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유럽의 이야기다. 여덟 살 아이가 그 나라의 총리에게 “총리님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배송을 할 수 있을지 논의를 해봤는지 궁금합니다. 쿠키 옆에 손 세정제를 두면 오실까요”라는 내용의 편지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보냈다고 한다. 총리는 “많은 친구들이 고민하는 것을 안다”며 “산타와 통화한 결과 선물을 배달할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이고 산타는 민첩히 움직이기에 모두 안전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가 아이들 동심의 콘텐츠가 돼버린 서글픈 상황이다.
재택근무를 하는 아빠가 산타 할아버지가 성탄절에 오시냐는 자녀의 질문에 일하느라 정신이 없어 “2주간 자가격리가 필요하니까 1월 9일쯤 선물이 도착할 것 같다”고 동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업무적으로 답했다가 아이가 속상해 울어 당황했다고 한다. 같이 재택근무를 하는 아내에게는 “왜 아이를 울리냐”는 잔소리까지 듣게 되니 화가 나 부부싸움까지 했다는 것이다.
성탄절처럼 반가운 휴일에, 가족들이 모여 즐겁게 식사를 하다가 부부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분위기가 좋아지다 보니 과거 섭섭한 이야기를 배우자에게 꺼내 위로도 받고 눌러놨던 속상한 마음도 풀려고 했는데 상대방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자신이 더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 부부 대화에 갈등의 불꽃이 튀게 된다.
투명성 착각(illusion of transparency)은 사람들이 자신의 속내를 다른 사람들이 잘 안다고 착각하는 심리현상을 이야기한다. 생각만큼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섭섭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부부 갈등을 원하는 부부는 없다. 그래서 집이란 공간이 일, 학교, 가정으로 복잡하게 섞여버린 현재의 스트레스 상황이지만 상대방도 내 마음을 다 알 것이라고 믿고 조금 속상하고 불편해도 참으려는 노력을 보통 하게 된다. 그런데 부부 사이라도 내가 내 마음을 정확히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내 마음을 모르기가 쉽다. 그래서 단기적으론 이런 태도와 소통이 가족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길어지게 되면 짜증과 분노가 마음에 쌓이다 결국 심각한 부부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부부 사이도 비즈니스 소통이 필요하다. 파트너와 비즈니스를 잘 해나가려면 솔직한 소통을 통해 먼저 상대방의 요구 사항을 정확히 파악하고 서로 절충해서 합의해야 한다. 부부 소통도 섭섭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픈 마음의 욕구를 잠시 누르고 서로의 요구 사항을 먼저 경청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나누게 되면, 예를 들어 가사 업무 등을 분담하는 것도 시간으로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가 더 싫어하는 것은 내가 하고 반대는 배우자가 하는 식의 효율적인 분담이 가능해진다. 당연히 부부 스트레스도 줄어든다.
무엇보다도 이런 소통을 통해 서로를 향해 불만을 표출하는 갈등 관계가 아니라 어려운 현 상황을 함께 헤쳐 나가는 파트너로서의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윈터 블루를 극복하려면
겨울에는 계절성 우울증이 발생하기 쉽다. 다른 스트레스 요인이 없더라도 우울이 찾아올 수 있다. 밤이 길어지고 바깥 날씨가 추워지면 따뜻한 집 안 침실에서 더 숙면이 가능할 것 같지만, 겨울 우울과 더불어 겨울 불면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추운 날씨는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 요인으로 우리 마음에 기억돼 있어 날씨가 추워지면 자동으로 뇌의 각성도가 올라갈 수 있다. 각성도가 올라가니 밤에 수면 스위치가 쉽게 켜지지 못한다.
잠을 잘 자는 사람은 스스로 ‘잠을 잔다’고 생각한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으면 그냥 뇌의 수면 스위치가 켜지기 때문인데, 수면 스위치를 손가락 움직이듯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면 불면증이 생길 일이 없다. ‘마음 편히 먹고 푹 자봐’라는 말을 들으면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분들 입장에 확 짜증이 나며 더 잠이 안 온다. 노력해서 성공하기도 어려운데 수면은 노력하면 더 불편해지는 황당한 영역이다.
불면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피곤하다, 졸리다, 잔다, 잘 잔다’라는 말의 느낌이 다 다르지 않느냐고 질문하면 격하게 동의한다. 피곤하면 잘 잘 것 같아 하루 종일 몸을 혹사했는데도 오히려 꼬박 밤을 지새울 수 있다. 과도한 피로는 위기 신호로 인식돼 오히려 뇌의 각성도가 더 올라갈 수 있다. 엄청 졸려도 각성도가 내려가지 않으면 수면 상태로 진입이 불가능하다. 아침에 뇌가 덜 깬 듯한 느낌은 뇌가 켜지긴 했지만 아직 잠을 자려는 힘에 비해 깨어나려는 힘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낮에는 깨어나려는 힘이 훨씬 커졌다가 밤이 되면 자연스럽게 잠에 들고자 하는 힘이 강해져야 잘 수 있다. 아주 졸린 상태이더라도 각성도가 버티고 있으면 잘 수가 없는 것이다. 또 가까스로 잠들었지만 각성도가 충분히 떨어져 깊은 수면에 이르지 못하면 잘 잤다는 느낌이 오지 않는다.
겨울 숙면을 위해서는 집에서라도 가벼운 운동이 필요하다. 마음에게 “편해져라”고 말한다고 마음이 편해지지 않아 마음 관리가 어려운 것인데, 의외로 가벼운 신체 활동이 신체 건강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항스트레스 솔루션으로 연구돼 있다. 밤이 길어진 만큼 낮에 햇살을 충분히 느끼는 것도 겨울 숙면과 겨울 우울감 예방에 도움이 된다. 수면을 담당하는 뇌의 생체시계는 빛의 양으로 잠잘 시간을 정한다. 빛을 충분히 느껴야 밤도 진하게 느껴진다. 또한 빛에는 항우울 효과도 존재한다. 일어나는 시간을 일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면증일수록 잠이 소중하기에 새벽에 잠들면 늦잠을 자기 쉽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생체리듬이 다 뒤로 밀리게 돼 밤에 각성도가 제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글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