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if in Art] 카페(cafe): 문화와 예술의 아지트
입력 2021-11-01 12:24:47
수정 2021-11-01 15:18:33
‘카페(café)’는 커피를 비롯한 음료를 판매하는 상점으로, 가벼운 식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커피하우스’라는 영어보다 ‘카페’라는 프랑스어로 전 세계에서 더 많이 통용된다. 유럽 문화예술의 중심지 프랑스에서 카페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
프랑스 파리에는 유서 깊은 카페들이 여럿 있다. 1686년 개업한 ‘카페 프로코프’는 프랑스 최초의 카페이자 현존하는 카페 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 유명하다. 개업 당시 귀족이 즐기던 커피와 음료, 아이스크림 등 수입한 신제품을 대중에게 직접 판매해 인기를 얻었다. 그곳은 지식인의 만남의 장소로서 계몽사상가인 볼테르, 루소, 디드로 등이 백과전서의 기초를 마련했고, 대혁명 시기에는 로베스피에르, 당통, 마라 등 혁명가들이 드나들었다. 이후 나폴레옹이 방문했고 위고, 발레리, 발자크 같은 문학가들도 즐겨 찾았다.
이처럼 오래된 카페들은 프랑스 역사와 함께하면서 문화와 예술의 산실이 되고 카페 문화를 선도했다. 프랑스에서 카페 문화가 발달하게 된 데는 기존의 살롱 문화가 한몫했다. 귀족의 살롱 문화에서 대중적인 카페 문화로 자연스럽게 이행한 것이다. 카페는 술, 음료, 식사, 공연 등을 즐기면서 만남과 토론을 벌이는 문화적 공간이었다.
인상파의 아지트, 파리의 카페
19세기에 파리에 들어선 수많은 카페 중에 ‘카페 게르부아’는 인상주의 미술을 탄생시킨 장소로 유명하다. 이 카페는 에두아르 마네의 집 근처에 있어서 그를 따르는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주요 인물은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등의 미술가들, 그리고 졸라, 뒤랑티 같은 문인들이었다. 이들은 지역 이름을 따 ‘바티뇰 그룹’이라 불리며, 거의 매일 만나 재치 있는 담화와 열띤 논쟁을 벌였다. 신랄한 토론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서로 지지하면서 공통된 예술관을 도출하기도 했다. 1874년, 카페에 모인 화가들은 살롱전에 반대해 집단 전시회를 결성하고, 사진작가 나다르의 작업실에서 전람회를 개최한다. 이 전시는 곧 제1회 인상파전으로 명명됐고, 카페 게르부아는 인상주의 미술의 산실로 미술사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인상파 화가들은 1875년경 몽마르트르에서 가까운 카페 ‘누벨 아텐’으로 아지트를 이동한다. 모임의 일원이었던 화가이자 판화가 마르슬랭 데부탱이 이곳을 단골로 정하면서 다른 화가들도 따라간 것으로 보인다. 데부탱의 친구인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년)는 이 카페를 무대로 <압생트>라는 그림을 그렸다. 데부탱과 배우 엘렌 앙드레가 모델을 섰다.
그림에서 남자와 여자는 한 테이블에 나란히 있지만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본다. 여자는 옆 테이블에 놓인 압생트 병에서 술을 따라 놓고 멍하니 앉아 있다. 압생트는 환각을 일으킬 정도로 독한 술인데, 값이 저렴해 창작열에 불타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많이 마셨다. 여인은 이미 술을 마셔 어깨가 축 늘어지고 눈까풀은 무겁게 처졌다. 체념한 듯한 표정에서 녹록잖은 현실의 고달픈 삶이 엿보인다.
옆에 앉은 남자는 커피로 보이는 갈색 음료를 앞에 놓고 파이프를 문 채 어딘가를 보고 있다. 막연한 시선에 더부룩한 수염과 흐트러진 머리칼이 보헤미안 예술가의 자유로운 정신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한편으론 퇴폐적이고 무능한 건달 같은 인상을 준다. 그래서 이 작품이 처음 공개되자 볼품없는 창녀와 타락한 남자를 그린 그림이라고 비난이 쏟아졌다.
인물의 부조화와 불안한 심리는 그림의 특이한 구도로 더욱 강조된다. 캔버스를 세로로 길게 세우고, 두 사람을 화면 오른쪽 위에 몰아넣었다. 나머지 공간은 테이블들을 사선으로 배치해 지그재그로 구성했다. 테이블 상판의 연회색 면들이 이어지면서 단조로운 소재와 지루할 수 있는 내용에 역동감을 준다. 앞쪽에 대담하게 잘린 테이블의 넓은 면이 공간을 화면 밖으로 확장한다. 회색 면들을 따라 관람자의 시선이 끌려가 인물에서 멈춘다. 어디선가 비추는 실내조명이 뒷벽에 사람들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검은 그림자가 그들의 고독을 더욱 쓸쓸히 반영하는 듯하다.
반 고흐가 머문 아를의 카페
카페 문화는 파리뿐 아니라 지방 도시에도 깊숙이 파고들었다. 1888년 파리를 떠나 아를로 이주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년)는 화가들의 공동 작업실을 꿈꾸며 마련했던 ‘노란 집’에 입주하기 전, 임시로 인근의 ‘카페 드 라 가르’에 머물렀다. 그는 그 카페의 내부 정경을 작품에 옮겼는데, <밤의 카페>라는 그림이다.
늦은 밤 카페에는 술 취한 손님들이 양쪽 자리를 차지하고, 중앙에는 당구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 옆에 카페 주인인 조제 지누가 흰옷을 입고 우두커니 서 있다. 실내는 노랑, 빨강, 초록의 원색이 바닥, 벽, 천장에 두껍게 칠해져 있다. 강렬하고 선명한 색들이 대비를 이루며 독을 품은 듯 무거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화가는 급격하게 후퇴하는 원근법을 적용해 앞쪽은 텅 빈 듯 공허하고 안쪽으로 급히 빨려들 것 같은 깊이를 만들어낸다.
이 카페는 밤새도록 술주정꾼이나 매춘부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카페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피로를 달래는 곳이지만, 알코올 중독에 빠져 몰락해 가는 장소이기도 했다.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카페가 사람을 망치고, 미치게 하고,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처럼 카페의 분위기는 어딘지 섬뜩한 기운이 돈다. 천장에 매달린 가스등의 불빛도 불길하게 어른거린다. 그런데 이 그림은 카페의 실제 모습이라기보다는 화가 자신의 외롭고 불안한 심정을 이입한 것이 아닐까. 그 역시 가난했고 압생트와 커피와 담배를 지나치게 즐겼으니 말이다.
그 해 가을, 반 고흐의 요청으로 아를에 도착한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년)도 곧 ‘카페 드 라 가르’의 단골이 된다. 그 또한 <아를의 밤의 카페>라는 그림을 그렸는데, 카페의 실내를 다른 각도에서 포착했다. 반 고흐는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따로 떨어져 관망하는 시점을 택했지만, 고갱은 낮고 근접한 시점을 택해 카페의 일원으로 동참하고 있다. 마치 여주인과 마주 앉은 듯 지누 부인을 가까이서 크게 묘사했다. 배경의 손님들은 좌우 두 그룹으로 나뉘는데, 오른쪽 그룹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왼쪽 그룹은 대화 없이 각자 고립돼 있다. 지누 부인은 멜랑콜리한 자세로 배경 인물들과 분리돼 홀로 사색에 잠겨 있다.
고갱의 그림은 카페의 상반된 기능을 모두 보여준다. 공공장소로서 카페는 만남과 대화가 활발히 이뤄지는 사교장이기도 하고, 소란 속에서도 침묵하는 고독한 개인의 쉼터이기도 하다.
글·사진 박은영 서울하우스 편집장·미술사가
프랑스 파리에는 유서 깊은 카페들이 여럿 있다. 1686년 개업한 ‘카페 프로코프’는 프랑스 최초의 카페이자 현존하는 카페 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 유명하다. 개업 당시 귀족이 즐기던 커피와 음료, 아이스크림 등 수입한 신제품을 대중에게 직접 판매해 인기를 얻었다. 그곳은 지식인의 만남의 장소로서 계몽사상가인 볼테르, 루소, 디드로 등이 백과전서의 기초를 마련했고, 대혁명 시기에는 로베스피에르, 당통, 마라 등 혁명가들이 드나들었다. 이후 나폴레옹이 방문했고 위고, 발레리, 발자크 같은 문학가들도 즐겨 찾았다.
이처럼 오래된 카페들은 프랑스 역사와 함께하면서 문화와 예술의 산실이 되고 카페 문화를 선도했다. 프랑스에서 카페 문화가 발달하게 된 데는 기존의 살롱 문화가 한몫했다. 귀족의 살롱 문화에서 대중적인 카페 문화로 자연스럽게 이행한 것이다. 카페는 술, 음료, 식사, 공연 등을 즐기면서 만남과 토론을 벌이는 문화적 공간이었다.
인상파의 아지트, 파리의 카페
19세기에 파리에 들어선 수많은 카페 중에 ‘카페 게르부아’는 인상주의 미술을 탄생시킨 장소로 유명하다. 이 카페는 에두아르 마네의 집 근처에 있어서 그를 따르는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주요 인물은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등의 미술가들, 그리고 졸라, 뒤랑티 같은 문인들이었다. 이들은 지역 이름을 따 ‘바티뇰 그룹’이라 불리며, 거의 매일 만나 재치 있는 담화와 열띤 논쟁을 벌였다. 신랄한 토론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서로 지지하면서 공통된 예술관을 도출하기도 했다. 1874년, 카페에 모인 화가들은 살롱전에 반대해 집단 전시회를 결성하고, 사진작가 나다르의 작업실에서 전람회를 개최한다. 이 전시는 곧 제1회 인상파전으로 명명됐고, 카페 게르부아는 인상주의 미술의 산실로 미술사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인상파 화가들은 1875년경 몽마르트르에서 가까운 카페 ‘누벨 아텐’으로 아지트를 이동한다. 모임의 일원이었던 화가이자 판화가 마르슬랭 데부탱이 이곳을 단골로 정하면서 다른 화가들도 따라간 것으로 보인다. 데부탱의 친구인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년)는 이 카페를 무대로 <압생트>라는 그림을 그렸다. 데부탱과 배우 엘렌 앙드레가 모델을 섰다.
그림에서 남자와 여자는 한 테이블에 나란히 있지만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본다. 여자는 옆 테이블에 놓인 압생트 병에서 술을 따라 놓고 멍하니 앉아 있다. 압생트는 환각을 일으킬 정도로 독한 술인데, 값이 저렴해 창작열에 불타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많이 마셨다. 여인은 이미 술을 마셔 어깨가 축 늘어지고 눈까풀은 무겁게 처졌다. 체념한 듯한 표정에서 녹록잖은 현실의 고달픈 삶이 엿보인다.
옆에 앉은 남자는 커피로 보이는 갈색 음료를 앞에 놓고 파이프를 문 채 어딘가를 보고 있다. 막연한 시선에 더부룩한 수염과 흐트러진 머리칼이 보헤미안 예술가의 자유로운 정신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한편으론 퇴폐적이고 무능한 건달 같은 인상을 준다. 그래서 이 작품이 처음 공개되자 볼품없는 창녀와 타락한 남자를 그린 그림이라고 비난이 쏟아졌다.
인물의 부조화와 불안한 심리는 그림의 특이한 구도로 더욱 강조된다. 캔버스를 세로로 길게 세우고, 두 사람을 화면 오른쪽 위에 몰아넣었다. 나머지 공간은 테이블들을 사선으로 배치해 지그재그로 구성했다. 테이블 상판의 연회색 면들이 이어지면서 단조로운 소재와 지루할 수 있는 내용에 역동감을 준다. 앞쪽에 대담하게 잘린 테이블의 넓은 면이 공간을 화면 밖으로 확장한다. 회색 면들을 따라 관람자의 시선이 끌려가 인물에서 멈춘다. 어디선가 비추는 실내조명이 뒷벽에 사람들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검은 그림자가 그들의 고독을 더욱 쓸쓸히 반영하는 듯하다.
반 고흐가 머문 아를의 카페
카페 문화는 파리뿐 아니라 지방 도시에도 깊숙이 파고들었다. 1888년 파리를 떠나 아를로 이주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년)는 화가들의 공동 작업실을 꿈꾸며 마련했던 ‘노란 집’에 입주하기 전, 임시로 인근의 ‘카페 드 라 가르’에 머물렀다. 그는 그 카페의 내부 정경을 작품에 옮겼는데, <밤의 카페>라는 그림이다.
늦은 밤 카페에는 술 취한 손님들이 양쪽 자리를 차지하고, 중앙에는 당구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 옆에 카페 주인인 조제 지누가 흰옷을 입고 우두커니 서 있다. 실내는 노랑, 빨강, 초록의 원색이 바닥, 벽, 천장에 두껍게 칠해져 있다. 강렬하고 선명한 색들이 대비를 이루며 독을 품은 듯 무거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화가는 급격하게 후퇴하는 원근법을 적용해 앞쪽은 텅 빈 듯 공허하고 안쪽으로 급히 빨려들 것 같은 깊이를 만들어낸다.
이 카페는 밤새도록 술주정꾼이나 매춘부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카페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피로를 달래는 곳이지만, 알코올 중독에 빠져 몰락해 가는 장소이기도 했다.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카페가 사람을 망치고, 미치게 하고,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처럼 카페의 분위기는 어딘지 섬뜩한 기운이 돈다. 천장에 매달린 가스등의 불빛도 불길하게 어른거린다. 그런데 이 그림은 카페의 실제 모습이라기보다는 화가 자신의 외롭고 불안한 심정을 이입한 것이 아닐까. 그 역시 가난했고 압생트와 커피와 담배를 지나치게 즐겼으니 말이다.
그 해 가을, 반 고흐의 요청으로 아를에 도착한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년)도 곧 ‘카페 드 라 가르’의 단골이 된다. 그 또한 <아를의 밤의 카페>라는 그림을 그렸는데, 카페의 실내를 다른 각도에서 포착했다. 반 고흐는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따로 떨어져 관망하는 시점을 택했지만, 고갱은 낮고 근접한 시점을 택해 카페의 일원으로 동참하고 있다. 마치 여주인과 마주 앉은 듯 지누 부인을 가까이서 크게 묘사했다. 배경의 손님들은 좌우 두 그룹으로 나뉘는데, 오른쪽 그룹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왼쪽 그룹은 대화 없이 각자 고립돼 있다. 지누 부인은 멜랑콜리한 자세로 배경 인물들과 분리돼 홀로 사색에 잠겨 있다.
고갱의 그림은 카페의 상반된 기능을 모두 보여준다. 공공장소로서 카페는 만남과 대화가 활발히 이뤄지는 사교장이기도 하고, 소란 속에서도 침묵하는 고독한 개인의 쉼터이기도 하다.
글·사진 박은영 서울하우스 편집장·미술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