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고 쓰는 것, 세상을 보는 눈과 같죠”

조병영 교수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및 대학원 러닝사이언스학과 리터러시 교수

최근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로 ‘문해력’(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은 대한민국에서 왜 이 기본적인 학습행위를 우리 아이들은 어려워하게 된 걸까. 이 질문의 답을 얻고자 조병영 한양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및 대학원 러닝사이언스학과 리터러시 교수를 만나 얘길 나눠봤다.

우리나라의 사교육 광풍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원이라곤 인재가 전부인 나라에서 승자만 인정하는 성과주의와 무한경쟁, 그리고 계층 간 학연·지연 만능주의는 교육의 최우선 가치를 생존으로 몰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과 경제력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행복지수는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하위권을 맴돌고, 각종 사회적 부작용들이 고름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문해력이다. 최근 수년째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은 아이들의 문해력을 우려하고 있다. 가령, 고등학교 수학문제를 푸는 초등학생들이 어려운 수학공식은 척척 외워서 기술하지만, 정작 문제에 적힌 단어의 어휘를 몰라서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경우가 적잖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고급 영어단어를 외우고, 어려운 문법 문제까지 손쉽게 푸는 아이들도 정작 그 단어의 뜻이 어떤 의미인지 모른 채 푸는 일도 부지기수다.

여기에 교육을 제외한 콘텐츠의 소비 대부분이 글 대신 영상으로 넘어가면서 글을 읽고, 쓰는 행위는 더더욱 우리 아이들의 삶에서 멀어지는 양상이다. 비단, 일각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정보를 얻는 수단이 반드시 글일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병영 한양대 교수도 그 의견에 반기를 들지는 않는다. 사교육 반대론자도 아니며, 동영상을 통한 정보 수집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단, 그는 그 밑바탕에는 반드시 ‘글을 읽고, 사유하고, 소통하는 행위’가 전제돼야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이야말로 우리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자,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학습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리터러시(literacy: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 즉 문해력의 본질로 꼽았다. 조 교수가 말하는 리터러시의 필요성과 교육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최근 교육 시장에서 문해력의 중요성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리터러시는 어떤 개념인가요.
“리터러시는 문해력에 비해 좀 더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하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한마디로 텍스트를 읽고, 그것을 통해 다양하게 생각하고 배우고, 세상에 참여하는 과정을 의미하죠. 리터러시는 정확한 낱글자 읽기가 복잡다단한 세상읽기로 전환되는 과정에 기여하는, 매우 정밀하고 섬세한 지적·정서적·사회적 의미 구성 과정과 실천의 스펙트럼을 포괄합니다.”

20여 년 전 학생들과 지금 학생들 간 문해력의 차이를 느끼시나요.
“솔직히 딱히 다르다는 점은 못 느낀 거 같아요.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말을 많이 하지 않거든요. 단,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상당히 달라졌어요.”

이를 테면요.
“일단 요즘 학생들은 두꺼운 텍스트를 소화하기 힘들어 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경우, ‘글을 왜 그렇게 심각하게 읽어야 되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들에게 글을 읽는 목적이 대부분 학교 시험용이잖아요. 진지하게 읽지 않아도 간단하게 정보를 취할 수 있는 상황에 아이들이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아요.

인터넷 강의를 보거나 인터넷에 올라온 요약본 등을 통해서요. 특히, 한국인들은 유독 유튜브를 많이 보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영상을 통해 정보를 얻는 이들이 너무 많아졌어요. 영상을 보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아요. 단, 정보를 영상으로만 접하다 보니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판단하기보다는 단편적으로 소비하고 마는 경향이 문제죠. 어떤 정보들은 내가 더 집중하고 노력해서 받아들여야 되는 것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이런 정보들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에만 익숙해져 가는 것 같아요. 즉, 특정 정보의 형식이나 미디어가 갖고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의 편식이 문제죠. 이 균형이 깨진 건 아이들이나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예요.”

연구하신 내용 중에 흥미로운 점은, 25개월 된 유녕이가 책을 접할 때 한 글자 한 글자 매우 열심히, 혼심을 다해 읽는데, 이런 모습은 타고난 걸까요.
“제 생각에는 그 아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각자 시기는 달라도 아이들은 발달 과정에서 전부 그런 경험을 해요. 그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아이들은 글을 읽지 못해요. 글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에게만 주어진 능력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책이라는 것에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새로운 물건이잖아요. 반드시 부모가 아이를 무릎에 앉혀 놓고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평상시에 아이들이 책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부모와 함께 보내고,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돼요.”

문해력 교육에도 양극화가 지적되고 있어요. 실제로 강남, 목동 등 부촌에서는 이미 ‘문해력’, ‘리터러시’ 학원이 성황을 이룰 정도라고 하네요.
“양극화라는 말을 좀 더 분명하게 볼 필요가 있어요. 사실 교육 양극화와 관련해서 국내에 정확한 데이터가 거의 없어요. 대학에서 따로 연구하지 않는 이상 정부에서는 그런 변인 자체를 통계에 포함시키지 않아요. 자칫 그런 데이터가 잘사는 사람은 공부를 잘하고, 못사는 사람은 못한다는 전형화를 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죠. 양극화라는 말보다는 ‘성취 격차’라고 얘기하는 게 더 가까울 듯싶어요. 문해력의 격차도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다양한 요인에 따라 갈리고요.”

그럼 이 격차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중요한 건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정확한 이해와 관심이 필요해요. 리터러시를 통해 학습하고, 사유하고, 실천하는 태도가 결국은 한 개인의 온전한 능력이라기보다는 그 개인이 살아가면서 학교, 가정, 공동체 사회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의 결과물이에요. 문해력은 사실 공동체의 역량인 셈이죠. 사교육으로 일부 도움을 받을 순 있겠죠. 하지만 확실한 건 문해력이 마치 두 달 만에 완성될 수 있는 개념은 아니라는 겁니다.

리터러시란 삶의 경험 속에서 배워 나가는 거거든요. 학교 교육이 리터러시에서 문제가 되는 것도 그게 삶과 연계가 안 돼 있기 때문이죠. 일상에서 읽고 쓰는 것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함께 이야기하고 이런 것들이 일상화되고, 나눌 수 있어야 진짜 리터러시 교육이 이뤄집니다.”

부모는 어떻게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아이들을 그저 학원에 보내기보다 아이들이 뭐를 읽고, 보든 간에 그것에 대해서 함께 얘기하는 게 제일 좋아요. 그런데 가령, ‘너 뭐 봤니’, ‘뭐 읽었니’ 이렇게 물으면 아이들이 싫어하죠.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질문하는 건 지양하세요. 되레 ‘내가 오늘 이런 걸 봤고 읽었는데 난 이랬어’라고 본인이 먼저 얘길 하세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의아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렇게 일상에서 대화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부모가 일상 속에서 리터러시를 생활화시키고,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문해력은 높아지기 마련이죠.”

디지털도 ‘읽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이제는 유튜브도 길어서 틱톡을 보는 세상에도 리터러시가 필요할까요.
“사람의 본성은 쉽고 편한 걸 추구하죠. 기술은 늘 그걸 쫓고요. 기술의 발달에는 반드시 사람의 요구가 있어요. 그렇다면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가장 간단하게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으로 계속 발달할 거예요. 가령, 어떤 책을 읽고자 하면 인공지능(AI)이 나의 취향을 고려해서 가장 편리한 방법으로 정보를 습득하도록 돕겠죠. 그럼에도 리터러시가 왜 필요하냐. AI 등 기술의 이면에는 상당수 상업 논리가 작용하거든요.

결국 최종 판단은 나 자신, 본인이 돼야 해요. 특히, 정보의 홍수인 현대사회에서 이 방대한 양의 글과 영상들을 제대로 거르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AI 외에도 반드시 개인의 역량이 필요해요. 미래의 세상엔 이 정보를 거르고, 판단하는 능력이 더 고도화돼야 하는데, 그 기저에 저는 리터러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리터러시를 세상을 보는 눈이라고 말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죠.”

조병영 교수는…
미국에서 15년 동안 읽기와 리터러시를 교육하고 연구했으며, 한양대 IC-PBL 강의 혁신상을 받았고, 국제리터러시학회에서 올해의 박사학위 논문상을 받았으며, 미국교육학술원 및 카네기뉴욕재단에서 청소년 리터러시 박사연구자상을 수상했다. 유럽리터러시통합학회의 명예회원, 외국인 최초로 ‘2026 개정 미국 국가교육발전평가위원’으로 위촉, 유럽리터러시정책네트워크 전문위원, 국제리터러시학회 평가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명실공히 리터러시 분야의 최고 권위자다.

김수정 기자 사진 서범세 기자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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