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if in Art] 초콜릿(chocolate): 달콤 쌉쌀한 맛의 품격

초콜릿은 특별한 날이나 여행의 기념품으로 빠지지 않는 선물이다. 달콤 쌉쌀한 초콜릿의 오묘한 맛에는 지극한 정성과 기술을 결합한 치열한 노력이 깃들어져 있다.
장 에티엔 료타르, '초콜릿 소녀', 1743~1744년경, 드레스덴 게멜데갈레리 알테 마이스터
젊은 여성이 쟁반에 음료를 받쳐 들고 누군가에게 가져가는 그림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엷은 회색 배경에 소녀의 수수한 옆모습만이 꽉 차게 들어섰다. 차림새가 하녀인데, 복숭앗빛 뺨을 가진 앳된 얼굴에 흰 레이스가 달린 분홍색 캡으로 단정하게 머리카락을 감췄다. 황토색 꼭 끼는 웃옷이 허리에서 뒤로 퍼져 프릴처럼 벌어지고, 폭 넓은 긴 회색 치마가 발목까지 내려온다. 그 위에 새하얀 앞치마를 길게 덧입었는데 살짝 구겨진 주름들이 있어 방금 꺼내 입은 것처럼 신선하다.

소녀가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들고 있는 작은 쟁반에는 갈색 음료가 가득 담긴 도자기 잔과 맑은 물이 든 유리컵이 놓여 있다. 갈색 음료는 잔을 고정하는 밑받침이 있으니 초콜릿이 분명하다. 걸쭉한 초콜릿을 저을 때 잔이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소녀는 정갈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정성껏 준비한 음료를 나르고 있다. 그 쟁반을 받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

이 그림은 18세기 스위스 화가 장 에티엔 료타르(Jean-Étienne Liotard, 1702~ 1789년)의 대표작이다. 료타르는 프랑스에서 공부하면서 유화로 역사적 주제를 주로 그렸지만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이탈리아로 건너가 파스텔화를 접하고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붓자국이 강한 유화보다 부드럽게 퍼지는 파스텔이 더 자연스러웠고, 색채가 선명해서 생기 있고 아름답게 여겨졌다. 그는 주로 양피지 위에 파스텔을 여러 겹 덧칠해 차분한 색조와 부드러운 광택 효과를 얻었다. 파스텔은 가볍고 섬세하며 온화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낼 수 있어, 감각적 아름다움에 탐닉한 로코코 시대의 감성에 잘 들어맞았다. 18세기 중엽, 왕족이나 귀족의 초상화에 사용되며 파스텔화가 대유행을 불러일으켰다.

료타르는 <초콜릿 소녀>에서 신분이 낮은 여성의 사소한 일상을 신중하게 묘사했다. 상큼한 모습의 하녀는 초콜릿 음료를 준비하고 제공하는 일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듯하다. 초콜릿은 영양이 풍부하고 원기를 북돋는 강장식품으로 알려져 귀족들이 아침식사 대용으로 자주 마셨다. 그것을 향유하는 기쁨을 주고자 하녀는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몇 년 후 료타르는 <아침 식사>라는 그림에서 또다시 초콜릿을 모티프로 그렸다. 이번엔 하녀보다 서비스를 받는 인물에 중점을 두었다. 하늘색 옷을 입은 귀부인이 아직 머리 손질을 끝내지 않은 채 초콜릿 쟁반을 받고 있다. 쟁반을 가져온 하녀는 화면 가장자리에서 옆얼굴과 가슴과 손만 겨우 보인다. 그 모습만으로도 그녀의 역할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앞선 <초콜릿 소녀>의 하녀가 바로 이곳으로 들어왔나 싶을 만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두 그림은 서로 연결되는 한 세트의 작품처럼 여겨진다.

장 에티엔 료타르, '아침 식사', 1752년경,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루이스 에지디오 멜렌데스, '초콜릿 세트가 있는 정물', 1770년,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정물화 속 초콜릿 도구
초콜릿은 카카오나무 열매의 씨를 갈아서 만든다. 원래 중앙아메리카의 마야와 아스텍 사람들이 신성시하며 음료로 만들어 마시던 것이었다. 16세기에 황금을 찾아 중남미에 도착한 스페인 정복자들이 맛을 보고 유럽으로 가져갔다.

처음엔 쓰고 걸쭉한 이 음료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자당이나 각종 향신료를 첨가해 독특한 향기와 맛을 즐기게 됐다. 더욱이 초콜릿이 원기를 주고 각성과 최음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왕실에서부터 초콜릿 음료를 마시는 문화가 퍼져 나갔다.

얼마 안 가 초콜릿의 인기가 치솟으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카카오 원두는 ‘갈색 황금’으로 불릴 만큼 비싸게 거래됐다. 스페인에 이어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도 식민지에 카카오나무를 이식하고 원두 생산에 열을 올렸다.

소비에 맞춰 카카오 원두의 가공법도 나날이 발전했다. 발효시킨 카카오 씨를 말려서 볶은 원두를 곱게 갈면 카카오버터의 함유량이 높은 반죽이 된다. 처음엔 이것을 그대로 물에 타 마셨지만, 17세기 후반에 반죽을 납작하게 압축해 고형으로 만드는 기술이 개발됐다. 이것을 다시 갈아 분말로 만들면 코코아가 되는데 그것을 따뜻한 물에 타 마셨다. 아직은 가루가 부드럽지 않고 깔깔해서 거품기가 달린 막대로 자주 저어야 했다. 휘저을 때 떠오르는 부드러운 거품이 제일 맛있었다.

18세기 스페인의 정물화가 루이스 에지디오 멜렌데스(Luis Egidio Meléndez, 1716~1780년)의 그림에서 초콜릿 음료를 준비하는 방법을 엿볼 수 있다. <초콜릿 세트가 있는 정물>에는 소박한 나무 테이블에 초콜릿 주전자와 음식이 놓여 있다. 반쯤 열린 주전자 뚜껑에 음료를 휘젓기 위한 긴 막대가 꽂혀 있다. 아마 주전자 속 막대 끝에 거품기가 달려 있을 것이다.

막대는 수직으로 높이 올라가 단일한 배경에서 구성의 중심을 이룬다. 반면에 주전자 손잡이가 어둠 속에 수평으로 길게 뻗어 균형을 맞춘다. 주전자 앞에는 동양풍 도자기 컵과 빵이 담긴 접시가 놓여 있다. 접시 옆 화면 앞쪽으로 포장지에서 풀어놓은 둥글납작한 초콜릿 덩어리들이 흩어져 있다. 이것은 그대로 먹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음료를 만들기 위한 재료다. 오늘날처럼 씹어 먹을 수 있는 고형 초콜릿은 수십 년 후인 1830년경에야 영국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멜렌데스는 단순하고 명확한 구성으로 정물을 배치하고 물감을 두껍게 덧칠해 꼼꼼히 묘사했다. 어둠 속에서 주전자의 표면이 은은한 빛을 반사해 금속의 질감이 손끝에 느껴질 것만 같다. 숨죽인 듯 고요한 가운데 일상의 사소한 물건들이 확고한 존재감을 띠며 영원성을 얻는다. 그 분위기는 스페인에서 17세기부터 유행한 ‘보데곤(bodegón)’ 회화를 연상시킨다.

보데곤은 부엌이나 선술집, 식품 저장실 등에 놓인 식기나 식재료를 정밀하고 엄격하게 묘사하는 정물화로, 때론 인물이 함께 나오기도 한다. 멜렌데스는 그 전통에 초콜릿 도구와 재료라는 소재를 결합해 18세기에 널리 퍼진 취향을 보여준다.

초콜릿에는 식민지 개척과 이익을 위한 경쟁, 귀족의 호사 취미, 과학기술의 혁명과 같은 긴 역사가 녹아 있다. 달콤하고 씁쓸하며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 드는 황홀한 맛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이국적 향기와 귀족적 품격을 즐기며 신비한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초콜릿은 조심히 다루지 않으면 쉽게 변형되며, 아무리 많아도 한꺼번에 배불리 먹을 수는 없다. 초콜릿에 자꾸만 탐닉하게 되는 것은 오묘한 맛의 중독성과 민감하고 감질나는 특징이 끊임없이 갈증을 일으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글·사진 박은영 서울하우스 편집장(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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