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에 대한 세금 부과가 기정사실화가 되면서 이제 가상자산도 실물경제 제도권 안으로 편입되는 시점이 왔다. 이르면 내년 1월 정부가 가상화폐에 대한 세금 부과를 추진 중이다. 이에 따라 주요 가상화폐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올 한 해 가상자산 시장을 들썩이게 했던 가상화폐 ‘빅4’를 중심으로 가상자산의 실체를 분석해본다.
비트코인(Bitcoin)은 다른 가상화폐와 구분되는 명확한 특징이 있다. 화폐의 발행과 관리 주체가 없다. 2009년, 비트코인을 만든 사토시 나카모토는 전체 시스템을 개발했지만, 화폐 발행 주체는 아니다. 나카모토가 2010년 종적을 감춘 이후에도 비트코인은 여전히 10분에 한 번씩 특정량이 발행된다. 비트코인은 분산형 공개 장부인 블록체인 기술로 운영된다. 블록체인이란 일종의 거래기록(장부) 묶음이다. 한 묶음이 디지털로는 하나의 파일이어서 ‘블록’으로 표기했다. 이 블록을 사슬로 연결한다고 해서 블록체인이란 기술 용어가 탄생했다.
비트코인은 10분간 일어난 모든 거래를 하나의 블록으로 만들고, 그 블록을 이전에 만든 블록과 연결한다. 이 연결된 거래 묶음은 누구나 조회하고 저장할 수 있다. 거래 당사자가 누구인지는 익명이지만 어느 지갑에서 어느 지갑으로 얼마가 이동하는지에 대한 내역이 네트워크 참여자 모두가 공유하는 원리다.
이럴 경우 이중 지급을 막을 수 있다. 예를 들어 A씨가 저녁식사를 하고 자신이 소유한 0.1비트코인을 냈다면, A씨가 0.1비트코인이 이젠 없다는 정보를 수많은 사람이 알게 되고, A씨는 다음 날 아침식사를 한 후 자신의 지갑에 어제 사용한 0.1비트코인이 있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된다. 언뜻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이중 지급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상화폐가 풀어야 할 난제다. 결국 나카모토는 중개자 없이 이중 지급 문제를 해결했고, 이것이 비트코인의 핵심 기술이기도 하다.
비트코인이 작동하려면 10분에 한 번씩 거래 묶음을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이 작업을 누가 하느냐다. 나카모토는 이 문제를 새로 발행하는 비트코인을 지급하면서 해결했다. 바로 채굴(mining)이라고 하는 과정이다. 거래내역을 블록으로 만들어 이전 블록과 연결하는 작업이다. 고난도 암호 기술과 수학 연산이 적용되는 이 과정을 작업증명(proof-of-work)이라고 한다.
참여자가 많아질수록 컴퓨터가 풀어야 하는 수학적 연산 난이도가 높아진다. 수학적 연산이란 고도의 사고력을 요하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가 무작위로 숫자로 대입하는 작업을 하고, 우연히 맞는 숫자를 넣은 컴퓨터가 이전 장부 내역을 확보해 새로운 거래내역을 모아 갱신한 뒤, 이 장부를 다시 네트워크에 전파한다. 이 일을 한 컴퓨터는 새로 발행되는 비트코인을 받는다. 10분 간격으로 이 과정이 반복된다. 따라서 비트코인을 얻으려면 강력한 연산능력이 있는 컴퓨터를 가졌거나 최대한 많은 컴퓨터를 모으는 것이 유리하다.
문제점도 발견됐다. 10분에 한 번씩 모든 거래를 단 1메가바이트(MB) 용량의 블록으로 정리하기 때문에 대기시간이 길어졌다. 거래가 체결돼 물건을 사고서도 비용을 치르기까지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한 블록에 담을 수 있는 거래량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막대한 전력 소모도 단점이다.
이더리움(Ethereum)은 비트코인에 이어 시가총액 2위 가상화폐다. 이처럼 높은 가치 평가를 받는 이유는 가상화폐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더리움은 가상화폐가 지급결제 수단을 넘어 그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잠재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다. 단순 거래 수단이 아닌 거래 형태를 바꾸고 더 나아가 인터넷 구조를 바꿀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더리움 핵심은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과 ‘분산응용프로그램(DApp)’이다. 스마트 계약이란 코드(code)로 실행되는 계약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2018년 1월 10일 여의도에서 비가 내리면, A는 B에게 300이더리움을 지급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B가 A에게 500이더리움을 지급한다’는 계약을 이더리움 블록체인 안에 코드로 기록한다. 이를 기상청 날씨정보 시스템과 연동하면 이 계약은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자동 실행된다. 이런 계약이 상용화된다면 적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보험, 자동차 리스 등을 비롯해 실생활에서 체결되는 무수히 많은 계약에 활용할 수 있다.
코드가 계약 이행을 강제한다는 특징 때문에 계약이 이행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없다. 스마트 계약의 또 다른 강점은 분산형 자율조직이다. 사람 손을 거치는 수많은 업무가 계약 이행과 관련된다. 이를 코드로 대체할 수 있다는 구상이 바로 분산형 자율조직이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자동차와 카카오택시가 결합된 분산형 자율조직이 있다면, 기사나 직원을 두지 않고, 택시 회사 운영이 가능해진다. 자율주행차는 가장 가까운곳에서 차를 부른 사람을 찾아가 목적지까지 태워준다. 요금 결제는 거리에 따라 자동 정산된다. 자동차 기름이 떨어지면 가장 가까운 주유소를 찾아가고, 정해진 시기에 자동차 정비소를 방문해 스스로 점검을 받는다. 이런 택시 회사가 바로 분산형 자율조직이다.
결국 이더리움 강점은 이 같은 분산응용프로그램이다. 비트코인과 달리 블록체인에 계약 내용을 기록할 수 있고, 계약은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코드로 입력된다. 분산응용프로그램은 비트코인의 거래 장부처럼 누군가 조작하거나 해킹할 수 없는 환경을 제공한다. 또 프로그램 실행을 누군가 중단할 수도 없다. 이는 다시 말해 인터넷 구조를 바꾸는 시도로 이어진다. 하지만 아직 이 같은 기술은 초기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고 상용화 사례는 드물다.
리플(Ripple)은 은행 간 이체 서비스를 위해 개발된 가상화폐다. 기존에는 국제은행 간 통신협회(SWFT)가 만든 네트워크를 통해 은행 사이 자금이체가 이뤄졌다. 문제는 이체 속도였다. 개인은 본인 예금을 다른 은행에서 바로 인출할 수 있지만, 돈을 지급하는 은행은 대금을 받기까지 2~10일이 소요된다. 리플은 비트코인이 도입한 분산 장부 기술로 대금 지급(청산) 절차를 대폭 줄였다. 거의 실시간으로 은행 간 이체가 가능한 기술을 구현했다.
2012년 만들어진 뒤, 전 세계 금융사들과 협력해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있다. 영국 스탠더드차타드, 일본 SBI 금융그룹 등이 리플이 만든 리플랩스에 투자했고, 이들을 비롯한 각국 금융기관 70여 곳이 협력사로 참여했다. 활용 사례가 아직 많진 않지만 각국 제도권 금융사들이 리플 상용화를 추진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리플은 채굴을 통해 화폐를 발행하지 않고, 처음부터 발행량이 1000억 개로 정해져 있다. 가상화폐 핵심 요소인 분산형 공개 장부도 다르게 운영한다. 장부를 보유하고 업데이트하는 참여자(node)를 리플랩스에서 정한다. 이 같은 특징 때문에 리플은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분류한다.
에스페란토어로 ‘동전’을 의미하는 모네로(Monero)는 제트캐시, 대시와 함께 익명성을 높인 가상화폐다. 모네로가 익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기술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링 서명으로 블록체인에서 가져온 공개 열쇠와 사용자 개인 열쇠를 결합한 서명 방식이다. 둘째, 수신자에게 일회용으로 제공하는 지갑인 ‘스텔스 주소’다. 외부인이 지갑 주소나 개인 열쇠 중 하나를 알아도 여전히 익명성이 보장되는 구조다. 셋째, 2017년 9월 하드포크(업데이트)로 추가된 기술로 ‘링 기밀 거래’다. 이중, 삼중의 보안 기술이 적용돼 여러 가상화폐 중 익명성이 높은 코인으로 손꼽힌다.
모네로는 비트코인과 마찬가지로 작업증명을 통해 블록이 생성된다. 다만 블록이 생성되는 주기가 2분으로, 비트코인의 5분의 1이다. 공급량은 1840만 개로 정해졌지만, 이 발행량에 도달한 뒤에도 블록이 생성될 때마다 0.3XMR씩 발행이 추가되기 때문에 총 발행량은 정해져 있지 않다.
2022년, 디파이 시대 열린다
이처럼 주요 가상자산 시장 호황에 힘입어 디파이(탈중앙화금융)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가상자산 직접투자에 밀려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못했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디파이 투자 규모는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주요 금융사가 유관 시장에 진입했고, 국내 금융사들도 디파이 서비스의 일종인 수탁(커스터디) 사업을 준비 중이다.
더블록 조사에 따르면 디파이 플랫폼에 예치된 총액(TVL)은 지난해 7월 15억 달러에서 12월 117억 달러까지 급성장했고, 올해 9월 기준으로는 908억 달러까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디파이는 가상코인이 시장에서 잘 유통되게 하려는 목적이 크다. 초기 등장한 코인들은 특별한 목적성 없이 실험적인 성격이 강했다. 코인 시장이 점차 성장하면서 블록체인의 대량 채택 제공을 목적으로 탄생한 클레이튼이나, 이더리움 합성 자산을 거래하고 발행하는 목적의 신세틱스 등 뚜렷한 목적을 띤 코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수 투자자들이 이런 코인들을 매수하기만 하고 시장에 잘 팔지는 않으면 유동성 공급에 문제가 생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와프, 스테이킹 등 디파이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정 풀에 유동성을 제공하면 그 대가로 보상을 받는 구조다. 은행에 현금을 맡기는 예금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2022년은 디파이 투자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이더리움, 바이낸스 스마트체인, 클레이튼 기반의 디파이가 잘 알려져 있다. 디파이 서비스에는 클레이스와프, 팬케이크스와프, 스시스와프, 유니스와프 등이 있다. 이 중 클레이스와프는 카카오의 자회사 그라운드X가 운영하는 블록체인 프로젝트 클레이튼을 기반으로 한다. 일드파밍(이자농사) 기능을 제공하고 있어 초기 투자자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후 투자 위험도, 이자율, 수익률, 손실 가능성 등을 따져 투자 상품을 선택할 수 있으며, 은행 통장의 역할을 하는 가상자산 입출금 전자지갑을 준비해야 한다.
디파이 투자는 일반적인 가상자산 투자보다 하락장에서 손실이 커질 수 있다. 이는 디파이 풀 투자가 기본적으로 2개의 코인을 혼합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물론 원금과 이자 가치를 고려해 상승장에서는 2배 이상의 수익을 볼 수 있어 투자자의 꼼꼼한 분석이 필요하다.
디파이 상품은 비교적 중장기 상품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수익성만 볼 것이 아니라, 서비스의 안전성과 전체적인 시장 가격 흐름 등 정밀한 예측이 요구된다.
글 길재식 전자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