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증시, ‘주춤’…서학개미 다음 카드는


글로벌 증시가 예사롭지 않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파죽지세였던 미국 증시가 하반기 초입에 들어 변동성이 커지는 모습이다. 코로나19 변이인 델타 바이러스 확산과 함께 인플레이션 우려, 기업 실적과 관련한 ‘피크아웃’ 논란 등의 불확실성이 겹쳐진 탓이다. 서학개미들의 고민도 그만큼 깊어질 수밖에 없다.

올 하반기 미국 시장은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 등장이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양호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다우 지수와 나스닥 지수도 연일 최고점을 갈아치우는 모습이다. 이는 변이 바이러스 등장이 오히려 각국 정부의 통화 긴축 움직임에 제동을 걸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글로벌 증시를 끌어올린 유동성 장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안도 랠리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 투자 열풍…덩치 키우는 ‘서학개미’
미국 주식시장의 양호한 흐름은 해외 투자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지난해 해외 투자 열풍으로 크게 증가한 ‘서학개미’도 갈수록 세를 확대하는 모습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공개한 자금 순환 동향에 따르면 국내 가계가 올해 1분기 중 취득한 국내 주식은 36조5000억 원, 해외 주식은 12조5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09년 통계 편제 이후 최대치이자, 직전 최대치인 지난해 3분기 국내 주식 23조5000억 원, 해외 주식 8조3000억 원을 크게 넘어서는 수준이다.

가계가 가진 금융 자산의 형태별 비중을 보면 주식 비중이 20.3%로 처음으로 20%대를 넘어섰고, 펀드까지 포함하면 22.7%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예금 비중은 1년여 만에 3.2%포인트 줄어들어 40%대를 위협받고 있다. 국내외 주식투자가 가계 자산관리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매김했다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무엇보다 지속된 저금리 기조와 함께 코로나19 사태 이후 글로벌 자산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자 빚내서 투자하는 ‘빚투’ 열풍이 심화된 것이 주된 배경으로 작용했다. 실제 올해 1분기 가계가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돈은 52조8000억 원가량으로 지난해 1분기(15조2000억 원) 대비 3배 이상 크게 늘었다.

일단 이 같은 빚투 열풍은 나쁘지 않은 성과로 이어졌다. 올 상반기 동안 코스피 상승률은 15% 가까이 상승하며 세계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아르헨티나, 러시아, 프랑스, 캐나다, 유럽연합(EU) 등에 이어 일곱 번째로 높은 수익률을 나타냈다.
서학개미들이 주로 투자한 미국 주식 역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 14%, 다우존스30산업평균 지수 12.5%, 나스닥 지수 11.4% 등으로 양호한 상승률을 기록했다.

“美 하반기 실적 장세 기대”
미국 시장은 여전히 해외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 글로벌 경제 생태계의 변화를 이끄는 4차 산업혁명의 진원지이자, 코로나19로 인해 주목받고 있는 비대면 산업의 대표주자들이 즐비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마존을 비롯해 애플, 구글 등 미국 빅테크 종목들은 코로나19 재확산 우려에도 불구하고 연일 신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올 초까지만 해도 지난 한 해 동안 급등했던 성장주 자리를 가치주가 대신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던 점에 비쳐봐도 상반된 흐름이다.

이는 미국 10년물 국채금리의 하락과 함께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직접 시장 달래기에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에 해외투자자들 역시 당초 우려보다는 양호한 성과를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서학개미들이 많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빅테크 종목은 MAGA(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아마존)로 6월 말 기준 89억7000만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올 하반기 ‘실적 장세’ 기대감도 여전하다. 현재 미국 증시에 상장된 500대 기업(S&P500)의 2분기 순이익 성장세는 전년 대비 60%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는 1분기 순이익 증가율(52.5%)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지난해 2분기 순이익이 코로나19 충격으로 32%가량 급감한 것과 비교하면 어닝 서프라이즈라는 평가도 가능해 보인다. 이 같은 실적 기대감으로 인해 S&P500 지수도 올 들어 17%에 가까운 상승세를 나타냈다.

미국 증시를 둘러싼 과열 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이 미국 시장을 가장 유망하게 보고 있다.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최근 스페인 바르셀로나 IESE 경영대학원이 ‘eXapital’ 등과 공동으로 실시한 투자 환경 분석 결과, 미국이 세계 124개국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투자처라는 결과를 내놨다. 미국에 이어 영국, 일본, 독일, 캐나다 등이 상위 5개국에 자리했으며, 한국은 9위에 이름을 올렸다. 권역별로는 북미와 호주, 서유럽이 매력적인 투자처로 꼽혔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 등장을 역발상 투자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올 들어 성장주냐 가치주냐의 논란이 지속되고 있고, 미 국채금리 상승세가 주춤해지면서 성장주 투자에 좀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며 “하지만 델타 변이가 사망률 측면에서 심각한 위험이 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확산세가 주춤해지면 가치주 및 경기민감 섹터 비중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피크아웃·거품론…“폭락장 온다” 경고도
미국 내에서는 ‘증시 거품론’을 둘러싼 논란도 지속되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S&P500 지수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22배 수준으로 최근 5년 평균인 18배보다 높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재 고평가가 심각한 종목으로는 FAANG(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등 서학개미들이 선호하는 대형 기술주들이 주로 거론되고 있다. 증시 거품론이 아니더라도 올해 2분기 기업 실적이 ‘정점’일 수 있다는 관측도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다.

미 10년물 국채금리의 하락세도 증시 거품론을 가열시키는 또 다른 요인이다. 통상적으로 미 국채의 장단기 금리 차는 경기 둔화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지표로 활용되고 있는데, 단기물과 장기물의 금리가 ‘단고하저’로 역전되는 경우 경기 침체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 Fed가 직접 테이퍼링 논의를 공식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물 국채의 하락세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일관된 분석이다.

여기에 치솟는 미국 부동산 가격과 인플레 우려 또한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모습이다. WSJ는 7월 초 기업, 학계, 금융기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2021~2023년까지 2.58%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고 밝혔다.
이는 미 Fed의 목표치인 2%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이자, 지난 1993년 이후 최고치다. 특히 경제주체들이 예상하는 미래 물가상승률인 기대인플레이션은 5%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어 통화정책을 둘러싼 고민은 갈수록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WSJ 측도 “전문가들의 전망이 맞는다면 Fed가 인플레를 통제하기 위해 예상보다 더 빨리 기준금리를 올려야 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블룸버그통신도 올 들어 치솟는 집값이 각국 중앙은행들의 최대 딜레마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한국을 비롯해 유럽중앙은행(ECB)과 영국은행, 캐나다 중앙은행 등이 집값 안정을 위한 중앙은행 차원의 정책 결정을 압박받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재택근무 확산 및 대출 확대 등으로 집값 상승세가 가파르다는 점에서 중앙은행의 딜레마가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확산을 계기로 증시 대폭락을 예견하는 전문가들의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일본 버블, 닷컴 버블, 2008년 부동산 버블 등을 예측한 제러미 그랜섬 GMO 창업자는 지난 1년간의 주식시장 강세에 대해 “11년 상승장의 피날레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예측의 근거로 그는 시장 상위 10% 주식의 주가매출비율(PSR)이 2000년 닷컴 버블 때와 비교해 훨씬 비싸게 거래되고 있으며, 기록적인 장외주식 및 동전주 거래량 역시 ‘빚투’가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그랜섬은 버블의 마지막은 변동성이 큰 종목이 먼저 하락하고, S&P 지수는 잠시 상승세를 유지하다가 결국 크게 하락한다고 경고했다.

영화 <빅쇼트>의 주인공이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한 마이클 버리 사이온자산운용 창업자도 미 증시의 폭락 가능성을 꾸준히 경고해 왔다. 그는 “전 세계에 역대급 투기적 버블이 나타나고 있다”며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버리 역시 개인투자자들의 빚투로 인해 더 이상 증시에 투입할 자금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을 폭락의 전조로 해석했다.
또 ‘헤지펀드의 전설’로 불리는 스탠리 드러켄밀러도 “지금의 상승장은 닷컴 버블을 연상케 한다”며 “시장이 과열됐다는 점은 잘 알고 있지만 투자자들이 빠져나올 시점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 역시 투자 대가들의 비관적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블랙록은 7월 초 연중 보고서를 통해 미국 주식에 대한 투자 의견을 ‘비중 확대’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올 들어 S&P500 지수가 20% 가까이 급등하는 등 미국 주식의 상승 모멘텀이 정점을 찍었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함께 블랙록은 미국 정부의 증세 움직임과 규제 강화가 대형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소형주에 대해서는 긍정적 시각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리스크 관리 필요…유럽 등 투자 다변화
미국 증시를 둘러싼 우려가 커지면서 유럽 등 상대적으로 저평가 국면의 해외 주식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미국 증시에 대해 부정적 전망을 내놨던 블랙록은 유럽과 일본 주식에 대해서는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유럽은 기존 ‘중립’에서 ‘비중 확대’로 일본 주식은 ‘비중 축소’에서 ‘중립’으로 투자 의견을 조정했다.

블랙록은 유럽의 경우 코로나19 백신 접종에서 앞서가고 있으며, 주가 밸류에이션 역시 역사적으로 낮다고 분석했다. 특히 정보기술(IT)과 금융주의 상대적 매력도가 높다고 평가했다. 또 일본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경기 회복세가 일본 기업들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코로나19 방역 상태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랜섬은 한발 더 나아가 신흥국 주식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미국 증시와 비교해 신흥국 증시가 역사적 저평가 국면에 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자산의 상당 부분을 신흥국 가치주에 투자할 경우 연간 10~20% 수준의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증시 불안기에는 배당주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코로나19의 추가 변이 발생 등 앞으로도 시장 불안이 지속될 수 있는 만큼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는 ‘기초체력’이 튼튼한 배당주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배당주는 글로벌 투자 트렌드인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기업들이 지배구조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위해 배당을 늘려 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실제 ESG 투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규모의 유동성을 빨아들이고 있다.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상반기 동안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빠져나간 돈은 무려 4조5000억 원대에 달했지만, 오히려 주식형 ESG 펀드에는 1조 원의 자금이 유입됐다. 또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ESG와 유사한 성격의 글로벌 사회적책임투자펀드에 유입된 자금은 무려 200조 원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공인호 기자 ball@hankyung.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