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회의 이후 수익률 곡선의 역전, 즉 장단기 금리 간 역전현상이 자주 발생함에 따라 미국 경기 향방을 놓고 논쟁이 거세다.
중국, 유럽, 한국 등 주요국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경제마저 흔들린다면 세계 경제는 장기 침체를 예고하는 재침체(double dip) 국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더 우려되는 것은 금융위기 이후 추진해 온 비정상적 통화정책을 정상화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금융 완화를 재추진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져갈 수 있는 정상적인 통화정책 수단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틈을 타 ‘돈을 찍어내 더 써야 한다’는 현대통화론자(Morden Money Theory, MMT)들의 주장이 더 힘을 얻고 있다.
3월 회의 이후 장단기 금리 간 역전현상은 Fed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서 비롯된다. 1913년 설립 이래 Fed는 시장의 예상을 그대로 따르는 ‘순응적 선택’이 전통이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계기로 시장이 Fed의 의중을 잘못 읽거나 의중을 읽었다 하더라도 과도하게 해석하는 경우 시장의 예상과 달리 ‘역행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역행적 선택이론은 최근처럼 통화정책 결정에 필요한 완전한 정보를 보유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현상을 분석하는 정보경제학의 한 부류로 조지 에걸로프 교수가 주장했다. 초기에는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2014년 Fed 의장으로 임명됐던 재닛 옐런(현 조 바이든 정부의 재무장관)의 남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노벨경제학상까지 받은 이론이다.
Fed가 가장 중시하는 인플레이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거나 기준금리 변경 등과 같은 중대한 사안을 결정할 때에는 통화정책 추진 여건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체크 스윙(check swing)’ 차원에서 역행적 선택을 활용한다. 인플레 성격과 통화정책 추진 여건을 잘못 판단해 너무 빨리 출구전략을 추진하다간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를, 너무 늦게 추진하다간 ‘그린스펀 실수(Greenspan’s failure)’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두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공존하는 여건에서 각국 중앙은행의 선봉장인 Fed가 어떤 행로를 걷을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통화정책 목표와 우선순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Fed는 2012년부터 ‘물가 안정’에다 ‘고용 창출’을 양대 책무로 설정했다. 양대 목표 간에 충돌될 때는 지난해 11월 회의 이전까지 후자에 우선순위를 둬 통화정책을 운용해 왔다.
우선순위를 더 두고 있는 고용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 여건에서는 이번처럼 인플레가 우려되더라도 기조를 변경하는 일은 쉽지 않다(통화정책 불가역성). 지난해 8월 잭슨홀 미팅에서 Fed가 2013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트리플 버블’(금융 완화 버블+인플레 버블+테이퍼링 지연 버블)을 키우고 있다는 우려 속에서도 금융 완화를 고집했던 것도 이 이유에서다.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이번에 인플레는 Fed가 키웠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제성(preemptive)’이 생명인 통화정책에서 지난해 4월 이후 ‘쇼크’라 불리울 만큼 불거진 인플레 실체를 제대로 판단하고 대응했다면 지난 3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인플레 타깃팅 선을 무려 4배 이상 웃도는 8.5% 수준까지 오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Fed, 뒤늦은 출구전략…금리 인상도 속도 낸다
뒤늦게 인플레의 심각성을 인식한 Fed는 출구전략을 서두르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추진했던 출구전략과 비교해보면 첫 단계인 테이퍼링을 신속하게 추진했다. 2013년 벤 버냉키 당시 Fed 의장이 테이퍼링을 처음 언급한 이후 마무리되기까지 1년 10개월이 걸렸으나, 이번에는 테이퍼링을 처음 언급한 지난해 9월 회의 이후 불과 7개월 만에 마무리했다.
테이퍼링 종료 이후 첫 금리 인상과 연계시키는 다음 수순도 금융위기 때에는 1년 2개월이 넘게 걸렸으나, 이번에는 테이퍼링 종료와 함께 단행했다.
마지막 단계인 양적긴축(Quantitative Tightening, QT)은 금융위기 때는 첫 금리 인상 이후 2년이 되는 2017년에 추진됐으나, 이번에는 2∼3개월 만인 올해 5월이나 6월 회의에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Fed의 이런 태도 변화는 시장에 즉각적으로 반영된다. 지난 3월 회의에서 급진적인 출구전략 추진이 확실해지면서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변화 가운데 가장 의미가 크고 주목을 받는 것은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 현상이다. 그만큼 미국 경기를 파악하고 예측할 때 수익률 곡선을 중시해 왔기 때문이다.
‘유동성 프리미엄 가설’, ‘기대 가설’, ‘분할시장 가설’에 따르면 수익률 곡선이 양(+)의 기울기(단저장고)를 나타내면 투자에 유리한 환경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어 경기가 회복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반대로 수익률이 역전(단고장저)돼 음(-)의 기울기를 나타내면 차입비용 증가로 경기가 침체국면에 접어들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아투로 에스트렐라와 프레디릭 미쉬킨 연구에 따르면 수익률 곡선 스프레드가 가장 성공적인 경기예측모형으로 나타났다. 특히 장단기 금리 차의 ‘수준(level)’이 ‘변화(change)’보다 예측력이 더 우수한 것으로 평가됐다. 뉴욕 연방은행도 장단기 금리 차는 실물경기의 선행성을 판단하는 유용한 지표로 4∼6분기를 선행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1960년 이후 15차례 걸쳐 장단기 금리 차가 마이너스, 즉 단고장저 현상이 발생했고 대부분 경기 침체가 수반됐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과 같은 투자의 구루들이 각종 투자를 판단할 때 뉴욕 연방은행이 매월 확률 모델을 이용해 발표하는 장단기 금리 차의 경기 예측력을 가장 많이 활용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확률 모델이란 장단기 금리 차의 누적확률분포를 이용해 12개월 이내에 경기 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을 확률로 변환하는 모델이다. 이 모델로 추정한 결과 마이너스 장단기 금리 차가 경기 침체를 예측한 확률은 1981∼1982년 침체기의 경우 98%까지 상승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그 확률이 떨어지는 현상이 자주 목격됐다.
세계 경제와 증시의 향방은
현재 Fed 내에서도 수익률 곡선의 유용성을 믿는 인사들은 급진적인 출구전략 추진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익률 곡선이 정상화되지 못한 여건에서 출구전략을 성급하게 추진하다간 코로나19 사태 직후 ‘제로금리와 무제한 통화 공급’으로 어렵게 살려 놓은 경기를 다시 망치는 대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벤 버냉키, 재닛 옐런, 제롬 파월 등 전현직 Ted 의장과 일부 인사들은 과일 저축과 이분법 경제로 수익률 곡선이 왜곡됐다는 시각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처럼 금융과 실물 간 연계성이 더 떨어진 상황에서 돈이 많이 풀렸을 때 수익률 곡선으로 경기를 판단하다간 오히려 ‘그린스펀 실수’를 다시 겪을 수 있다고 반박한다.
한때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칭송받았던 앨런 그린스펀 전 Fed 의장이 금융위기를 저지른 주범으로 몰리면서 붙여진 이 용어의 뿌리는 ‘그린스펀 독트린’에 있다. 통화정책 관할 범위로 자산시장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버냉키 독트린’과 달리 그린스펀은 실물경제만 감안해 통화정책을 추진해야 하고 실제로 행동에 옮겼다.
그린스펀 독트린대로 2004년 초까지 정책금리를 1%까지 내렸다가 그 후 인상국면에 들어갔으나 오히려 중국의 국채 매입 등으로 시장금리는 더 떨어지는 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했다. 그 결과 물가와 자산시장 안정을 위한 금리 인상 효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형성된 ‘저금리와 레버리지 차입 간 악순환 고리’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당시 자산시장 붕괴를 촉진시켰던 것이 국제유가였다. 2008년 초 70달러대였던 유가가 6개월 사이에 140달러대로 치솟자 각국 중앙은행이 일제히 기준금리를 올렸다. 그 결과 저금리와 레버리지 차입 간 악순환 고리가 차단돼 자산가격이 급락하자 마진 콜(증거금 부족 현상)에 봉착한 투자은행(IB)이 디레버리지(자산 회수)에 나서면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이번에도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미국 국민들의 저축률 제고와 무제한 양적완화로 풀린 과다한 유동성으로 왜곡된 수익률 곡선을 맹신해 출구전략 추진을 더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을 때 출구전략을 정상대로 추진해야 이후에 닥칠 침체국면에 Fed가 운신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판단은 쉽지 않다. 금융위기 직후 미국 경기 진단을 놓고 ‘21세기 블러그 전쟁’이라 불렸던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와 버냉키 전 의장 간 설전이 코로나19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그만큼 미국 경기가 불안하다는 의미다. 10년 이상 벌어지고 있는 두 석학 간의 논쟁 결말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기와 글로벌 증시의 앞날이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처럼 장단기 금리 역전현상이 발생하는 초기에 우려되는 것은 ‘미첼의 경고(Mitchell’s warning)’다. 월가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저명한 예측론자인 웨슬리 미첼은 “낙관론이 위기에 봉착하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이 과정에서 태어난 비관론이 문제가 된다”며 “새로 탄생한 비관론은 신생아가 아니라 거인의 위력을 발휘한다”고 경고했다.
급진적 출구전략은 성장 이론에서 실제성장률과 균형성장률, 잠재성장률이 같은 황금률이 유지돼야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고 본 ‘해로드-도마의 칼날 이론’에 비유된다. 주가도 자금 면에서 ‘유동성’, 매크로 면에서 ‘경기’, 마이크로 면에서 ‘기업 실적’이 받쳐줘야 추세적으로 상승할 수 있다. 칼날 위를 타는 무속인이 떨어지면 상처가 깊게 난다.
Fed가 앞으로 급진적인 출구전략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성장 훼손’과 ‘주가 폭락’이다. 이런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출구전략 중단만으로 안 되고 금리를 다시 내려야 할 상황이 의외로 빨리 닥칠 수 있다. 1990년대 전후 최장의 경기 호황을 이끌었던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이 미국 금리도 마이너스 시대가 올지 모른다는 예상을 그냥 웃고 넘어가야 할 상황만은 아니다. 이번에도 출구전략 추진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글 한상춘 한경미디어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