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 “K-문학의 부상, 단순히 지나는 바람 아냐”
입력 2021-11-26 09:00:01
수정 2021-11-26 09:00:01
드라마는 물론 영화, 음악, 게임, 애니메이션 등등 K-콘텐츠가 전 세계를 무대로 빛을 발하고 있다. 그중 ‘K-문학’은 K-콘텐츠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그 고유의 가치를 이미 26년 전 꿰뚫어본 사람이 있다. 바로,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다. 그가 말하는 K-문학의 힘과 인기 비결, 미래 성장성에 대해 두루두루 이야길 나눠봤다.
김영하, 신경숙, 한강, 편혜영, 이정명, 황선미, 정유정 등등. 국내를 넘어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뒤엔 늘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가 함께했다. 2005년 한국 문학 첫 해외 수출 사례(영미권 기준)인 김영하 작가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비롯해 2011년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맨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하고, 미국 시사지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에 오른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 모두 그의 손을 거쳐 세상에 알려졌다.
이 대표는 한국 문학이 사실상 해외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혈혈단신으로 한국 문학 알리기에 뛰어들었다. 과정은 더디고, 험준했다. ‘맨땅의 헤딩’이라는 표현이 꼭 맞을 정도로 해외 출판의 문턱은 높고, 냉혹했다. 실제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해외에서 정식 출판되기까지만 꼬박 7년이 걸렸고, 2005년에서 2010년까지 그가 해외 출판사에서 국내 서적 출간을 성사시킨 건 한 해 1~2건에 그쳤다고 한다.
영리적 목적만 가지고 이 일을 이끌었다면 결코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을 터. 하지만 그는 26년 넘게 이 일을 고수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누구보다 한글과 한국의 문학, 문화를 사랑하고, 한국 문학만이 지닌 고유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외 곳곳을 방문하며 터득한 현지 트렌드와 노련한 실무 감각을 통해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긴 기다림 속에 그는 결실의 시간들을 하나씩 맞이하고 있다. 단, 이 대표는 지금부터가 정말 시작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가 바라본 K-문학의 저력은 무엇이고, 향후 한국 문학이 전 세계로 더 깊게 뿌리내리기 위해선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하셨나요.
“1995년 임프리마코리아에 입사하면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어요. 초기엔 주로 한국에서 번역 출판될 수 있는 해외 저작물을 살피고, 수입하는 일을 했죠. 그런데 늘 마음속 깊이 우리 문학을 해외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이전 회사에서 시도해봤지만 초기엔 쉽지 않았죠. 경험도 부족했고 전략도 없었어요. 무엇보다 당시만 해도 한국 문학을 포함해서 한국 저작물이 해외 출판 시장에서 번역 출판되는 사례가 많지 않았어요.
글로벌 관심이나 인지도도 거의 전무했죠. 그래도 제 노선에는 변함이 없었어요. 언젠가는 훌륭한 한국 도서가 외국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 늘 있었거든요. 그래서 도전하기로 했고, 이전 회사에 이어서 10년 전부터는 아예 제 회사를 꾸려서 한국 저작물을 해외에 수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구체적 계기가 궁금해요.
“일단은 제 개인적인 관심에서 시작했죠. 문학작품을 읽고, 그것의 가치를 들여다보는 걸 무척 좋아했거든요. 물론, 경제적 측면만 고려했다면 힘들었겠죠.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자기가 좋아하고, 열정을 갖는 부분에 의지가 있으면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 같아요.”
일종의 애국심도 작용했을까요.
“물론, 그런 요소도 있었을 거예요. 다만, 이걸 애국심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우리 한국인이 가진 그 뭔가를 더 큰 세상에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런 나눔을 통해서 우리만의 어떤 정수나 진수, 문화나 정신 등 중요한 가치들을 알리고 싶었죠. 특히, 한글이라는 우리만의 문자로 만들어진 고유한 무형의 가치를 소개하고 싶었어요. 또 그걸 통해 비즈니스를 하려다 보니 이 일을 하게 됐습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한강의 <채식주의자> 모두 대표님의 손을 거쳐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해외에서 출판되는 데 꼬박 7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과정이 저는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어요. 그만큼 책에 대한 믿음과 이 일을 꼭 성사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확고했거든요. 다만, 좀 더 일찍 뭔가를 성사시켜 작가들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싶었죠. 저야 한 작품만 계약을 다루는 게 아니다 보니 바쁘게 일하다 보면 시간을 잊고 지낼 때도 많거든요. 그런데 작가들의 경우는 그 작품 하나만 기다리는 경우가 상당수거든요. 간절함이 크실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어떤 작품이든 제가 그걸 읽었을 때 ‘이거다’라고 믿음이 있다면 시간이 걸려도 기다리고, 인내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대표님이 생각하는 좋은 작품의 기준은무엇인가요.
“사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이 늘 현지 시장에서 통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때론 맞기도 하고, 또 다르기도 하더라고요. 단,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은 대개 두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독특하지만 일상적인 것’, 이 두 가지예요. 좀 상투적인 말 같지만 실제로 훌륭한 문학작품에는 이 요소들이 거의 빠짐없이 공존해요. 이를 테면 독창성은 그 작가만이 지닌 독특한 표현법이나 주제에 대한 해석(통찰력), 개성으로 차별성을 갖는 거죠. 동시에 일상적이란 것은 말 그대로 보편적인 것들을 의미해요. 인종이나 문화가 달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나 정서, 사유들 말이죠. 사실 철학적으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관점이 나뉠 수는 있지만 대개 진리는 우리 일상 속에 숨어 있거든요.
다만,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 내가 터득하고 있는 어떤 것이 정말 중요한 가치인지 아닌지를 모르거나 간과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죠. 빼어난 작가는 이러한 일상적인 것들 속에서도 남들이 바라보지 못한 것들을 핀셋처럼 잡아내고, 글에 녹이죠. 단지, 화려한 미사여구나 플롯 등으로만 포장된 글은 처음에는 멋져 보일 수 있지만, 그건 우리 일상과는 결이 다른 것 같아요. 우리네 일상도 화려한 겉옷을 벗고 나면, 대다수 평범하게 살아가잖아요. 일상의 보편성을 작가만의 독특한 통찰로 담아낼 수 있는 게 저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해외에서 찬사를 받는 문학작품들 대다수도 이런 요건들을 갖고 있고요.”
<채식주의자>도 그런 면이 통했을까요. 출판 계약 당시 반응이 궁금해요.
“정말 걸작이라고 평가하더라고요. 오죽했으면 이 책이 현지에서 정식 출판되기 전에 한강 작가의 차기작인 <소년이 온다>까지 계약을 진행하자고 했어요. 그때만 해도 보통 1년에 한 작가의 작품을 1편 정도만 계약했었거든요. 왜냐하면 현지에서는 한국 작가를 잘 모르잖아요. 일종의 리스크인 셈이죠. 그렇다 보니 통상 한 작품을 계약하고, 책이 나온 후 시장 반응을 살펴본 뒤에야 새로운 작품을 계약할 수 있는데, <채식주의자>는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소년이 온다>까지 연달아 계약을 진행할 정도로 현지 출판사에서도 반응이 좋았습니다.”
최근 수 년 새 K-문학도 신한류의 바람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실제는 어떤지요. 그리고 그 힘은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실제로 그런 바람이 불고 있죠. 나날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와 작품 수, 그리고 장르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어요. 제가 본격적으로 한국 저작물을 수출하던 2004년, 2005년과 비교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양이 증가했어요. 그때는 한 해 계약을 성사하는 게 1편 정도였는데, 지금은 한 작가의 작품을 한꺼번에 2~3편 동시에 계약하는 사례도 많아졌고, 해외 출판사에서 먼저 저희에게 계약 문의를 해오는 경우도 부쩍 늘었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단순히 어떤 하나의 이유로 발생했다기보다는 서로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시너지를 내는 것 같아요. 작가의 역량은 물론이고, 예술적 완성도, 대중성, 좋은 번역도 필수죠. 또한 아무리 우리나라에선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돼도 해외에서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낮고, 관련 시장이 형성되지 않으면 제대로 평가받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실례로 영미나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어떤 한 분야에만 관심을 멈추지 않아요.
처음에는 음악이나영화를 좋아했던 것이 점차 관심의 영역이 더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죠. 그중에 책도 있고요. 한국 문학도 마찬가지예요. 한국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한국이란 나라에 관심이 생기면서 한국 문화나 문학 관련 시장도 질적·양적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동시에 한국인들 특유의 기질도 도움이 됐고요.”
어떤 기질일까요.
“한국인들은 순발력과 추진력이 굉장히 강한 것 같아요. 가령, 어떤 분야에 성취를 이뤄내면 그것을 어떻게든 더 진화시키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아요. 가령, ‘박세리 키즈’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한국 문학의 부상이 단순히 지나가는 바람에서 끝나지 않고 글로벌적으로 더 크게 확장될 거라 확신합니다.”
현지 시장을 뚫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셨나요.
“여러 노력들을 했는데, 저는 일단 ‘역지사지’마음으로 임했던 거 같아요. 어쨌든 이것도 비즈니스니까 제가 아무리 이걸 판매하고 싶어도, 사려는 사람의 입장은 다를 수 있거든요. 제 입장에서는 정말 좋은 콘텐츠지만 현지 입장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작가, 그것도 인지도가 거의 없는 한국 문학을 무턱대로 성사시키는 건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죠. 그들의 기준에선 맞지 않는 계약일 수 있는 셈이죠. 그래도 포기하진 않았어요. 당연히 제가 감내해야 하는 과정으로 여겼거든요.
다만,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그들 기준에 맞을 수 있을까, 현지에서 원하는 콘텐츠 흐름은 어떤 것인지 열심히 고민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직접 부딪쳐봤어요. 아마 그 과정이 없었으면 지금의 제 성장과 결실은 없었을 겁니다. 동시에 현지 시장을 잘 아는 사람과의 파트너십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도 몸소 깨달았죠. 제가 아무리 오랜 시간 다양한 해외 시장을 답사하고, 공부해도 현지에서 직접 살고 그들과 호흡하는 사람들만이 아는 디테일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더라고요. 이들과의 파트너십을 긴밀히 하고,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면서 현지 시장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데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각 나라마다 K-문학 선호도도 조금씩 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요.
“딱히 뭐가 다르다고 꼬집을 순 없을 것 같아요. 일례로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의 경우, 같은 중화권인데도 중국에선 인기를 얻었지만, 대만에선 그렇지 못했고, 영국에선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이 미국에선 제대로 팔리지 못한 경우도 있거든요. 같은 언어권에서도 선호하는 게 다르고, 인접국이라도 취향이 현저히 갈리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보편적으로 두루두루 시장 경쟁력을 지닌 작품들도 꽤 있지만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해요.”
혹시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꼭 소개시켜주고 싶은 해외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요.
“사실 너무 많죠.(웃음) 앞서도 언급했지만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그게 해외에서 출간되는 데 따르는 어려움들이 다양해요. 실례로, 과거 제가 해외 저작물을 수입할 당시, 저는 작가 도리스 레싱과 엘리스 먼로의 작품을 국내에 꼭 소개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때만 해도 두 작가의 국내 인지도가 무척 낮았기에 이들 관련 출판 시장이 거의 전무했어요. 그래선지 제 바람과는 다르게 국내 수입이 잘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얼마 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판도가 완전히 뒤바뀌었죠.
국내 작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좋은 작가와 작품들이 아직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그중 주영선 작가의 <아웃>이란 작품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이 굉장히 커요. 사실 2005년 문학수첩문학상 작가상을 받은 작품인데 국내에서도 그리 잘 알려지진 못했어요. 이 작품은 농촌 마을의 신축 보건진료소를 배경으로 보건소장과 마을 아줌마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어요. 이들의 평범한 일상에서 소장이 그야말로 왕따로 ‘아웃’되는 과정이 주를 이루는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욕망을 성취하고야 마는 일상의 폭력을 그려냈죠. 지금도 이 작품에 대한 관심은 거두지 않고 있어요. 아직 임자(해외 출판사)를 못 만났는데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해외 출판사가 국내외 출판 시장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합 전산망 시스템이나 전문 번역가의 부족 등 여전히 한국 문학이 해외로 뻗어나가기엔 한계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가령, 어떤 점들이 있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요.
“우선 제가 더 잘해야죠.(웃음) 물론, 아직도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도 더러 있죠. 그런데 저는 많은 부분에서 개선되고 있고, 더 나아질 거라 생각해요. 다만, 이 일이 사실 좀 멀티 업무가 필요하긴 해요. 일단, 문학을 좋아하고, 좋은 콘텐츠를 파악하는 시각, 외국어 능력, 사람들과의 소통, 비즈니스 역량 등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해요. 그런데 사실 막상 이 업계 인재들을 살펴보면 어느 한 분야에 정통한 사람은 많지만, 이 일을 전반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는 아직 현저히 부족해요. 또한 상황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도 아주 여유로운 비즈니스는 아니거든요. 그렇다 보니 정작 이 일을 선뜻 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편입니다. 그 점이 좀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죠.”
마지막으로 앞으로 소망하는 일이 있다면요.
“예전에는 꿈같던 일들이 하나씩 현실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노벨 문학상은 물론이고, 과거에는 이루지 못했던 미지의 일들을 계속해서 성취하고, 저 역시 꾸준히 발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한국 문학이 지금껏 해왔듯 앞으로도 그 성장세가 계속될 거라 믿어요. 그 역사의 현장을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글 김수정 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
김영하, 신경숙, 한강, 편혜영, 이정명, 황선미, 정유정 등등. 국내를 넘어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뒤엔 늘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가 함께했다. 2005년 한국 문학 첫 해외 수출 사례(영미권 기준)인 김영하 작가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비롯해 2011년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맨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하고, 미국 시사지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에 오른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 모두 그의 손을 거쳐 세상에 알려졌다.
이 대표는 한국 문학이 사실상 해외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혈혈단신으로 한국 문학 알리기에 뛰어들었다. 과정은 더디고, 험준했다. ‘맨땅의 헤딩’이라는 표현이 꼭 맞을 정도로 해외 출판의 문턱은 높고, 냉혹했다. 실제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해외에서 정식 출판되기까지만 꼬박 7년이 걸렸고, 2005년에서 2010년까지 그가 해외 출판사에서 국내 서적 출간을 성사시킨 건 한 해 1~2건에 그쳤다고 한다.
영리적 목적만 가지고 이 일을 이끌었다면 결코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을 터. 하지만 그는 26년 넘게 이 일을 고수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누구보다 한글과 한국의 문학, 문화를 사랑하고, 한국 문학만이 지닌 고유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외 곳곳을 방문하며 터득한 현지 트렌드와 노련한 실무 감각을 통해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긴 기다림 속에 그는 결실의 시간들을 하나씩 맞이하고 있다. 단, 이 대표는 지금부터가 정말 시작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가 바라본 K-문학의 저력은 무엇이고, 향후 한국 문학이 전 세계로 더 깊게 뿌리내리기 위해선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하셨나요.
“1995년 임프리마코리아에 입사하면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어요. 초기엔 주로 한국에서 번역 출판될 수 있는 해외 저작물을 살피고, 수입하는 일을 했죠. 그런데 늘 마음속 깊이 우리 문학을 해외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이전 회사에서 시도해봤지만 초기엔 쉽지 않았죠. 경험도 부족했고 전략도 없었어요. 무엇보다 당시만 해도 한국 문학을 포함해서 한국 저작물이 해외 출판 시장에서 번역 출판되는 사례가 많지 않았어요.
글로벌 관심이나 인지도도 거의 전무했죠. 그래도 제 노선에는 변함이 없었어요. 언젠가는 훌륭한 한국 도서가 외국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 늘 있었거든요. 그래서 도전하기로 했고, 이전 회사에 이어서 10년 전부터는 아예 제 회사를 꾸려서 한국 저작물을 해외에 수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구체적 계기가 궁금해요.
“일단은 제 개인적인 관심에서 시작했죠. 문학작품을 읽고, 그것의 가치를 들여다보는 걸 무척 좋아했거든요. 물론, 경제적 측면만 고려했다면 힘들었겠죠.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자기가 좋아하고, 열정을 갖는 부분에 의지가 있으면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 같아요.”
일종의 애국심도 작용했을까요.
“물론, 그런 요소도 있었을 거예요. 다만, 이걸 애국심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우리 한국인이 가진 그 뭔가를 더 큰 세상에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런 나눔을 통해서 우리만의 어떤 정수나 진수, 문화나 정신 등 중요한 가치들을 알리고 싶었죠. 특히, 한글이라는 우리만의 문자로 만들어진 고유한 무형의 가치를 소개하고 싶었어요. 또 그걸 통해 비즈니스를 하려다 보니 이 일을 하게 됐습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한강의 <채식주의자> 모두 대표님의 손을 거쳐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해외에서 출판되는 데 꼬박 7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과정이 저는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어요. 그만큼 책에 대한 믿음과 이 일을 꼭 성사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확고했거든요. 다만, 좀 더 일찍 뭔가를 성사시켜 작가들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싶었죠. 저야 한 작품만 계약을 다루는 게 아니다 보니 바쁘게 일하다 보면 시간을 잊고 지낼 때도 많거든요. 그런데 작가들의 경우는 그 작품 하나만 기다리는 경우가 상당수거든요. 간절함이 크실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어떤 작품이든 제가 그걸 읽었을 때 ‘이거다’라고 믿음이 있다면 시간이 걸려도 기다리고, 인내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대표님이 생각하는 좋은 작품의 기준은무엇인가요.
“사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이 늘 현지 시장에서 통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때론 맞기도 하고, 또 다르기도 하더라고요. 단,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은 대개 두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독특하지만 일상적인 것’, 이 두 가지예요. 좀 상투적인 말 같지만 실제로 훌륭한 문학작품에는 이 요소들이 거의 빠짐없이 공존해요. 이를 테면 독창성은 그 작가만이 지닌 독특한 표현법이나 주제에 대한 해석(통찰력), 개성으로 차별성을 갖는 거죠. 동시에 일상적이란 것은 말 그대로 보편적인 것들을 의미해요. 인종이나 문화가 달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나 정서, 사유들 말이죠. 사실 철학적으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관점이 나뉠 수는 있지만 대개 진리는 우리 일상 속에 숨어 있거든요.
다만,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 내가 터득하고 있는 어떤 것이 정말 중요한 가치인지 아닌지를 모르거나 간과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죠. 빼어난 작가는 이러한 일상적인 것들 속에서도 남들이 바라보지 못한 것들을 핀셋처럼 잡아내고, 글에 녹이죠. 단지, 화려한 미사여구나 플롯 등으로만 포장된 글은 처음에는 멋져 보일 수 있지만, 그건 우리 일상과는 결이 다른 것 같아요. 우리네 일상도 화려한 겉옷을 벗고 나면, 대다수 평범하게 살아가잖아요. 일상의 보편성을 작가만의 독특한 통찰로 담아낼 수 있는 게 저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해외에서 찬사를 받는 문학작품들 대다수도 이런 요건들을 갖고 있고요.”
<채식주의자>도 그런 면이 통했을까요. 출판 계약 당시 반응이 궁금해요.
“정말 걸작이라고 평가하더라고요. 오죽했으면 이 책이 현지에서 정식 출판되기 전에 한강 작가의 차기작인 <소년이 온다>까지 계약을 진행하자고 했어요. 그때만 해도 보통 1년에 한 작가의 작품을 1편 정도만 계약했었거든요. 왜냐하면 현지에서는 한국 작가를 잘 모르잖아요. 일종의 리스크인 셈이죠. 그렇다 보니 통상 한 작품을 계약하고, 책이 나온 후 시장 반응을 살펴본 뒤에야 새로운 작품을 계약할 수 있는데, <채식주의자>는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소년이 온다>까지 연달아 계약을 진행할 정도로 현지 출판사에서도 반응이 좋았습니다.”
최근 수 년 새 K-문학도 신한류의 바람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실제는 어떤지요. 그리고 그 힘은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실제로 그런 바람이 불고 있죠. 나날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와 작품 수, 그리고 장르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어요. 제가 본격적으로 한국 저작물을 수출하던 2004년, 2005년과 비교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양이 증가했어요. 그때는 한 해 계약을 성사하는 게 1편 정도였는데, 지금은 한 작가의 작품을 한꺼번에 2~3편 동시에 계약하는 사례도 많아졌고, 해외 출판사에서 먼저 저희에게 계약 문의를 해오는 경우도 부쩍 늘었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단순히 어떤 하나의 이유로 발생했다기보다는 서로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시너지를 내는 것 같아요. 작가의 역량은 물론이고, 예술적 완성도, 대중성, 좋은 번역도 필수죠. 또한 아무리 우리나라에선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돼도 해외에서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낮고, 관련 시장이 형성되지 않으면 제대로 평가받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실례로 영미나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어떤 한 분야에만 관심을 멈추지 않아요.
처음에는 음악이나영화를 좋아했던 것이 점차 관심의 영역이 더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죠. 그중에 책도 있고요. 한국 문학도 마찬가지예요. 한국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한국이란 나라에 관심이 생기면서 한국 문화나 문학 관련 시장도 질적·양적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동시에 한국인들 특유의 기질도 도움이 됐고요.”
어떤 기질일까요.
“한국인들은 순발력과 추진력이 굉장히 강한 것 같아요. 가령, 어떤 분야에 성취를 이뤄내면 그것을 어떻게든 더 진화시키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아요. 가령, ‘박세리 키즈’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한국 문학의 부상이 단순히 지나가는 바람에서 끝나지 않고 글로벌적으로 더 크게 확장될 거라 확신합니다.”
현지 시장을 뚫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셨나요.
“여러 노력들을 했는데, 저는 일단 ‘역지사지’마음으로 임했던 거 같아요. 어쨌든 이것도 비즈니스니까 제가 아무리 이걸 판매하고 싶어도, 사려는 사람의 입장은 다를 수 있거든요. 제 입장에서는 정말 좋은 콘텐츠지만 현지 입장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작가, 그것도 인지도가 거의 없는 한국 문학을 무턱대로 성사시키는 건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죠. 그들의 기준에선 맞지 않는 계약일 수 있는 셈이죠. 그래도 포기하진 않았어요. 당연히 제가 감내해야 하는 과정으로 여겼거든요.
다만,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그들 기준에 맞을 수 있을까, 현지에서 원하는 콘텐츠 흐름은 어떤 것인지 열심히 고민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직접 부딪쳐봤어요. 아마 그 과정이 없었으면 지금의 제 성장과 결실은 없었을 겁니다. 동시에 현지 시장을 잘 아는 사람과의 파트너십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도 몸소 깨달았죠. 제가 아무리 오랜 시간 다양한 해외 시장을 답사하고, 공부해도 현지에서 직접 살고 그들과 호흡하는 사람들만이 아는 디테일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더라고요. 이들과의 파트너십을 긴밀히 하고,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면서 현지 시장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데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각 나라마다 K-문학 선호도도 조금씩 다를 것 같은데, 어떤가요.
“딱히 뭐가 다르다고 꼬집을 순 없을 것 같아요. 일례로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의 경우, 같은 중화권인데도 중국에선 인기를 얻었지만, 대만에선 그렇지 못했고, 영국에선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이 미국에선 제대로 팔리지 못한 경우도 있거든요. 같은 언어권에서도 선호하는 게 다르고, 인접국이라도 취향이 현저히 갈리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보편적으로 두루두루 시장 경쟁력을 지닌 작품들도 꽤 있지만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해요.”
혹시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꼭 소개시켜주고 싶은 해외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요.
“사실 너무 많죠.(웃음) 앞서도 언급했지만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그게 해외에서 출간되는 데 따르는 어려움들이 다양해요. 실례로, 과거 제가 해외 저작물을 수입할 당시, 저는 작가 도리스 레싱과 엘리스 먼로의 작품을 국내에 꼭 소개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때만 해도 두 작가의 국내 인지도가 무척 낮았기에 이들 관련 출판 시장이 거의 전무했어요. 그래선지 제 바람과는 다르게 국내 수입이 잘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얼마 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판도가 완전히 뒤바뀌었죠.
국내 작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좋은 작가와 작품들이 아직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그중 주영선 작가의 <아웃>이란 작품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이 굉장히 커요. 사실 2005년 문학수첩문학상 작가상을 받은 작품인데 국내에서도 그리 잘 알려지진 못했어요. 이 작품은 농촌 마을의 신축 보건진료소를 배경으로 보건소장과 마을 아줌마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어요. 이들의 평범한 일상에서 소장이 그야말로 왕따로 ‘아웃’되는 과정이 주를 이루는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욕망을 성취하고야 마는 일상의 폭력을 그려냈죠. 지금도 이 작품에 대한 관심은 거두지 않고 있어요. 아직 임자(해외 출판사)를 못 만났는데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해외 출판사가 국내외 출판 시장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합 전산망 시스템이나 전문 번역가의 부족 등 여전히 한국 문학이 해외로 뻗어나가기엔 한계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가령, 어떤 점들이 있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요.
“우선 제가 더 잘해야죠.(웃음) 물론, 아직도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도 더러 있죠. 그런데 저는 많은 부분에서 개선되고 있고, 더 나아질 거라 생각해요. 다만, 이 일이 사실 좀 멀티 업무가 필요하긴 해요. 일단, 문학을 좋아하고, 좋은 콘텐츠를 파악하는 시각, 외국어 능력, 사람들과의 소통, 비즈니스 역량 등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해요. 그런데 사실 막상 이 업계 인재들을 살펴보면 어느 한 분야에 정통한 사람은 많지만, 이 일을 전반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는 아직 현저히 부족해요. 또한 상황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도 아주 여유로운 비즈니스는 아니거든요. 그렇다 보니 정작 이 일을 선뜻 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편입니다. 그 점이 좀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죠.”
마지막으로 앞으로 소망하는 일이 있다면요.
“예전에는 꿈같던 일들이 하나씩 현실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노벨 문학상은 물론이고, 과거에는 이루지 못했던 미지의 일들을 계속해서 성취하고, 저 역시 꾸준히 발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한국 문학이 지금껏 해왔듯 앞으로도 그 성장세가 계속될 거라 믿어요. 그 역사의 현장을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글 김수정 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