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현 경기 시점은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 버블이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경기 회복 국면과는 전혀 다른 리플레이션(reflation) 국면을 보이고 있다. 리플레이션은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 물가가 점차 상승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리플레이션 시대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적합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2022년 1월 첫 주말에 전미경제학회 연례총회가 개최됐다. 미국의 내로라하는 석학들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한데 모여 그해의 미국 경제를 전망하고 재정 및 통화정책의 방향을 점검하는 자리다. 올해 총회에서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이 가장 뜨거운 화두였다.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현재 미국 경제를 감안하면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매우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고,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는 정부의 현금 지급이 경제 부양에는 큰 효과 없이 인플레만 높였다고 지적했다.
사실 ‘인플레이션’에 대한 논쟁은 지난해부터 지속됐고 금융시장은 관련 발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난해 시장은 장기간 경험하지 못한 인플레 그 자체에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미국 증시의 강세는 지속됐지만 아직 세계 경제가 완전히 정상화되지 못한 상황에서 통화정책 정상화에 대한 우려가 종종 시장을 위협했다. 그런데 이제 유수의 경제 석학들과 시장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우려하고 있는 듯하다.
‘경기 침체 탈피+물가 상승세’… 리플레이션 현상 윤곽
‘스태그플레이션’이란 경기가 침체되는 가운데 물가가 상승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1970년대 오일쇼크 기간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제4차 중동전쟁이 시작되면서 아랍석유수출기구(OAPEC)는 석유를 감산하는 동시에 원유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이후 국제 유가는 두 달 만에 4배 가까이 급등했다. 이는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공급 충격을 발생시켰고 생산 차질이 빚어지며 공급 부족으로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가 도래했다.
최근 금융시장에서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는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에 의한 공급 충격이 1970년의 오일쇼크 때와 유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지금의 공급망 차질은 전쟁이나 원자재 가격 담합의 결과가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멈췄던 생산 활동이 재개되면서 나타나는 마찰적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무엇보다 1970~1980년대와 달리 현재 선진 시장의 소비는 여전히 회복 중이며, 경제 성장세 또한 팬데믹 이전 추세를 상회하는 수준에 있다. 따라서 지금의 인플레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 물가가 점차 상승하는 상황, 즉 리플레이션(reflation)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리플레이션이 2000년대 초 IT 버블이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경기 회복 국면과는 다른 새로운 리플레이션 형태를 보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새로운 리플레이션의 시대에 적합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Fed의 긴축·금리 인상 리스크 속 자산시장 주목
2000년 이후 인류가 경험한 2번의 경기 침체가 자산의 버블 붕괴에서 시작됐다면, 2020년의 경기 침체는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경제활동이 멈추면서 발생했다. 20년 전과 후 경기 침체 원인이 달랐기 때문에 이후 각국 정부들의 정책 대응 방법과 규모도 달랐다.
예를 들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정부는 일자리를 늘리고 민간 기업들의 투자를 지원하는 정책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여파로 생산이 멈춘 상황에서 고용을 촉진하는 정책은 의미가 없었다. 대신 주요국 정부들은 공통적으로 대규모 부양책을 단행했다.
그 덕분에 2020년 이후 글로벌 경제는 유례없이 빠른 회복세를 경험했고 주요 선진국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높아진 자산가격이 곧 위험해진다거나 현재 비싼 자산이 더 이상 수익을 내지 못할 것이라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경제가 정상화될수록 중앙은행은 통화정책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보일 것이고 시장금리의 상승은 자산가격에 불리한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 그리고 유동성을 기반으로 가격 상승세를 지속해 온 자산일수록 더 높은 변동성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2021년에도 반복적으로 발생했고 2022년 첫 주 시장이 Fed의 조기 긴축 가능성에 다시 한 번 요동치며 그 흐름이 올해에도 지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투자자는 철저히 상향식(bottom-up) 관점으로 주식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2021년 주요국 증시가 여러 차례 신고점을 기록하며 상승했지만 종목 간의 양극화는 극심했다. 미국 나스닥을 보면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재차 경신했지만 전체 종목 중 200일 선 위에서 거래된 종목은 30%에 불과할 정도다. 지수의 상승이 몇 개 종목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종목들의 하락은 시장 전체의 변동성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올해에는 Fed의 긴축 우려, 금리 상승과 같은 리스크 요인까지 예상된다. 투자자들은 해당 기업이 시장의 변동성을 감내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겸비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시장 지배력, 재무 건전성, 이익 안정성, 주주환원율 등의 질적인 요소가 좋은 잣대가 될 수 있다.
지역적 관점에서는 2022년 미국과 유럽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팬데믹 이전 수준을 상회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반기에는 높은 백신 접종률 및 코로나19 경구용 치료제 도입에 의해 억눌린 상품 및 서비스 수요가 회복을 보이며 미국과 유럽이 글로벌 경기 회복세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해에는 유럽 시장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밸류에이션 측면에서 유럽 주식은 미국 주식보다 매력적인 수준이고,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기조는 Fed보다 완화적이다. 또한 여행을 비롯한 서비스업 의존도가 높은 유럽의 산업구조를 감안할 때 ‘위드 코로나’ 시대가 본격화될 경우 2022년에는 미국보다 더 매력적인 시장이 될 수 있다.
자산 포트폴리오, 채권 비중 확보 필요
마지막으로 자산 배분 관점에서 채권 비중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높아진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 변화 가능성 등을 감안할 때 주식으로만 구성된 포트폴리오는 시장 변동성에 매우 취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채권을 활용할 경우 포트폴리오의 방어력을 높이는 동시에 인컴 수익까지 확보하는 좋은 투자 수단이 된다. 미 달러 표시 아시아 회사채는 가장 매력적인 채권 자산 중 하나다.
2021년 아시아 회사채는 가장 성과가 부진한 자산 중 하나였다. 중국의 규제 리스크, 그중 헝다그룹의 디폴트 우려는 중국 부동산 업계 전반에 대한 우려로 확산되며, 중국 하이일드 채권뿐만 아니라 아시아 회사채의 가격 하락 폭을 키웠다. 현재 해당 채권들의 가격은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중국 정부도 직접 부동산 개발 기업들의 유동성 현황을 점검하는 등 시장의 혼란을 줄이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물론, 미 달러 표시 아시아 채권시장에서 중국 비중이 50%를 육박하고 중국의 규제 리스크는 여전히 경계해야 할 요인이지만, 지금의 가격 수준과 올해 아시아 지역의 경기 회복세를 감안할 때 매력적인 채권 자산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매년 투자 전략을 보면 전년 대비 투자 난이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문구가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2021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을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상품 하나만으로도 20%가 넘는 수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자연스럽게 2022년엔 그만한 수익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앞선다.
게다가 이제 더 이상 저렴한 자산을 찾기가 어렵고 Fed는 정책의 정상화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에 다양한 리스크 요인이 산재해 있을수록 투자의 기본 원칙을 떠올려야 한다. 자산의 다각화, 상향식 접근, 그리고 지수 ETF와 같은 패시브 형태의 투자 상품보다 액티브 상품 활용 등을 통한 포트폴리오 전략이 올해 투자 여정을 좀 더 편하게 해줄 것이다.
글 변효정 SC제일은행 투자전략상품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