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미국 국채금리 악몽이 되살아나면서 주식시장뿐만 아니라, 외환시장, 가상화폐 시장 등이 순차적으로 요동을 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급진적인 출구전략에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빅테크 종목의 주가 폭락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2%선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가장 큰 요인은 미국 Fed의 출구전략 우려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Fed 의사록을 되짚어보면 매월 300억 달러씩 축소해 테이퍼링을 조기에 종료하고, 기준금리 인상을 곧바로 연계시키겠다는 것이 양대 로드맵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시중 유동성을 줄여 나가는 대차대조표(BS) 축소 방안이다.
흔히들 출구전략만큼 추진 시기와 선택 수단, 그리고 사후 처리 등 정책의 삼박자를 맞추기가 어려운 것도 없다고 한다. “Exit strategy(ES) is policy art(출구전략이 정책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정책 삼박자 간 황금률을 지키지 못하면 경제를 안정시켜야 할 중앙은행이 오히려 망치는 대재앙을 초래한다.
황금률 관점에서 금융위기 이후 추진했던 출구전략과 비교해보면 첫 단계인 테이퍼링을 신속하게 마무리하는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2013년 벤 버냉키 당시 Fed 의장이 테이퍼링을 처음 언급한 이후 마무리되기까지 1년 10개월이 걸렸으나 이번에는 테이퍼링이 언급되기 시작한 지난 9월 이후 올해 3월에 끝나면 7개월(실행은 4개월)로 짧아진다.
테이퍼링 종료 이후 첫 금리 인상과 연계시키는 다음 수순도 금융위기 때에는 1년 2개월이 넘게 걸렸으나 이번에는 곧바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12월 Fed 회의에서 제시된 점도표대로 올해 세 차례 금리를 올린다면 빠르면 테이퍼링이 종료되는 3월이나, 늦어도 테이퍼링 종료 이후 첫 Fed 회의가 열리는 5월에는 금리 인상을 단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말에 열렸던 잭슨홀 미팅까지만 하더라도 금융 완화 기조를 고수했던 Fed가 갑작스럽게 그것도 급진적인 출구전략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당초 ‘일시적’이라고 봤던 인플레이션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Fed의 통화정책 기준물가인 근원 개인소비지출(PCE)물가 상승률은 인플레 타기팅 선인 2%를 웃도는 추세가 6개월 연속 지속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첫해인 2020년 9월 회의에서 결정돼 ‘통화정책 불가역성’ 근거로 활용해 왔던 평균물가목표제로 더는 버티기 어려운 최후 보루선(final draw)에 이르렀다.
궁금한 것은 지난해 9월 회의 직전까지 금융 완화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던 Fed가 왜 이렇게 서둘러 출구전략을 추진하느냐 하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출구전략의 추진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9년 전 출구전략은 금융위기를 야기한 시스템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둔 반면 이번에는 인플레를 잡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
인플레 우려 심화…빨라지는 출구전략
지난해 4월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온 것을 계기로 시작된 인플레 쇼크는 ‘일시적이냐’는 논쟁을 뛰어넘어 동일한 통화정책 시차(9개월) 내에 하이퍼 인플레이션, 슬로플레이션, 스태그플레이션 등이 모두 거론되는 ‘다중 복합 공선형’이라는 점이다. 뉴노멀 현상인 이런 부류의 인플레는 총수요와 총공급 요인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때 나타난다.
통계 기법상 요인 분석을 통해 악순환 고리의 인과관계를 규명해보면 공급망 붕괴, 노동수급 간 불일치 등에 따른 총공급 측 요인이 출발점으로 추정된다. 인플레 쇼크 이후 생산자물가(PPI)상승률이 CPI 상승률보다 높고 PPI가 CPI로 전가돼 줄어든 실질소득을 임금 상승 등을 통해 보전하는 과정에서 PPI가 더 높아지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PPI가 높아지는 것이 Fed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공급망 분야의 석학인 요시 셰피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교수에 따르면 특정 사건을 계기로 소비가 증가할 경우 소매, 유통, 제조, 원자재 순으로 공급망이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에서 수급 간 불균형이 증폭되는 이른바 ‘채찍 효과(bullwhip effect)’로 PPI가 급등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CPI에 전가된다고 보고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하루 100개의 라면을 팔고 5일분(500개)의 재고를 가져가는 소매상이 Fed의 금융 완화, 각종 정부 지원금 등과 같은 코로나19 대책으로 하루 판매량이 200개로 늘었다면 재고분 1000개를 맞추기 위해 800개를 더 주문해야 한다. 이때 하루 100개에서 800개로 주문이 늘어난 유통업체는 제조업체에 생산을 늘려줄 것을 독려하고 제조업체는 식자재 업체에 추가 생산에 필요한 재료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수급 불균형이 증폭돼 결국은 공급망이 붕괴된다는 것이 채찍 효과의 골자다.
채찍 효과가 총수요와 총공급 요인 간 악순환 고리의 주범이라면 인플레를 안정시키기 위한 방안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역(逆)채찍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출구전략을 빠르고 강하게 가져가면 된다. ‘일시적’이라는 인플레 진단이 틀렸다고 강한 비판을 받고 있는 Fed가 올해 하반기 이후에는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고 낙관하는 것도 이 근거에서다.
채찍 효과 이외에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콘택트 추세의 진전으로 심리요인과 네트워킹 효과가 커진 여건에서 인플레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기대심리부터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존 뮤스, 로버트 루카스 등이 주장했던 합리적 기대가설에 따르면 한국은행처럼 ‘금리를 올리고 여전히 저금리 기조다’라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기보다 Fed처럼 급진적인 출구전략으로 시장에 확실한 의지를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급진적인 출구전략을 추진할 경우 우려되는 ‘제2 에클스 실수’ 가능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시스템 위기가 아닌 만큼 재봉쇄만 되지 않으면 성장 기반은 크게 훼손당하지 않는다. 제러미 시겔 와튼스쿨 교수는 올해도 주식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보는 ‘TINA(There is no alternative)’를 주목해야 할 때다. 한국 증시도 마찬가지다.
환율 전망에 영향을 줄 변수는
신정부 출범하는 올해 원·달러 환율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Fed의 급진적인 출구전략과 함께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될 미국과 중국 간 경제패권 싸움이다. 제3차 세계대전(헨리 키신저), 제2차 냉전(니얼 퍼거슨)이란 경고가 나올 정도로 양국 간 패권 경쟁이 날로 악화되는 속에 격렬할 것으로 예상됐던 환율 분야는 ‘통화 절상’이라는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외형상으로는 평온하다.
‘위안화 절하’ 문제를 놓고 환율전쟁을 불사해 왔던 종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가장 큰 이유는 양국이 모두 인플레가 최대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양국의 인플레처럼 경기 과열과 같은 총수요 요인보다 공급망 붕괴에 따른 공급 측 요인이 강할 때는 자국의 통화 가치를 올리는 것이 지금 당장 가져갈 수 있는 방안이다.
인플레 쇼크가 처음 발생했던 2021년 5월 이후 위안화 가치는 10% 정도 절상됐다. 한때 90선 밑으로 떨어졌던 달러인덱스도 최근 들어서는 96선을 넘어섰다. 인플레 쇼크가 범세계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줬던 지난해 4분기 이후 양국의 통화 가치 상승 폭이 큰 점도 주목된다.
위안화와 달러화 가치 상승은 양국의 경제정책과 맞물려 의외로 오래갈 가능성도 높다. 중국은 내수 위주의 ‘쌍순환 전략’과 ‘홍색 공급망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공식 인구 14억 명에다 1인당 소득마저 1만 달러가 넘어 내수시장 구매력도 충분하다. 위안화가 절상되면 미국과 충돌을 막으면서 내수시장을 키워 경제 독립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미국도 해외에 나간 기업을 불러들이는 ‘리쇼오링 정책’과 반도체 등 주요 핵심 부품과 원자재의 ‘굴기 정책’, 그리고 내년부터 본격화될 ‘사회적 인프라 정책’을 추진하는 데 강달러가 유리하다. 중국보다 유리한 것은 투자 자산에 대한 신뢰가 높은 여건에는 캐리 자금마저 유입돼 자산 효과로 성장률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
양국이 위안화와 달러화 강세를 동시에 용인하면 원·달러 환율 움직임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미국이다. 올 들어 국내 증시와 중국 증시 간에 커플링 현상이 심화되는 속에 위안화와 원화 간 상관계수는 낮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양국의 인플레를 잡기 위한 평가절상 요인을 따진다면 원·달러 환율은 지금 수준보다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내부적으로 원·달러 환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는 임인년 들어서도 어김없이 판치는 각종 위기설이다. 경기적인 측면에서는 미·중 간 샌드위치 위기론, 가계부채 위기설, 국가 부도설 등이 나도는 가운데 자산시장 측면에서는 주가 폭락설, 강남 집값 급락설 등 이루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특히 3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에 편입하기 위해서는 최근 나도는 위기설부터 정리돼야 한다. 각종 위기설이 나도는 한국 경제가 선진국에 편입하는 것은 고사하고 외국인 자금이 투자하는 것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통계 기법상 요인 분석을 통해 최근 위기설의 실체를 규명해보면 대부분 ‘자신감’과 ‘프로보노 퍼블릭코 정신’의 결여에서 비롯된다. 오히려 뉴욕 증시에서는 외국인 가운데 서학개미의 움직임과 올해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한국 기업을 주목하고 있다. ‘세계 경제 10대국’이라는 자부심과 국가를 사랑하는 애국심만 있으면 각종 위기설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올해 Fed가 급진적인 출구전략을 추진하더라도 원·달러 환율이 급등해 제2의 외환위기가 발생할 확률은 희박하다. 반대로 우리 경제가 좋아져 원·달러 환율이 급락할 가능성은 적지만 Fed 요인과 신정부가 출범하는 우리 경제에 변수가 많은 만큼 올해 원·달러 환율 평균 수준은 지난해보다 30원 정도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기업들의 사업 계획 환율은 1170원 내외에서 잡되 외화 운용은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넘어설 때는 점진적으로 보유 달러화 비중을 낮춰 나가고, 1140원 밑으로 떨어질 때에는 보유 달러화 비중을 높여 나갈 필요가 있다. 연간으로는 기준통화가 달러화일 때에는 수출 결제는 가능한 상반기로 앞당기고 수입 결제는 하반기로 늦추면 무난해 보인다.
글 한상춘 한경미디어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