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오징어 게임' 된 대출 시장...부동산 투자 딜레마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시계가 빨라지고 있고 금융당국의 두 수장이 가계 빚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부동산 투자 시계는 버전 1.0에서 2.0으로 거듭 변모하고 있다. 금융당국에서는 "실물경제를 압박하는 리스크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며 부동산 시장에 연일 경고장을 보내고 있다. 이 시점에 빚을 내서 부동산을 매수하는 것이 적절한가, 아니면 곧 터질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투자 시기를 늦추며 관망해야하는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후의 승자만 살아남는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는 게임의 승자와 탈락자들의 명암이 뚜렷하게 갈린다. 게임의 탈락자들은 그 자리에서 희생된다. <오징어 게임>에서 456억 원의 상금을 타게 되는 사람은 단 한 명뿐. 게임은 최후의 승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된다.

현실판 <오징어 게임>이 최근 금융권을 강타했다. 한 시중은행은 신축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을 대상으로 선착순 잔금대출 신청 예약을 받았다. 그나마 은행에서 보낸 메시지를 곧바로 확인한 사람들이 대출을 가장 먼저 선점했다. 최근 오픈식을 연 토스뱅크도 신규 대출자들이 몰리면서 출범한 지 9일 만에 대출을 소진했다. 은행권 전반에서는 올 연말까지 대출 문을 걸어 잠궜다. 실수요자 대출마저 막아버리는 초강력 규제가 시행되면서 부동산 대출 시장을 놓고 눈치싸움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초강력 규제가 불러온 양극화...소득 대비 자산가격 껑충
은행에서의 대출이 막히자 고금리 금융·사채로 옮겨가는 대출난민들이 늘어났다.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가격 급등세와 세금 이슈로 거주 이전이 어려워졌고, 자산 증식 수단이 막히면서 양극화 현상으로 나타났다.

KB경영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연이은 정부 대책에도 주택 매매가격 상승세는 지속됐다. 특히 올해 들어 주택가격 상승세는 가팔랐다. 수도권 주택 매매가격은 올해 들어 지난 8월까지 13.1%의 상승률을 기록한 데 반해 수도권 아파트는 같은 기간 18%가 올랐다. 지난 8월 기준 주택 평균 매매가격은 전국 4억6000만 원(아파트 5억2000만 원), 서울 8억7000만 원(아파트 11억8000만 원), 수도권 6억2000만 원(7억4000만 원)을 기록했다.

서울 및 수도권의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평균소득 가구의 주택 구입 부담이 커졌다. 소득 중·상위계층(소득 3분위)이 서울 평균 가격대 주택을 구입할 경우 약 13년이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년간 가구 평균 연소득은 약 1000만 원가량 상승한 반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평균 5억4000만 원이 상승한 것이다.

서울 아파트를 중위 소득 가구가 매입하려면 최소 18년 이상이 소요된다. 서울 지역 주택구입잠재력지수(HOI)로 살펴본 결과 서울 지역 중위 소득 가구가 구매 가능한 서울 지역 아파트는 전체의 5.6%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택가격 급등세에 비해 소득 수준이 늘지 않은 데다 주택담보대출 가능 금액이 크게 축소되면서 조달해야 하는 자금 규모는 이전보다 큰 폭으로 증가한 셈이다. 서울 및 수도권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국 주택 상하위 가격의 격차 확대, 전국 1분위와 5분위 주택가격 차이는 10억 원까지 확대됐다.

부동산 시장을 규제할수록 주택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자산 규모가 크지 않은 30~40대를 중심으로 주택 매수 시장 과열 현상이 나타났고 ‘영끌’과 ‘패닉 바잉’의 단초로 작용했다. 특히 부동산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판치는 투기적 거래인 갭 메우기, 풍선효과 등으로 시장의 양극화는 더욱 뚜렷해지는 결과로 나타났다.

무주택자뿐 아니라 유주택자들도 서울이나 강남권의 주택 보유 유무에 따라 자산 격차가 심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다주택자들은 보유세 증가와 양도세 중과로 상당수의 가구가 주택 매도가 아닌 증여를 택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가계 빚 역대 최대...대출 속도 경고등
가계 빚이 역대급으로 증가한 것도 부동산 시장의 리스크로 지목된다. 이는 사상 최장기의 저금리와 유동성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은 정부부채와 민간부채 증가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글로벌 주요국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감한 재정·통화정책을 동원했으며 그 과정에서 막대한 정부부채와 민간부채가 누적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 부채(정부부채+민간 기업부채) 비중은 지난 1분기 현재 281.8%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신흥국(239.7%)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이다. 국내 정부부채와 기업부채 증가 속도는 여타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완만하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증가했다.

반면 가계부채는 글로벌 평균 수준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증가세를 보였다. 국내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7.6%로 선진국(81%), 신흥국(53.9%)에 비해 크게 높아진 상황이다. 경제 규모 대비 가계부채 증가 속도 측면에서도 우리나라는 주요국들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를 시현했다.

국내 가계부채 현황을 보면 지난 2분기 말 기준 국내 가계신용(가계대출+판매신용)은 1800조 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 2분기 말 가계대출 증가율은 올해 상반기 중 4.51%, 전년 동기 대비로는 10.3%로 각각 증가하며 증가율 상승 폭을 확대했다. 지난해 중 비교 가능한 주요 선진국 20개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명목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 상승 폭은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금융업권별 가계대출을 살펴보면 은행권 가계대출이 전반적인 증가세를 보인 가운데 비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율도 지난해 하반기 이후 가파른 상승곡선을 나타냈다. 올해 2분기 은행권의 가계부채 증가율이 10.8%를 기록한 반면 비은행권은 9.8%에 이른다.

은행권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비교적 느슨했던 비은행권으로의 풍선효과가 발생했다. 비은행권에서 저축은행과 카드사 등 여신업의 가계대출 증가율이 가팔랐다. 20대를 중심으로 부채 돌려막기용 및 빚투용으로 추정되는 카드론이 급증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대출 유형별로 봐도 주택담보대출 위주에서 점차 기타 대출 증가 추세가 강화되는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에는 강화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 회피 수요와 공모주식, 가상자산 투자 수요에 신용대출 규제 강화 이전 선수요가 가세하면서 기타 대출이 급증하는 효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증가가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 부동산 시장 규제, 종합부동산세·양도세 강화 등의 정책 실패가 기인한 현상이라고 꼬집었다. 획일적인 대출 총량 규제가 가계 빚 급증이라는 부작용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신성환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총론적인 접근만으로는 가계부채 급증의 근본적인 원인을 막지 못한다”며 “대출을 막기에 앞서 정부와 금융권의 공감대 형성이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물경기 위축·가계 빛 부실화 우려 상존
가계대출 규모가 급증하면서 부실화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해 가계대출 중 변동금리대출 비중이 빠르게 상승하며 차주의 채무상환 능력이 금리 변화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확대된 것이다.

변동금리 대출 비중은 지난해 1월(49.8%)에서 지난 6월 기준 81.75%로 높아졌다. 주택담보대출에 비해 만기가 짧은 신용대출 비중이 증가했고 이는 대출의 질적 안정성 저하로 나타났다.

30대 이하 청년층 주택담보대출 차주 비중이 상승 폭을 확대했다. 신용대출 중심으로 중·저신용자 비중이 상승한 반면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중·저신용자 비중이 하락했다. 청년층의 차입을 통한 주택 매입이 확대되면서 30대 이하 부동산 매매 비중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급상승했다.

청년층의 1인당 부채 규모도 급증하면서 청년층 소득 대비 부채 비중도 타 연령층에 비해 높은 상승 폭을 기록했다. 국내 가계의 소득보다 부채가 훨씬 빠르게 증가하면서 국내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급등했다.

가계 전반의 채무 부담은 가중되고 채무상환 능력은 크게 약화됐다. 국내 가계부채는 1년 미만의 단기 부채 비중이 높고, 가계 부문의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이 높아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과 금리 변동 리스크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영업자의 부채 현황도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 자영업자 대출(가계대출+개인사업자대출)은 전체 가계대출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특히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만기와 이자상환 유예조치 등으로 금융 지원 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데 관련 부실 위험도 누적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금융 지원 규모는 지난 6월 말 기준 총 204조4000억 원, 대출만기 연장은 192조5000억 원, 원금상환 유예는 11조7000억 원, 이자상환 유예는 2032억 원 수준에 달한다.

부동산 시장 최대 변곡점...주택 공급↓·금리↑
전문가들은 내년 부동산 시장이 최대 변곡점을 지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내년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정책기조 유지 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주택 공급 물량은 내년에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재건축 시장은 주택가격 상승기 때마다 규제가 반복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지역 재건축 시장은 기존 주택가격 상승을 견인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며 가격 상승기 때마다 규제 대상으로 부각된다.

최근 서울 주요 지역 내 신규 공급 가능 택지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재건축 규제 강화는 향후 공급 물량 축소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22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2만463가구로 전년(3만1211가구)보다 34.4%가 감소할 전망이다. 2019년(4만9359가구)에 비하면 절반 이하로 급감하게 된다. 이 가운데 미국 금리 인상을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 전반으로 금리 정상화 흐름을 보일 것으로 보여 시장 위축이 불가피하다다.

내년에는 글로벌 기조 흐름에 따른 기준금리 인상이 이어지면서 금리 정상화 단계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렸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는 11월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에 이어 내년 금리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글로벌 주요 국가들도 긴축모드와 금리 정상화 분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금융 정상화 속도의 불확실성이 내년 자산 시장의 리스크 요인으로 부각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임형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실물경기 정상화를 전제로 유동성 축소를 시도하고 있지만 공급망 혼란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과 대만의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현실화될 경우 실물경기 정상화가 예상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글 이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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