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여행 문화 중 하나가 지역의 재발견이다. ‘서울에 열 가지 이야기가 있다면 지역에도 열 가지 이야기가 있다’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꽤나 괜찮은 곳, 옥천에서의 1박 2일 여행 썰을 풀어본다.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의 실패를 초량순대에서 만회하다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서 하룻밤을 보낼 생각이었다. 도착한 시간은 저녁 6시, 평일이라 숙박동은 충분히 여유가 있을 것으로 짐작했기에 당당하게 관리실로 향했다. 그러나 웬걸, 예약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을 내어줄 수 없단다. 빈방이 있어도 예약 없이는 당일 숙박이 안 돼는 시스템의 불합리성보다는 매번 이런 식으로 낭패를 보는 게으름과 안일함이 문제다.
하는 수 없이 읍내로 들어가 새로 지었다는 호텔에 방을 잡았다. 이제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숙박 장소 박탈에 대한 아쉬움을 만회할 수도 있다.
감이 좋지 않으니 차라리 통계와 정보를 믿어보기로 했다. 검색창에서 옥천 맛집을 찾아봤다. 그중 유난히 눈을 끈 식당은 2대에 걸쳐 75년째 운영 중이라는 ‘옥천초량순대’다.
식당은 외관에서부터 노포의 포스가 진하게 풍겼다. 내부에는 지역주민들로 보이는 손님이 듬성듬성 앉아 있었고 테이블 사이로 순댓국의 내음이 구수하게 흘렀다. 모듬순대 소(1만 원)와 순댓국(7000원), 그리고 옥천막걸리를 주문했다.
순댓국에서는 느끼함과 잡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한 수저의 새우젓만으로도 최적의 간이 완성될 정도로 국물 기반이 탄탄했고 궁극의 맛은 깔끔, 개운함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또 하나, 굵은 당면과 채소가 속을 꽉 채운 순대는 자작하게 배어든 국물과 어우러져 기분 좋은 텐션을 만들어 냈다. 맛에 이어 식감 또한 대만족.
순대, 머리 고기는 물론 간, 허파, 염통, 오소리감투, 암뽕 등 열 가지에 달하는 돼지 부속물로 구색을 갖춘 모둠순대 역시 취향 저격이다. 직접 돼지를 삶고 순대를 만들어내는 식당의 구력과 자신감에 여행자는 그저 젓가락질마다 감탄을 삼킬 따름이다. 하지만 과도한 흥분에 이은 식탐은 극도의 복부 팽창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왜 잊고 있었을까. 결국 남김없이 비워진 막걸리 또한 보통 병의 2배 크기였으니 말이다.
옥천 여행의 절반은 구읍에 있다
구읍은 옥천의 옛 읍내를 말한다. 고려 충선왕 이후 구한말까지 관아가 있었고 일제강점기 초반까지 옥천의 행정과 경제의 중추 역할을 했던 곳이다. 하지만 지난 1917년 군청이 경부선 옥천역이 있는 현재의 시가지 삼양리로 이전하면서 그 면모를 잃게 됐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 구읍은 옥천 여행의 허브로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정지용 생가, 옥천향교, 옥주사마소, 죽향 초등학교 구교사, 육영수 생가 등 역사와 문화의 자취들이 남아 있는가 하면 저마다의 개성을 자랑하는 30여 곳의 카페와 도토리묵밥, 생선국수, 올갱이국밥 등 전통 메뉴를 두루 갖춘 맛집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이튿날 아침 여전히 더부룩한 배로 인해 아침을 거른 채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구읍에 있는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이다. 샅샅이 살펴 하룻밤을 묵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보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했다. 1만3223m²의 부지를 기반으로 2020년 개관한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은 숙박동, 체험동, 전시동, 커뮤니티센터 그리고 식당과 전통놀이마당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고시산관이란 이름을 가진 숙박동은 4인실 10동, 8인실 3동으로 구성돼 있는데 고유의 한옥 모델에 편의시설 및 현대식 집기류까지 갖추고 있으면서도 이용료가 저렴하다.
넓은 경내를 정원으로 삼고 구읍의 관광 인프라를 쉽게 접할 수 있어 옥천 여행을 위한 베이스캠프로 최적의 입지를 자랑한다. 또한 체험동인 옥천관에서는 예절, 다도, 다문화체험, 전통 음식 만들기, 공예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까지 두루 섭렵할 수 있다. 물론 예약은 필수다.
정지용을 읽고 생선국수로 해장하다
구읍은 정지용의 시 구절과 많이 닮았다. 담벼락과 골목, 그리고 거리는 온통 그의 시 ‘향수’로 채워졌다.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실개천가에는 옛이야기 지즐대는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의 생가는 1974년에 헐렸다가 1996년 복원됐다.
그리고 2005년 그의 문학과 시대적 상황, 그리고 현대시의 발자취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정지용문학관이 세워졌다. 돌담, 싸리문, 우물, 장독대, 당시의 살림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초가지붕 생가는 고향을 그리워했던 시인의 애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듯했다. 둘러보던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때때로 개개인의 향수를 소환하기도 한다.
문학관을 들어서면 실물 크기의 정지용 밀납 인형이 탐방객을 반긴다. 옆자리에 앉아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포토존이다. 코스에 따라 전시물을 살펴보고 나면 낭송실에 들어가 영상과 음악을 배경으로 직접 시를 읽어보거나, 문학자판기에서 긴 글, 짧은 글을 선택해 시 한 편을 출력해 갈 수도 있다.
생가에는 특별한 역사를 가진 돌다리가 있다. 부근의 죽향초등학교에서 발견된 황국신민서사비는 한때 통일탑으로 불리다가 1993년에 이르러 일제강점기 당시 충성을 강요해 만든 비석임이 밝혀졌다. 이에 정지용 생가로 옮겨와 눕혀 놓고 주민과 탐방객들이 수시로 밟고 지나도록 한 것이다.
옥천이 자랑하는 먹거리 중 하나가 생선국수다. 평소 민물고기 계열의 음식을 즐겨 먹는 편은 아니었지만, 생가에서 나오자 바로 눈에 띄는 식당이 있어 먹어보기로 했다. 이름하야 구읍식당, 생선국수(7000원)에서 그쳐야 했는데 때마침 호기심이 발동 도리뱅뱅(1만2000원)까지 주문하고 말았다.
옥천의 생선국수는 민물 잡어를 뼈째로 우려낸 뒤 내장과 뼈를 제거한 국물에 고추장을 풀고 밀가루 면을 넣어 만든단다. 경험이 적어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칼칼함과 담백함이 어우러져 해장음식으로는 더할 나위가 없을 듯했다.
민물생선을 기름에 한 번 튀긴 후 프라이팬에 둥글게 돌려놓고 고추장 양념을 발라 조려낸 도래뱅뱅은 바삭하면서도 매콤, 단짠의 조화가 일품, 막걸리보다는 맥주 안주로 더욱 어울리는 맛이었다. 한낮인 데다 여정이 아직 길게 남아 있으니 술을 곁들이지 않기로 했다.
이지당과 부소담악에서 만난 송시열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전시동을 안내하는 문화해설사 천정희 님에게 옥천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 한 곳을 물었더니 ‘이지당’을 추천해줬다.
사실 이지당은 옥천을 소개하는 여행 맵이나 안내책자 등에서 크게 부각된 장소는 아니었다. 2020년 말이 돼서야 보물로 지정된 누각이라니 그 실체가 더욱 궁금해졌다. 구읍에서 불과 4.5km 정도 떨어져 있어 거리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봄기운이 완연한 냇가 너머로 고풍스런 누각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대번에 이지당임을 알아챘다. 가까이 다가가자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아주머님이 무언가를 열심히 캐고 있었는데 궁금해서 물어보니 냉이란다.
아직은 냉기가 가시지 않은 잡초 밭에서 봄 내음를 캐내는 내공과 안목에 새롭게 다가온 계절을 한 움큼 느꼈다.
이지당은 선조와의 갈등으로 관직에서 물러나있던 성리학자 조헌은 충북 옥천에 내려와 후학을 가르쳤던 곳으로 본래 이름은 각신서당(覺新書堂)이다.
후에 이곳을 찾은 송시열이 ‘고산앙지 경행행지(高山仰止 景行行止: 높은 산을 우러러 보듯 현인들의 행실을 본받아야 한다)’의 끝 글자, 즉 두 개의 ‘지(止)’자를 모아 이지당(二止堂)이라 이름을 짓고 현판을 내걸었다 전해진다.
이지당의 건물 양측에는 각각 2층으로 된 누각이 있다. 특히 좌측의 누각은 매우 특이하다. 기둥 안쪽으로 아궁이를 갖춘 부엌이 있으며, 2층은 삼면이 뚫린 누마루를 앞에 두고 뒤쪽으로 방이 딸린 형태를 갖췄다. 유유낙낙 흐르는 서화천을 굽어보며 풍류를 즐기기에 딱 좋은 구조다.
어쩌면 캠핑과 아웃도어가 대세인 요즘 추세에도 잘 어울린다. 일반 서당에서는 볼 수 없는 이렇듯 독특한 건축 양식은 역사적 가치와 더불어 보물로 지정된 핵심 요인이 됐다.
부소담악은 대청호로 뻗어 있는 길이 700m의 좁고 긴 절벽으로 옥천 여행에서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되는 명소다. 1980년 대청호가 완공되면서 산이 윗부분만 남기고 물에 잠기면서 형성된 지형이지만 오래전 송시열이 소금강이라 불렀으니 본래의 모습도 꽤나 절경이었음에 틀림없다. 멀리서 바라본 부소담악은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
마치 예이츠의 시 이니스프리호수의 섬(The Lake Isle of Innisfree)이라도 연상시킬 분위기와 모습을 갖췄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육지와 한부분이 연결된 반도의 형상이다. 대청호에 비친 반영이 선명하다. 전망 좋은 스폿은 곳곳에도 있지만 2층 정자 추소정이 으뜸이다. 멋대로 휘어져 기묘한 형상을 한 소나무 숲 사이사이로 암릉이 이어진다. 절벽 길을 산행하듯 조심스레 걸어야 한다.
문화공간 둠벙, 그리고 지역민의 추천 여행지
옥천읍내로 돌아와 지역 문화 창작공간 ‘둠벙’을 찾아갔다. 둠벙은 만화방이자 작은 책방이며 전시장, 공연장, 영화관, 강연장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문화공간이다.
또한 옥천과 관련한 콘텐츠들과 더불어 커피나 음료를 파는 카페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로컬 매거진임에도 불구하고 2021년 우수 콘텐츠 잡지로 선정됐던 ‘월간 옥이네’를 만났다. ‘월간 옥이네’는 옥천의 문화, 역사, 사람, 공통체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낸다. 잡지를 뒤적이다 지난호지만 보호수를 테마로 한 글이 눈에 들어와 한 권 샀다.
동네마다 한 그루씩 서 있는 보호수만으로도 좋은 여행의 테마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알았다. 우람한 그늘이 주민들의 삶, 마을의 역사를 지켜 왔을 테니까. 명소를 섭렵하는 여행의 반대쪽에는 스스로의 명소를 만들어가는 여행도 있다.
둠벙에 근무하는 젊은 직원에게 옥천에서 꼭 먹어봐야 할 한 가지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사실 이미 경험했던 음식 중에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뜻밖에 ‘풍미당’이란 식당의 ‘물쫄면’(7000원)이었다. 이것을 먹기 위해 대전 등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으며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 물론 찾아가 먹어봤다. 직접 뽑아낸 노란 면에 뜨거운 멸치 육수를 붓고 그 위에 양념과 김 가루, 다진 고기, 삶은 계란, 채소가 고명으로 올라갔다.
얼핏 맛을 보면 일반적인 우동국물과 흡사하지만 점차 식당 이름과 같은 진한 풍미가 느껴진다. 변발의 찰기도 매우 좋다. 다 먹고 나니 아쉬움이 완성되는 맛, 한 그릇을 더 시키자니 배가 부르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치도 보인다. 45년 노포에 방송 출연도 여러 번 했다. 사장님이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물쫄면 면은 가위로 잘라 먹으면 맛이 없다.
옥천로컬푸드직매장 역시 추천 받은 곳이다. 군내 330여 곳의 농가가 직접 만든 상품을 납품 받아 판매한다. 매장 내에는 과일, 채소, 곡식, 육류, 버섯, 유정란 등의 신선가공식품 외에도 민물고기, 공예품 코너까지 있다.
매대 위쪽에는 지역과 이름이 표기된 생산자의 사진이 있어 더욱 믿음직하다. 2019년 개장한 이곳의 방문객은 이미 40만 명을 넘었고 누적 매출 또한 100억 원을 달성했다. 이로 인해 옥천군은 ‘2021 로컬푸드 지수’ 평가에서 2년 연속 ‘최우수 지자체’에 선정됐다. 신선하고 건강한 먹거리가 취향이라면 꼭 들러보기를 권한다.
고백하건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 밥 한 끼를 더 먹었다. 옥천 묵밥이 유명하다고 해서 ‘구읍할매묵집’에 들렀던 것. 지나고 보니 징그러울 정도로 먹고 다닌 여행이다. 어찌하겠는가. 작게만 알았건 여행지에 아름다운 볼거리, 지역과 문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그리고 넘치는 먹거리가 있는지를. 아무튼 맛과 재미로 조금은 뚱뚱해진 옥천 여행, 올봄에 한 번 다녀 오시지유~.
글 사진 김민수 여행작가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의 실패를 초량순대에서 만회하다
‘옥천전통문화체험관’에서 하룻밤을 보낼 생각이었다. 도착한 시간은 저녁 6시, 평일이라 숙박동은 충분히 여유가 있을 것으로 짐작했기에 당당하게 관리실로 향했다. 그러나 웬걸, 예약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을 내어줄 수 없단다. 빈방이 있어도 예약 없이는 당일 숙박이 안 돼는 시스템의 불합리성보다는 매번 이런 식으로 낭패를 보는 게으름과 안일함이 문제다.
하는 수 없이 읍내로 들어가 새로 지었다는 호텔에 방을 잡았다. 이제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숙박 장소 박탈에 대한 아쉬움을 만회할 수도 있다.
감이 좋지 않으니 차라리 통계와 정보를 믿어보기로 했다. 검색창에서 옥천 맛집을 찾아봤다. 그중 유난히 눈을 끈 식당은 2대에 걸쳐 75년째 운영 중이라는 ‘옥천초량순대’다.
식당은 외관에서부터 노포의 포스가 진하게 풍겼다. 내부에는 지역주민들로 보이는 손님이 듬성듬성 앉아 있었고 테이블 사이로 순댓국의 내음이 구수하게 흘렀다. 모듬순대 소(1만 원)와 순댓국(7000원), 그리고 옥천막걸리를 주문했다.
순댓국에서는 느끼함과 잡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한 수저의 새우젓만으로도 최적의 간이 완성될 정도로 국물 기반이 탄탄했고 궁극의 맛은 깔끔, 개운함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또 하나, 굵은 당면과 채소가 속을 꽉 채운 순대는 자작하게 배어든 국물과 어우러져 기분 좋은 텐션을 만들어 냈다. 맛에 이어 식감 또한 대만족.
순대, 머리 고기는 물론 간, 허파, 염통, 오소리감투, 암뽕 등 열 가지에 달하는 돼지 부속물로 구색을 갖춘 모둠순대 역시 취향 저격이다. 직접 돼지를 삶고 순대를 만들어내는 식당의 구력과 자신감에 여행자는 그저 젓가락질마다 감탄을 삼킬 따름이다. 하지만 과도한 흥분에 이은 식탐은 극도의 복부 팽창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왜 잊고 있었을까. 결국 남김없이 비워진 막걸리 또한 보통 병의 2배 크기였으니 말이다.
옥천 여행의 절반은 구읍에 있다
구읍은 옥천의 옛 읍내를 말한다. 고려 충선왕 이후 구한말까지 관아가 있었고 일제강점기 초반까지 옥천의 행정과 경제의 중추 역할을 했던 곳이다. 하지만 지난 1917년 군청이 경부선 옥천역이 있는 현재의 시가지 삼양리로 이전하면서 그 면모를 잃게 됐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 구읍은 옥천 여행의 허브로 다시금 부상하고 있다. 정지용 생가, 옥천향교, 옥주사마소, 죽향 초등학교 구교사, 육영수 생가 등 역사와 문화의 자취들이 남아 있는가 하면 저마다의 개성을 자랑하는 30여 곳의 카페와 도토리묵밥, 생선국수, 올갱이국밥 등 전통 메뉴를 두루 갖춘 맛집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이튿날 아침 여전히 더부룩한 배로 인해 아침을 거른 채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구읍에 있는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이다. 샅샅이 살펴 하룻밤을 묵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보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했다. 1만3223m²의 부지를 기반으로 2020년 개관한 옥천전통문화체험관은 숙박동, 체험동, 전시동, 커뮤니티센터 그리고 식당과 전통놀이마당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고시산관이란 이름을 가진 숙박동은 4인실 10동, 8인실 3동으로 구성돼 있는데 고유의 한옥 모델에 편의시설 및 현대식 집기류까지 갖추고 있으면서도 이용료가 저렴하다.
넓은 경내를 정원으로 삼고 구읍의 관광 인프라를 쉽게 접할 수 있어 옥천 여행을 위한 베이스캠프로 최적의 입지를 자랑한다. 또한 체험동인 옥천관에서는 예절, 다도, 다문화체험, 전통 음식 만들기, 공예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까지 두루 섭렵할 수 있다. 물론 예약은 필수다.
정지용을 읽고 생선국수로 해장하다
구읍은 정지용의 시 구절과 많이 닮았다. 담벼락과 골목, 그리고 거리는 온통 그의 시 ‘향수’로 채워졌다.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실개천가에는 옛이야기 지즐대는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의 생가는 1974년에 헐렸다가 1996년 복원됐다.
그리고 2005년 그의 문학과 시대적 상황, 그리고 현대시의 발자취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정지용문학관이 세워졌다. 돌담, 싸리문, 우물, 장독대, 당시의 살림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초가지붕 생가는 고향을 그리워했던 시인의 애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듯했다. 둘러보던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때때로 개개인의 향수를 소환하기도 한다.
문학관을 들어서면 실물 크기의 정지용 밀납 인형이 탐방객을 반긴다. 옆자리에 앉아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포토존이다. 코스에 따라 전시물을 살펴보고 나면 낭송실에 들어가 영상과 음악을 배경으로 직접 시를 읽어보거나, 문학자판기에서 긴 글, 짧은 글을 선택해 시 한 편을 출력해 갈 수도 있다.
생가에는 특별한 역사를 가진 돌다리가 있다. 부근의 죽향초등학교에서 발견된 황국신민서사비는 한때 통일탑으로 불리다가 1993년에 이르러 일제강점기 당시 충성을 강요해 만든 비석임이 밝혀졌다. 이에 정지용 생가로 옮겨와 눕혀 놓고 주민과 탐방객들이 수시로 밟고 지나도록 한 것이다.
옥천이 자랑하는 먹거리 중 하나가 생선국수다. 평소 민물고기 계열의 음식을 즐겨 먹는 편은 아니었지만, 생가에서 나오자 바로 눈에 띄는 식당이 있어 먹어보기로 했다. 이름하야 구읍식당, 생선국수(7000원)에서 그쳐야 했는데 때마침 호기심이 발동 도리뱅뱅(1만2000원)까지 주문하고 말았다.
옥천의 생선국수는 민물 잡어를 뼈째로 우려낸 뒤 내장과 뼈를 제거한 국물에 고추장을 풀고 밀가루 면을 넣어 만든단다. 경험이 적어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칼칼함과 담백함이 어우러져 해장음식으로는 더할 나위가 없을 듯했다.
민물생선을 기름에 한 번 튀긴 후 프라이팬에 둥글게 돌려놓고 고추장 양념을 발라 조려낸 도래뱅뱅은 바삭하면서도 매콤, 단짠의 조화가 일품, 막걸리보다는 맥주 안주로 더욱 어울리는 맛이었다. 한낮인 데다 여정이 아직 길게 남아 있으니 술을 곁들이지 않기로 했다.
이지당과 부소담악에서 만난 송시열
옥천전통문화체험관 전시동을 안내하는 문화해설사 천정희 님에게 옥천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 한 곳을 물었더니 ‘이지당’을 추천해줬다.
사실 이지당은 옥천을 소개하는 여행 맵이나 안내책자 등에서 크게 부각된 장소는 아니었다. 2020년 말이 돼서야 보물로 지정된 누각이라니 그 실체가 더욱 궁금해졌다. 구읍에서 불과 4.5km 정도 떨어져 있어 거리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봄기운이 완연한 냇가 너머로 고풍스런 누각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대번에 이지당임을 알아챘다. 가까이 다가가자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아주머님이 무언가를 열심히 캐고 있었는데 궁금해서 물어보니 냉이란다.
아직은 냉기가 가시지 않은 잡초 밭에서 봄 내음를 캐내는 내공과 안목에 새롭게 다가온 계절을 한 움큼 느꼈다.
이지당은 선조와의 갈등으로 관직에서 물러나있던 성리학자 조헌은 충북 옥천에 내려와 후학을 가르쳤던 곳으로 본래 이름은 각신서당(覺新書堂)이다.
후에 이곳을 찾은 송시열이 ‘고산앙지 경행행지(高山仰止 景行行止: 높은 산을 우러러 보듯 현인들의 행실을 본받아야 한다)’의 끝 글자, 즉 두 개의 ‘지(止)’자를 모아 이지당(二止堂)이라 이름을 짓고 현판을 내걸었다 전해진다.
이지당의 건물 양측에는 각각 2층으로 된 누각이 있다. 특히 좌측의 누각은 매우 특이하다. 기둥 안쪽으로 아궁이를 갖춘 부엌이 있으며, 2층은 삼면이 뚫린 누마루를 앞에 두고 뒤쪽으로 방이 딸린 형태를 갖췄다. 유유낙낙 흐르는 서화천을 굽어보며 풍류를 즐기기에 딱 좋은 구조다.
어쩌면 캠핑과 아웃도어가 대세인 요즘 추세에도 잘 어울린다. 일반 서당에서는 볼 수 없는 이렇듯 독특한 건축 양식은 역사적 가치와 더불어 보물로 지정된 핵심 요인이 됐다.
부소담악은 대청호로 뻗어 있는 길이 700m의 좁고 긴 절벽으로 옥천 여행에서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되는 명소다. 1980년 대청호가 완공되면서 산이 윗부분만 남기고 물에 잠기면서 형성된 지형이지만 오래전 송시열이 소금강이라 불렀으니 본래의 모습도 꽤나 절경이었음에 틀림없다. 멀리서 바라본 부소담악은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
마치 예이츠의 시 이니스프리호수의 섬(The Lake Isle of Innisfree)이라도 연상시킬 분위기와 모습을 갖췄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육지와 한부분이 연결된 반도의 형상이다. 대청호에 비친 반영이 선명하다. 전망 좋은 스폿은 곳곳에도 있지만 2층 정자 추소정이 으뜸이다. 멋대로 휘어져 기묘한 형상을 한 소나무 숲 사이사이로 암릉이 이어진다. 절벽 길을 산행하듯 조심스레 걸어야 한다.
문화공간 둠벙, 그리고 지역민의 추천 여행지
옥천읍내로 돌아와 지역 문화 창작공간 ‘둠벙’을 찾아갔다. 둠벙은 만화방이자 작은 책방이며 전시장, 공연장, 영화관, 강연장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문화공간이다.
또한 옥천과 관련한 콘텐츠들과 더불어 커피나 음료를 파는 카페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로컬 매거진임에도 불구하고 2021년 우수 콘텐츠 잡지로 선정됐던 ‘월간 옥이네’를 만났다. ‘월간 옥이네’는 옥천의 문화, 역사, 사람, 공통체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낸다. 잡지를 뒤적이다 지난호지만 보호수를 테마로 한 글이 눈에 들어와 한 권 샀다.
동네마다 한 그루씩 서 있는 보호수만으로도 좋은 여행의 테마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알았다. 우람한 그늘이 주민들의 삶, 마을의 역사를 지켜 왔을 테니까. 명소를 섭렵하는 여행의 반대쪽에는 스스로의 명소를 만들어가는 여행도 있다.
둠벙에 근무하는 젊은 직원에게 옥천에서 꼭 먹어봐야 할 한 가지를 추천해달라고 했다. 사실 이미 경험했던 음식 중에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뜻밖에 ‘풍미당’이란 식당의 ‘물쫄면’(7000원)이었다. 이것을 먹기 위해 대전 등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으며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 물론 찾아가 먹어봤다. 직접 뽑아낸 노란 면에 뜨거운 멸치 육수를 붓고 그 위에 양념과 김 가루, 다진 고기, 삶은 계란, 채소가 고명으로 올라갔다.
얼핏 맛을 보면 일반적인 우동국물과 흡사하지만 점차 식당 이름과 같은 진한 풍미가 느껴진다. 변발의 찰기도 매우 좋다. 다 먹고 나니 아쉬움이 완성되는 맛, 한 그릇을 더 시키자니 배가 부르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치도 보인다. 45년 노포에 방송 출연도 여러 번 했다. 사장님이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물쫄면 면은 가위로 잘라 먹으면 맛이 없다.
옥천로컬푸드직매장 역시 추천 받은 곳이다. 군내 330여 곳의 농가가 직접 만든 상품을 납품 받아 판매한다. 매장 내에는 과일, 채소, 곡식, 육류, 버섯, 유정란 등의 신선가공식품 외에도 민물고기, 공예품 코너까지 있다.
매대 위쪽에는 지역과 이름이 표기된 생산자의 사진이 있어 더욱 믿음직하다. 2019년 개장한 이곳의 방문객은 이미 40만 명을 넘었고 누적 매출 또한 100억 원을 달성했다. 이로 인해 옥천군은 ‘2021 로컬푸드 지수’ 평가에서 2년 연속 ‘최우수 지자체’에 선정됐다. 신선하고 건강한 먹거리가 취향이라면 꼭 들러보기를 권한다.
고백하건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 밥 한 끼를 더 먹었다. 옥천 묵밥이 유명하다고 해서 ‘구읍할매묵집’에 들렀던 것. 지나고 보니 징그러울 정도로 먹고 다닌 여행이다. 어찌하겠는가. 작게만 알았건 여행지에 아름다운 볼거리, 지역과 문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그리고 넘치는 먹거리가 있는지를. 아무튼 맛과 재미로 조금은 뚱뚱해진 옥천 여행, 올봄에 한 번 다녀 오시지유~.
글 사진 김민수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