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R, 에너지 시장 게임 체인저 되나



소형 모듈 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 SMR)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각광을 받으며,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 3대 명차 중 하나로 꼽혀온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제작한 롤스로이스사는 세계 3대 항공기 엔진 제작 업체로도 유명하다. 이 회사는 또 각종 함정들은 물론 원자력 잠수함의 엔진도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는 앞으로 원자력 우주선의 엔진도 만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이 회사는 SMR을 건설하고 있다. 이 회사는 차세대 제트기 엔진 연료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으로 만들 것이라며, 이를 위해 2030년까지 SMR 16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SMR은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을 하나의 용기에 담은 발전 용량이 300메가와트(㎿) 이하인 차세대 원전을 말한다. 기존 대형 원전의 3분의 1 정도 크기인 SMR은 격납고가 필요 없어 건설비용이 낮고, 원자로 모듈을 수조(水槽)에 잠기게 해 외부 충격에도 방사선 누출 위험이 적기 때문에 대형 원전의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롤스로이스사는 SMR을 건설하기 위해 영국 국립원자력연구원과 건설사 랭오루크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세계 주요국 탄소중립 위해
‘SMR’ 건설 적극 나서
영국은 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자로를 만든 ‘원전 종주국’이지만, 원전의 안전성 논란으로 1990년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새로운 원전을 건설하지 않았다. 영국은 전체 전력 생산 중 원전 비중이 20%나 된다. 문제는 기존 원전의 노후화로 이 비중이 2025년에 10% 정도로 줄어들 전망이다. 재생에너지의 발전 속도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원전 비중이 갑자기 줄어들면 화석 연료의 비중이 높아져 탄소 배출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제로)을 실현한다는 방침이다. 존슨 총리는 우선 탄소 배출을 2035년까지 78%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런 목표를 달성하려면 탄소 배출이 없이 부족한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으론 원전밖에 없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는 새로운 원전과 SMR 개발·건설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영국 정부는 현재 가동 중인 8개 원전의 가동기한을 연장하고, 3개 원전의 신규 건설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존슨 총리는 경기 부양을 위한 친환경 사업 계획의 일환으로 SMR 건설에 최소 2억 파운드를 투입할 계획이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연합(EU), 영국, 일본, 중국 등이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탄소중립을 국정과제로 제시하는 등 친환경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4월 22일 세계 40개국 정상을 초청해 화상회의 형식으로 기후정상회의를 개최한 가운데 미국이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2005년보다 50~52%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2035년까지 탄소 무공해 전력을 달성하고, 2050년까지 순탄소 배출이 없는 완전한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이는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체결 당시 미국의 목표(2030년 26~28% 감축)보다 2배 높은 수치다. EU는 2030년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1990년대 대비 40%에서 최소 55%로 상향 조정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도 2030년 탄소배출량을 2013년 대비 46% 줄이겠다며 종전 목표 대비해 70%나 높은 목표치를 제시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2005년 대비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40~45% 감축하겠다며 기존 목표치 30%보다 상향 조정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9월 유엔 총회에서 밝힌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장기 목표를 재확인했다.

그렇다면 주요 국가들이 탄소 배출을 대폭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제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원전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주요 국가들은 무엇보다 기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94기 원전을 운영 중인 미국은 펜실베이니아주 피치 보텀 원전 2·3호기와 플로리다 터키포인트 원전 3·4호기의 수명을 기존 60년에서 80년으로 연장했다. 미국은 전체 원전 94기 가운데 88기가 60년 운영 허가를 받았다. 이 가운데 피치 보텀 원전 등 4기는 80년 연장 허가를 이미 받았고, 추가로 6기는 80년까지 수명 연장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40년이 넘은 원전은 47기로 절반에 해당한다.

미국 전체 원전의 평균 가동 연수는 40.5년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1월 자국 내 원전 활성화 로드맵을 담은 ‘원자력 전략 비전’을 발표했다. 에너지부는 원전을 ‘미국 전체 발전량의 20%를 차지하고 가장 규모가 큰 무탄소 발전원’으로 규정하면서 기존 원전의 가동 기한을 갱신하는 동시에 차세대 원자로를 도입해 원전 인프라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원자력안전청도 32개의 노후 원자로 가동 연한을 40년에서 50년으로 연장하며 기저 전원인 원전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예정대로라면 10년 사이 가동을 중단해야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오는 2031년부터 순차적으로 노후 원자로를 폐쇄할 계획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원자로 제조사 프라마톰을 방문한 자리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필요한 과정”이라면서도 “원전을 전면적으로 포기하려면 석탄이나 가스발전소를 짓거나 탄소에너지를 수입해야 하는데, 우리는 이를 거부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스페인 원자력안전위원회도 지난 3월 설계 수명이 종료되는 코프렌테스 원전의 운영허가 갱신을 승인, 오는 2030년 11월 30일까지 수명을 연장했다. 스페인은 원전 설계 수명을 40년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주기적 안전성 평가를 토대로 10년 단위로 운영 허가 갱신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코프렌테스 원전은 2019년 스페인 정부가 2027년부터 2035년까지 단계적 원전 폐쇄 계획을 발표한 이후 네 번째로 수명 연장을 승인한 원전이다.

원전 사고 경험 국가들도
원전 수명 연장 추진
세계 최악의 원전 참사인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경험한 우크라이나도 원전 수명을 기존 30년에서 60년까지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15기의 원전을 운영 중인 우크라이나는 이미 12기의 설계 수명을 20년 연장한 바 있다. 기존 30년에서 20년을 연장한 데 이어 10년 추가 연장을 추진 중인 것이다. 우크라이나 원자력공사는 “60년이 지난 후에는 신규 원전 건설과 수명 연장의 경제성, 안전성 등을 비교 검토해 결정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기준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전 442기 중 200기가 수명 연장을 허가받아 운영되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모든 원전의 가동을 전면 중단했던 일본도 탄소 배출 감축을 위해 원전을 재가동하고 있다. 일본 후쿠이현은 최근 간사이전력이 운영하는 다카하마 원전 1·2호기와 미하마 원전 3호기 등 원전 3기의 재가동에 동의했다. 이 원전들은 모두 1974~1976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원전으로, 영구 정지된 한국의 고리 원전 1호기와 월성 1호기보다 오래됐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크게 줄었던 원전 비중을 다시 늘려 2030년까지 20~22%로 확대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2050년에 에너지원을 해상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50~60%, 화력·원자력 등 30~40%, 수소·암모니아 10%로 구성할 방침이다. 가지야마 히로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에 도달하려면 원전이 필수다”라고 밝혔다.

또 주요국들은 차세대 원전인 SMR 개발과 건설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탄소배출량을 줄이려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를 없애고, 이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 하지만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날씨 등 기상 조건에 따라 전기를 일정하게 생산할 수 없다. 게다가 풍력과 태양광발전소를 대량으로 건설하려면 상당한 부지는 물론 환경까지 파괴될 수 있다.

대형 원전은 지역주민들의 수용성과 비용 등의 문제가 있다. 따라서 주요국들은 SMR에 눈을 돌리고 있다. SMR은 출력이 일정치 않은 풍력과 태양광을 보완하는 데 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SMR은 탄소 배출이 없고 출력 조절이 가능하며 소규모 부지에도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공장 제작, 현장 조립이 가능한 소형 원전인 만큼 전력망과 무관한 분산형 전원, 수소 생산, 해수 담수화 등 다양한 곳에 활용이 가능하다.

실제로 SMR에서 발생하는 섭씨 600~800도에 달하는 증기를 이용해 훨씬 효율적으로 수소를 생산할 수도 있다. 게다가 저렴한 비용 때문에 개발도상국들도 SMR 건설을 선호하고 있다. 사고 발생률도 기존 원전의 1000분의 1 수준이다. 영국 국립원자력연구소는 2035년까지 전 세계에서 65~85기가와트(GW: 1GW는 원전 1기 설비용량) 규모의 650~850기의 SMR 건설이 추진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장규모는 2400억~4000억 파운드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뿐만 아니라 각국이 총 71종의 SMR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 17기, 러시아 17기, 중국 8기, 일본 7기, 한국 2기 등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SMR의 기술 개발 면에선 러시아가 가장 빠르다. 러시아는 2019년부터 SMR을 적용한 해상 부유식 원전인 아카데믹 로모소노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원전은 송전선 설치와 대형 발전소 건설이 어려운 극동지역 추코트카자치구에서 70㎿ 규모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이 원전은 3~5년간 연료 재장전 없이 계속 가동할 수 있어 발전 비용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SMR 개발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국가는 미국이다. 바이든 정부는 SMR을 2050년 미국의 탄소중립을 실현시킬 수 있는 핵심 기술로 꼽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해 10월 SMR과 차세대 원자로 지원에 7년간 32억 달러(32조6000억 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알레시아 던컨 미국 에너지부 부차관보는 “SMR을 활용한 미래 원전은 투입 자본이 적고 투자가 용이해 기존 원전 대비 부담이 덜하다”면서 “에너지와 환경 측면에서 탄소 배출 감축과 유연한 전력망 등 다양한 이점을 제시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미국의 원전 전문 회사인 뉴스케일은 지난해 SMR 모델에 대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 인증 심사를 마쳤으며, 아이다호주에 발전용량 60㎿급 SMR 12기로 이뤄진 총 720㎿ 규모 소형 원전 발전단지를 구축할 계획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설립한 미국의 원전 기업 테라파워도 10년 내 SMR인 ‘나트리움’을 상용화해 미국 전역에 소형 원전을 건설한다는 방침이다.

일본의 에너지 기업 닛키홀딩스도 SMR 사업에 진출했다. 닛키홀딩스는 미국 뉴스케일에 4000만 달러(450억 원)를 출자하고, 아이다호주의 SMR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으며, 향후 자체적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처럼 각국이 개발에 나서면서 SMR은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했던 한국의 원전 산업은 문재인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탈원전 정책으로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이라도 SMR 개발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글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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