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토리]"'미래의 나'를 위한 투자는 멍청한 게 아냐"

빅스토리/ 전문가 3인의 직설 조언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


노후 준비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는 많다. 하지만 말만 그렇게 하고 시작조차 못한 이들도 많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몰라서일 수도 있고, 아직은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다. 젊어서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하다가 나이 들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면, 그제서야 부랴부랴 서두르기 일쑤다. 그래서 이제 막 노후 준비를 시작하려고 하거나, 마음은 있지만 쉽사리 시작하지 못하는 이들이 참조할 만한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하려고 한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 사이의 연결성을 강화한다
먼 미래의 ‘늙은 나’을 위해 ‘젊은 나’가 월급봉투에서 수십만 원씩 빼두는 것은 멍청하게 보일 수도 있다. 마치 옆집 아주머니나 뒷집 아저씨를 위해 저축하는 것처럼. 당장 수입이 많지 않은 까닭에 미래를 위해 저축하기보다는 지금 인생을 즐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중에 상당한 봉급을 받게 되면 전혀 어렵지 않게 노후 대비 저축을 많이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009년 할 허시필드 교수팀은 스탠퍼드대 학생 164명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먼저 실험참가자들이 '현재의 나'가 10년 뒤 '미래의 나'에 대해 느끼는 동질감을 살펴보기 위해 아래의 일곱 가지 동심원 쌍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와 많이 닮았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2개의 동심이 많이 겹쳐진 것을 고르면 된다.

하지만 웬만해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댄 애리얼리 듀크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인의 30%는 은퇴에 대비한 저축을 너무 소홀히 한 바람에 노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80세까지 돈을 벌어야 한다고 한다. 미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78세인 점을 감안하면, 노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직 2년 더 일을 해야 하는 바로 그 시점에 사망한다는 뜻이다.

실험참가자들이 동심원을 선택하고 나면, 미래 준비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설문조사를 했다. 이렇게 두 조사 결과를 서로 비교해본 결과 허시필드 교수팀은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와 많이 닮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미래를 위한 준비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노후 대비 저축을 한다는 것은 미래의 즐거움을 위해 현실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후 대비 저축을 늘리려면 현재의 자아와 미래의 자아 사이의 연결성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 내가 저축하는 돈을 찾아 쓰는 것은 옆집 아저씨나 뒷집 아줌마가 아닌 미래의 자신이라는 점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머스 캐럴>에서 수전노 스크루지가 개과천선할 수 있었던 것도 꿈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지켜본 다음이었다.

스스로를 묶는 율리시스 약정을 활용하라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이것으로 노후 대비 저축을 시작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내 현실의 소비 유혹에 이내 무너지고 많다. 수많은 뱃사람들이 사이렌의 유혹에 홀려 바닷물에 수장됐던 것처럼.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만, 시작은 그저 시작일 뿐이다. 그걸 끝까지 해내지 못하면.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율리시스와 사이렌 얘기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사이렌이 노래를 부르면 근처를 지나는 뱃사람들은 정신을 잃고 배가 좌초되면서 목숨을 잃었다. 율리시스 또한 사이렌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유혹하면 자신과 부하들이 바닷물에 수장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율리시스는 사이렌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래서 부하들에게 명령에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으라고 명령했다. 이렇게 하면 사이렌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그 목소리에 홀려 바다에 몸을 던지는 행동은 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노를 젖는 부하들에게는 귀를 밀랍으로 막으라고 했다. 부하들이 사이렌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는 동시에, 자신을 돛대에서 풀어달라고 하는 소리도 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해서 율리시스는 사이렌의 노래를 들으며 죽음의 바다를 무사히 건넜다.

이처럼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를 박탈해 스스로에게 어떠한 선택권도 주지 않는 것을 ‘율리시스 약정’이라고 한다. 율리시스 약정은 노후 대비 저축을 늘리는 데도 효과가 있다. 중도에 해지 하기 어려운 금융상품에 노후자금을 적립하는 것이다. 연금저축과 개인형퇴직연금(IRP)과 같은 연금계좌가 대표적이다. 이들 연금계좌에는 저축하면 매년 최대 700만 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신 납입금액과 운용수익은 55세 이후에 연금을 수령해야 한다. 중도에 해지하면 여태껏 받았던 세제 혜택을 거의 전부 토해내야 한다.

때론 시행착오가 치밀한 계획보다 낫다
노후 준비. 혹시 매번 계획만 세우고 실천은 뒷전이지 않은가. 평안하고 행복한 노후를 가져다 줄 마스터플랜을 세우느라 정작 실행할 시간을 잃어버린다. 당신이 계획에만 집착해 허송세월하고 있는 것 같다면, '마시멜로 챌린지'라는 게임에 주목해보자.

이 게임은 익히지 않은 딱딱한 스파게티 면 20가닥, 90cm 길이의 실, 90cm 길이의 박스 접착 테이프, 마시멜로 1개를 가지고 구조물을 높이 쌓은 것이다. 게임에 참가자는 주어진 준비물을 이용해 구조물을 만든 다음 꼭대기에 마시멜로를 올려놓으면 된다. 목표는 마시멜로의 무게를 지탱하면서도 단독으로 설 수 있는 구조물을 쌓는 것이다.

팀원은 4명이고, 제한 시간은 18분이다. 주어진 시간 내에 가장 높은 구조물을 만든 팀이 승리한다. 창조전문가인 톰 워젝(Tom Wujec)은 2006년부터 2010년 사이에 다양한 집단을 대상으로 70회 이상 마시멜로 챌린지 대회를 열고, 그 성과를 측정했다. 경영학 석사학위(MBA) 학생, 최고경영자(CEO), 변호사, 건축가·공학자, 유치원생 등 다양한 집단 중 어떤 팀의 성과가 가장 좋았을까.

1등은 건축가와 공학자로 구성된 팀이 차지했다. 당연하다. 이들은 어떻게 해야 구조물을 안전하게 높이 세울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의아한 것은 유치원생이 2등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일반인 평균보다도 높게 탑을 쌓아 올렸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경영대학원생들이다. 이들이 쌓은 탑의 높이는 유치원생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경영대학원생은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높은 탑을 쌓을 수 있는 '한 가지 완벽한 방법'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 선택한 방식에 따라 탑을 쌓았다. 하지만 그들이 완벽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 사상누각에 불가할 때가 많았다. 대부분 첫 번째 시도에서 탑 꼭대기에 마시멜로를 올려놓자 곧바로 무너졌다. 부랴부랴 다른 방법을 찾지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유치원생은 달랐다. 이들은 게임이 시작되면 4~5분 사이에 첫 번째 시도를 했다. 그리고 18분 동안 평균 다섯 정도 탑 위에 마시멜로를 올려 놓았다고 한다. 그 결과 하나의 완벽한 방법을 찾아 심사숙고 한 경영대학원생보다 더 높은 탑을 쌓을 수 있었다.

노후 준비도 마찬가지다. 건축가나 공학자처럼 답을 알면 그대로 하면 된다. 하지만 노후 준비는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리는 일이다. 이 기간 동안 수많은 변수가 영향을 미친다. 애당초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한 가지 완벽한 방법’ 따위는 없을 지도 모른다. 있다고 해도 이를 알아내기도 힘들뿐더러, 알았냈더라도 중간에 바뀌기도 한다. 방법을 모르거나 알 수 없으면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게 낫다. 신중한 계획을 세우느라 허송세월하면, 다양하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개문발차(開門發車)'라는 말이 있다. 일단 시작부터 하고 보자는 것이다. 유치원생들처럼 그냥 들이댈 필요가 있다. 그러다 잘 안 풀리면, 그때 가서 고치면 된다.

오늘은 어제 입장에서 보면 내일이다. 사람들은 어제 하지 않은 일을 후회하고, 내일 일을 걱정하면서도, 오늘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지금 내가 어떤 일을 한다고 미래에 커다란 변화가 있으리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오늘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내일도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평균수명의 함정에 빠지지 마라
1940년대 말 미국 공군은 상상하기조차 싫은 황당한 일을 당했다. 하루 사이에 17명의 조종사가 추락한 것이다. 부랴부랴 사고 원인을 살펴봤다. 기계나 전자 장치의 오류 때문이었을까. 아니었다. 그러면 조종사의 실수 탓일까. 그것도 아니었다. 사고의 원인은 조종석의 설계에 있었다.

미국 공군은 조종사의 신체 부위를 키, 가슴둘레, 팔 등 10개 부위로 나누고 각 부분의 평균치에 맞춰 전투기 조종석을 설계했다. 하지만 사고가 난 다음 4063명의 조종사를 대상으로 신체 치수를 측정했더니 10개 전 항목에서 평균에 일치하는 조종사는 한 명도 없었다. 3개 항목에서 평균과 일치하는 사람도 3.5%에 불과했다. 평균에 맞춰 조종석을 설계했더니 평균에 맞는 조종사가 없었다.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호텔이나 피트니스센터 수영장이라고 해보자. 표지판에 평균 수심이 120cm라고 쓰여 있다. 누군가 수영장을 걸어서 건너오면 100만 원을 주겠다고 한다. 건너겠는가. 이번에는 똑같이 평균 수심이 120cm인 강가에 서 있다고 해보자. 이번에도 반대편으로 걸어서 건너오면 100만 원을 준다고 한다. 건너가겠는가. 앞서 내 수영장에서 건너겠다고 하던 사람도, 이번엔 망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묻는다. “어디가 수심이 깊죠?” “저 쪽은 물살이 셀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2.7세라고 하다. 하지만 평균은 평균일 뿐이다. 모든 한국인이 82.7세에 죽는다는 것은 아니다. 82.7세에 죽는 사람이 절반이면, 그 이후에도 죽는 사람도 절반 정도 된다. 따라서 우리가 평균수명이 82.7세인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실내 수영장이 아니라 강을 걸어서 건너는 것이다. 평균이 아니라 평균에서 벗어나는 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수명이 늘어난 만큼 돈의 수명도 늘려라
노후 준비를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수명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1970년대 당시 대한민국 20세 남성의 기대여명은 43.9세 였다. 1970년이면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이다. 만약 당시 20세 남성이 기대여명만큼만 살았다면, 지금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당시 20세였던 젊은이 중 상당수는 지금 건강하게 살아서 일흔을 맞이했다. 지금 일흔은 남성의 기대여명은 15.2세나 된다. 이처럼 인간의 수명을 예측하는 것은 고정된 타깃이 아니라 움직이는 이동 타깃을 맞추는 것이다.

날아가는 타깃을 맞추는 것으로 클레이 사격이 있다. 이동 타깃을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목표물을 정조준해서는 맞출 수 없다. 목표물의 날아가는 방향을 보고 앞쪽을 향해 쏴야 한다. 그리고 단발로 맞추기는 어렵다. 그래서 클레이 사격에 장전되는 탄환이 산탄(散彈)으로 돼 있다. 총을 쏘면 여러 개 쇠구슬이 옆으로 퍼져 나가는데, 이 중 하나가 타깃을 맞추면 된다. 노후 준비를 할 때도 지금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조준하고, 일발 적중보다는 오차를 허용하며 준비해야 해야 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오래 살 수 있다. 이때도 우리는 평안한 일상을 지키며 살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명이 늘어난 만큼 돈의 수명도 늘려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우선 수명에 베팅하는 방법이 있다. 종신토록 수령할 수 있는 연금을 구입하는 것이다. 수명이 늘어날수록 득이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절에는 스스로 일하는 만큼이나 돈에게 일을 시키는 방법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다.

글 정유진 기자 사진 김기남 기자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