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방천 회장 “빚은 줄이고 좋은 주식은 나눠서 사라”

대한민국 가치투자 1세대이자 유일한 현역 펀드매니저인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을 지난 9월 중순경 경기도 판교에 있는 리치투게더센터에서 만났다. 강 회장은 지난 2014년 발간된 <세계의 위대한 투자가 99인>에 워런 버핏, 피터 린치와 함께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이른바 한국 주식투자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린다.



만 60세, 올해로 환갑을 맞은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지금도 현역 펀드매니저로서 활발히 활동하는 유일한 가치투자 1세대다. 가치투자 1세대들이 대부분 경영 일선으로 물러나 있지만, 강 회장은 여전히 시장을 종횡무진하며 에셋플러스운용의 투자최고책임자(CIO)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장에 비관론이 팽배해질 때 투자 기회가 생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강 회장의 이 같은 투자에 대한 원칙은 매우 단순하지만 명료하다. 그는 자산가격 상승이 멈추고 정체돼 있는 지금의 시장이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했다.

강 회장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증시가 급등락을 이어갔던 공포의 시기를 지나 현재 시장이 정상화 과정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투자 시장에 있어서 공포로 인한 급등락은 가끔 일어나는 현상”이라며 “공포가 올 때 보통 투자자들은 시장을 떠나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오히려 공포스러울 때 다가서면 기회가 생긴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공포 속에서도 시장이 살아난 건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공포를 이겨낸 투자자들이 결국 좋은 수익을 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증권시장의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 등 세 번을 꼽았다. 그는 이 세 번의 시기가 흥분과 공포가 있었던 비정상적인 시기지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였다고 회상한다.

강 회장은 “이 세 번의 국면은 엄청난 공포와 엄청난 상승, 이런 관점에서 동일하다”며 “이 시기에 돈을 벌었다면 그건 용기의 대가”라고 했다. 그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급등락 현상이 주기적으로 반복될 수 있다고도 했다.

강 회장은 유동성 장세가 곧 끝나고 조정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2008년부터 올해까지 13년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기준으로 본원 통화가 8배 정도 늘었다”며 “자산가격이 많이 올랐는데 가치적 힘과 유동성의 힘이 혼재돼 있다”고 말했다. 내재가치의 힘으로 오른 것이 아닌 유동성의 힘으로 오른 주식은 이제 상승분을 반납할 시점이 왔다고 경고했다.

그간 미국 나스닥이 2008년 이후에 1000%가 올랐고, 코스피는 250%가 뛰었다. 이외에 같은 기간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60%, 인도 주식은 500% 정도 올랐다고 했다. “유동성 때문에 오른 가격은 결국 하락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강 회장은 “한국의 자산 가치도 조정을 받을 텐데 부동산 시장은 수요가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며 “지난 2~3년간 엄청난 레버리지를 일으켜 아파트를 사들였는데 유동성이 줄면서 잠재적 수요가 사라지게 되면 결국 가격 하락 폭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물가가 오르면 금리를 올리지만 두려운 것은 물가가 떨어지고 경기가 침체돼도 금리를 내릴지에 대한 여부”라며 “금리를 내려 유동성이 증가하면 목표점은 투자를 늘려서 경제성장률을 올린다는 것이지만 사실상 효과는 없었다. 현재 중앙은행이 목표한 것은 자산 시장에 대한 버블을 막자는 데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금리를 올리고 공급 과잉을 초래한 부실기업을 조정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살아남은 기업들이 돈을 벌면 금리가 오르는 구조가 되는데 무작정 돈을 뿌리면 자산가격만 올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부실기업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좋은 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이 경제를 선순환구조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욱 혹독한 대가를 치를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이런 시장에서는 결코 빚을 져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시장의 격동기가 올 때 부가 재편된다”면서 “지금부터는 빚은 줄이고, 좋은 주식을 나눠서 사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대는 종목마다 ‘잭팟’…미다스 손 유명세
강 회장이 증권시장에 첫 발을 디딘 것은 지난 1987년 6월 동방증권(현 SK증권)에 입사하면서부터다. 이후 쌍용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증권영업을 시작하면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시장은 지수가 천장을 찍고 하락기로 접어들던 시기였고 당시 기존 종목에서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 신규 상장 종목에 집중 공략하며 최대 수익을 냈다.

하락기에서 다른 직원들이 투자 손실로 손절하는 동안 강 회장은 연 100% 이상 수익을 남기며 펀드매니저로 입성했다. 그가 그동안 주식시장에 남긴 족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1991년부터 펀드매니저로 활약한 강 회장은 새로운 뉴스를 접할 때마다 역발상 투자를 감행하며 엄청난 수익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3억 원 종잣돈을 1년 만에 100억 원으로 불리며 30대에 이미 증권가의 ‘미다스 손’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

재무제표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기업 가치를 찾기 위해 현재 상황을 분석하는 능력을 키우며 가치투자 1세대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5년 증권사를 퇴직한 이후에도 증권주에 투자해 수십억 원의 차익을 낸 후 한진 주식을 매수하며 3대 주주로 등극, 당시 언론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강 회장이 또 한 번 주목을 받은 건 외환위기가 터진 1998년 IMF 사태 이후에 주식시장 상승세를 점치며 투자하면서 종잣돈 1억 원으로 1년 10개월 만에 156억 원을 벌어들이면서다. 그가 위기 때마다 최대 수익을 벌어들인 배경에는 ‘위기가 곧 기회’라는 자신만의 투자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하락기에 주도주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최대 수익을 내는 비결이 됐다. 강 회장은 위기 속에서도 성공하기 위한 투자 원칙으로 △좋은 기업과 함께 하라 △쌀 때 사라 △분산투자하라 △기다려라 등 네 가지 투자 원칙을 제시했다.

그는 “지난해 투자자들이 쌀 때 주식을 매수해 돈을 번 것은 용기의 대가라고 할 수 있지만 운도 따랐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지극히 정상적인 지금의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려면 좋은 기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좋은 기업과 함께하려면 자본시장에 머물러야”
강 회장은 좋은 기업을 찾으려면 우선 자본시장을 떠나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위대한 기업은 언제나 존재하고 항상 바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10년 전 위대한 기업이 지금은 바뀔 수 있지만 자본시장에는 항상 위대한 기업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 회장은 좋은 기업을 찾으려면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의 변화에도 촉각을 기울여야 하고, 제도 변화에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소비자의 기호와 소비층의 변화에도 주목할 것을 강조한다. 예컨대 노인 인구와 모바일 인구, 1인 가구 등 소비층의 태도나 취향 변화에 주목해야 좋은 기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복잡한 기계의 나침반에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필요하듯이 증권시장은 수많은 작동 원리가 시장을 녹여서 하나의 가격을 만든다”며 “자본주의 구동 원리를 모른다면 위대한 주주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시장이 변혁기를 맞고 있지만 새로운 혁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재생에너지와 빅테이터를 중심으로 새로운 혁신이 펼쳐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에너지가 전기에너지로 표준화되는 세상이 올 것”이라며 “그 전기를 만들 에너지원 중에서 수소에너지를 주목한다. 그 기초값이 될 재생에너지가 새로운 가치의 잉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 플랫폼 기업들이 빅테이터와 인공지능(AI)을 토대로 혁신할 수 있는 날도 도래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플랫폼 기업들은 수많은 가입자와 그들이 뿜어낼 엄청난 빅데이터가 큰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빅데이터가 줄 메시지를 잘 읽으면 그 안에 혁신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정보기술(IT) 외의 산업에서도 빅데이터 혁신의 승자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예컨대 스타벅스가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사이렌 오더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현재 스타벅스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결제하고 충전식 카드 형태로 쓸 수 있는데, 향후 예치금을 토대로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사업 영역을 확장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강 회장은 “테슬라가 전기차 회사라고 보는 시각이 많지만 사실상 데이터 수집기를 돈 받고 파는 회사”라며 “테슬라가 데이터의 순환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향후 보험 산업 진출, 전기 생태계, AI 등 다양한 영역으로 발을 넓힐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투자 위한 상상력 키워야”
강 회장은 거의 매주 한 번씩 강원도로 내려가 농사를 짓는다. 직접 재배하는 농작물 수만 해도 수십 가지다. 펀드 운용에 직접 참여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가 꾸준히 농사일을 하는 이유는 노동으로 끝이 있는 일을 하고 나면 투자에 대한 상상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는 “호흡을 하는데 내쉬지 않고 들이쉬기만 하면 사람이 죽는다. 머리도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선 머릿속을 비워야 한다. 머릿속을 비워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농사인데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상상이 결국 성공하는 투자의 원천으로 자리 잡은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강 회장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생각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며 “너무 비관적이면 투자 기회를 잃고 너무 낙관적이면 돈을 잃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 이미경 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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