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연초 이후 금융시장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단어를 하나만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단어를 꼽을 것이다. 인플레는 화폐 가치가 하락해 물가가 전반적·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제현상이다. 흔히 말하는 물건 가격, 즉 재화의 가격이 오르는 것이다.
올해의 인플레는 역설적으로 지난해 경제를 침체로 이끌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그 배경이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타격을 막기 위해 각국의 중앙은행과 정부들이 막대한 규모의 통화·재정부양책을 통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이 같은 통화량 증가가 화폐 가치를 하락시키는 요인이 됐다.
또한 미국이 대규모 재정부양책을 통해 국민들에게 현금을 지급함에 따라 소비 수요가 빠르게 증가한 반면, 코로나19로 인해 공장 가동 및 원자재 수급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으면서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가 커졌다.
여기에 백신 접종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경제 정상화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인플레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기저효과 역시 크게 작용했다. 지난해 3월 이후 코로나19 영향으로 물가가 크게 하락했기 때문에 올해 3월부터는 전년 대비 물가상승률이 높게 나타났다.
금리 상승으로 성장주 대비 가치주 강세
인플레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금융시장이 인플레에 주목하는 이유는 인플레가 금리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2월 중순부터 시장금리인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고, 이 같은 금리 급등으로 금융시장 전반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 금리 급등으로 주식시장 전반이 크게 흔들렸는데, 그중에서도 코로나19 팬데믹 덕분에 강세를 지속했던 성장주가 큰 타격을 입었다.
미래의 빠른 이익 성장이 기대된다는 점에서 높은 밸류에이션에 거래되는 성장주의 특성상, 금리 상승으로 미래의 현금흐름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는 할인율이 높아지면 주가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금리 상승의 배경에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주 및 경기민감주가 성장주보다 강세를 보였다.
최근 이 같은 흐름에서 반전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3월 한때 1.7%를 넘기도 했던 미 국채 10년물 금리가 하락 안정화되는 추세다. 심지어 물가 서프라이즈에도 금리는 되레 하락해버렸다. 6월 10일 발표된 5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월 대비 0.6% 상승해 시장 예상치(0.5%)를 상회했는데, 이는 전년보다 무려 5.0% 상승한 것으로 2008년 이후 최고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1.4%대로 낮아졌다.
이러한 금융시장의 반응은 인플레가 ‘일시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5월 CPI 세부 내용을 보면 4월에 이어 중고차 가격이 크게 상승하며 전체 물가 상승분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 기저효과 탓에 물가가 높게 오를 수 있다는 인식이 사전에 형성된 가운데 일시적인 물가 상승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6월 이후로는 기저효과가 둔화되는 가운데, 공급 병목현상 등이 해소되며 물가 압력이 점차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5년물 기대인플레이션은 5월 중순 이후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고용지표가 시장 예상을 하회하며 부진했다는 점도 긴축에 대한 우려를 낮추는 요인이었다.
물가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임금 상승세는 여전히 더딘 양상을 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인프라 투자 규모가 양당 간 합의 난항으로 당초 계획보다 축소될 수 있다는 전망 역시 금리 하방 압력으로 작용했다.
다시 시작된 성장주 vs 가치주 선택의 문제
인플레 우려 완화와 시장금리 하락 안정화의 영향이 주식시장에 빠르게 반영되고 있다. 6월 14일 기준으로 미국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가 모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기술주와 성장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가 최근 1개월간 약 6% 상승하는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2월 이후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성장주가 다시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항상 등장하는 개인투자자들의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주식에 투자해야 하는가”란 고민이다. 최근 성장주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됨에 따라 ‘성장주 vs 가치주’ 논쟁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특히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한국 투자자)들이 테슬라로 대표되는 주요 성장주에 투자하는 비중이 높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같은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은 성장주와 가치주 가운데 어느 하나의 스타일을 선택해야 할 시점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분명 단기적으로 성장주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시장금리가 하락 안정화되고 있는 상황은 성장주에 긍정적이다. 성장주들이 지난 수개월간 금리 상승 구간에서 가격 조정을 겪으며 밸류에이션 논란에서도 어느 정도 부담을 덜었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자율주행,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등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테마들의 부상으로 기술주 가운데 주요 성장주들의 구조적인 성장세가 예상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반면 가치주도 충분히 투자할 만한 이유가 남아 있다. 연초 이후 가치주가 많이 올랐다고는 해도 금융위기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성장주보다 소외돼 왔다는 점에서 여전히 추가 상승 여력이 있어 보인다. 백신 접종에 힘입은 경제 정상화로 경기 회복이 예상된다는 점 역시 가치주 및 경기민감주에 긍정적이다. 또한 금리 상승세가 재개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인플레는 일시적임을 강조하며 긴축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동안 Fed 인사들의 발언과 최근의 경기 회복세를 고려할 때 올해 하반기 중에는 테이퍼링(자산 매입 규모 축소 조치) 계획을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금리 상승 압력이 나타날 수 있다.
주식시장의 스타일 성과와 관련해 밸류에이션은 물론 미국의 경기 및 고용 회복세, 바이든 대통령의 인프라 투자 계획, Fed의 정책 스탠스, 이에 따른 금융시장 반응 등에 이르기까지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고 불확실성도 큰 상황이다. 따라서 성장주냐 가치주냐의 논란은 성장주와 가치주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두 가지 스타일 모두 고르게 포트폴리오에 담되 시장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비중을 조절하느냐’로 풀어야 한다.
지역별·스타일별로 다각화된 포트폴리오 구축이 중요
이러한 관점에서 주식 자산의 다각화뿐 아니라 자산군별로도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백신 접종에 따른 글로벌 경기 회복세와 함께 기업이익 역시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전체 자산에서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에 대한 비중을 높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다만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이 높아진 상황을 고려하면 Fed의 정책 스탠스 변화 과정에서 단기적으로 주식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주식 외에 채권, 달러자산, 금 등에도 자산을 배분해 안정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들어 매 분기마다 자산들의 투자 성과가 매우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주식시장만 보아도 업종별로 순환매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특정 시점에서 어떤 자산이 우수한 성과를 낼지 예측해 그 하나에만 투자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켓 타이밍은 신의 영역’이라는 얘기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시장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다양한 자산에 투자 기회를 열어놓고 고르게 비중을 확보하는 대응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직접 주식, 채권 등 다양한 자산에 고르게 투자하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각각의 자산에 적정 비중을 배분해 직접투자를 하는 것뿐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 상황에 따라 꾸준히 리밸런싱을 해주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펀드를 비롯한 투자 상품을 활용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특히 최근에는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면서 시장 국면에 따라 비중을 조절해주는 상품까지 나와 있기 때문에 본인의 투자 성향에 맞는 상품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 좋다. 또한 신뢰할 수 있는 금융기관에서 자문 및 자산관리 서비스를 받는 것도 바람직하다.
특히 투자 경험이 적은 개인이라면 군중심리에 흔들리기 쉽기 때문에 시장 상승 국면에서 고점 매수하고 시장이 하락할 때 저점 매도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다면 자산 배분과 리밸런싱을 통해 시장의 변동성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시장의 흐름에 따른 다양한 변화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기다.
천재호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