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4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우리나라 기준금리를 기존 1.25%에서 1.5%로 인상했다. 임기 문제로 한은 총재가 부재한 상황이지만, 금통위 의결권자들은 만장일치로 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국내 기준금리는 팬데믹 이후 0.5%까지 인하됐다가 지금까지 총 4번의 인상을 거쳐 1.5%에 도달하게 됐다.
한국은행이 초유의 총재 부재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한 배경에는 인플레이션이 자리한다. 우리나라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4.1%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4%대 물가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4분기부터 3%대 중후반에 안착하기 시작해 지난 3월에 4%대를 넘기게 됐다. 유가 상승의 영향이 가장 크고, 글로벌 공급 병목에 따른 상품 가격 상승이 함께 영향을 줬다. 최근에는 국내 경제 활동 재개를 기반으로 외식 물가가 상승, 개인서비스 품목의 물가도 큰 폭으로 올랐다. 문제는 이러한 물가 상승 압력이 연말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가 평년 대비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산유국의 원유 생산 확대 등을 기대해볼 수 있지만, 적극적인 공조 실현은 어렵다.
올해 연말쯤 배럴당 80달러 선이면 낙관적 희망을 담은 숫자라고 볼 수 있다. 가장 낙관적인 숫자를 이입해봐도, 전년 동기 대비 기준으로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물가의 하향 안정에 영향을 주기 쉽지 않다. 대내적으로는 개인서비스 품목의 가격 상승 압력이 지속될 것이다. 4월 18일부터 시작된 거리 두기 해제 영향으로 미용, 숙박, 외식 등이 포함된 개인서비스 물가가 우상향을 지속할 공산이 크다.
연간 물가상승률, 한은 기존 전망치 크게 상회
연간 물가상승률은 한은의 기존 전망치를 크게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은 올해 연간 물가 상승률을 3.1%로 제시한 바 있다. 다만, 금통위에서 주상영 총재 대행인은 연 물가 4%대 초반 가능성을 언급했다. 2분기 중 국내 물가상승률이 5~6%에 이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다음 회의인 5월 금통위 때 한은의 전망치를 명확하게 알려주겠으나, 우선은 한은 역시 높은 물가 압력을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에 기준금리가 5월에 추가로 인상되고(1.5%→1.75%), 3분기 중 한 차례 더 추가 인상(1.75%→2%)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 수준 대비 2회 정도는 추가로 인상돼야 국내 물가 안정에 일부 기여할 수 있고, 차후 한은의 정책 여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도 유리한 레벨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두 차례 인상은 국내 중립금리를 기준으로 했다.
중립금리란 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인플레나 디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는 균형금리를 뜻한다. 직관적으로 ‘현실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최적의 금리’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통화정책 준거금리로 사용된다. 경기가 둔화되거나 물가가 낮을 때는 중립금리보다 낮게 유지하고(완화적), 경기가 과열됐거나 물가가 높을 때는 중립 수준보다 높여(긴축적) 경기사이클의 변동 폭을 안정시킨다.
2022년 기준 국내 중립금리는 2% 중후반으로 추정한다. 추정의 불확실성이 있지만, 그동안 한은이 발간한 논문에서 2017~2018년 사이 우리나라의 (실질) 기준금리가 중립 수준에 부합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 당시의 성장과 물가[2017년 국내총생산(GDP) 3.2%·소비자물가지수(CPI) 1.9%, 2018년 GDP 2.9%·CPI 1.5%]를 감안했을 때 한국의 중립적 실질 기준금리는 -0.5 ~ 0.25% 범위로 추산할 수 있다.
이를 2022년 현재 경기 수준에 맞춰 치환하면, 한국 (명목) 기준금리 2.5~3%가 중립금리에 부합한 범위로 판단된다. 다만 한은은 현재 딜레마에 처해 있다. 물가를 감안하면 기준금리를 중립 수준보다 높여야 하지만, 경기 여건을 감안하면 금리를 크게 올릴 수 없다. 세계 교역량이 정점을 기록한 후 점차 둔화되고 있어 국내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고, 원자재 가격 상승과 환율 상승 영향으로 수입 가격은 되레 상승해 무역수지가 적자를 나타내고 있다.
수출 경기가 안 좋을 때마다 건설경기를 통해 내수를 진작했지만 선제적으로 상승한 주택 경기를 감안하면 이마저도 쉽지 않다. 따라서 인상 기조를 지속하되, 앞서 예측한 중립금리보다는 약간 낮은 2~2.25%로 올해 통화정책 회의를 마무리할 것으로 판단한다. 물가 안정을 도모함과 동시에 경기 모멘텀도 꺼뜨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Fed 금리 정상화 속도…외국인 자금 유출 과한 우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정책금리 경로를 근거로 한은 기준금리가 더 큰 폭으로 인상돼야 한다는 주장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정책금리가 공격적으로 인상되고, 이로써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이 나타나게 되면 외국인 자금 유출 문제가 발생, 국내 자산 시장에 신용 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Fed의 정책 경로를 점검해보면, 현행 0.5%인 정책금리를 5월과 6월에 각각 50bp(1bp=100분의 1%)씩 인상하고, 남은 회의에서 연속적으로 인상해 연말 정책금리 상단이 2.25~2.5% 선에서 형성될 것으로 본다. 미국은 한국보다 물가 상승 압력이 훨씬 크다. 대외 이벤트의 영향력이 오롯이 반영되는 지역적 특성이 있고, 내부적으로는 근로자의 임금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어 서비스 이용료의 가격 상승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해를 위해 국내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정부 차원의 관리물가 비중이 크고, 유류세 인하 등을 통해 유가 상승분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미국은 주거비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고, 가격 전가가 용이한 서비스업 비중 또한 높다.
따라서 미국 3월 물가상승률은 8.5%(CPI 기준)를 기록했다. 대체로 1분기를 정점으로 인식하는 듯하나, 일부 시장참여자들은 미국 물가 상승 압력이 2분기 혹은 3분기까지 지속돼 해당 시점에 고점을 형성할 가능성을 언급한다.
이 경우 연간 물가상승률은 7~8%가 될 것이다. 이 역시 Fed의 기존 예상치[2022년 개인소비지출(PCE) 기준 4.3%]을 크게 상회한다. 더군다나 미국은 고용 시장에서의 구조적 변화가 발생해 물가 상승에 취약한 여건을 보여주고 있다. 팬데믹 이후 실업자들이 높은 실업급여를 받았던 경험, 이 과정에서 근로에 대한 인식의 변화, 자산 시장 호황에 따른 부의 효과 등으로 근로자들이 높은 임금을 요구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특유의 노동 공급 부족으로 이러한 임금 인상 요구가 적극 반영되고 있다. 이때 현실 경제에서의 물가 상승 압력이 근로자로 하여금 물가 상승 공포를 자극, 재차 임금 인상 요구로 이연되면서 임금 스파이럴 인플레이션(wage spiral inflation) 압력이 형성되는 것이다. Fed는 이러한 물가 상승 압력과, 궁극적으로는 인플레 기대치를 하향 안정시키기 위해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른 속도로 금리 정상화를 시행할 전망이다.
Fed는 점도표를 통해 미국의 중립금리가 2.4%임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Fed는 중립 수준에 부합하거나 약간 못 미치는 정도로 금리를 올릴 계획이다. 현재 정책금리 수준이 0.5%로 지나치게 낮기 때문에, 제한된 회의 속에서 빅스텝(50bp) 인상을 강행해 연말에 2.25~2.5% 레벨을 만들 것으로 본다.
Fed 정책금리를 감안해 하반기부터 한·미 간 금리가 역전되면 국내 외국인투자자의 자금이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점검해보자. 설득력이 있기는 하나, 한·미 금리 역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자금이 순유입됐던 경험적 근거가 있다. 2018년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분기당 인상 행보로 한·미 금리 역전이 확대됐으나 외국인 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됐다.
단기 자금의 경우 스와프 레이트를 통해 보전한 덕분에 되레 국내 채권 투자 수익률이 컸고, 장기물 자금의 경우에는 한국의 거시건전성을 고려해 투자한 자금이었다. 외국인은 단순 금리 차보다는 펀더멘털 여건을 고려한 신흥국의 안전성을 가장 중시하기 때문에, 해당 논리라면 한은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대내 경기 여건을 비중 있게 고려하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한은이 한국의 성장과 물가, Fed의 정책 경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기준금리를 2%까지 인상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글 허정인 다올투자증권 연구원 | 사진 한국경제DB