴가 행운과 고귀함을 뜻한다. 그런데 엉겅퀴가 가진 상반된 속성은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케 한다. 미술 작품에 나오는 엉겅퀴를 살펴보며 작품 해석에 미치는 상징의 다양성을 알아본다.
결혼과 운명의 상징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년)는 인생의 주요 시기에 의미심장한 자화상들을 그렸다. 그중 22세 때 그린 <엉겅퀴를 든 자화상>이 있다. 뒤러가 도제 수업을 마치고 독일 서부와 스위스 지역을 여행할 때 제작했다. 그림 속에서 뒤러는 4분의 3 측면 자세로 관람자를 바라본다. 이탈리아식 독특한 복장에는 화가로서 국제적 성공을 꿈꾸는 야심이 엿보인다. 눈빛에도 결기가 단단히 서려 있다. 손에는 꽃송이가 맺힌 엉겅퀴 가지를 들고 있다. 무슨 의미일까.
이 자화상은 뒤러가 결혼을 앞두고 신부 측에 보내기 위해 그린 것이다.
그림의 위쪽에 적힌 날짜 옆에 “내 일은 위에서 정한 대로 따른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결혼이 운명적으로 결정됐고, 신의 손에 미래의 삶을 맡긴다는 뜻이다. 엉겅퀴 역시 결혼과 관련된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엉겅퀴는 독일어로 ‘만스트로이(mannstreu)’라고 하는데 그 뜻은 ‘남성의 충성심’이다. 결혼에 있어서는 부부간의 충실함을 가리킨다. 한편 엉겅퀴는 약용으로 쓰이고 최음제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결혼과 함께 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흔히 해석한다.
그런데 다른 견해도 있다. 이런 엉겅퀴는 헝가리에서 주로 서식하는데, 식물을 잘 아는 뒤러가 부모님의 고향인 헝가리를 생각해 그려 넣었다는 해석이다. 집안에서 결정한 혼사를 맞아 가문의 고귀함을 반영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고귀함에는 종교적 의미도 있는데,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엉겅퀴에 빗대 예수의 고귀한 희생을 가리키기도 한다.
뒤러는 <작은 운명>이라는 동판화에도 같은 종류의 엉겅퀴를 그렸다. 운명을 의인화한 인물이 지팡이 위에 엉겅퀴 가지를 올려놓고 있다. 엉겅퀴와 지팡이는 운명과 대체 무슨 관계일까. 엉겅퀴는 뿌리가 잘 뽑히지 않지만, 꽃가지는 쉽게 꺾여 바람에 날리며 떠돈다. 지팡이는 정처 없이 길을 떠나는 나그네의 필수품이다. 불확실하고 종잡을 수 없이 어디론가 흘러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점이 바로 운명의 특징이다. 뒤러의 자화상과 연결하면, 결혼과 사랑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결혼한 남성의 의무
17세기 네덜란드의 초상화가 프란스 할스(Frans Hals, 1582년경~1666년)는 부부 초상화에 엉겅퀴를 큼지막하게 그려 넣었다. <이삭 마사와 베아트릭스 판 데르 란의 결혼 초상화>에는 신혼으로 보이는 남녀가 다정하게 나무에 기대앉아 있다. 둘 다 표정이 밝고 나무줄기와 발치에 사랑의 상징인 아이비 덩굴이 늘어져 있다. 배경에는 대형 조각상과 분수와 웅장한 저택이 보인다. 마당에 공작새 한 쌍이 있으니 결혼의 여신 헤라(주노)의 신전이다.
엉겅퀴는 화면 왼쪽의 남자 옆 맨땅에서 자라고 있다. 꽃송이들이 아주 작은 데 비해 가지와 잎은 지나칠 만큼 무성하다. 가시 돋친 잎사귀가 남자를 향해 뻗어가고 있다. 그 의미는 결혼생활에서 남편의 역할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남성의 강한 힘과 성적 능력, 결혼에 대한 충실함의 의무를 상기시킨다.
그런데 이 시기 네덜란드 초상화와 정물화에 나오는 일상의 사물들은 흔히 종교적 교훈을 담고 있다. 성경에서 엉겅퀴는 부정적 의미로 종종 언급된다. 에덴의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에게 하느님은 이렇게 꾸짖으며 벌을 내린다. “네가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었으니, 땅은 너 때문에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사는 동안 줄곧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땅은 네 앞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돋게 하고 너는 들의 풀을 먹으리라.” 따라서 엉겅퀴는 타락의 결과로 인간이 감당해야 할 고통과 노동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피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면 성실히 수행하는 것만이 구원의 길이다.
할스의 그림에서 엉겅퀴는 노동을 미덕으로 여기는 17세기 네덜란드 중산층의 가치관을 보여준다. 남자는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여자는 오른손을 남편의 어깨에 대고 있어 이들의 결혼이 사랑과 우애를 바탕으로 이뤄졌음을 나타낸다.
결혼하는 남성과 연결된 엉겅퀴는 이렇듯 다양한 의미를 전달한다. 결혼은 사랑을 기반으로 하지만 당사자의 뜻과 상관없이 가문에서 결정하는 거사이기도 하다. 운명처럼 정해져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고통도 있고 노동의 의무가 따르지만, 감내하고 노력해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글 박은영 서울하우스 편집장·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