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if in Art] 활(archery): 확고한 응징과 위험한 장난
입력 2021-08-30 16:37:57
수정 2021-09-23 18:06:25
대한민국은 스포츠 양궁에서 세계 제일이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4개를 획득하며
여전한 실력을 과시했다. 새로 생긴 혼성 단체전에서도 한국이 수위를 차지하며 양궁 강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활을 든 남성과 여성의 이미지는 미술작품에 자주 등장하는데, 옛 신화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활 쏘는 아폴로와 디아나
활은 선사 시대부터 인류가 사용한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인 공격 무기였다. 사냥과 전쟁은 물론 제의, 놀이, 심신 단련을 위해서도 활쏘기가 이뤄졌다. 표적을 정확히 맞추려면 숙련된 기술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옛날에는 그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지도자로 숭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스신화의 수많은 신 중에서도 으뜸인 아폴론은 태양, 이성, 의술, 시, 음악의 신이면서 궁술의 신이기도 하다. 로마 시대에는 아폴로라 불리며 태양신 헬리오스와 동일시돼 더욱 높은 지위를 얻었다. 아폴론의 쌍둥이 남매 아르테미스도 여신 중에서 활을 가장 잘 쏘았다. 로마신화의 디아나와 같은 여신으로 사냥과 숲, 달의 여신이며 처녀로서 순결을 상징한다.
18세기 독일 화가 라파엘 멩스(Anton Raphael Mengs, 1728~1779년)의 작품에서 신들이 활을 쏘는 역동적인 장면을 볼 수 있다. 하루 네 가지 시간을 신화의 인물로 각각 의인화한 그림들이다. 그중 <낮의 의인화 헬리오스>에서는 태양신 헬리오스, 즉 아폴로가 파란 하늘에서 후광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을 등지고 땅을 향해 불화살을 당기고 있다. <밤의 의인화 디아나>에서는 여신 디아나가 보름달이 뜬 밤에 사냥을 하려고 등에 멘 화살통에서 막 화살을 꺼내고 있다.
이들은 아름다운 청년과 처녀의 모습이지만, 낮과 밤을 관장하는 지배자로서 부당한 자에게는 엄중히 징벌의 화살을 날린다. 그들은 어머니 라토나(레토) 여신에게 인간 니오베가 자식 자랑을 하며 교만을 떨자 그녀의 아들 딸 14명을 활로 쏴서 몰살한 바 있다. 미소년과 미소녀의 얼굴 뒤에 무시무시한 복수심을 감추고 있다는 것은 두렵고도 매혹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많은 미술작품에서 통치자나 귀족이 그 신들의 모습을 빌어 사냥꾼으로 등장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디아나로 변신한 퐁파두르
로코코 시대에 프랑스 궁정에서는 왕실 여성의 초상화를 그릴 때 흔히 신화의 인물에 빗대어 표현하곤 했다. 루이 15세의 애첩 퐁파두르 여후작은 화가들을 후원하며 본인의 초상화를 자주 제작하도록 했다. 많은 작품에서 퐁파두르는 비너스나 디아나 같은 여신 이미지와 결합돼 품위 있고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그려진다.
<사냥꾼 디아나 모습의 퐁파두르>에서는 활을 들고 사냥의 여신으로 등장한다. 이 그림은 역사화를 그리다가 귀족들의 초상화가로 성공한 장 마르크 나티에(Jean-Marc Nattier, 1685~1766년)의 작품이다. 그림에서 디아나로 변신한 퐁파두르는 잠시 사냥을 멈추고 쉬는 듯 정면을 향해 편안히 앉아 있다. 하얀 옷을 느슨하게 걸치고 어깨와 가슴을 거의 노출해 매끈한 우윳빛 피부가 드러난다. 비단처럼 부드럽고 광택 나는 옷감은 사냥을 위해서라기보다 인물을 여성스럽고 우아하게 보이기 위해 선택한 듯하다.
겉에 두른 표범 털가죽이 사냥을 암시하며 여신 디아나를 상징한다. 퐁파두르는 홍조를 띤 뺨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 느긋이 앞을 바라보고 있다. 꿈꾸듯 응시하는 맑은 눈빛과 온화한 표정은 아름답고 순수하며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국적인 야성미와 함께 에로틱한 매력을 풍기면서도 귀족적인 품위를 잃지 않는다. 디아나와 결합한 퐁파두르는 여유롭고 상냥하며 확고하고 당당하다.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진 능력 있는 여성의 이미지다.
큐피드의 위험한 장난
아폴로와 디아나 외에 신화에서 항상 활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존재가 있다. 흔히 날개 달린 어린아이로 묘사되는 사랑의 신 큐피드다. 큐피드는 아이답게 때론 천진난만하고 때론 짓궂은 장난으로 화살을 날리는데 그걸 맞으면 무조건 사랑의 포로가 된다. 큐피드가 가진 화살은 금화살과 납화살 두 종류라서 금화살을 맞으면 그 직후 처음 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납화살을 맞으면 처음 본 사람을 증오하게 된다.
궁술의 신 아폴로마저도 큐피드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아폴로는 큐피드의 활솜씨를 놀리다가 금화살을 맞고 처음 본 다프네에게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납화살을 맞은 다프네는 아폴로가 끔찍이 싫어서 도망가다 월계수가 돼버린다. 사랑이란 어린아이가 쏜 화살처럼 우발적이고 맹목적이며 툭하면 어긋나고 통제하기 어렵다.
미술작품에서는 큐피드의 무책임한 장난을 경고하는 장면도 자주 다뤘다. 18세기 이탈리아 화가 폼페오 바토니(Pompeo Batoni, 1708~1787년)는 디아나가 큐피드의 화살을 빼앗는 장면을 그렸다. 바토니는 종교화와 신화 그림뿐 아니라 고전풍으로 정밀한 초상화를 잘 그렸다. 대여행 붐을 타고 이탈리아를 방문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외국까지 명성을 떨쳤다.
<디아나와 큐피드>라는 그림은 영국의 부유한 은행가 험프리 모리스 경이 주문한 것이다. 그는 이 그림과 함께 로마 시골에서 사냥 후 휴식하는 자신의 초상화를 한 쌍으로 의뢰했다. 이 그림에서 디아나는 큐피드의 활을 빼앗아 높이 치켜들고 있다. 큐피드는 장난감을 돌려달라는 듯이 손을 뻗으며 디아나의 무릎에 오르려 한다. 디아나는 큐피드를 꾸짖지 않고 자애롭게 내려다보면서 금지의 제스처를 확실히 보여준다. 자연은 평화롭기만 하고, 마치 어머니와 아들이 즐겁게 놀이를 벌이는 것 같다.
제멋대로 활을 쏘는 큐피드는 철없는 방종에 대한 비유이며, 활을 잘 다루는 디아나는 훌륭한 롤 모델이요, 교사인 셈이다. 바토니의 그림은 계몽주의 시대의 바람직한 아동교육의 태도를 보여준다. 아동은 확신과 인내를 가지고 친절하면서도 단호하게 인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글 박은영 서울하우스 편집장·미술사가
여전한 실력을 과시했다. 새로 생긴 혼성 단체전에서도 한국이 수위를 차지하며 양궁 강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활을 든 남성과 여성의 이미지는 미술작품에 자주 등장하는데, 옛 신화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활 쏘는 아폴로와 디아나
활은 선사 시대부터 인류가 사용한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인 공격 무기였다. 사냥과 전쟁은 물론 제의, 놀이, 심신 단련을 위해서도 활쏘기가 이뤄졌다. 표적을 정확히 맞추려면 숙련된 기술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옛날에는 그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지도자로 숭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스신화의 수많은 신 중에서도 으뜸인 아폴론은 태양, 이성, 의술, 시, 음악의 신이면서 궁술의 신이기도 하다. 로마 시대에는 아폴로라 불리며 태양신 헬리오스와 동일시돼 더욱 높은 지위를 얻었다. 아폴론의 쌍둥이 남매 아르테미스도 여신 중에서 활을 가장 잘 쏘았다. 로마신화의 디아나와 같은 여신으로 사냥과 숲, 달의 여신이며 처녀로서 순결을 상징한다.
18세기 독일 화가 라파엘 멩스(Anton Raphael Mengs, 1728~1779년)의 작품에서 신들이 활을 쏘는 역동적인 장면을 볼 수 있다. 하루 네 가지 시간을 신화의 인물로 각각 의인화한 그림들이다. 그중 <낮의 의인화 헬리오스>에서는 태양신 헬리오스, 즉 아폴로가 파란 하늘에서 후광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을 등지고 땅을 향해 불화살을 당기고 있다. <밤의 의인화 디아나>에서는 여신 디아나가 보름달이 뜬 밤에 사냥을 하려고 등에 멘 화살통에서 막 화살을 꺼내고 있다.
이들은 아름다운 청년과 처녀의 모습이지만, 낮과 밤을 관장하는 지배자로서 부당한 자에게는 엄중히 징벌의 화살을 날린다. 그들은 어머니 라토나(레토) 여신에게 인간 니오베가 자식 자랑을 하며 교만을 떨자 그녀의 아들 딸 14명을 활로 쏴서 몰살한 바 있다. 미소년과 미소녀의 얼굴 뒤에 무시무시한 복수심을 감추고 있다는 것은 두렵고도 매혹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많은 미술작품에서 통치자나 귀족이 그 신들의 모습을 빌어 사냥꾼으로 등장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디아나로 변신한 퐁파두르
로코코 시대에 프랑스 궁정에서는 왕실 여성의 초상화를 그릴 때 흔히 신화의 인물에 빗대어 표현하곤 했다. 루이 15세의 애첩 퐁파두르 여후작은 화가들을 후원하며 본인의 초상화를 자주 제작하도록 했다. 많은 작품에서 퐁파두르는 비너스나 디아나 같은 여신 이미지와 결합돼 품위 있고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그려진다.
<사냥꾼 디아나 모습의 퐁파두르>에서는 활을 들고 사냥의 여신으로 등장한다. 이 그림은 역사화를 그리다가 귀족들의 초상화가로 성공한 장 마르크 나티에(Jean-Marc Nattier, 1685~1766년)의 작품이다. 그림에서 디아나로 변신한 퐁파두르는 잠시 사냥을 멈추고 쉬는 듯 정면을 향해 편안히 앉아 있다. 하얀 옷을 느슨하게 걸치고 어깨와 가슴을 거의 노출해 매끈한 우윳빛 피부가 드러난다. 비단처럼 부드럽고 광택 나는 옷감은 사냥을 위해서라기보다 인물을 여성스럽고 우아하게 보이기 위해 선택한 듯하다.
겉에 두른 표범 털가죽이 사냥을 암시하며 여신 디아나를 상징한다. 퐁파두르는 홍조를 띤 뺨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 느긋이 앞을 바라보고 있다. 꿈꾸듯 응시하는 맑은 눈빛과 온화한 표정은 아름답고 순수하며 신비롭기까지 하다. 이국적인 야성미와 함께 에로틱한 매력을 풍기면서도 귀족적인 품위를 잃지 않는다. 디아나와 결합한 퐁파두르는 여유롭고 상냥하며 확고하고 당당하다.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진 능력 있는 여성의 이미지다.
큐피드의 위험한 장난
아폴로와 디아나 외에 신화에서 항상 활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존재가 있다. 흔히 날개 달린 어린아이로 묘사되는 사랑의 신 큐피드다. 큐피드는 아이답게 때론 천진난만하고 때론 짓궂은 장난으로 화살을 날리는데 그걸 맞으면 무조건 사랑의 포로가 된다. 큐피드가 가진 화살은 금화살과 납화살 두 종류라서 금화살을 맞으면 그 직후 처음 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납화살을 맞으면 처음 본 사람을 증오하게 된다.
궁술의 신 아폴로마저도 큐피드의 화살을 피하지 못했다. 아폴로는 큐피드의 활솜씨를 놀리다가 금화살을 맞고 처음 본 다프네에게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납화살을 맞은 다프네는 아폴로가 끔찍이 싫어서 도망가다 월계수가 돼버린다. 사랑이란 어린아이가 쏜 화살처럼 우발적이고 맹목적이며 툭하면 어긋나고 통제하기 어렵다.
미술작품에서는 큐피드의 무책임한 장난을 경고하는 장면도 자주 다뤘다. 18세기 이탈리아 화가 폼페오 바토니(Pompeo Batoni, 1708~1787년)는 디아나가 큐피드의 화살을 빼앗는 장면을 그렸다. 바토니는 종교화와 신화 그림뿐 아니라 고전풍으로 정밀한 초상화를 잘 그렸다. 대여행 붐을 타고 이탈리아를 방문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외국까지 명성을 떨쳤다.
<디아나와 큐피드>라는 그림은 영국의 부유한 은행가 험프리 모리스 경이 주문한 것이다. 그는 이 그림과 함께 로마 시골에서 사냥 후 휴식하는 자신의 초상화를 한 쌍으로 의뢰했다. 이 그림에서 디아나는 큐피드의 활을 빼앗아 높이 치켜들고 있다. 큐피드는 장난감을 돌려달라는 듯이 손을 뻗으며 디아나의 무릎에 오르려 한다. 디아나는 큐피드를 꾸짖지 않고 자애롭게 내려다보면서 금지의 제스처를 확실히 보여준다. 자연은 평화롭기만 하고, 마치 어머니와 아들이 즐겁게 놀이를 벌이는 것 같다.
제멋대로 활을 쏘는 큐피드는 철없는 방종에 대한 비유이며, 활을 잘 다루는 디아나는 훌륭한 롤 모델이요, 교사인 셈이다. 바토니의 그림은 계몽주의 시대의 바람직한 아동교육의 태도를 보여준다. 아동은 확신과 인내를 가지고 친절하면서도 단호하게 인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글 박은영 서울하우스 편집장·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