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사전예고 등 시장 소통 강화해야



지난 8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이후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말들이 많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올린 데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캐나다 중앙은행(BOC) 등도 금리를 동결했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도 9월 회의에서 테이퍼링 추진을 확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그때그때 통화정책 여건에 따라 설립 목표와 관할 범위를 유연하게 운용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과 발권 기능, 최종대부자로서 은행의 은행, 금융사에 대한 감독 등이 고유 권한이다. 하지만 글로벌화와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여건에서 종전의 목표와 통화정책 관할 범위만 고집할 경우 중앙은행이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중앙은행은 이미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통화정책 관할 대상에 실물경제뿐만 아니라 자산시장을 포함시켜 운영하고 있는 점이다. 이 문제를 놓고 ‘그린스펀 독트린’과 ‘버냉키 독트린’ 간 논쟁이 오랫동안 전개돼 왔다. 전자는 통화정책 대상에는 자산시장 여건을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의 주장이다.

반면, 벤 버냉키 전 Fed 의장은 통화정책 대상에 증시, 부동산 등 자산시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특히 고수익을 목적으로 각종 파생상품과 레버리지 투자로 실물경기와 자산가격이 따로 노는 여건에서는 통화정책은 자산시장을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버냉키 독트린’이다. 현재 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버냉키 독트린을 따르고 있다.

통화정책 관할 범위가 확대되면 중앙은행 목표도 수정돼야 한다. 중앙은행 목표는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있는 만큼 밀턴 프리드먼 등과 같은 통화론자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유진 파머를 비롯한 시카고학파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천사와의 키스’만 추진할 것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글로벌화와 디지털화가 함께 진전되고 시장경제가 활성화됨에 따라 물가는 추세적으로 안정되고 있다. 날로 격화되는 경쟁을 이기기 위해서는 최종 상품의 가격 파괴와 인하에 따른 ‘월마트 효과’가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물가가 불안하다고 하면 중앙은행이 설정한 목표선을 일시적으로 벗어나는 정도다.

물가가 안정된 시기에 중앙은행은 성장, 고용 등과 같은 다른 목표를 중시해야 한다. ‘악마와의 키스’가 ‘천사와의 키스’보다 대접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의미다. 중앙은행은 ‘물가목표제(inflation targeting)’뿐만 아니라 ‘성장목표제(growth targeting)’, ‘고용목표제(employment targeting)’를 함께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같은 맥락이다.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운용은
대부분 선진국 중앙은행은 경기 부양과 고용 창출에 더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설립 목표를 수정하거나 통화정책을 운용해 오고 있다. Fed는 2012년 12월 회의에서 물가 안정뿐만 아니라 고용 창출을 양대 목표로 도입했다. 이때 실무적인 차원에서 고용목표제 도입을 검토하고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사람이 재닛 앨런 미국 재무장관이다.

바이든 정부의 실질적인 경제 콘트롤타워인 앨런 시대를 맞아 고용 창출에 최우선 목표를 둔다면 경기에 우호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해나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돼 청년층 고용에 한계를 보이는 디지털 추세가 급진전됨에 따라 세계 경기의 호·불황에 관계없이 고용 창출을 우선하는 통화정책 운용은 정착될 것으로 예상된다.

통화정책 목표가 수정될 경우 적정 금리 산출 방식도 변경돼야 한다. 최근처럼 경기순환상 순응성이 심하게 나타날 때는 더 그렇게 해야 한다. 특정국의 기준금리를 올리는 데에는 여러 기준이 있으나 종전의 경우 금융 시스템과 시장경제의 원리가 잘 작동될 때에는 전통적인 중앙은행의 목표대로 물가 안정을 중시해 기준금리를 변경해 왔다.

대부분 중앙은행들이 연초에 물가 목표선을 공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간 물가 목표치를 설정하는 데에는 어빙 피셔의 화폐수량설에 따른 유럽식 방법이 많이 활용됐다. 하지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금융 시스템과 시장 기능이 잘 작동되지 않음에 따라 정책 목표를 감안해 산출된 적정 금리를 토대로 기준금리를 변경하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적정 금리를 산출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가 있으나 정책 목표를 감안한 산출 방법으로는 ‘테일러 준칙(Taylor’s rule)’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준칙은 적정 금리를 측정하는 방법 중 하나다. 이 준칙은 성장과 물가가 목표치와 차이가 날 경우 통화당국이 금리를 어떻게 조정해 왔으며 그것이 과연 적절한 수준이었나를 검증하기 위한 지표로 활용돼 왔다.

테일러 준칙은 통화정책의 시차 효과를 고려하지 않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Fed는 양대 목표 설정 이후 ‘최적통제준칙(optimal control rule)’을 토대로 통화정책을 운용해 오고 있다. 이 준칙은 Fed의 양대 책무를 달성하기 위해 두 목표로부터의 편차를 최소화하는 기준금리 경로를 산출해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특히 고용 목표 달성에 도움되면 물가가 일시적으로 목표치를 벗어나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9월 Fed 회의에서 결정됐던 ‘평균물가목표제’도 동일한 맥락에서 나온 정책이다.

‘앨런 룰’이라고도 불리는 이 주장은 어떤 경우든 물가 목표치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통화론자들의 시각과는 대조적이다. 통화론자들은 기준금리 등을 변경할 때 ‘통화 준칙(monetary rule)’을 중시해 왔다. 이를테면 한국은행의 물가 목표선이 2%일 때 이보다 물가가 올라가면 자동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려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이 이 준칙의 핵심이다.

하지만 물가 이외 다른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된다면 기준금리는 변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최적통제준칙에 의한 기준금리 결정 방식이다. 통화론자 입장에서 보면 ‘악마 중 악마와의 키스’인 셈이다. 전통적으로 물가 안정을 중시하는 ECB조차 ‘법치(法治)’보다 ‘인치(人治)’에 의한 기준금리 결정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테일러 준칙을 적용해 우리의 적정 금리 수준으로 추정한 결과 2.55%로 나온다. 현재 기준금리 0.75%는 적정 금리에 비해 1.8%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국민 편에서 기준금리 변경만큼 관심이 높은 정책 수단도 없는 점을 감안하면 인치, 즉 사람에 의한 기준금리 결정을 중앙은행에만 전적으로 맡길 수는 없다. 미국의 경우 예비연방공개시장위원회(SOMC)의 활동이 Fed가 고용 창출을 더 중시해 통화정책을 운용하던 2012년 이후 더 활발해진 것도 이 때문이다.

SOMC는 금융학자와 시장참여자로 구성된 순수 민간기구다. 1973년 당시 로체스터대 교수였던 칼 브르너 등에 의해 SOMC가 구성된 것은 금리 결정과 같은 통화정책은 한 나라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만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전적으로 맡겨놓을 수는 없다는 데서 출발했다.

지금은 보다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구성 초기부터 FOMC의 금리 결정을 평가하고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일은 일관되게 추진해 오고 있다. 최근 들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테이퍼링을 조기에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해 다시 한 번 주목을 끌고 있다.

물론 SOMC의 건의는 구속력이 없으나 미국처럼 시장과 여론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쳐 왔다. 실제로 FOMC가 금리 변경을 선제적으로 단행할 수 있었고 다른 기관을 의식하지 않고 통화정책의 핵심인 △적시성 △투명성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SOMC의 역할이 컸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우리의 경우 기준금리 결정권을 쥐고 있는 금융통화위원회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했느냐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금통위 위원이 구성될 때마다 ‘누구 누구의 사람이다’라는 비판을 받아 왔고 기준금리 결정 때 다른 기관을 의식하다 보니 제때에 단행되지 못한 적이 자주 목격됐다. 이 때문에 한국은행의 위상과 독립성은 크게 훼손돼 ‘○○○의 남대문 지점’이라는 웃지 못할 용어까지 등장했다.

우리도 SOMC에 상응하는 예비금융통화위원회(SMPC)를 구성하자는 논의가 제기돼 왔으나 공식적으로 출범하지 못했다. SMPC의 위원은 순수 민간의 금융학자를 중심으로 구성하되, 시장친화적인 금리 결정 평가와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의사 개진을 위해서는 시장참여자들도 포함돼야 한다.

SOMC가 시간이 갈수록 많은 내용을 다룸에 따라 본래의 기능이 퇴색되는 듯한 인상과 비판을 받는 만큼, SMPC의 기본 업무는 금융통화위원회(MPC)의 금리 결정에 대한 평가와 통화정책 방향에 의견를 개진하는 정도로 제한시켜야 중앙은행 위상과 시장(국민) 친화적인 통화정책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기준금리 변경이 중요한 만큼 중앙은행도 시장과 소통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다양한 방안 중 하나가 최근처럼 테이퍼링이 언급됐던 2013년 초 버냉키 전 Fed 의장이 제안한 ‘기준금리 사전예고제’다. 이 제도는 매 분기 경제 전망이 발표될 때마다 3분기 후의 기준금리 수준과 2∼3년 동안 기준금리 방향까지 내놓겠다는 것을 말한다.

무엇보다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시장과의 소통을 중시하겠다는 숨은 의도가 깔려 있다. ‘맨큐 경제학’의 저자로 잘 알려진 그레고리 맨큐 미국 하버드대 교수를 중심으로 각국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의 효과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시장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강조해 왔다. 이 제도는 이런 요구를 전격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같은 맥락에서 기준금리 결정에 따른 정책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의도도 엿볼 수 있다. 초저금리로 부채가 많은 시대에서는 기준금리만큼 국민 경제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 변수는 없다. 짧게는 3분기 후, 길게는 2∼3년 후의 기준금리를 알 수 있다면 국민들은 부채 관리, 주택 구입 등을 중심으로 보다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다.

앞으로 기준금리 사전예고제가 시행되면 각국 경제도 더 견실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 여지는 크게 제한돼 있다. 기준금리를 더 내릴 수 없고, 유동성 조절 정책은 잠복된 인플레 우려로 추가적으로 양적완화를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재정도 국가채무 누적 등으로 여유가 없다.

이런 정책 여건에서 기준금리 사전예고제가 실시되면 금융과 실물 간 연계성이 강화돼 금융권에서만 맴도는 돈이 실물경제로 흘러 들어갈 수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가장 고민해 왔던 아킬레스건이 풀리는 셈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심리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시대에서는 이 효과는 의외로 크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학계에서도 관심이 높다. 금융위기 이후 통화정책 시차가 얼마나 짧아졌는가에 대한 논쟁이 지속돼 왔다. 3분기 후의 기준금리 수준을 예고한다는 것은 케인즈언의 전달 경로(금리 변경→총수요 영향→경기 변동)상 시차가 9개월임을 감안하면 통화정책의 불연속성을 줄여 기준금리를 언제 변경시킬 것인가에 따른 불안감을 줄일 수 있다.

경기 순환 면에서는 과열일 때 정점을 더 끌어올리고 침체일 때 저점을 더 끌어내리는 경기 순응성을 줄이는 효과, 즉 ‘자동 조절 기능’도 기대할 수 있다. 경기 진폭이 줄어들면 주가 등 금융 변수 변동성이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는 ‘테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금리 사전예고제는 코스피 지수를 10%(현재 기준 300포인트) 이상 끌어올릴 수 있는 대형 호재다.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물가 안정에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할 각국 중앙은행이 사전에 예고한 말과 약속을 지키다 보면 오히려 물가가 불안해지는 자충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통화당국이 통제할 수 없는 행태 변수가 많아지는 인플레 관리 여건에서는 충분히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물가는 기조적으로 하향 안정되는 추세다.

한국은행도 설립 목표에 고용 창출을 추가해야 할 때가 됐다. 지난 8월 금리 인상도 다른 의도가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을 받고 있는 만큼 SMPC를 공식화시켜 이들의 의견을 통화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앞으로 기준금리를 변경할 때 사전에 예고해 가계부채 조정, 주거 계획 수립 등 국민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의도했던 정책 효과도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글 한상춘 한경미디어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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