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인구 '절벽' 논쟁…한국 부동산 영향은



“세계 인구는 20세기 이후 120년 동안 지속돼 온 팽창 시대가 마무리되고 감소 국면에 접어들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인구통계학적 변화가 앞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빅 체인지를 몰고 올 것”이라는 등의 보고서들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 세계 인구절벽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국가가 중국과 한국이다. 10년마다 조사하는 중국의 인구 센서스 통계 발표를 앞두고 영국의 경제 전문지인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해 중국 인구가 감소됐다”는 보도에 중국 정부는 “사실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증가했다”고 반박했지만, 최근에는 인구절벽 대책 차원에서 사교육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중국의 인구 증감은 세계 경제에 중요한 변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고 글로벌화와 디지털화가 진전되면서 저개발국 등 제도권 밖에 머물던 노동력 공급이 정체되는 또 다른 ‘루이스 전환점’을 맞아 중국의 인구 증감은 세계 노동력과 임금 수준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78년 덩샤오핑이 개방화를 표방한 이후 세계 경제는 중국 인구와의 최적 조합인 ‘스위트 스폿’ 기간을 누려 왔다. 중국의 생산가능인구가 세계 고용시장에 본격적으로 편입하기 시작했던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고성장-저물가’라는 종전의 경제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신경제’ 국면이 나타났다.

‘중국 인구가 감소했느냐’를 놓고 벌이는 인구절벽 논쟁은 세계 경제에 최대 복병으로 대두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찰스 굿하트 영국 런던대 교수가 최근 출간한 <인구 대역전(The Great Demographic Reversal)>을 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해빙될 무렵 세계 인구가 감소하면 세계 물가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 인구 감소에 따라 인플레이션 발생 여부는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국민 경제생활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인구 증가로 저물가 여건이 지속될 때 각국 중앙은행은 전통적인 목표였던 ‘물가 안정’에 대한 부담이 적어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금융완화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됐다.

저물가 유지 여부는 금융위기 때보다 더 강도 있는 금융완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 이후가 더 중요하다. 중국 인구 감소로 저물가 기조가 흔들린다면 테이퍼링을 추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백신 보급으로 세계 경제가 ‘회복의 싹’이 막 돋는 상황에서 테이퍼링을 추진할 경우 재침체 국면에 빠질 수 있다.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장기간 저금리 국면에 잠복돼 왔던 빚의 복수가 시작되고 자산 거품도 붕괴되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높다. 세계 빚(국가+민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세계 빚은 2007년 113조 달러에서 지난해 3분기 말에는 221조 달러로 87% 증가했다. 한국은 가계부채가 많은 나라다.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대부분 예측기관은 앞으로 세계 경제가 빚 부담을 연착시키지 못할 경우 ‘복합 불황’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기준금리 등 정책 수단이 제자리에 복귀되지 않은 여건에서 자산가격이 하락하면 경제주체의 부채상환 능력이 떨어지고 정책 대응마저 쉽지 않아 1990년대 일본 경제의 전철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고령화 급진전…집값 영향은
한국도 출산율이 낮아지는 추세 속에 고령화가 급진전됨에 따라 가구주의 연령별 분포도 빠르게 변화하는 국가다. 전체 인구 중 29세 이하 연령층의 비중이 급감하고 있는 반면, 50세 이상 연령층의 비중은 급증하는 추세다. 이 때문에 가구주 연령이 50세 이상인 가구 비중도 50% 이상으로 높아진 반면 29세 이하인 가구 비중은 한 자릿대로 떨어졌다.

앞으로 우리는 기대수명 연장과 출산율 저하 등으로 인구구조는 지금 속도보다 더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출산율과 빠른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2050년이 되면 우리의 노령화 지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을 것으로 추정됐다.

유엔 분류상 우리는 이미 2000년에 ‘고령화사회’, 2018년에는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유엔에서는 65세 이상 인구가 총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가 넘을 경우 ‘고령화사회’, 14%가 넘을 경우 ‘고령사회’, 20%가 넘을 경우 ‘초고령사회’라고 부른다.

우리 인구는 2030년까지는 증가할 것으로 보이나 연평균 10만 명 정도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그 결과 우리 인구구조는 1980년에는 전형적인 ‘피라미드형’에서 오는 2040년에는 ‘역피라미드형’으로 완전히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생산함수에서 보듯이 인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각국의 소비함수와 투입산출(I/O)표를 통해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소비지출, 생산유발액, 부가가치액, 고용창출 규모 등을 모두 산출할 수 있다. ‘앞으로 어떤 유망 산업이 떠오를 것인가’ 추정도 가능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부동산 가격을 예상하는 인구통계학적 이론이다. 6년 전 “한국 부동산(특히 강남) 시장이 인구절벽에 따라 장기 침체에 접어들 것”이라는 예상했던 해리 덴트의 <인구절벽(The Demographic Cliff)>이 대표적이다. 같은 해 5대 시중은행장의 강남 집값 15% 폭락 예측도 같은 근거에서다.

금융위기 이전까지 부동산 시장 예측에 관한 한 정확하다고 평가받던 덴트는 2010년을 기점으로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할 경우 미국 부동산 시장과 경기는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 비용을 충당할 재원이 충분치 않아 보유 부동산을 처분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역(逆)자산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주가가 경기에 1년 정도 앞서간다면 2009년은 포트폴리오와 자산 분배 전략을 크게 수정해야 할 중요한 해로 지목했다. 2010년 이후 미국 경기가 장기 침체에 들어가면 직전 해에는 그때까지 보유한 주식을 모두 처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미국 경기와 주가는 회복되기 시작해 전후 최장의 호황 국면과 강세장을 구가하고 있다.

은퇴 후 삶의 수단으로 주식 보유 비율이 미국보다 적은 한국으로서는 인구통계학적 이론이 최소한 자가 소유(특히 아파트) 시장을 예측하는 데 유용한 것으로 평가돼 왔다. 1960년대부터 이명박 정부 출범 2년까지 세대가 지날수록 자산 계층이 두텁게 형성됨에 따라 아파트 가격이 한 단계씩 뛰었다.

그 이후 박근혜 정부 출범 2년 때까지 4년 동안 부동산 시장이 침체 국면에 빠졌다. 예측기관과 부동산 전문가의 비관론도 쏟아져 나왔다. 네트워킹 효과와 심리적 요인이 겹쳐 국민들 사이에는 “이러다간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자 곧바로 부동산 가격을 띄워 경기 회복을 모색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당시 비관론의 근거는 하나같이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출산율이 낮고 고령화 속도가 빨라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 자산계층이 받쳐줄 가능성이 낮다”고 본 점이다. 특히 핵심 자산 계층인 45∼49세가 은퇴하기 시작하는 2018년 이후 한국 부동산 시장과 경기는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예상이 덴트가 쓴 <인구절벽>의 주된 내용이다.

덴트의 주장은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관할 대상이 바뀐 점을 무시한 결정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인구통계학적 이론이 맞으려면 통화정책 관할 대상에 자산 시장이 포함되지 말아야 한다(그린스펀 독트린).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자산 시장을 포함시켜 통화정책을 운용해 오고 있다(버냉키 독트린).

버냉키 독트린대로 통화정책을 운용할 경우 인구통계학적 이론에 따라 부동산과 같은 실물투자 수익률이 낮게 예상되더라도 금융 차입 비용이 빨리 올라가는 것을 통제할 경우 거품 붕괴를 막을 수 있다. 아직도 한국 부동산 시장(특히 강남)이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보는 예측기관과 부동산 전문가는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인구졀벽 충격파 대비해놔야
인구구조 변화로 우리 가계의 소비지출 추이를 보면 전체 소비는 1980년 이후 2020년까지 연평균 10% 정도 증가했다. 품목별로는 교육, 교양·오락, 교통·통신 등 선택적 성격의 소비지출이 늘어난 반면, 식료품 등 의식주 관련 필수적 소비지출은 낮은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최근으로 올수록 보건·의료와 교육비 지출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이를 토대로 한국은행이 추정한 소비함수를 이용해 오는 2030년에 예상되는 부문별 소비구조를 2008년과 비교해보면 식료품, 광열·수도 등의 소비지출 비중은 낮아지고 교육, 교통·통신, 보건·의료, 기타 소비 등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인구구조 변화가 대부분 품목에서 소비지출 변화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암시해주는 대목이다.

2030년 소비지출액이 2008년과 같다는 전제하에 산업연관표의 생산유발계수를 이용해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생산유발액이 3조 원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산업별로는 교육 부문이 무려 10조 원 이상 급감하는 반면, 금융·보험 등 기타 서비스는 5조 원, 보건·의료는 4조 원, 교통·통신 1조2000억 원 등 대부분 서비스 부문의 생산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또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산업별 고용창출 능력을 추정해보면 교육 부문은 오는 2030년이 되면 약 25만 개 이상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금융·보험 등 기타 서비스에서 5만 개, 보건·의료 4만 개, 도소매 3만5000개, 교양·오락 1만 개, 교통·통신 1만2000개 등에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추정됐다.

우리 성장에 직결되는 부가가치는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전체적으로 약 400조 원이 유발되는 가운데 산업별 구성은 생산 유발 규모와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별로 추정되는 부가가치를 보면 인구구조 변화로 2030년에는 금융·보험, 부동산·사업서비스, 공공행정·국방, 사회복지서비스 등 서비스 분야에서 국내총생산(GDP) 기여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향후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소비지출과 이에 따른 생산유발액, 고용창출인력, 부가가치액 등을 감안하면 금융·보험업, 보건·의료, 교양·오락, 교통·통신, 석유화학 등이 가장 유망한 것으로 나온다. 투자자들은 이들 업종과 위기 이후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녹색, 모바일, 임팩트 등 3대 혁명과 관련된 주식에 투자하면 의외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자산 가격과 실물경제를 진단하고 예측하는 인구통계학적 이론이 다 맞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과의 경제 비중이 높고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고 고령화 속도가 빠른 국가다. 우리만큼은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는 인구절벽에 따른 충격에 대비해놓아야 할 때다.

개인 차원에서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아 가는 ‘K자형 양극화 구조’가 정착되는 시대에 있어서는 어느 분야든 관계없이 남과 확실히 구별될 수 있는 전문 지식과 능력을 겸비해야 재테크에 성공하고 인생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다.

글 한상춘 한경미디어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사진 한국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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