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VR)로 아파트 내부를 꼼꼼히 둘러보고, 3차원(3D) 단지 투어로 전체적인 환경을 따져본다. 가상 인테리어 플랫폼을 통해 마음에 꼭 드는 집 안 환경까지 구상해본다. 프롭테크(proptech)가 만드는 부동산 문화의 변화는 바로 지금 시작됐다.
#1. 내 집 마련을 준비 중인 박 모(32) 씨는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의 3D 투어 서비스를 이용해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는 취미가 생겼다. 직접 현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관심 있는 집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고, 창밖을 내다봤을 때 어떤 조망이 펼쳐지는지도 확인할 수 있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근처 편의시설, 입지 장단점, 주변 시세까지 모두 부동산 플랫폼으로 알아보며 ‘가상 임장’을 다니는 재미에 푹 빠졌다.
#2.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재택근무로 9개월째 ‘집콕 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 이 모(34) 씨. 부부가 집에 함께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달라진 생활 패턴에 맞춰 인테리어를 변경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최근에는 가상 인테리어 서비스를 통해 현재 살고 있는 집에 어울리는 실내 디자인과 가구 배치를 3D로 조합해보고 있다. 이 씨는 “인테리어 방향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분위기에 휩쓸려 시공 계약을 했다가 후회한 적이 있다”면서 “가상 인테리어를 통해 원하는 집 안 환경을 충분히 고민해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국내 부동산 시장이 스마트하게 진화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서서히 불어온 프롭테크 바람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와 부동산 시장 열풍에 힘입어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지는 모습이다.
프롭테크는 부동산(property)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부동산 거래와 건설,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부동산 분야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것으로, 인공지능(AI), VR,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해 소비자들의 편리함을 극대화해주는 트렌드다. 업계에서는 부동산 산업의 미래 성장 동력이 다름 아닌 프롭테크에 달렸다는 전망도 잇따른다.
한국프롭테크포럼에 따르면 2018년 11월 창립 당시 26개사에 불과했던 프롭테크 회원사는 올해 5월 기준 255개사로 늘었다. 매출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난해 주요 프롭테크 87개 기업의 매출액은 1조8900억 원으로, 2019년 7030억 원(57개사)과 비교하면 40% 이상 늘어난 규모다.
조인혜 한국프롭테크포럼 사무처장은 “이제 막 수요가 생겨나기 시작한 시장인 만큼 안정적인 매출을 거둔다고 볼 단계는 아니지만, 처음으로 1조 원 매출을 넘어서는 등 전반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며 “지난해 상반기 코로나19 이슈가 생기며 일시적인 조정기를 겪은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투자 규모가 크게 늘어나며 긍정적인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프롭테크 스타트업 누적 투자 유치 금액은 올해 5월 기준으로 1조6914억 원에 달한다. 2013년 이전에는 19억 원에 머물렀던 투자 규모를 생각해보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특히 오프라인 중심의 거래 시장이 견고하게 형성돼 있던 부동산 시장의 특성을 고려하면 최근의 성장세는 더욱 유의미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조 사무처장은 “그간 부동산의 시장 상황이 좋았을 뿐만 아니라 (자산의) 덩치가 큰 탓에 굳이 ‘디지털화’를 추진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컸다. 한마디로 변화의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이라면서도 “최근 들어서는 변화의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고 느낀다. 부동산 플랫폼뿐만 아니라 대기업들까지 프롭테크 분야의 중요성을 높게 평가하며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일종의 시장 관행이 깨지며 프롭테크 산업이 빠르게 전파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프롭테크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게 활약하는 플레이어는 직방, 다방 등 모바일로 부동산 매물을 살필 수 있는 1세대 부동산 플랫폼들이다. 과거에는 공인중개사들이 제공하는 매물 정보를 플랫폼 내에서 소개해주는 역할이 컸다면, 앞으로는 데이터와 기술을 결합해 차별화된 부동산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게 이들 플랫폼의 목표다.
직방은 프롭테크 사업인 ‘온택트 파트너스’를 통해 부동산 중개 계약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온택트 파트너스는 화상통화, VR 매물 확인과 같은 정보기술(IT)을 접목한 비대면 중개 매매 플랫폼이다. 앞서 제공해 온 3D 단지 투어 등의 서비스에서 한발 나아가, 부동산 거래 경험의 질을 높이는 ‘종합 프롭테크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다.
비대면으로도 아파트 매물의 정보를 꼼꼼히 따져볼 수 있도록 공인중개사와의 상담을 고도화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온택트 파트너스를 통해 부동산 거래가 성사되는 경우에는 공인중개사와 직방의 자회사가 공동 날인해 계약 책임을 함께 지고, 수수료는 중개사와 50%씩 나누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방을 운영하는 스테이션3는 비대면으로 부동산 계약을 할 수 있는 전자계약 서비스 ‘다방싸인’을 올해 10월 즈음 선보일 계획이다. 동영상과 3D VR 등 다양한 시각 정보를 제공해 이용자가 구매 판단을 제대로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물론이고, 간편 본인인증만 거치면 계약서에 비대면으로 서명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매물 탐색부터 계약에 이르기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한다는 뜻이다. 계약 문서의 위·변조 가능성은 전자서명, 타임스탬프 등 보안 기술을 적용해 적극적으로 차단할 예정이다. 또 분실 위험이 있는 실물 계약서와 달리 온라인상에서 간편하게 계약서를 조회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이미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부동산 플랫폼을 통해 매물을 검색한 뒤, VR로 부동산을 살펴보고 가격 검토를 거쳐 계약까지 마치는 ‘원스톱 거래’가 가능한 상황”이라면서 “물론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몇 억 원짜리 아파트 매매를 곧바로 비대면 계약으로 체결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금액이 크지 않은 원룸 전·월세 단계에서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프롭테크 시장에 활기 불어넣는 스타트업
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국내 프롭테크 시장에 활기를 더해주는 부분이다. 특히 ‘대면 사업’에 중점을 뒀던 부동산 시장의 한계를 넘어선 기술들이 눈에 띈다.
집뷰는 3D VR 기반의 사이버 모델하우스를 통해 프라이빗한 고급 주택의 내부 모습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집뷰의 모델하우스 솔루션을 활용하면 기존 모델하우스 제작 비용의 90% 정도가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반베이스는 2D로 존재하는 실내공간을 3D로 자동 변환하는 기술로부터 출발한 스타트업이다. 가구 배치를 비롯해 가상 인테리어를 꾸며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클릭 한 번으로 현재 살고 있거나 앞으로 살아보고 싶은 아파트를 가상으로 확인해볼 수 있으며, 7000여 개의 인테리어 제품을 배치해보는 것도 가능하다. AR 기술을 이용해 공간 배치와 사이즈 확대까지 할 수 있어 이용자의 취향에 따라 자유로운 공간 재구성이 가능하다.
부동산 정보의 비대칭성을 빅데이터 기술로 해결해주는 서비스도 있다. 다윈중개는 직주근접, 교통, 학군, 편의시설 등 부동산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수를 머신러닝으로 분석해 개인에게 딱 맞는 아파트를 추천해준다. 또 토지건물 빅데이터 플랫폼인 밸류맵을 활용하면 실시간으로 집계하기 어려웠던 토지와 건물의 변동 정보를 간편하게 검색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프롭테크 산업이 성장가도를 이어가려면 혁신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이 꾸준히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업모델이 장기적으로 어느 정도의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대신증권 장기전략리서치부는 ‘프롭테크 4.0시대’ 보고서에서 “부동산 산업 외부에서도 프롭테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며 “프롭데크의 다음 단계의 도약을 위해 프롭테크 기업의 ‘수익성’ 검증이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양한 프롭테크 기업 가운데 빅데이터를 활용한 부동산 가치 정보를 제공하는 곳들이 있는데, 이들 기업은 소비자에게 비용을 받지 않는 형태라 당장의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면서 “다만 부동산 산업의 새로운 조류와 맞물리며 시장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기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프롭테크, 왜 대세로 떠올랐을까
전 세계적인 디지털 트렌드 속에서도 부동산 산업은 유독 디지털 전환이 더뎠던 게 사실이다. 부동산 시장의 구조상 중개인이 중요한 정보를 독점하기 쉬운 데다, 워낙 큰 규모의 거래액이 오가는 시장인 만큼 대면 거래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컸다. 일반 개인이 부동산 관련법을 세세하게 파악하기 힘들어 중개인과의 대면 상담을 선호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보수적이었던 부동산 시장도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 시장에서도 프롭테크는 ‘꼭 가야만 하는 길’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프롭테크 평균 투자 규모는 2769만 달러(약 325억 원)로, 전년(1734만 달러) 대비 59.7% 늘었다. 변화의 물결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우선 해외 부동산 시장 중 프롭테크가 가장 발전한 미국, 영국의 사례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두 나라는 정부가 공공 데이터 개방 정책을 펼친 2010년대를 기점으로 부동산 분야의 디지털 전환이 활발해졌다.
미국 부동산 플랫폼 기업인 질로(Zillow)가 대표적이다. 질로는 미국 정부가 개방한 공공 데이터에 자체 데이터,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해 적정 주택가격을 계산하는 시스템인 ‘제스티메이트’를 선보였다. 이 시스템을 통해 주택가격의 가치 산정을 보다 정확하게 하고, 다양한 매물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4차 산업의 원유’로 불리는 데이터 기술이 프롭테크 산업에도 적잖은 역향을 끼친 셈이다.
디지털과 플랫폼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가 부동산 시장에 유입된 것도 변화의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다. 대신증권 장기전략리서치부는 “플랫폼 비즈니스가 부동산 거래 시장에도 중요한 채널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플랫폼 산업의 확장이라는 메가트렌드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전 세대와는 다른 욕구와 소비 패턴을 갖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며 “밀레니얼 세대는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공급자가 큐레이팅(curating)해주는 것에 굉장히 익숙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들에게는 단순히 ‘집’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들을 충족하는 ‘내’ 마음에 드는 공간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매우 다양한 데이터에 기반한 매치메이킹(matchmaking)의 과정이 필요하다”며 “과거의 부동산 거래에서는 특정 중개사가 확보한 물건들에 한해 선택이 가능했던 것과 비교해 지금은 다양한 물건을 대상으로, 나에게 최적화된 후보지를 추천받을 수 있는 중개 플랫폼에 대한 니즈가 확대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플랫폼의 수요가 크게 높아지면서 디지털 전환을 향한 부동산 산업의 더딘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유 교수는 “프롭테크는 결국 시장의 변화로부터 생겨난 것”이라면서 “아직은 태동기인 분야지만 디지털 기술과 결합한 부동산 산업이 실질적인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을 시장에서도 느끼다 보니,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프롭테크, 밝은 전망 속…기존 산업과 조화 ‘과제’
전문가들은 앞으로 펼쳐질 프롭테크 시장에 대해 “미래가 밝다”고 입을 모은다. 부동산 산업 내에서 극복하지 못했던 약점들을 프롭테크가 채워주는 일이 잦아지면, 보수적이었던 부동산 시장의 질서도 재편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유 교수는 “프롭테크는 소비자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고 국민 눈높이를 내실 있게 만든다”면서 “기존 부동산 업계도 최근의 트렌드를 눈여겨보며 새로운 돌파구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초기 단계인 만큼 극복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현재로서는 기존 산업 종사자들과의 충돌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앞서 부동산 빅데이터·AI 전문 기업 빅밸류는 ‘빅데이터 부동산 자동시세 서비스’를 제공했다가 한국감정평가사협회로부터 형사 고발을 당했다. 고발 이후 1년 만인 지난 5월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으나 갈등의 씨앗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반값 중개수수료’ 정책을 내세운 다윈중개는 최근 한국공인중개사협회로부터 검찰 고발을 당했다. 중개사협회가 다윈중개를 검찰 고발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로, 지난 두 차례의 고발 건은 불기소 혹은 기각 처리된 바 있다. 부동산 매매·중개 서비스에 참여해 공인중개업자와 수수료를 절반씩 나누겠다던 직방도 중개사협회의 강한 반발을 샀다. 이처럼 기존 업계와의 갈등이 잇따르자 ‘제2의 타다 사태’라는 우려도 뒤따르는 모양새다.
김 교수는 “프롭테크는 완전히 새로운 산업 영역이라기보다 기존 산업에 기술을 입혀 서비스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이기 때문에 기존 업계와 (사업모델이) 겹치지 않을 수는 없다”며 “공인중개사, 감정평가사와 같이 부동산 매물을 다루던 곳들은 당연히 위협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해서 기존 산업과의 충돌을 우려해 프롭테크의 길을 가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고, 자칫 외국계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우리도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따라 기존 산업과 신진 기업의 갈등을 최대한 줄이고 상생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중재 기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 간 소송으로 번지기 전에 정부부처 산하의 중립 기구를 거치도록 하자는 것이다. 프롭테크 분야에서 창출한 이익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는지도 중재 기구를 통해 대화해볼 수 있다.
아울러 미국, 영국이 정부의 공공 데이터 개방으로 프롭테크 분야에서 한발 앞서 나간 것처럼, 우리나라도 정부가 보유한 부동산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지속적으로 거론된다. 정부도 ‘프롭테크 산업 육성’이라는 큰 방향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제1차 부동산 서비스 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통해 기존 부동산 실거래 정보 외에 아파트 창향이나 건물 도면 등 공공 데이터를 개방하고, 이를 민간 데이터와 결합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언급한 바 있다.
글 정초원 기자
#1. 내 집 마련을 준비 중인 박 모(32) 씨는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의 3D 투어 서비스를 이용해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는 취미가 생겼다. 직접 현장을 방문하지 않아도 관심 있는 집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고, 창밖을 내다봤을 때 어떤 조망이 펼쳐지는지도 확인할 수 있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근처 편의시설, 입지 장단점, 주변 시세까지 모두 부동산 플랫폼으로 알아보며 ‘가상 임장’을 다니는 재미에 푹 빠졌다.
#2.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재택근무로 9개월째 ‘집콕 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 이 모(34) 씨. 부부가 집에 함께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달라진 생활 패턴에 맞춰 인테리어를 변경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최근에는 가상 인테리어 서비스를 통해 현재 살고 있는 집에 어울리는 실내 디자인과 가구 배치를 3D로 조합해보고 있다. 이 씨는 “인테리어 방향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분위기에 휩쓸려 시공 계약을 했다가 후회한 적이 있다”면서 “가상 인테리어를 통해 원하는 집 안 환경을 충분히 고민해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국내 부동산 시장이 스마트하게 진화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서서히 불어온 프롭테크 바람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와 부동산 시장 열풍에 힘입어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지는 모습이다.
프롭테크는 부동산(property)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부동산 거래와 건설,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부동산 분야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것으로, 인공지능(AI), VR,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해 소비자들의 편리함을 극대화해주는 트렌드다. 업계에서는 부동산 산업의 미래 성장 동력이 다름 아닌 프롭테크에 달렸다는 전망도 잇따른다.
한국프롭테크포럼에 따르면 2018년 11월 창립 당시 26개사에 불과했던 프롭테크 회원사는 올해 5월 기준 255개사로 늘었다. 매출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난해 주요 프롭테크 87개 기업의 매출액은 1조8900억 원으로, 2019년 7030억 원(57개사)과 비교하면 40% 이상 늘어난 규모다.
조인혜 한국프롭테크포럼 사무처장은 “이제 막 수요가 생겨나기 시작한 시장인 만큼 안정적인 매출을 거둔다고 볼 단계는 아니지만, 처음으로 1조 원 매출을 넘어서는 등 전반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며 “지난해 상반기 코로나19 이슈가 생기며 일시적인 조정기를 겪은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투자 규모가 크게 늘어나며 긍정적인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프롭테크 스타트업 누적 투자 유치 금액은 올해 5월 기준으로 1조6914억 원에 달한다. 2013년 이전에는 19억 원에 머물렀던 투자 규모를 생각해보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특히 오프라인 중심의 거래 시장이 견고하게 형성돼 있던 부동산 시장의 특성을 고려하면 최근의 성장세는 더욱 유의미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조 사무처장은 “그간 부동산의 시장 상황이 좋았을 뿐만 아니라 (자산의) 덩치가 큰 탓에 굳이 ‘디지털화’를 추진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컸다. 한마디로 변화의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이라면서도 “최근 들어서는 변화의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고 느낀다. 부동산 플랫폼뿐만 아니라 대기업들까지 프롭테크 분야의 중요성을 높게 평가하며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일종의 시장 관행이 깨지며 프롭테크 산업이 빠르게 전파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프롭테크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게 활약하는 플레이어는 직방, 다방 등 모바일로 부동산 매물을 살필 수 있는 1세대 부동산 플랫폼들이다. 과거에는 공인중개사들이 제공하는 매물 정보를 플랫폼 내에서 소개해주는 역할이 컸다면, 앞으로는 데이터와 기술을 결합해 차별화된 부동산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게 이들 플랫폼의 목표다.
직방은 프롭테크 사업인 ‘온택트 파트너스’를 통해 부동산 중개 계약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온택트 파트너스는 화상통화, VR 매물 확인과 같은 정보기술(IT)을 접목한 비대면 중개 매매 플랫폼이다. 앞서 제공해 온 3D 단지 투어 등의 서비스에서 한발 나아가, 부동산 거래 경험의 질을 높이는 ‘종합 프롭테크 기업’이 되겠다는 포부다.
비대면으로도 아파트 매물의 정보를 꼼꼼히 따져볼 수 있도록 공인중개사와의 상담을 고도화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온택트 파트너스를 통해 부동산 거래가 성사되는 경우에는 공인중개사와 직방의 자회사가 공동 날인해 계약 책임을 함께 지고, 수수료는 중개사와 50%씩 나누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방을 운영하는 스테이션3는 비대면으로 부동산 계약을 할 수 있는 전자계약 서비스 ‘다방싸인’을 올해 10월 즈음 선보일 계획이다. 동영상과 3D VR 등 다양한 시각 정보를 제공해 이용자가 구매 판단을 제대로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물론이고, 간편 본인인증만 거치면 계약서에 비대면으로 서명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매물 탐색부터 계약에 이르기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한다는 뜻이다. 계약 문서의 위·변조 가능성은 전자서명, 타임스탬프 등 보안 기술을 적용해 적극적으로 차단할 예정이다. 또 분실 위험이 있는 실물 계약서와 달리 온라인상에서 간편하게 계약서를 조회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이미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부동산 플랫폼을 통해 매물을 검색한 뒤, VR로 부동산을 살펴보고 가격 검토를 거쳐 계약까지 마치는 ‘원스톱 거래’가 가능한 상황”이라면서 “물론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몇 억 원짜리 아파트 매매를 곧바로 비대면 계약으로 체결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금액이 크지 않은 원룸 전·월세 단계에서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프롭테크 시장에 활기 불어넣는 스타트업
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국내 프롭테크 시장에 활기를 더해주는 부분이다. 특히 ‘대면 사업’에 중점을 뒀던 부동산 시장의 한계를 넘어선 기술들이 눈에 띈다.
집뷰는 3D VR 기반의 사이버 모델하우스를 통해 프라이빗한 고급 주택의 내부 모습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집뷰의 모델하우스 솔루션을 활용하면 기존 모델하우스 제작 비용의 90% 정도가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반베이스는 2D로 존재하는 실내공간을 3D로 자동 변환하는 기술로부터 출발한 스타트업이다. 가구 배치를 비롯해 가상 인테리어를 꾸며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클릭 한 번으로 현재 살고 있거나 앞으로 살아보고 싶은 아파트를 가상으로 확인해볼 수 있으며, 7000여 개의 인테리어 제품을 배치해보는 것도 가능하다. AR 기술을 이용해 공간 배치와 사이즈 확대까지 할 수 있어 이용자의 취향에 따라 자유로운 공간 재구성이 가능하다.
부동산 정보의 비대칭성을 빅데이터 기술로 해결해주는 서비스도 있다. 다윈중개는 직주근접, 교통, 학군, 편의시설 등 부동산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수를 머신러닝으로 분석해 개인에게 딱 맞는 아파트를 추천해준다. 또 토지건물 빅데이터 플랫폼인 밸류맵을 활용하면 실시간으로 집계하기 어려웠던 토지와 건물의 변동 정보를 간편하게 검색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프롭테크 산업이 성장가도를 이어가려면 혁신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이 꾸준히 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업모델이 장기적으로 어느 정도의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대신증권 장기전략리서치부는 ‘프롭테크 4.0시대’ 보고서에서 “부동산 산업 외부에서도 프롭테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며 “프롭데크의 다음 단계의 도약을 위해 프롭테크 기업의 ‘수익성’ 검증이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양한 프롭테크 기업 가운데 빅데이터를 활용한 부동산 가치 정보를 제공하는 곳들이 있는데, 이들 기업은 소비자에게 비용을 받지 않는 형태라 당장의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면서 “다만 부동산 산업의 새로운 조류와 맞물리며 시장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기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프롭테크, 왜 대세로 떠올랐을까
전 세계적인 디지털 트렌드 속에서도 부동산 산업은 유독 디지털 전환이 더뎠던 게 사실이다. 부동산 시장의 구조상 중개인이 중요한 정보를 독점하기 쉬운 데다, 워낙 큰 규모의 거래액이 오가는 시장인 만큼 대면 거래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컸다. 일반 개인이 부동산 관련법을 세세하게 파악하기 힘들어 중개인과의 대면 상담을 선호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보수적이었던 부동산 시장도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 시장에서도 프롭테크는 ‘꼭 가야만 하는 길’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프롭테크 평균 투자 규모는 2769만 달러(약 325억 원)로, 전년(1734만 달러) 대비 59.7% 늘었다. 변화의 물결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우선 해외 부동산 시장 중 프롭테크가 가장 발전한 미국, 영국의 사례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두 나라는 정부가 공공 데이터 개방 정책을 펼친 2010년대를 기점으로 부동산 분야의 디지털 전환이 활발해졌다.
미국 부동산 플랫폼 기업인 질로(Zillow)가 대표적이다. 질로는 미국 정부가 개방한 공공 데이터에 자체 데이터,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해 적정 주택가격을 계산하는 시스템인 ‘제스티메이트’를 선보였다. 이 시스템을 통해 주택가격의 가치 산정을 보다 정확하게 하고, 다양한 매물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4차 산업의 원유’로 불리는 데이터 기술이 프롭테크 산업에도 적잖은 역향을 끼친 셈이다.
디지털과 플랫폼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가 부동산 시장에 유입된 것도 변화의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다. 대신증권 장기전략리서치부는 “플랫폼 비즈니스가 부동산 거래 시장에도 중요한 채널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플랫폼 산업의 확장이라는 메가트렌드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전 세대와는 다른 욕구와 소비 패턴을 갖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며 “밀레니얼 세대는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공급자가 큐레이팅(curating)해주는 것에 굉장히 익숙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들에게는 단순히 ‘집’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들을 충족하는 ‘내’ 마음에 드는 공간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매우 다양한 데이터에 기반한 매치메이킹(matchmaking)의 과정이 필요하다”며 “과거의 부동산 거래에서는 특정 중개사가 확보한 물건들에 한해 선택이 가능했던 것과 비교해 지금은 다양한 물건을 대상으로, 나에게 최적화된 후보지를 추천받을 수 있는 중개 플랫폼에 대한 니즈가 확대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플랫폼의 수요가 크게 높아지면서 디지털 전환을 향한 부동산 산업의 더딘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유 교수는 “프롭테크는 결국 시장의 변화로부터 생겨난 것”이라면서 “아직은 태동기인 분야지만 디지털 기술과 결합한 부동산 산업이 실질적인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을 시장에서도 느끼다 보니,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프롭테크, 밝은 전망 속…기존 산업과 조화 ‘과제’
전문가들은 앞으로 펼쳐질 프롭테크 시장에 대해 “미래가 밝다”고 입을 모은다. 부동산 산업 내에서 극복하지 못했던 약점들을 프롭테크가 채워주는 일이 잦아지면, 보수적이었던 부동산 시장의 질서도 재편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유 교수는 “프롭테크는 소비자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고 국민 눈높이를 내실 있게 만든다”면서 “기존 부동산 업계도 최근의 트렌드를 눈여겨보며 새로운 돌파구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초기 단계인 만큼 극복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현재로서는 기존 산업 종사자들과의 충돌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앞서 부동산 빅데이터·AI 전문 기업 빅밸류는 ‘빅데이터 부동산 자동시세 서비스’를 제공했다가 한국감정평가사협회로부터 형사 고발을 당했다. 고발 이후 1년 만인 지난 5월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으나 갈등의 씨앗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반값 중개수수료’ 정책을 내세운 다윈중개는 최근 한국공인중개사협회로부터 검찰 고발을 당했다. 중개사협회가 다윈중개를 검찰 고발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로, 지난 두 차례의 고발 건은 불기소 혹은 기각 처리된 바 있다. 부동산 매매·중개 서비스에 참여해 공인중개업자와 수수료를 절반씩 나누겠다던 직방도 중개사협회의 강한 반발을 샀다. 이처럼 기존 업계와의 갈등이 잇따르자 ‘제2의 타다 사태’라는 우려도 뒤따르는 모양새다.
김 교수는 “프롭테크는 완전히 새로운 산업 영역이라기보다 기존 산업에 기술을 입혀 서비스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이기 때문에 기존 업계와 (사업모델이) 겹치지 않을 수는 없다”며 “공인중개사, 감정평가사와 같이 부동산 매물을 다루던 곳들은 당연히 위협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해서 기존 산업과의 충돌을 우려해 프롭테크의 길을 가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고, 자칫 외국계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우리도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따라 기존 산업과 신진 기업의 갈등을 최대한 줄이고 상생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중재 기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 간 소송으로 번지기 전에 정부부처 산하의 중립 기구를 거치도록 하자는 것이다. 프롭테크 분야에서 창출한 이익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는지도 중재 기구를 통해 대화해볼 수 있다.
아울러 미국, 영국이 정부의 공공 데이터 개방으로 프롭테크 분야에서 한발 앞서 나간 것처럼, 우리나라도 정부가 보유한 부동산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지속적으로 거론된다. 정부도 ‘프롭테크 산업 육성’이라는 큰 방향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제1차 부동산 서비스 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통해 기존 부동산 실거래 정보 외에 아파트 창향이나 건물 도면 등 공공 데이터를 개방하고, 이를 민간 데이터와 결합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언급한 바 있다.
글 정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